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사고 현장에는 언제나 소방관이 있습니다. 이런 소방관 열 명 중 한 명은 우울증을 앓고 있다고 합니다. 일반 시민들보다 4배가량 더 높은 비율입니다. 건강 이상 판정을 받은 소방관은 열 명 중 일곱 명에 가깝다고 합니다.
하지만 전담 의사는 한 명도 없고, 순직한 소방관보다 스스로 삶을 마감한 소방관 숫자가 더 많은 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입니다.
소방공무원 보건 안전 예산, 전체 예산의 1.5%
2021년 기준 소방공무원의 보건 안전 지원을 위한 예산은 35억 1,800만 원입니다. '소방공무원 마음 건강 설문조사'를 위해 2천만 원, 소방관들의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찾아가는 심리 상담실'에 약 17억 7천만 원, 스트레스 회복력 강화 프로그램에 6억 9천만 원, 마음 건강 진료비 지원으로 5억 2천만 원 등이 책정되어 있습니다. 이 정도로 충분할까요?
우지영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 "2021년 소방청 본예산 2,208억 중 소방공무원 보건 안전 지원 예산은 겨우 1.5%에 그칩니다. 2021년 기준으로 소방공무원 수가 6만 4천여 명이니까 소방관 한 명당 약 5만 4천 원 정도이네요.
소방관의 정신 건강을 지키는데 드는 돈이 한 명당 5만 원 수준이라면 많이 부족해 보이네요. 물론 여기에 지방세도 추가가 되겠지만 추가된다고 해도 많은 돈은 아니죠"
방화복·안전 장비에 출동 전부터 체감온도는 40℃
소방관들은 대기 순간에도 늘 긴장 상태입니다. 출동 호출 소리부터 다급하고 요란합니다. 벨 소리가 화재인지 구조인지 상황마다 다른데 특히 경상도는 더욱 격한 편이라고 합니다.
김주형 전국 공무원노동조합 소방본부 본부장 "지금처럼 더운 여름날에는 25kg이 넘는 방화복과 안전 장비를 착용하면 뜨거운 화염 앞에 서기도 전에 이미 체감온도는 40℃가 훌쩍 넘습니다.
특히 야간이나 지하 화재인 경우에는 시야 확보가 되지 않아서 심리적으로 불안감이 더욱 클 수밖에 없습니다"
옛날에는 소방관이라고 하면 화재 진압만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았는데 지금은 구조와 구급 분야에까지 소방관들이 출동한다는 사실이 많이 알려져 있죠?
최근 전국을 덮친 태풍이나 수도권 폭우에 차에 고립된 사람을 구조하는 모습도 방송으로 많이 나왔고, 국가적 위기 상황인 코로나 19 상황에 전국의 구급차가 환자를 병원으로 옮기는 모습도 시민들에게 낯설지 않게 됐습니다.
최근 5년 사이 소방관 PTSD 79% 증가
2020년 4월, 소방관이 국가공무원으로 전환이 됐고, 2021년에는 73년 만에 노동조합도 생겼습니다. 하지만 아직 소방관의 처우나 안전 문제는 그렇게 나아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김주형 전국 공무원노동조합 소방본부 본부장 "노조가 생긴 이후 직원 건강권을 반영한 근무 체계 개선이 시범 실시되는 등 작은 변화는 있지만 여전히 정신건강 분야에 미흡하고, 2022년 들어서도 많은 직원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태가 여러 차례 발생하는 등 직원들의 건강과 처우 개선에 부족한 점이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는 충격적이거나 두려운 사건을 직접 겪거나 목격했을 때 극심한 정신적 외상을 경험하고 나서 발생하는 불안장애를 뜻합니다.
최근 5년 사이 우울증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병원 진료를 받은 소방공무원은 79%나 증가했고 68명의 소방관이 극단적인 선택으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한승우 경일대학교 응급구조학과 교수 "이런 현상은 비단 소방공무원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경찰공무원에서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최근 5년 사이 우울증으로 병원 진료를 받은 경찰공무원이 45% 늘었고, 경찰관 109명이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처럼 소방공무원, 경찰공무원과 같은 고위험 직군에서 일하시는 분들의 PTSD는 심각하다고 볼 수 있고, 어떤 형태이건 제도적인 합의가 있어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실제 PTSD 진료 받는 소방관은 '극소수'
그렇다면 실제 소방관들의 마음 건강 상태는 어느 정도일까요? 소방청이 제출한 2016년~2020년 소방공무원 마음 건강 설문조사에 따르면 5년간 우울증과 PTSD를 호소한 소방공무원은 각각 1만 527명, 1만 744명이었습니다.
