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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보니] K-콘텐츠 전성시대의 그늘 | 빅벙커


2023년 9월 5일 영화진흥위원회가 2024년 예산안을 발표했습니다. 영화창작 제작 지원 예산이 298억 원에서 107억 원으로 36% 삭감됐고 영화기획개발지원금이 70억 원에서 37억 원으로 약 53% 줄었습니다. 국내·국제영화제 지원도 56억 원에서 28억 원으로 절반이 삭감됐고, 지원 대상도 40편에서 20편으로 반토막 났습니다. 독립예술 영화 제작 지원 역시 117억 원에서 70억 원으로 40% 정도 줄었습니다.

전국을 대상으로 하는 영화 관련 사업들이 절반 수준이 된 건데, 지역과 연관이 있는 사업은 아예 없어졌습니다. 지역 영화문화 활성화 지원 8억 원과 지역 영화기획개발 및 제작 지원 4억 원이 전액 삭감된 겁니다.

지역 영화문화 활성화 지원 사업은 지역 영화의 저변 확대를 위한 상영회와 영화 교육, 네트워킹 등의 활동을 지원하는 것이고 지역 영화기획개발 및 제작 지원 사업은 말 그대로 지역에서 영화를 기획 개발하고 제작하는 데 지원해 주는 사업입니다.

천용길 뉴스민 기자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게 지역 영화문화 활성화 사업의 경우는 창작자만을 대상으로 하는 사업이 아닙니다. 지역 영화문화를 활성화하는 사업이거든요? 그러니까 지역의 독립영화를 향유하는 시민들에게도 돌아가는 일종의 복지 혜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이번 예산 삭감은 영화계 종사자 등 창작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시민 모두의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거기다 지방소멸이라고 말하는데 지역 관련 사업의 예산이 전액 삭감되면서 역시 영화에 있어서도 지방이 소외당하게 된 상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구 '영화 키즈'의 갈증 해소해 주던 대구영화학교···지원 예산 삭감으로 문 닫을 위기
그렇다면 지역 영화문화 활성화 사업은 구체적으로 현장에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까요? 2019년에 문을 연 대구영화학교는 매년 12명 정도의 영화인을 배출하고 있습니다. 그중에는 박찬우, 박재현, 장주선, 김선빈 등 주목받는 독립영화감독도 있습니다. 실제 지역 청년들은 영화를 하고 싶어도 배울 기회를 찾기 어렵습니다. 그나마 부산의 경우는 대학교에 영화 관련 학과들이 있지만 대구는 없다 보니 대구영화학교가 그런 갈증 해소의 창구가 되어 왔습니다. 청년들이 꿈을 꿀 수 있게 하는 공간의 역할을 해 온 만큼 단순히 창작자만을 위한 지원이라기보다는 여러 사회적 의미와 가치, 기능을 담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지원 예산 삭감으로 당장 2024년에 문을 닫을 수 있다는 현장의 걱정이 큽니다.

우지영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 "또한 대구에서 열려 온 독립영화상영회 같은 것도 독립영화를 좋아하는 분들에게는 좋은 기회이죠. 극장에서는 상업영화만 걸리다 보니까 독립영화를 볼 수 있는 기회가 없고 선택의 폭도 좁을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지역의 영화창작자들을 지원해 지역에서도 인프라를 만들고 또 쉽게 볼 수 없었던 독립영화를 작은 상영회를 통해서 보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굉장히 필요한 자리라는 생각이 드네요"

최창환 대구경북독립영화협회 공동대표 "지역 영화 관련 예산으로 영진위에서 만족도를 조사하면 만족도가 굉장히 높게 나오는 편입니다. 그만큼 창작자를 비롯해 시민들이 좋아하는 사업이라는 얘기죠. 거기다 작지만 유의미한 성과들도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지역 영화 기획개발 사업으로 만든 유지영 감독의 '나의 피투성이 연인'은 카를로비바리 국제영화제 대상을 받았고, 장병기 감독의 '여름이 지나가면'도 개봉 대기 중입니다. 제가 만든 '숨어드는 산' 역시 개봉 준비 중입니다"

지역 영화 관련 예산이 모두 없어지고 영진위의 다른 사업들도 예산이 반 이상 줄어들었는데, 그렇다면 새로 생겼거나 증가한 것은 없을까요? 공공자금을 기반으로 민간투자 활성화와 이탈 방지를 목적으로 결성된 영상 전문 투자조합이라는 게 있는데, 여기에 출자하는 금액이 80억 원에서 250억 원으로 170억 원, 전년 대비 212%가 증가했습니다. 장애인 관련 환경개선으로 18억 7천만 원에서 46억 원으로 150% 가까이 증액, 영화 영상 로케이션 지원은 3억 2천만 원에서 10억 2천만 원으로 7억 원 증액, 차세대 미래 관객 육성 사업이라는 새로운 항목이 마련돼 9억 원이 지원될 예정입니다.

