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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보니] 우리는 보통 사람입니다 | 빅벙커


지난 5년간 대구시와 부산시의 예산을 모두 합하면 186조 원 정도 됩니다. 하지만 이 중에 대구시와 대구 8개 구·군, 부산시와 부산 16개 구·군은 물론 대구와 부산 교육청까지 성소수자 관련 예산은 한 푼도 책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정민석 청소년성소수자지원센터 띵동 대표 "대구와 부산뿐 아니라 전국 8대 특·광역시와 여성가족부, 보건복지부, 교육부까지 모두 정보공개 청구를 해 봤지만 관련 예상과 정책이 없다는 '부존재'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제가 성소수자 인권 활동을 한 지가 올해로 26년째이거든요?

그동안 다양한 성소수자 인권 단체를 운영하고 지금도 '띵동'이라는 단체를 운영하고 있지만 이런 민간 단체들조차 정부나 지자체 보조금 없이 기부금으로 운영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스무 명 중 한 명은 성소수자···관련 예산은 0원
성소수자와 관련된 예산과 정책이 없는 이유는 우리 사회에 성소수자가 없기 때문일까요? 여론 조사기관 갤럽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미국 성인 중 성소수자가 차지하는 비율은 약 5.6%로 나왔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19년 조사에 따르면, 14개 국가의 성소수자 비율(트랜스젠터 미포함)은 2.7%로 나옵니다.

배진교 무지개인권연대 대표 "인구의 5% 정도로 계산해 볼 때 전국에는 250만 명이, 대구와 부산에는 약 25만 명의 성소수자가 살고 있어요. 쉽게 말해 스무 명 중 한 명은 성소수자인 셈이죠. 그런데도 이와 관련한 예산이 0원이라는 건 행정적인 부분에서 성소수자가 마치 없는 사람처럼 돼버린 겁니다"

정민석 청소년성소수자지원센터 띵동 대표 "여기에 덧붙여서 좀 말씀드리고 싶은데요, 예산이 0원이라고 해서 우리 주변에 성소수자가 없다고 절대 단언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성소수자란 이유로 차별받을까봐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는 분들이 훨씬 많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잘 드러나지 않고 숨겨져 있을 뿐입니다"


말할 곳도 기댈 곳도 없는 청소년 성소수자
청소년 성소수자의 현실은 어떨까요? 교사를 대상으로 한 성소수자 관련 교육은 전무하다시피 한 현실이다 보니 교사는 성소수자에 대한 이해도가 낮고, 자연스럽게 성 정체성에 관련된 고민이나 어려움을 교사에게 쉽게 이야기하지 못합니다. 학교 안에서 좋아하는 사람에게 고백했다가 '아우팅' 당하기도 하고, 그런 이야기를 상담 교사에게 했더니 상담 교사가 담임 교사에게 '아우팅'을 한 경우도 있습니다. 결국 청소년 성소수자들은 말할 곳도 기댈 곳도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정민석 청소년성소수자지원센터 띵동 대표 "대부분의 성소수자가 청소년 시기에 자신의 성 정체성을 인지하거나 수용합니다. 성소수자 인권단체 다움에서 2021년 청년 성소수자를 대상을 실태조사를 한 적이 있는데요, 이 조사에 따르면 성소수자로서 성향을 최초로 인지한 시기가 평균 14.7세이고요, 정체성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된 시기가 평균 17.8세입니다. 그러니까 이 청소년 시기에 자신의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에 대해서 아주 깊은 고민을 하게 되는 거죠"

열네 살에서 열일곱 살의 시기는 성소수자가 아니더라도 고민이 많을 때입니다. 친구나 부모님과의 관계, 학업과 미래에 대한 고민을 하면서 사춘기를 겪는 시기인데, 여기에 성 정체성 고민까지 더한다면 아이들에게는 엄청 힘든 과정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배진교 무지개인권연대 대표 "힘들어하는데, 그 힘든 이유가 자신이 성소수자라는 사실에 괴로워한다거나 성 정체성을 받아들이지 못해서라기보다는 대체로 가장 먼저 주변의 부정적인 반응을 걱정합니다. 실제 설문조사 결과 중에는 성소수자로 정체화하는 과정에서 걱정한 이유의 순위를 꼽은 게 있었는데요, '가족, 친구의 부정적 반응 때문에 걱정된다'고 응답한 비율이 평균 80%를 차지하고 있어요. 반면에 '내가 이상한 사람일까봐 걱정한다'고 응답한 사람은 45.6%에 그칩니다"


