◀앵커▶
경북도의회 의원들이 일선 소방서의 화재 진화 능력을 점검해 보겠다는 이유로 멀쩡한 논에 불을 지른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도의원들의 권한 남용으로 인해 소방력을 낭비했다는 비판이 일고 있습니다.
이도은 기자입니다.
◀기자▶
11월 18일 오후 3시 40분쯤, 상주소방서에는 논두렁에 연기가 난다는 신고가 접수됐습니다.
신고 8분 만에 소방펌프차가 도착해 완전 진압까지는 불과 20초 남짓, 모닥불 수준도 안 되는 소규모 화재였습니다.
그런데 화재 현장을 지키고 있던 건 엉뚱하게도 경북도의원들과 공무원 등 십여 명.
경북도의회 건설소방위원회 소속 의원들이 행정사무 감사 과정에서 일선 소방서의 화재 대응능력을 직접 확인해 보자며 화재 상황을 연출한 겁니다.
경북도의회 건설소방위원회는 볏짚 2단을 인근 도로로 가져와 불을 질렀습니다.
불을 지른 건 경북도의원, 화재 신고를 한 건 도의회 소속 공무원이었습니다.
화재 현장에는 마른 나뭇가지들이 나뒹굴고, 근처에는 야산과 공장도 있어 자칫 큰 불로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도의원들은 소방대원들에게 "신속하게 출동해 진압을 잘했다"고 칭찬과 악수까지 한 뒤 현장을 떠났습니다.
소방공무원 노조는 의원들이 도민의 안전을 볼모로 권한 남용과 갑질을 저질렀다며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김주철 소방을사랑하는공무원노조 경북위원장▶
"얼마나 경각심을 갖고 왔겠습니까. 그런데 현장에 도착해보니 도의회 관계자들이 구경하고 있는 상황에서 얼마나 허탈하고···"
의원들은 이유가 있었다고 항변합니다.
2024년 7월을 비롯해 두 차례 영양의 화재 현장에서 소방관의 장비 작동 미숙으로 피해를 키운 사례가 있어, 불시 점검이 필요했다는 겁니다.
◀박순범 경북도의회 건설소방위원장▶
"(물이) 분사가 안 되면 이건 잘못된 거다, 그래서 연속적으로 2년에 이런 일이 발생해서 분사 부분에 대해 점검할 필요가 있다는···"
비난 여론이 들끓자, 경북도의회는 행정사무 감사 관련 조례에 필요한 경우 현지 확인을 하도록 돼 있다고 반박하는 한편, 주민과 관계자들이 불편을 느끼지 않도록 감사 방법을 보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MBC 뉴스 이도은입니다. (영상취재 임유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