이처럼 증액되는 항목이 있음에도 액수가 많지도 않은 지역 영화 관련 예산을 굳이 전액 삭감한 데는 지역에 대한 고려 없이 중앙적 사고로만 판단하고 결정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이번에 삭감된 지역 영화 지원 예산은 12억 원···영진위의 2023년 사업비 예산의 2%도 안 돼
영화진흥위원회는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 제4조에 의해서 설치된 기구입니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공공기관으로 부산에 있는데요, 줄여서 영진위라고 보통 얘기합니다. 2018년부터 영진위가 지역 영상 생태계 기반 마련을 위해 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했고 2019년부터 매년 사업명은 조금씩 바뀌었지만 지역 영화 관련 예산을 지원해 왔습니다. 2023년은 영화기획개발, 제작 지원 사업 등의 항목으로 지원했는데, 이게 2024년에는 0원이 된 겁니다.

영진위의 예산은 영화 발전 기금으로 운용됩니다. 영화 발전 기금은 영화상영관 입장권 부과금 수입으로 마련되는 기금입니다. 결국 관객이 세금을 내는 셈입니다. 2006년 한미 FTA 체결을 앞두고 스크린 쿼터 축소 조치에 대한 보상과 영화진흥금고 고갈을 대처하기 위한 재원 확보 차원에서 마련됐습니다.

우지영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영진위가 예산을 삭감한 배경에는 영화 발전 기금과도 관련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2016년부터 2019년까지 영화 발전 기금 부과금은 연평균 540억 원 정도인데요, 2020년 코로나가 발생하면서 부과금을 한시 감면해 주기도 했거든요? 영화 발전 기금 사업비와 징수액 변동 내역을 보면 2019년 사업비는 660억 원 규모인데 부과금은 540억 원이었고요, 코로나 19로 극장가가 힘들었던 2020년 이후 오히려 사업비는 증가했지만 부과금 징수액은 줄었어요. 쉽게 말하자면 매년 수입보다 지출이 큰 상황, 계속 적자 구조, 그러다 보니까 영화 발전 기금이 고갈되어 가는 상황에서 지원 사업을 추진하기 어려운 상황인 거죠"

영화는 산업의 측면도 있지만 문화의 측면도 있습니다. 스포츠에 비유하자면 유소년이나 생활 스포츠에 투자를 하지 않는다면 유럽이나 일본처럼 전 세계적인 활약을 고르게 하는 선수들을 배출하기가 쉽지 않다는 겁니다. 기금이 바닥나서 삭감할 때는 우선 원칙을 세우거나 허리띠 졸라매기를 같이 해야 하지만 한 쪽만 일방적으로 고사하는 것이 지금의 상황입니다.

최창환 대구경북독립영화협회 공동대표 "예산 지원과 관련해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게 이번에 삭감된 지역 영화 관련 지원 예산은 두 개 합쳐서 12억 원이거든요? 12억 원이 많다고 느껴질 수 있겠지만 영진위의 2023년 사업비 예산은 729억 원, 2024년은 734억 원입니다. 그렇게 따지면 12억 원은 전체 예산의 2%도 안 됩니다. 영상 전문 투자조합 출자를 2024년에 250억 원으로 220% 가까이 증액했는데, 이걸 조금 축소하고 12억 원을 지원해도 되지 않았나 싶은 생각도 드는 거죠"

대구시·부산시 등도 지역 영화 사업 지원···2024년은 '불투명'
이런 영화 발전 기금 말고 지자체에서 따로 지원하는 예산은 없을까요? 특히 영화의 도시, 부산국제영화제로 유명한 부산의 경우 지자체에서 다양한 지원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부산시에서 하는 사업의 경우 영화의 전당 운영 지원으로 91억 8천9백만 원, 부산국제단편영화제 지원으로 4억 5천만 원, 부산독립영화제 지원 5천만 원, 부산 영화 평론 활동 지원 2천만 원 등 모두 16개의 지원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부산 중구, 영도구, 부산진구, 해운대구, 수영구에서도 찾아가는 영화관, 영화의 거리 조성 사업, 부산국제단편영화제 지원 등 다양한 사업들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대구 역시 '영화'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곳입니다. 봉준호 감독 이전에 한국 최초의 여성 감독인 박남옥 감독을 비롯해 대구 출신의 유명한 영화감독이 많습니다.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서 수상하는 등 독립영화계를 주름잡고 있고 대구 단편영화제도 매년 열리고 있습니다. 독립영화 전용 극장인 오오극장과 대구영화학교도 있어 한국의 독립영화계에서는 대구를 이례적으로 보고 있다고 합니다.