하지만 실제 진료로 이어진 경우는 우울증 2,596명, PTSD는 249명이 전부입니다. 이 기간 극단적인 선택을 한 소방공무원은 모두 56명이었습니다.
이은주 정의당 국회의원 "소방관들은 시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특수한 직무를 수행하는 공무원들이잖아요? 그러니까 이분들은 스스로 강해야 한다, 이런 사회적 기대도 받고 스스로도 그런 생각을 하는 거죠.
그래서 이런 분들이 재난 현장에서 직접 어떤 심리적인 큰 충격을 받아도 이걸 스스로 트라우마로 인식하지 못하고 지나치거나 아니면 나중에 괜찮아지겠지, 이런 식으로 과소평가하고 지나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리고 조직 안에서 정신이 나약한 사람, 이런 식으로 낙인찍히는 것에 대해서 혹시 인사상의 불이익을 받지 않을까 우려해서 병을 드러내놓지 않고 적극적으로 치료받지 않는 거죠. 이래서 혼자 속으로 아픈 환자들이 많아지고 있다고 봅니다"
"힘들다고 체크하면 불이익받을 수 있잖아요?"
마음 건강 설문조사라도 제대로 이뤄지고 있을까요? 소방청에서는 2015년부터 약 2천만 원의 예산을 들여 설문조사를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매년 같은 질문으로 질문이 200개 정도여서 바쁜 와중에 설문에 참여하는 것이 쉽지 않고 그냥 형식적인 과정이라고 생각하는 소방공무원도 적지 않다고 합니다.
김주형 전국 공무원노동조합 소방본부 본부장 "설문조사를 하기 위해서는 소방공무원 보건 안전 관리 시스템에 로그인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내가 힘들다는 걸 많이 체크하면 노출이 될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제대로 체크 안 하는 경우도 있어요. 결국 실제 숨겨진 환자를 발견해 내지 못할 수 있는 겁니다"
소방공무원 마음 건강 설문조사 중 유독 높은 수치가 나온 해가 있습니다. 2019년과 2020년에 PTSD와 우울증, 수면장애 증상을 호소한 소방공무원이 부쩍 늘었습니다.
한승우 경일대학교 응급구조학과 교수 "코로나 19 트라우마는 전 국민이 겪은 일이라고 해도 무방하죠. 실제 '코로나 블루'라고 해서 우울 증상을 겪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소방관이 겪은 트라우마는 좀 다릅니다. '코로나 블루'가 아니고 과도한 업무량으로 생긴 '번아웃'이죠.
확진자와 의심 환자 이송 업무 한 건에 몇 시간을 써야 하는 경우가 일상이었고, 구급차에 탑승하기 전에 보호 장비 착용을 비롯해 감염 예방 수칙을 철저히 준수한 상태에서 탑승해야 합니다.
갑갑한 보호 장비를 착용하고 구급차를 운전하고 환자를 처치해야 하니 신체적 번아웃은 말할 것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최근까지도 병원에서 환자를 받아주지 않아 구조대원이 환자를 받아줄 병원을 수소문한 끝에 이송해야 하는 불편도 있습니다"
코로나가 심해지면서 의사나 간호사에 대한 의료 업무 수당이 새로 도입됐지만 모든 현장에 함께 했던 구급대원들은 의료 업무 수당에서 제외됐습니다.
소방관 심신 회복 프로그램, 대구 2020년 집행액 '0'원
이렇게 '번아웃'이 된 소방관들의 심신 회복을 지원하고 마음 건강관리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스트레스 회복력 강화 프로그램'이라고 해서 주로 외주기업에 위탁을 합니다.
부산에서는 2020년 약 9천만 원의 예산을 집행했지만 같은 해 대구시에서는 한 푼도 집행하지 않았습니다. 우지영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 "대구는 0원입니다. 집행 자체를 하지 않았어요.