청소년 성소수자가 이용하지 않는 청소년 상담센터
어디에도 의지하고 말할 곳이 없다면 아이들은 힘들어질 수밖에 없을 겁니다. 요즘은 학교 안에서 학생들이 상담받을 수 있도록 위클래스나 청소년 사이버상담센터 1388, 또 지역마다 청소년 상담복지센터 같은 곳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성 정체성 고민을 겪는 청소년들은 대부분 이 기관을 알아도 이용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정민석 청소년성소수자지원센터 띵동 대표 "저희 '띵동'에서 해당 내용에 대해 조사한 적이 있었습니다. 아이들에게 청소년 상담 기관을 왜 이용하지 않냐고 물었더니 첫째로는 '나의 정체성과 관련된 고민과 어려움을 이해하지 못해서'라고 답했고요, 두 번째로는 '나의 의사와 상관없이 부모나 보호자에게 연락을 해서'라고 답변했어요"

배진교 무지개인권연대 대표 "아이들이 상담을 하러 가면 자신의 성 정체성에 대해 커밍아웃을 해야만 하는데 그걸 상담교사가 이해하지 못하면 더 큰 문제들이 발생하게 되는 거죠. 그렇게 친구나 가족에게도 거부당하고 그런 상담 시스템에서조차 거부당하면서 고립되는 것, 특히 학교 안에서는 보수적인 분위기로 인해 더 어려운 상황이에요. 상담센터 중에서도 가장 도움이 안 된다는 답변이 높았던 곳이 바로 학교 내 위클래스였습니다. 53%의 청소년이 위클래스를 알고 이용도 해봤지만 도움 되지 않았다고 답변했습니다"

청소년 상담복지센터, 성소수자 관련 상담 0.04%에 그쳐
결국 아이들이 학교 안에 상담센터가 있어도 성정체성과 관련된 도움은 받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학교 밖의 공립상담센터는 어떨까요?

우지영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 "대표적으로 여성가족부에서 운영하는 청소년상담복지센터가 있는데요, 하지만 현실적으로 봤을 때 아이들에게 도움 되고 있는 지는 의문입니다. 전국 청소년 상담복지센터 238개 소에서 2018년부터 2022년까지 5년간 실시한 청소년 상담 건수를 봤는데요, 이 중 성소수자 관련 상담은 평균 63건으로 전체의 0.04%에 그쳤습니다. 그런데 같은 기간 동안안 '띵동'에서 실시한 상담 건수는 438건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민간 단체 한 곳에서 한 상담 건수가 전국 청소년 상담복지센터 238곳에서 실시한 상담 건수의 7배에 달했다는 거죠"

결국 상담 수요가 없는 게 아니라 오히려 아이들이 안전하고 편안하게 상담받을 수 있는 곳이 굉장히 적다는 이야기입니다. 청소년 성소수자만을 전문적으로 상담하고 지원하는 공적인 기관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배진교 무지개인권연대 대표 "근본적으로는 학교 안에서 만들어지는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적이거나 폐쇄적인 분위기 자체가 정말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너 게이 같아' '너 레즈 같아' 이런 식으로 학교 안은 성소수자 혐오 표현으로 넘실댄다고 해도 지나친 표현이 아닌데요.

이런 차별적 발언을 친구들에게 듣고, 심할 경우엔 '동성애는 사회의 암적 존재'라는 혐오 표현을 선생님에게서 듣기도 한단 말이에요? 결국 성소수자 아이들은 그런 분위기 속에서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계속 고립되는 거죠"

국가인권위원회가 2014년에 한 조사에 따르면 교사로부터 혐오 발언을 하나라도 들은 경험이 있는 청소년 성소수자는 80%, 다른 학생으로부터 혐오 발언을 하나라도 들은 경험이 있는 청소년 성소수자는 92%에 달했습니다.

교사나 다른 학생으로부터 혐오 발언을 들은 경험이 없다고 답한 응답자는 단 2%, 4명에 불과했습니다.