천용길 뉴스민 기자 "그런데 대구의 경우 사업 항목으로 보면 부산에 비해서는 많이 적은 듯합니다. 일단 대구시에서는 대구 단편영화제 지원, 영화 콘텐츠 활성화 지원 등에 각각 약 1억 원 정도 지원하고 있고요. 대구 북구에서 대구 여성영화제 지원으로 5백만 원, 수성구에서 범물 야외영화제 개최에 8백만 원, 범어도서관 야외 영화 상영 장비 구입 지원으로 1천6백만 원을 지원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재정 건전성'을 내세우며 많은 분야의 예산을 삭감했는데요, 지역 영화 관련한 예산의 경우는 어떨까요? 대구시 지출액 기준으로 몇몇 항목을 짚어보면 대구 다양성 영화 제작 지원의 경우 2019년 6천7백만 원에서 2022년 1억 4천3백만 원으로 오히려 늘었습니다. 물론 2023년에는 항목이 사라지기는 했지만 2019년에는 없었던 영화 콘텐츠 활성화 지원으로 1억 원이 지원되고 있습니다. 대구 단편영화제의 경우는 2019년부터 9천5백만 원 지원, 2022년 1억 5백만 원 지원, 2023년은 다시 9천5백만 원이 지원됩니다. 여러 부분을 살펴보면 의외로 예산의 변동 폭 대비 크게 삭감된 것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우지영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여기서 생각해야 할 게, 지금은 예산이 깎이지 않고 지원이 되고 있지만 이번에 정부에서 삭감 계획을 발표한 거잖아요? 그러면 지자체는 정부 눈치를 보고 결국 2024년부터는 삭감할 수 있다는 거죠. 그렇게 되면 지자체 예산마저도 줄면서 더 힘들어질 수도 있습니다"


봉준호·강제규·박찬욱 감독도 작은 영화에서 시작해 천만 영화감독으로 성장
봉준호 감독이나 강제규, 박찬욱 감독도 처음부터 유명하지 않았습니다. 작은 영화에서부터 시작해서 대한민국을 알리는 영화, 천만 관객 영화를 만들게 된 겁니다. 이런 의미에서 지역 영화문화 활성화 사업 관련 예산은 결국 한국 영화산업을 위한 투자라는 개념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투자라는 건 당기 순이익만 추구할 게 아니라 장기적 투자를 통한 미래 먹거리를 찾는 것도 중요합니다. 지역 영화와 문화가 활성화해야 우리나라 전체 영화 산업과 문화가 발전하는 만큼 지역 영화와 젊은 청년 영화인을 지원하는 건 굉장히 중요하고 필요한 투자라는 결론도 낼 수 있습니다.

최창환 대구경북독립영화협회 공동대표 "실제 지역 영화문화 활성화 사업을 통해 대구 영화계의 불씨가 더 크게 살아났습니다. 대구 기반의 장단편 영화 제작이 활발해지고 대구 출신 영화인들의 영화제 수상 소식이 연이어 전해지고 대구지역 영화 전문인력 양성 기반도 개선됐습니다. 지역 영화인들의 네트워크도 강화되고 지역에서도 할 수 있다는 가능성, 희망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예산 삭감은 그런 희망을 꺾는 일이나 다름없습니다. 현재도 작은 지원으로 살아가는 열악한 현실인데 지원이 끊긴다면 대구 단편영화제나 대구 여성영화제 등의 영화제는 차츰 폐지 수순을 밟게 되겠죠. 영화제작 지원이 줄면 창작 의지가 꺾이니까 제작 편수가 줄고, 제작 편수가 줄면 극장을 찾는 관객이 급감하지 않겠습니까? 지금 예술영화전용관인 오오극장이 유일한 상영 플랫폼인데 이곳도 운영이 어려워질 것이고 대구영화학교도 결국 문을 닫게 되겠죠"

