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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보니] 누구를 위한 셀프계산대?

햄버거 가게에서 셀프계산대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해 결국 그냥 가게를 나가는 한 어르신의 영상이 화제를 일으킨 적이 있습니다. 셀프계산대는 햄버거 가게뿐이 아니라 카페, 편의점, 아이스크림 가게, 김밥집, 국숫집, 고속도로 휴게소 등 여러 곳으로 퍼지고 있습니다.

은행도 점점 사라지고 그 자리를 ATM이 대체하고 있죠. 이런 움직임은 대형마트에서도 예외가 아닙니다. 이마트의 경우 2018년 성수점과 왕십리점, 죽전점에 셀프계산대를 도입했습니다.

도입 3년만인 2021년 1월 기준으로 전국 이마트 127개 점에 840대가 설치됐습니다. 2022년 6월 기준으로는 이마트 트레이더스를 포함해 147개 점에서 천여 대 이상 설치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지속해서 확대되고 있다는 이야기이죠.


매장 2곳 늘고 매출은 5조 증가했지만 직원은 5,486명 줄어
그렇다면 그 기간 동안 계산을 담당하던 직원은 어떻게 됐을까요? 전자공시에 따르면 2015년 기준 이마트 점포 수는 156곳, 근무자는 3만 85명이었습니다. 2021년에는 매장 수는 2곳이 늘어 158곳이 됐고 그사이 노브랜드 등 2백 곳이 넘는 전문점도 추가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직원 수는 5,486명이 줄었습니다. 매출액은 어떻게 변했을까요? 2015년 11조 1,488억 원에서 2021년은 16조 4,514억 원으로 무려 5조 원이 증가했습니다.

직원 수는 줄었는데 어떻게 매출액은 늘어날 수 있었을까요? 그 비밀 중의 하나가 바로 셀프계산대입니다. 노동조합은 셀프계산대가 도입된 이후 최소 계산 담당 1,100명 정도 감축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런 움직임이 자연스럽게 이뤄진 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이마트, 평균 34%인 셀프계산대 처리율을 50%까지 높일 것 지시"
이마트 노동조합에 따르면 2022년 5월 이마트는 전국 19개 점에 평균 34%인 셀프계산대 처리율을 50%까지 높일 것을 지시하는 문건을 내려보냈습니다.

이 문건에는 일반계산대를 21대에서 3대로 대폭 줄이고 셀프계산대로 변경한 지점의 예를 들었습니다. 일반계산대에서 계산하려면 너무 긴 줄을 서야 하니 차라리 셀프계산대로 이동하자,

고객들을 이렇게 생각하게 만드는 의도인 것으로 보이는데 실제 문건을 받은 점포들은 고객들이 일반계산대에서 계산하기 위해 길게 줄을 서도 일반계산대를 추가 개방하지 않고 셀프계산대 이용을 유도했다고 합니다.

박선영 마트산업노조 이마트 대구경북본부장 "설치했으니 그럴 수 있다고 칩시다. 그런데 그다음이 기가 막힙니다. 사람들의 계산대 투입 근무 스케줄을 조정하고 일반계산대를 줄여서 열라고 지시하고 있습니다.

원래 시간대별, 요일별 고객 객수에 맞게 열려야 할 일반계산대를 고의로 열지 않으면 무슨 일이 벌어지겠습니까? 이전에 5분만 기다려도 계산할 수 있던 고객들은 10분, 20분을 기다리며 줄 서게 됩니다.

고객들이 기다리다 지치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일반계산대 못 기다리겠다, 셀프계산대에 가서 내가 계산하고 조금이라도 빨리 집에 가야겠다, 이런 마음 들 겁니다. 이마트 점포에서는 이마트가 지시 내리고 이마트가 바라는 바와 같이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다음 이마트가 무슨 결정을 할 것 같습니까? 봐라, 그냥 막아버리니까 본인들이 배우고 직접 계산하잖아? 좋아, 전점으로 확대해. 1,100명보다 더 많은 계산원이 자신들이 십수 년 일해온 일자리에서 쫓겨나가게 될 것입니다.

내가 셀프계산대에서 열심히 일해 처리율을 높이면 내 일자리가 없어질 줄 아는 사람들에게 스스로 일자리를 없애는 일을 강요하는 이 회사, 너무 잔인하지 않습니까? 고객들을 가르쳐서라도 자신들의 인력 감축 야욕에 협조하게 만드는 이마트, 너무 하는 거 아닙니까?"

이러한 지침이 시행되기 전에는 셀프계산대에 보통 1~4명이 근무했지만 지침 시행 이후에는 무려 10명이 넘는 계산원들이 들어가 고객들의 계산을 대신해주는 웃지 못한 일도 벌어진다고 합니다.

고객들은 계산 대기 공간을 넘어서 상품 진열 매대 안까지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하고, 끝이 보이지 않는 줄 앞에 선 계산원들의 노동강도는 더 세질 수밖에 없습니다.

일반계산대에서 셀프계산대로 옮겨 근무하는 계산원들 또한 의자도 없이 계속 서서 일하고 익숙하지 못한 고객 한 명 한 명에게 설명을 하다 보면 업무량은 더 늘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배영숙 이마트 월배점 캐셔(18년 근무) "월배점의 현재 캐셔는 32명입니다. 많을 때는 70명까지 되었지만 현재는 32명이 힘들게 일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정년퇴직, 인사 발령, 병가자 등으로 빠진 인원을 보충하지 않아서 매출은 늘어나는데 한정된 인원으로 근무하다 보니 하루 근무하고 나면 힘들다 소리가 절로 나옵니다.

셀프계산대는 고객 입장에서도 대단히 불편합니다. 한두 개 사는 고객들에게는 편할지 모르지만 주말에 대형마트를 이용하는 고객들은 많은 상품을 계산하기 때문에 자꾸 오류가 나니까 캐셔들을 "여기요, 저기요" 하면서 호출합니다.

우리 계산대 입장에서도 셀프계산대에 한 타임 들어가 계산을 도와주고 나오면 일반계산대에서 찍는 것보다 훨씬 힘이 듭니다.

십수 년 캐셔 일만 해왔는데 기계가 우리 일자리를 빼앗는 것을 지켜봐야 하고 갈수록 일이 힘들어지니 절망스럽습니다."


직원은 힘들어지고 고객은 불편해지는데···대가는 누구에게?
계산원은 줄어들고 셀프계산대가 늘어나는 것, 고객들은 더 길게 줄을 서거나 스스로 계산을 해야 하고, 직원들의 숫자는 줄어들고 노동강도는 높아지는 것, 이런 게 4차 산업혁명일까요?

셀프계산대가 도입된 이후 4년 동안 정용진 부회장 등 미등기 임원 3명을 포함한 주요 경영진 4명이 이마트로부터 받은 보수는 모두 420억 원입니다.

반면 셀프계산기 도입으로 노동 강도가 커진 계산원들의 2022년 평균 월급은 191만 9천 원으로 최저임금보다 4,560원 많은 수준입니다. 불편함을 감수한 고객과 힘들고 불안한 일자리를 이어가는 직원들에게 그 불편함과 불안함에 대한 대가는 제대로 돌아가고 있는 걸까요?

윤영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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