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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보니] 우리 아이 학교엔 스프링클러가 없다 | 빅벙커


요즘 어디를 가더라도 스프링클러가 설치되지 않은 곳을 찾기는 쉽지 않습니다. 불이 나고 소방대가 출동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통상 10분 안팎인데, 그 사이에 스프링클러가 큰불로 번지지 않도록 초기 화재 진압을 해 주고 바깥으로 대피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줍니다.

김중진 대구안전생활실천시민연합 공동대표 "우리가 평소 뉴스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대형 화재 사건들만 보더라도 스프링클러가 없었거나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던 경우가 많아요.

얼마 전 대구에서 발생했던 농수산물도매시장 화재도 일부 스프링클러가 작동하지 않아서 큰불로 번지게 됐거든요?"


대구·부산 학교 절반 이상 스프링클러 미설치
그렇다면 우리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의 상황은 어떨까요? 대구와 부산의 공립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특수학교의 스프링클러 설치 유무를 정보공개 청구해서 전수조사해 봤더니 2022년 10월 말 기준 대구는 전체 579개 학교 중 261곳만 설치돼 있었습니다.

55%에서 설치되지 않은 겁니다. 부산 역시 비슷한 상황입니다. 전체 765개 학교 중 339곳에서만 설치되어 있어 미설치 비율이 약 56%로 나왔습니다. 두 도시 모두 절반 이상의 학교들에 스프링클러가 설치되어 있지 않은 겁니다.

우지영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 "그중에서도 미설치 비율이 상당히 높은 곳이 있었는데요, 대구의 경우 중학교 열 곳 중 일곱 곳은 스프링클러가 없었고, 부산은 특수학교 열 곳 중 여덟 곳에 설치되지 않았습니다.

단 부산의 특수학교의 경우 현재 모두 설치 공사가 진행 중인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류상일 동의대학교 소방방재행정학과 교수 "제가 한 가지 짚어드리고 싶은 건 고등학교는 그나마 스프링클러가 설치된 비율이 높아요. 하지만 나이가 어린 아이들이 다니는 초등학교나 중학교에는 스프링클러가 설치되지 않은 곳들이 더 많네요.

굉장히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나이가 어릴수록 화재 대응에도 미숙할 수밖에 없고 자칫 대형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도 매우 높아요"

대구 초등학교 열 곳 중 여섯 곳이, 부산은 열 곳 중 약 일곱 곳에 스프링클러가 없는 상황입니다.


2004년 이전에 생긴 학교들은 스프링클러 설치 의무 없어
어떻게 보면 가장 안전해야 하는 학교에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스프링클러가 왜 없는 걸까요? 혹시 법을 어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류상일 동의대학교 소방방재행정학과 교수 "아이러니하게도 스프링클러가 설치 안 된 학교들이 모두 위법은 아니에요. 왜냐하면 지금 법으로는 6층 이상 건물만 전 층에 스프링클러를 설치해야 합니다. 그런데 학교 같은 경우는 6층 이상이 잘 없잖아요.

그럴 땐 4층 이상, 바닥 면적이 1천 제곱미터 이상일 때 스프링클러를 설치하면 되는 건데 이 기준은 2004년에 생긴 거예요. 소급 적용이 안 되니까 이전에 생긴 학교들은 설치 의무가 없는 거죠. 이렇게 위법이 아니기 때문에 더더욱 사각지대인 거죠"

법적으로 설치해야 하는 규모에 해당하지 않는다면 불을 다루는 급식실이나 실험실, 실습실도 스프링클러를 설치할 의무가 없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교실에는 스프링클러를 찾아보기가 더 어렵습니다.

김중진 대구안전생활실천시민연합 공동대표 "4층 이상, 바닥 면적 1천 제곱미터 이상일 경우엔 해당 규모 이상의 층에만 스프링클러를 설치하면 돼요. 그래서 학교 4층과 5층에만 스프링클러가 설치된 경우가 많아요.

결국 설치 의무가 없다는 이유로 스프링클러가 없는 학교가 많다는 거고 급식실이나 실험실처럼 화재 위험성이 높은 곳에도 법적으로 대상이 안 된다면 스프링클러를 설치하지 않아도 되는 거죠"

유치원·특수학교는 규정·법 강화해서 스프링클러 설치
결국 새로 만든 학교에만 이 기준이 적용되는 거면 지은 지 오래된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의 안전은 어떻게 챙길 수 있을까요? 법을 바꾸어야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요?

우지영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 "물론 법을 바꾸면 좋겠지만 법을 바꾸지 않고도 교육부에서 자체적으로 강화한 사례도 있어요. 그게 바로 특수학교인데요. 2020년에 교육부에서 교육시설 화재 안전 종합대책을 발표했어요.