천용길 뉴스민 기자 "독립영화계는 굉장히 유기적으로 연관되어 있습니다. 영화 제작을 적게 하면 대구 단편영화제 출품도 적게 할 것이고, 그러면 영화제도 축소되고, 영화제가 축소되고 작품 수가 줄면 오오극장의 역할도 줄어들고, 그러면 결국 지역 영화계 전체가 위축되고, 이것은 한국 영화산업 전체로 미칠 겁니다"


단편영화·독립영화 사라지면 관객에게도 선택의 폭·기회 같이 사라져
상업영화도 알고 보면 시작이 독립영화인 경우가 많고 천만 관객을 동원한 감독들도 단편 영화에서 시작한 경우도 많습니다. 단편 영화를 포함한 독립영화라는 장르에는 여성이나 장애인 등 소수자들의 이야기와 목소리를 비롯해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이야기들이 녹아 있습니다. 이는 영화감독을 비롯해 영화인들의 기회가 줄어들겠지만 영화와 문화의 다양성이라는 부분에서 관객들에게도 선택의 폭과 기회가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실 독립영화나 지역 영화계의 어려움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었습니다. 독립영화는 지원 없이는 제작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고, 그러면서 지역 영화인들은 생계의 어려움마저 겪고 있습니다. 동의대 영화트랜스미디어 연구소에서 2017년 지역 영화인 근로 환경 실태조사를 했는데요, 지역 영화인의 최근 2년간 참여 작품 수와 근무 기간을 알아봤더니 다섯 작품 미만이 71.5%, 다섯 작품 이상 열 작품 미만이 20.3%로 평균적으로 보면 연간 두 작품에서 다섯 작품에 참여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또한 작품당 근무 기간은 1개월 이상 3개월 미만이 46.4%, 3개월 이상 6개월 미만이 26.8%, 6개월 이상 9개월 미만이 13.7%로 나타났는데요, 영화제작 기간이 길어지는 경우는 제작비가 큰 블록버스터급의 상업영화이거나 제작비가 부족해 일정 기간 제작이 중단되었다가 다시 제작하게 되는 저예산 영화의 경우에 나타났는데 지역 영화는 대부분 후자의 경우에 속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같은 조사에서 지역 영화 스태프의 최근 2년간 총수입은 100만 원 이상 500만 원 미만이 37.4%, 100만 원 미만이 28.1%, 1,000만 원 이상 1,500만 원 미만이 11.5%로 조사됐습니다. 전체 지역 영화 스태프의 65.5%, 즉 10명 중 6~7명이 2년간 500만 원도 못 받는 것으로 나타나 지역 영화인들의 열악한 근무환경과 현실을 말해줍니다.

천용길 뉴스민 기자 "중요한 건 2년간의 총수입이라는 점입니다. 평균적으로 말하면 연 1.7편의 영화에 참여하고 작품당 1.3개월 근무하는데 이를 1년 단위로 환산하면 연간 4.4개월 근무를 해서 약 313만 원을 벌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는 월 약 70만 원으로 2017년 법정 최저임금인 1,352,230원의 절반 수준인 셈입니다"

지역 영화 문화 활성화 사업도 일종의 청년 일자리 창출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청년이 꿈을 꾸고 영화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최근 화두 중 하나가 청년 일자리 창출인데, 국가나 지자체에서도 관련 예산을 늘리고 다양한 사업을 추진 중입니다. 그렇다면 지역 영화 문화 활성화 사업 지원 역시 일종의 청년 일자리 창출로 볼 수 있지 않을까요?

2021년 기준 청년 정책에서 일자리 예산을 보면 대구는 503억 9천5백만 원, 부산은 449억 5천8백만 원이었습니다. 지역 영화 문화 활성화 지원 사업에 참여하는 영화인 중 60% 이상이 2030 청년들인 만큼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최창환 대구경북독립영화협회 공동대표 "요즘은 많지 않긴 하지만 영화 창작자들을 문화 한량으로 보는 태도와 시각이 여전히 존재합니다. 또한 독립영화를 문화 콘텐츠로 보지 않은 사람도 있죠. 문제는 영진위나 문체부 당사자들이 그런 시각을 가지고 있을 경우입니다. 독립영화라는 것을 그저 학생들의 졸업 작품이나 동호회의 활동으로 보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상업 자본으로부터 독립해서 창작자의 개성으로 만드는 영화들인 거죠"

