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면 은행나무 은행잎이 노랗게 물드는 집
해가 저무는 날 먼데서도 내 눈에 가장 먼저 뜨이는 집
생각하면 그리웁고
바라보면 정다웠던 집
어디 갔다 늦게 집에 가는 밤이면
불빛이, 따뜻한 불빛이 검은 산 속에 깜박깜박
살아 있는 집
그 불빛 아래 앉아 수를 놓으며 앉아 있을
그 여자의 까만 머릿결과 어깨를 생각만 해도
손길이 따뜻해져오는 집
<그 여자네 집>
[서상국 MC]
선생님이 굉장히 자주 많이 시집을 내시잖아요? 뭐 농사짓듯이 이렇게 시집을 내시는 게 아닌가 그런 이야기도 하는데, 그렇게 시집을 꾸준히 그리고 자주 내실 수 있는 원동력이랄까요? 뭐 선생님 말씀 들어보니까 글쓰기를 멈추지 않고 계속하시면서 거기서 이제 시들이···
[김용택 시인]
나타나는 거죠.
[서상국 MC]
계속 나오는 거 같은데···
[김용택 시인]
그것이 사실은 시인들한테 그게 중요하죠. 뭐 놓치지 않는, 자기가 끌고 가는 삶의 어떤 패턴들을 놓치지 않고 지속시키고 우리가 좋아하는 지속 가능한, 이런 지속을 시킬 힘을 찾아야 하는데 힘이 현실이라는 것이죠.
현실인데 제가 아까 처음에 말씀드렸듯이 뭐 연속극이라든가 뭐 그 예능이라든가 영화라든가 이런 것들, 또 뭐 신문이라든가 이런 것들을 놓치지 않죠.
굉장히 부지런하죠. 책도 뭐 코로나 때는 하루에 적어도 50페이지 이상은 읽어야 한다. 이 생각을 가지고, 있는 힘을 다해서 뭐 아리스토텔레스도 다시 읽고, 칸트, 아도르노 뭐 이렇게 읽고, 중요한 철학 서적들도 읽고 뭐 종의 기원도 다시 두 번 읽고.
[김규종 MC]
그 재미없는 책을···
[김용택 시인]
세계미술사도 읽고, 코스모스도 읽고, 총, 균, 쇠도 읽고, 호모 데우스도 읽고···
[김규종 MC]
언제 한번 저희 방송국에 꾸준히 한번 나오셔서 책 소개를···
[김용택 시인]
하, 그건 못한다니까? 정리를 잘해야 하는데, 꾸준히 뭔가 지금은 이제 유진 오닐···
[김규종 MC]
느릅나무 밑의 욕망
[김용택 시인]
그걸 지금 요새 그 희곡집을 안사람이 반드시 읽어야 된다고 그래서···
[김규종 MC]
아, 그래요? 언제 사모님하고 대담을 한번 해야 하겠는데, 예전에 보면, 살아 있을 때 미당 서정주 시인이 러시아 쪽으로 '나는 시 영혼을 찾아서 간다' 그런 화제가 된 적이 있는데, 선생님께서는 멀리 안 가시고···
[김용택 시인]
이해가 안 되는···
[김규종 MC]
멀리 안 가시고 선생님 주변에서 이걸 찾으시는데 혹시 강연 많이 다니시고 글도 많이 쓰실 텐데 빈 시간에는 주로 뭘 하고 지내시죠? 아까 찻집에 가신다는 얘기 잠깐 하셨는데
[김용택 시인]
우리 안사람은 찻집에 가고, 저는 집에서 안사람이 책을 읽으러 가잖아요? 저도 책을 읽죠. 한 시간 정도 두 시간? 한 50페이지는 꼭 있는 힘을 다 해서 그다음에는 좀 낮잠도 자고, 일찍 일어났잖아요? 그러니까 꼭 낮잠을 자야 해요.
[김규종 MC]
30분에서 1시간?
[김용택 시인]
1시간 정도 낮잠 자고, 책을 읽고 이제 주로 놀죠. 안사람이 뭐 연속극 이거 봐야 한다 그러면 뭐 시리즈로 그것도 보고 있고, 또 영화도 뭐 놓친 거 보고 있고, 또 뭐 시가 생각나서 시가 또 자꾸 써질 때는 가서 다시 옛날 글들을 다시 한번 이렇게 자세히 보고 추리고 주로 노는 시간이죠.
해 넘어가면 아침에 해 뜰 때 하고 저녁에 해 질 무렵에는 사진을 찍죠. 사진을 굉장히 많이 찍어놨습니다. 사진을 뭐 어마어마하게 찍어놨죠. 요새는 구름을 찍습니다. 요새는 구름이 좋아서 올해는 뭐 구름이 어마어마했어요.
사람들이 하늘을 안 쳐다봐서 그렇지 구름이 정말 풍성하고 풍요로웠습니다.
[서상국 MC]
그런데 선생님, 생활하시는 모습을 들으니까, 정말 농사지으시는 분 같아요.
농사지으시는 분들이 하루에도 끊임없이 움직이시고, 하루도 노는 날 없이 계속 움직이고, 아침 나절에 해야 할 일이 있고 점심때 해야 할 일이 있고 저녁에 해야 할 일이 있고 또 집안일이 있고 그걸 계속해서 반복하면서 놓치지 않기 위해서 애를 쓰고 그렇게 농사를 짓지 않습니까?
[김용택 시인]
농사지으시는 분보다 내가 더 부지런한 거 같아요.
[김규종 MC]
농번기, 농한기가 있는 거예요?
[김용택 시인]
크게는 없어요, 저는.
[김규종 MC]
시번기는 있어도 시한기는 없다.
[김용택 시인]
안사람이 뭐라 하냐면 "제발 달 좀 쉬게 당신 달 좀 쳐다보지 마라"
[김규종 MC]
그만 좀 찍어라
[김용택 시인]
달도 쉬어야지. 아 새들도 쉬어야 하지 않냐고. 그렇게 새들을 쫓아다니면 어떡하냐고···
[김규종 MC]
멋진 말씀인데, 이 말씀 질문을 꼭 드리고 싶어요. 요즘에 왜 시 쓰는 사람, 특히나 시를, 시집을 사서 시를 읽는 사람, 거의 천연기념물 멸종위기 단계인데 왜 이렇게 됐을까요?
[김용택 시인]
시가 재미가 없기 때문에···
[김규종 MC]
시시해서 그런가요?
[김용택 시인]
시가 재미가 없죠. 재미가 없는데 저는 열심히 읽습니다. 시집을 저는 뭐 젊은 시인들 뭐 열심히···
[서상국 MC]
시인이시니까 열심히 읽으시겠죠.
[김용택 시인]
그렇기도 하고, 또 아무리 젊은 시인들이 시리??에 무슨 날인지 모른다고 하더라도 그 속에 우리들의 삶이 담겨 있기 때문에 뭐 나오는 시집들은 거의 사서 보죠.
[김규종 MC]
혹시 아끼는 젊은 시인이 있으십니까, 선생님?
[김용택 시인]
때로 변하죠. 그때그때 변하지. 내가 그 사람을 계속 아끼고 있은들 그 사람, 이렇게 계속해서 좋은 시인들이 나타나고 좋은 시집이 나타나죠. 요새 어제, 오늘은 진은영이라는 시인이 쓴 시집을 사서 읽고 있습니다.
한 사람한테 빠지면 또 그 사람 시집을 옛날까지 다 사서 또 쭉 다 봐야 하고 그래서 어떤 시를 특별히 좋아하는 게 아니고 좋은 시를 좋아하죠.
(구성 이수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