그때 특수학교 내용이 포함됐습니다. 특수학교도 기존 학교들과 법적 기준이 같았는데 기준 법적 기준은 준수하되 특수학교는 좀 더 강화해서 설치하자는 거였습니다. 그래서 현재까지도 설치 중인 상황이고요. 정부나 지자체에서 의지만 가진다면 충분히 가능한 거죠"

류상일 동의대학교 소방방재행정학과 교수 "아예 법을 바꾼 경우도 있었습니다. 유치원은 원래 교육 연구시설로 분류됐는데 좀 더 강화된 소방시설법을 적용하기 위해서 법을 바꿨어요.

어린아이들은 대피 능력이나 화재 대응 능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고 누군가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하잖아요? 그래서 유치원의 경우엔 2018년에 법을 개정했고요. 아직까지 초, 중, 고, 특수학교는 법적으로 스프링클러 설치 의무가 없는 곳이 더 많죠"


2019년~2021년 대구 47억·부산 154억 스프링클러에 사용···병설 유치원·특수학교·기숙사에만
법적으로 스프링클러를 설치하도록 규정하기 전에 만든 학교는 그동안 그대로 내버려 둔 걸까요? 대구시와 부산시가 2019년부터 2021년까지 학교 스프링클러에 쓴 돈은 각각 47억 3,800만 원과 154억 6,200만 원입니다.

이 돈은 법 개정이나 강화로 설치 의무가 생긴 병설 유치원과 특수학교에만 쓰였습니다. 결국 설치할 의무가 생기는 곳에만 사용되고 대상이 아닌 곳은 그대로 사각지대가 돼버린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2022년은 어떨까요? 2022년 한 해 대구시교육청의 스프링클러 설치 예산은 15억 6,544만 원, 부산은 120억 원 정도입니다. 이 예산으로 대구 2곳, 부산은 15곳에 스프링클러가 설치됐습니다.

설치된 곳을 살펴봤더니 역시 대구는 모두 특수학교, 부산은 특수학교와 병설 유치원, 기숙사였습니다.

우지영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전체 학교시설 개선사업비랑 비교를 해 봤는데요, 2022년 대구교육청과 부산교육청 본예산 기준으로 전체 사업비에서 스프링클러 설치 예산이 어느 정도인지 봤더니 부산은 약 3%, 대구는 1%도 되지 않았습니다.

사업비 전체에서 봐도 그렇고 아이들 안전을 생각했을 때 절대 큰돈은 아니죠"


화재 안전 예방 교육은 충분할까?
스프링클러가 없다면 최소한 불이 났을 때 아이들이 적절하게 대처할 수 있는 화재 안전 예방 교육은 제대로 이뤄지고 있을까요?

김중진 대구안전생활실천시민연합 공동대표 "충분하지 않죠. 재난 대응 훈련의 횟수도 사실 부족하고 질적으로 봤을 때도 충분하다고 말하기 어려워요.

사실 학교에서 하는 소방 훈련이나 재난 대응 교육이 대피 훈련에 많이 치중되어 있는데 중요한 건 그 훈련을 실제 상황과 똑같이 하는 경우가 드물다는 점입니다.

교육을 얼마나 실제와 가깝게 하느냐, 질적으로 충분한 교육을 반복적으로 하는 것이 중요한데, 예를 들어 경주나 포항 지진이 발생했을 때 일부 학교에서는 대피하라는 지시를 하지 않았던 경우도 있었지 않았습니까?"

류상일 동의대학교 소방방재행정학과 교수 "예를 들어 방화셔터 같은 건 성인들도 문이 있는지 없는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아요. 아이들은 더하겠죠.

물론 방화셔터까지 다 내려온 상황을 가정해서 훈련을 진행하는 학교도 있겠지만 단순히 운동장으로 대피하는 훈련만 하는 경우도 많아요. 교육을 할 때는 반드시 실제 상황과 동일하게 해야 합니다.

이 안전교육이라는 건 학교 안에서만 그치는 게 아니라 사실 생각해보면 아이들 인생 전반에 적용되는 문제거든요? 아이들이 자기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을 교육하는 거죠.

학교 밖을 나섰을 때 불이나 재난 상황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어떻게 해야 자신을 지킬 수 있는지 알도록 하는 것이 안전교육의 궁극적인 목표입니다"

1대 29대 300의 법칙
재해 예방 중요 요소로 보통 '3E'가 꼽힙니다. 기술(Engineering), 교육(Education), 규제(Enforcement)를 의미합니다. 이번의 경우에는 기술에는 스프링클러, 교육은 소방 훈련, 규제는 법으로 풀이할 수 있을 겁니다.

현재의 상황, 기술과 교육은 제대로 효과를 내는 걸까요? 법은 너무 소극적인 것 아닐까요?

한 번의 대형 사고가 발생하기 전에는 수십차례의 '아차' 사고와 수백 번의 징후가 남는다는 1대 29대 300의 법칙이 있습니다. 최소한 아이들의 안전 문제에 있어서 만큼은 법이나 정부가 강제하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나서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

<예산추적 프로젝트 빅벙커> 대구MBC·부산MBC 매주 목요일 밤 9시 방송


윤영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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