청소년 성소수자 절반 정도 "자살·자해 시도"
친구들로부터, 하물며 교사에게서도 자신의 존재를 부정당하거나 혐오를 당하는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결국 선택하는 길은 무엇일까요?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에서 한 조사에 따르면 18세 이하 성소수자 45.7%가 자살을 시도했었고, 53.3%가 자해 시도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습니다. 아이들의 생존 문제까지도 직결되는 상황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정민석 청소년성소수자지원센터 띵동 대표 "우선 교사를 대상으로 한 성소수자 인권 교육이 필요합니다. 실제로 교사들이 성소수자 학생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몰라서 궁금해하는 경우도 있었고요, 또 어떤 경우엔 트랜스젠더 학생이 다른 학부모의 민원 때문에 학교를 다니기 힘든 상황이었나 봐요. 그런데 학교 내에선 트랜스젠더 학생을 본 경험이 처음이었던 거예요. 그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라서 난감했다고 하더라고요"

우지영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 "2020년까지만 해도 청소년 상담복지센터, 학교 밖 청소년지원센터 꿈드림 등과 같은 상담센터에서 청소년 성소수자 관련 교육을 단 한 곳도 실시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이 문제가 2021년 여성가족부 국정감사 당시 지적이 됐었고요, 이렇게 문제가 지적된 이후에야 성소수자 대상 상담 내용이 포함된 교육을 관련 청소년센터 전체 종사자를 대상으로 개설했는데요, 2023년 교육 계획으로는 6월부터 시행 예정이에요. 지금이라도 시작해서 정말 다행이지만 사실 이마저도 이러닝 교육이라 어느 정도의 효과가 있을진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대구시·부산시교육청 "성소수자 관련 교육 계획 없어"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청소년센터 관련 종사자는 물론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긴 학교 교사를 대상으로도 전문적인 교육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대구시교육청과 부산시교육청은 이와 관련한 계획이 있을까요?

대구시교육청은 "학교에서는 일반적인 성교육을 할 뿐이며, 학교에서 한 번도 성소수자와 관련된 교육을 교육청에 요청하지 않았고 성소수자와 관련한 교육은 굉장히 민감한 사항이어서 현재로서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으며 앞으로도 관련 계획이 없다"라는 입장입니다.

부산시교육청 역시 "2015년 학교 교육과정 개편 과정에서 정부와 교육부가 성소수자에 대해 먼저 언급하지 말라고 교육청으로 권고를 내렸기 때문에 절대 학교에서 먼저 성소수자에 대한 교육이나 언급 자체를 하지 않으며 향후에도 추진 계획이 없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정민석 청소년성소수자지원센터 띵동 대표 "학교 안에서의 성소수자와 관련된 언급은 완전 금기시하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고요, 그런 암묵적인 원칙 때문에 아이들에게는 성소수자라는 것 자체가 굉장히 부정적인 것으로 여겨지게끔 만들어지고 있는 건데요, 성소수자가 인구의 5% 정도로 추정했을 때 한 반에 1, 2명은 분명히 성소수자이거든요? 결국 행정에서는 이 아이들을 보지 않고 없는 존재처럼 만들어 버리고 있는 거죠"


우리나라 성소수자 인권 수준, 전 세계 최하위 수준
성소수자이냐 아니냐를 떠나서 모든 사람에게 청소년기는 중요한 시기입니다. 이때의 경험이 미래를 많이 결정짓게 되기 때문인데요, 이 아이들이 자라 어른이 되었을 때 대한민국에서, 그리고 지역에서 성소수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배진교 무지개인권연대 대표 "거리에서 평범하게 연인과 손을 잡는 것도 용기가 필요한 존재가 성소수자입니다. 비성소수자 시각에서 그냥 불편한 정도 아니야?라고 말하거나 생각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단순한 불편함이 아닌 분명한 차별입니다. 동성 커플이 길거리에 손을 잡고 다니면 뒤에서 수군거리거나 비난하고, 어떤 경우에는 공격하는 일까지 있습니다. 생각하는 것보다 심각한 수준입니다. 이런 성소수자 인권 현황을 쉽게 알 수 있는 지표가 있는데, 바로 각 나라 성소수자 인권 수준을 보여주는 '무지개 지수'라는 겁니다. 2022년 한국의 '무지개 지수'는 약 10%로 굉장히 하위권입니다. 한국보다 낮은 곳은 러시아, 아르메니아, 터키, 아제르바이잔 정도밖에 없습니다"

정민석 청소년성소수자지원센터 띵동 대표 "청년 성소수자에게 성소수자로 살아가기에 한국 사회는 어떠냐고 물어본 적이 있는데요, 매우 안 좋다가 56.1%, 다소 안 좋다 41%로, 97.1%가 한국 사회는 성소수자가 살기 좋지 않다고 부정적으로 응답했습니다"


"성소수자가 아닌 척해야 하는 삶 자체가 차별"
사회적 분위기가 폐쇄적이면 스스로를 숨기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의 이야기가 알려지면 직장 안에서 차별을 받게 되지 않을까, 직장을 옮기는 과정에서 혹시나 불이익을 받지 않을까 두려움에 많은 성소수자가 성소수자가 아닌 척하며 살고 있다고 합니다.