천용길 뉴스민 기자 "그리고 모두가 알아야 할 게, 여러 번 강조하지만 영화관은 전국에 있고 비수도권 관객이 절반을 차지합니다. 그런 역할을 하는 만큼 당연히 수혜자로서 절반의 몫과 혜택을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지역 영화 관련 예산 삭감은 창작자뿐 아니라 지역민에게도 복지혜택이 사라지는 셈입니다. 영진위 예산, 즉 영화 발전 기금의 뿌리도 지역의 영화생태계 조성과 저변 확대에 있습니다. 그런데 이 뿌리가 댕강 잘린 꼴이 된 겁니다"


세수 부족으로 긴축재정 방침→영진위 예산 삭감→지역 영화문화 활성화 사업 예산 0원?
영진위가 이렇게 예산을 삭감한 데는 어떤 배경이 작용한 걸까요? 정부가 세수 부족 등의 이유로 긴축재정 방침을 정했고 그에 따라 각 정부 기관의 예산이 일괄적으로 삭감됐습니다. 영진위는 예산 편성 결정 권한이 없다 보니 영진위 차원에서는 통으로 없애기 쉬운 사업 자체를 줄이는 게 수월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정부의 전체적 기조가 성과 위주였다 보니 영진위 예산뿐 아니라 R&D 사업과 같은 다른 사업 역시 축소됐습니다.

우지영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 "2023년 정부 예산이 638조 7,276억 원이었거든요? 예산이 많이 들어가는 곳은 보건복지부, 교육부, 행정안전부고요, 그 외에 국토교통부, 고용노동부, 기획재정부, 국방부도 높은 편이에요. 하지만 문화, 체육 쪽의 비중은 상대적으로 아주 낮습니다. 그 적은 예산 중의 일부가 영진위 예산이고 그 영진위 예산 중에서 아주 작은 부분을 지역 영화문화 활성화 관련 사업이 차지하고 있다가 이번에 없어진 겁니다"

'경쟁력' 있는 영화만 키우겠다?···"벼룩 한 마리 잡으려고 초가삼간 태우는 꼴"
이런 일이 벌어진 이유 가운데 하나가 정부의 전체적인 기조가 성과 위주였던 것처럼 문체부 역시 경제성의 논리로 접근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습니다. 영화제의 경우 경쟁력 있는 영화제를 키우겠다며 지원하는 곳을 40곳에서 20곳으로 줄인다고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예산을 삭감하면서 전체 파이가 줄어들었고 영화인들 사이의 경쟁은 더 치열해졌습니다. '풍선효과'가 나타날 가능성도 있고, 그렇다 보면 영화인들의 창작에 대한 의지가 꺾이고 질적, 양적인 하락도 가져오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나오고 있습니다.

최창환 대구경북독립영화협회 공동대표 "이렇게 되면 결국 우리나라 전체 영화산업에도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독립영화와 대형 상업 영화제작사가 별개로 운영되는 것이 아니거든요? 미국의 경우 아카데미영화상 말고도 선댄스영화제 등의 독립예술영화제가 함께 열립니다. 둘은 함께 가야 하는 부분이고 함께 움직이는 문화생태계입니다. 예산 축소로 창작 기회가 줄면 자연스럽게 제2의 봉준호의 탄생도 불가능해지는 거죠. 거기다 2019년부터 시작된 지역 영화 지원사업이 이제 막 궤도에 오르기 시작했는데 길이 막히게 되었으니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 셈입니다. 기회비용마저 날릴 꼴인 거죠"

천용길 뉴스민 기자 "스포츠로 보면 유소년 축구단에 해당하죠. 여기서 잘 키워야 국가대표로 활약할 수 있는 건데 밑동부터 자르면 나무가 자랄 수 없겠죠. 더 큰 문제는 대책을 마련할 시간도 없이 예산 삭감부터 결정하고 통보한 부분입니다. 협의 과정도 없었죠. 얼마 되지 않는 예산이니 그냥 없애자는 식인 건데, 그야말로 전형적인 행정편의주의적인 접근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렇다 보니 영화계에서도 더 큰 반발이 생기는 겁니다"

물론 전국적으로 영화제가 우후죽순으로 늘어나고 지자체의 이벤트성 행사처럼 되면서 취지와 맞지 않는 영화제가 많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제라는 타이틀만 있을 뿐 영화와는 관련 없는 몇몇 영화제들을 축소하기 위해서 '경쟁력 있는 영화제'만 키우겠다는 건 벼룩 한 마리 잡으려고 초가삼간을 태우는 꼴이라는 반론이 나옵니다.