당시 대구시가 코로나가 가장 심각했던 시기였음을 생각하면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지만, 다른 방식으로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예산을 집행조차 하지 않았다는 건, 극한에 내몰린 소방관들에게 마음을 회복할 퇴로조차 없었다는 얘기가 되는 거죠"
'힐링'하러 가도···대신 근무 서는 동료들에 '부담감'
이런 프로그램들이 소방공무원들의 PTSD에 물론 효과는 있겠지만 짧게는 3~5일, 길게는 4~8주 정도에 끝나는 단편적인 프로그램이라는 한계도 있습니다.
김주형 전국 공무원노동조합 소방본부 본부장 "현재 프로그램은 '힐링'을 주제로 다양한 체험을 하는 형태인데, 이것도 소방서마다 할당이 있어서 모두 참여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힐링'을 가게 되면 다른 직원들이 대신 근무를 서야 해서 오히려 마음에 부담을 느끼는 경우도 있고, 진정성 있게 소방관의 심리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느냐는 잘 모르겠습니다"
소방관은 강인해야 한다?
소방관은 강인해야 한다는 인식, 사회적으로도 그렇지만 소방 조직 안에서도 예외가 아니라고 합니다. 소방 문화에는 여전히 군대식 문화가 있다 보니 초반에 적응을 못 해서 정신적 질환율이 높아지지 않냐는 생각도 들 수 있지만 정작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한승우 경일대학교 응급구조학과 교수 "2021년 소방청 자료 중 근무 기간별 정신건강 자료를 보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와 우울증이 1~4년 차에 급증하기도 하지만, 1년 차 미만의 대원과 비교했을 때 5~9년 차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유병률이 3배가량이나 높게 나타났습니다.
그만큼 책임감이 높아지는 시기, 더 많은 현장에 출동했을 때 정신적인 위기가 닥칠 수 있다는 거죠. 더 걱정스러운 것은 극단적 행동에 관한 생각을 자주 하는 위험군이 4.4%, 실제 자해를 시도한 적이 있다고 응답한 소방관도 82명이나 됐습니다"
상담사 바뀔 때마다 같은 질문 반복 "요새 힘든 일 없나요?"
정신적 위기가 닥쳤을 때 빨리 상담을 받고 치료로 이어지게 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 '찾아가는 심리 상담실'입니다. 2021년 기준으로 35억 4천4백만 원의 예산이 책정돼 있고, 경기도와 서울이 전체 예산의 28.5% 정도를 차지합니다.
대구는 1억 6천만 원, 부산은 2억 8백만 원의 예산을 씁니다. 그런데 문제는 지자체가 매년 입찰을 통해 상담 기관을 정하다 보니 지역마다 상담의 질도, 전문가 투입 여부도 제각기 다 다르다는 겁니다.
김주형 전국 공무원노동조합 소방본부 본부장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상담을 의무적으로 하게 된 건 좋아요. 하지만 문제는 상담사가 해마다 바뀌고 새로운 상담사가 와서 요새 힘든 일 없냐는 똑같은 질문을 한다는 거죠.
상담업체는 위탁이다 보니 자주 바뀌고 소방 업무를 이해하는 전문가가 없다는 것. 처음 보는 심리상담사를 대상으로 동료 소방관의 순직이나 끔찍한 자살 사고의 잔상과 같은 이야기들을 할 수가 없어요.
이 문제를 제기해도 소방청은 예산의 문제라고만 하거든요? 소방관이 무엇 때문에 힘들어하는지, 어떻게 지원해야 하는지 알고 정부에 "예산 왜 이렇게 주냐"고 말하는 지휘부가 없다는 게 문제입니다"
소방관이 소방관 상담하는 '동료 심리 상담사', 대구는 '0'명
많은 소방관은 아무래도 '동료'가 자신을 가장 잘 이해해준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도입된 제도가 소방관이 소방관을 상담하는, '동료 심리 상담사'입니다.
눈빛만 봐도 이해해 주고 상담해 줄 수 있는 동료 심리 상담사가 가까운 곳에 있으면 훨씬 좋을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우지영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소방서마다 한 분씩 계시면 좋겠는데 그렇지가 않습니다. 2022년 1월 기준으로 전국에 딱 32명뿐입니다. 전남이 14명으로 가장 많고, 부산에 6명, 경북에 2명, 대구는 0명. 아쉽게도 대구에는 한 명도 안 계시네요"
PTSD, 지금까지는 소방관이 직접 증명해야
소방에는 '퍼스트 인, 라스트 아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가장 먼저 들어가서 가장 나중에 나온다는 뜻이죠. 이런 희생으로 생긴 PTSD에 대한 치료는 국가에서 책임져야 하지 않을까요?