배진교 무지개인권연대 대표 "특히나 성소수자가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기 가장 꺼리는 곳이 바로 직장입니다. 실제로 청년 성소수자 열 명 중 일곱 명은 직장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거나 속이고 있다고 말했어요. 예를 들어 직장 동료가 '여자친구 있어요?' '남자친구 있어요?'라고 물었을 때 회피하거나 거짓말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성소수자임을 숨기면 차별받지 않고, 그럼 문제가 없지 않냐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성소수자가 아닌 척해야 하는 삶, 그 자체가 차별입니다"

우지영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 "2019년 7월에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도입됐는데요, 그렇게 직장 내 괴롭힘을 법적으로 금지하면서도 성소수자 괴롭힘에 대한 구체적 내용은 없어요. 결국 심각한 불이익이나 차별이 발생하면 오롯이 개인이 감당해야 하는 개인의 몫이 되는 거죠. 반면에 일본의 모 기업 같은 경우엔 사내 괴롭힘에 대한 규정을 바꾸면서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에 관한 차별적 발언이나 아우팅 행위까지도 명확하게 금지하기도 했습니다"

정민석 청소년성소수자지원센터 띵동 대표 "성소수자들이 직장생활을 잘하기 위해선 뭐가 가장 필요하고 도움 되겠냐 물어보니까 62%는 '커밍아웃을 할 수 있는 분위기'라고 답했는데요, 그만큼 커밍아웃을 못 하고 스스로를 숨기면서 살아가는 것 자체가 굉장한 스트레스고 폭력인 거죠. 그리고 또 50%는 성소수자 인권 침해, 차별에 대한 구제 절차나 기구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했어요. 직장에서 이런 환경이 잘 만들어져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생계와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특히 트랜스젠더의 경우엔 더 심각한 차별을 겪어요. 주민등록번호에 적힌 성별과 외모가 일치하지 않는다고 직장을 구하는 과정에서부터 어려움을 겪는 거죠"

생활동반자법이 뭐길래···
사랑하는 사람과 손잡고 다니는 일에도 큰 용기가 필요하고 차별받는 상황인데 결혼식을 열고 직장 동료나 지인에게 청첩장을 돌리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정민석 청소년성소수자지원센터 띵동 대표 "성소수자에게 한국에서 가족으로서 법적 지위를 얻는 결혼은 제도적으로 불가능하죠. 사랑하는 사람이 아파서 수술할 때도 보호자로서 동의서를 쓰지 못한다거나 함께 집을 구할 때도 신혼부부 대출을 받지 못해요. 결국 건강이든 노후 보장이든 심지어는 재산 문제까지도 스스로, 혼자 해결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성소수자는 내 연인과 가족처럼 살고 있어도 가족으로서 누려야 할 법적 권리는 가질 수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가족이 되는 걸 꿈꾸는 건 어렵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누구에게나 가족을 만들고 안정된 삶을 살고 싶어 하는 욕구가 있기 마련입니다.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가족을 만들고 싶어도 만들 수 없다면 이를 보완할 제도적인 장치가 필요한 것이 아닐까요?

배진교 무지개인권연대 대표 "여러 방법이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당사자들이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생활동반자법입니다. 쉽게 말해 이성이든 동성이든 나와 함께 사는 사람을 동반자로 지정하는 거죠. 그렇게 되면 혈연, 가족 관계에서만 가능했던 것들이 동반자 관계에서도 가능해지게 되는 건데요, 서로의 재산에 대한 권리를 행사할 수 있고 사회보장, 세금 혜택 또한 받을 수 있게 됩니다. 우리나라의 생활동반자법은 2014년에 초안이 마련됐지만 보수단체 등의 반대로 발의조차 되지 못했죠"

우지영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이게 엄청 급진적인 제도가 아니거든요? 해외 경우만 봐도 독일이나 프랑스, 덴마크에서는 이 생활동반자법과 유사한 제도들을 무려 2~30년 전에 이미 도입했습니다. 특히 프랑스의 경우엔 꼭 결혼이 아니어도 자유롭게 동거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는 제도를 만들었는데 이런 느슨한 가족 결합 제도가 출생률 상승을 도왔다는 의견도 많이 있습니다. 오히려 우리나라가 굉장히 늦은 감이 없지 않죠"


성소수자 현실 실태조사 필요한 이유는?
성소수자들은 청소년기부터 성인까지, 전반적인 생애주기를 살아가는 동안 학교에서, 직장에서, 연애를 할 때도, 결혼 문제에서도 아주 큰 장벽을 계속해서 마주하고 있습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밑바탕이 되는 예산은 '0원'인 현실에서 한 걸음 나아가기 위해서는 어떤 것들이 필요할까요?