치료비는 지원받을 수 있지만 문제는 지금까지 소방관 본인이 직접 공무상으로 PTSD에 노출됐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한승우 경일대학교 응급구조학과 교수 "다행히 공상 추정법이 국회를 통과해서 시행령 개정 중에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치료를 받으려면 유해 환경이 축적된 과정에서 발생한 직업병이라는 걸 직접 입증을 해야 했습니다.
소방관들이 의사도 아니고 증명하기가 쉽지가 않겠죠. 그래서 웬만한 건 사비로 치료한 분들도 꽤 계셨거든요? 공상 추정법이란 질병 발생의 원인 입증 책임을 개인이 아닌 국가기 지도록 함으로써 당사자와 유가족의 심리적, 경제적 부담을 줄여줄 수 있습니다.
이런 제도가 잘 정착이 된다면 소방공무원의 PTSD 문제를 푸는 데 좀 더 유연해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미국은 1989년부터 '국립 PTSD 센터'를 설립했고 모두 7개의 국립 PTSD 센터가 운영되고 있습니다.
일본에는 2004년 효고현의 마음 케어 센터가 설립돼 소방공무원 전담 정신건강 의사가 포진되어 있고, 센터에서 치료와 처방이 동시에 이뤄지고 있습니다. 상담 역시 간호사, 사회복지사, 임상심리사가 전담해 이뤄지고 있어 우리나라보다 좀 더 적극적으로 PTSD에 대처하고 있습니다.
트라우마 와도 출동 벨 울리면 바로 비슷한 현장에 출동
상담을 열심히 한다고 하더라도 반영이 안 된다면 큰 효과를 보지 못할 것입니다. 실제 상담 이후의 치료와 치유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가이드라인은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김주형 전국 공무원노동조합 소방본부 본부장 "상담사가 상담을 했을 때 이 사람이 현재 심리 상태의 불안도가 상당히 높다면 휴식을 권고하거나 업무를 유연하게 이동할 수 있게 제안해 줘야 하고 그것이 행정적으로 이뤄져야 하는데, 그런 가이드라인이 없으니까 지금 트라우마가 왔는데도 출동 벨이 울리면 바로 또 비슷한 현장으로 출동해야 합니다. 의사에게 치료를 받으러 가려 해도 자신의 연가를 써서 가야 하는 상황이죠. 그러다 보니 결국 치료를 포기하는 상황도 발생합니다. 그래서 이런 사항에 특별휴가를 달라고 인사혁신처에 요청해 둔 상태입니다"
소방관 희생 생겨야 조금씩 나아지는 여건
가장 큰 문제는 대형 참사가 터지고 소중한 소방관들의 희생이 생겨야 이런 정책에 대한 관심이 수면 위로 떠 오른다는 점입니다.
김주형 전국 공무원노동조합 소방본부 본부장 "소방 조직의 혁신을 가져온 것이 2001년 홍제동 화재 사고입니다. 주택 화재 진압을 위해 투입됐던 소방관 여섯 분이 순직하셨고 세 분이 크게 다쳤습니다.
당시 소방관들은 비옷과 비슷한 방수복을 입고 있었는데, 이 이후부터 방화복이 지급되기 시작했고 공기호흡기 용량도 30분에서 50분으로 늘어났습니다. 대부분 순직 이후에 소방관들의 복지가 좋아지다 보니 살아남은 분들은 씁쓸함을 느낍니다.
안전과 건강에 대해서는 어떤 분야에서든 후 대처가 아닌 선 예방이 되기를 바랍니다"
소방관은 직업이 아닌 사명이라는 말을 쓴다고 합니다. 그런 사명의 길이 조금은 더 안전해야 하지 않을까요? 대부분 예산이 출동 현장에 우선 투입되다 보니 정신건강 사업은 뒤로 밀릴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소방관 조직이 건강해야 현장에 나가서도 잘 대응할 수 있고, 결국 그것이 국민의 안전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닐까요?
<예산추적 프로젝트 빅벙커> 대구MBC·부산MBC 매주 목요일 밤 9시 방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