배진교 무지개인권연대 대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실태조사입니다. 성소수자 인구가 얼마나 있고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차별을 막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에 관한 주기적인 실태조사가 필요합니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 2014년과 2021년에 성소수자 관련 실태조사를 했지만 일회성에 그쳤고요, 사실 제대로 된 실태조사라는 건 전국 성소수자 인구를 파악하고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까지도 파악해야 하는 건데 그 정도 규모의 실태조사는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우지영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심지어 2022년 3월에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성소수자 인구 규모 등의 실태를 파악하라는 권고를 보건복지부, 행정안전부, 통계청에 내린 적이 있는데요, 권고를 받은 관계부처 모두 불수용 의사를 밝혔습니다. 그 이유로는 '인구 조사에서 성별 정체성을 조사하는 건 표본이 적어 유의미한 결과를 얻기 어렵다' '사생활 침해 우려가 있는 항목은 응답 거부가 증가하고 있어서 어렵다'라고 말했습니다. 실태 조사가 모든 것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잖아요? 이걸 해야, 성소수자가 겪는 차별과 어려움이 무엇인지 조사를 해야 그 결과가 어떤 정책으로든 번영될 수 있는 거고요. 그런데 이런 관계부처의 미온적인 태도만 봐도 관련 예산이 '0원'인 이유를 설명해 준다고 생각합니다"

정민석 청소년성소수자지원센터 띵동 대표 "여러 가지 이유를 대며 할 수 없다고 하는 건 의지가 없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규모는 얼마나 되는지, 뭐가 필요한지 전혀 알려고 하지 않는 것이죠. 게다가 이런 상황에서 더 놀라운 건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트랜스젠더를 정신장애로 분류하고 있다는 거예요. 국가인권위에서도 이를 개정하라고 권고했는데 이마저도 사실상 불수용의 뜻을 밝혔고요. 국가가 성소수자를 보호해 주지는 못하고 오히려 정신장애가 있는 사람으로 낙인찍고 있는 거죠. 성소수자들은 지금 이런 현실을 살고 있습니다"

발의된 지 16년 지난 포괄적 차별금지법
내 가족, 내 친구, 내 직장동료가 성소수자로서 평범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사회적인 인식이 반드시 필요하지만, 그걸 개개인의 양심에 맡겨둘 수는 없을 겁니다. 가장 손쉽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법을 만드는 것일 겁니다.

배진교 무지개인권연대 대표 "성소수자와 관련된 정책 가운데 무엇이 가장 중요하냐고 생각하는지 묻는 설문조사에서도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이 나왔어요. 이 법이 발의된 지 16년이나 지났지만 아직까지도 제정되지 않았죠. 여자라는 이유로, 노인이라는 이유로, 그리고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아서는 안 되는 것처럼 성소수자이기 때문에 차별받지 않도록, 그리고 그걸 개인이 감당하지 않도록 법을 만드는 겁니다"

우지영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이 차별금지법은 이미 많은 해외에서 제정한 법이에요. 프랑스는 1972년에 이미 차별금지법을 제정했고 캐나다 역시 성적 지향을 이유로 차별할 수 없도록 1996년에 인권법을 개정했습니다. 특히 유럽연합 회원국들의 경우엔 유럽연합의 평등 지침에 따라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마련한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이런 법이 제정된다면 성소수자도 아우팅이나 차별을 걱정하지 않고 일할 수 있고 폭력이나 위협, 괴롭힘 걱정 없이 자유롭게 연인과 거리에서 손을 잡을 수도 있겠죠"


드러나지 않지만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성소수자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지 내 가족이나 내 친구, 내 직장동료 중 누군가는 성소수자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분명히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성소수자를 애써 보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평범하고 당연한 것들을 성소수자라는 이유만으로 누릴 수 없는 사회라면, 다른 누군가 역시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차별과 고통을 당할 수 있는 사회인 건 아닐까요?

<예산추적 프로젝트 빅벙커> 대구MBC·부산MBC 매주 목요일 밤 9시 방송>


윤영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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