지역 영화는 해당 지역이 알아서 하라?···"지역 영화가 있어야 전국 영화도 있어"
이번 예산과 관련한 결정은 큰 틀에서 보면 해당 지역에서 알아서 해결하라는 말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좋게 말하면 지역의 자생적 뿌리를 만들라는 거지만 속 사정은 방치하겠다는 것처럼 들린다는 것이 영화계의 반응입니다. 지역 영화인들은 지역에서 지원하는 게 원칙적으로 맞기는 하지만 그걸 지역이나 중앙,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문제로 몰고 가서는 안 되고, 각 지역의 사정에 맞춘 지역 지원과 중앙에서 기초 예술에 대한 창작 지원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중앙정부에서는 매번 지역 활성화와 문화 향유권을 말하면서 정작 본인들의 역할에 관해서는 관심이 없는 것 같다는 겁니다.

우지영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 "대구 단편영화제나 대구 여성영화제를 비롯해 지역에서 열리는 영화제의 경우 지자체 지원이 있습니다. 그런데 갈수록 지방교부금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지자체도 지원이 쉽지 않을 거예요. 거기다 지자체마다 사정이 다르니까 지원도 천차만별이겠죠. 이것도 넓게 보면 지역 차별 문제로 볼 수 있어요. 일정 부분 중앙에서 지원하는 게 맞지 않나 생각이 드네요"

지역 영화 활성화 문제는 지역방송을 바라보는 문제와 결을 같이 합니다. 서울방송만 남겨두면, 지역에 발붙이며 살지만 수도권에서 나오는 내용만 들으면서 살 수밖에 없고, 지역에 산다는 건 그냥 열패감만 남길 것입니다. 지역을 배경으로, 지역이 가진 고민과 문제의식을 담은 영화는 지역의 기록이자 문화 다양성의 출발점입니다. 즉, 특정 지역의 문제가 아니라 다양성의 차원을 볼 수 있습니다.

또 한 가지 짚어야 할 점은, 지역에서 청년이 떠난다고 하는데, 결국 영화 만들고 싶은 지역 청년은 전부 서울로 가라는 이야기와 다르지 않습니다. 지역소멸을 막고 지방시대를 강조하는 윤석열 정부의 기조와도 배치됩니다. 지역이 있어야 나라가 있다면 영화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작은 영화제들도 제대로 지원한다면 한국의 이색 행사로 확장될 수 있어
전북 독립영화제와 대구 여성영화제에서 다루는 영화들은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등 사회에서 소외되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영화제 예산을 줄인다면 아마 이런 영화들은 더 이상 보기 어려워질 것입니다. 그리고 부산국제영화제나 전주국제영화제 등은 이미 지역의 대표적인 축제를 넘어 세계적인 영화제로 하나의 관광프로그램이 되었습니다. 작은 영화제들도 제대로 지원한다면 특색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지역의 대표 축제, 나아가 한국의 이색 행사로도 확장될 수 있을 것입니다.

천용길 뉴스민 기자 "영화계는 예산안 수정을 요구하고 있고 2024 문체부 예산안 수정 가능성을 두고 여러 이야기가 오가고는 있지만 가능할지는 미지수입니다. 예산안은 앞으로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등의 심의를 거쳐 국회 본회의에서 최종 결정되는데요, 아직은 더 지켜봐야 할 상황입니다"

우지영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영진위 차원에서 해당 예산안에 수정을 요청할 여지는 영진위를 담당하는 문체위 위원들을 설득하는 일뿐인데, 지금까지의 상황이나 정황을 보면 예산안 수정 요청이 반영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최창환 대구경북독립영화협회 공동대표 "사실 영진위 예산은 규모도 작고 존재감이 약해 국회에서는 고려 대상도 안 될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 이 문제를 가지고 영진위 위원들과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간사인 대구 북구 을 김승수 의원과의 간담회를 추진했는데, 국정감사 중이라고 바쁘다고 해서 무산된 일도 있었습니다. 지역 영화문화 활성화 사업, 이렇게 지역이라는 단어가 붙으면 중앙에서는 별 관심을 두지 않는 거 같아 씁쓸합니다"


지역 영화를 '산업'의 측면으로 봐서는 안 돼···"문화로서 접근해야"
지역 영화문화 활성화를 위해서는 어떤 것들이 필요할까요? 많은 영화인들은 '산업'의 측면에서 바라봐서는 안 된다고 입을 모읍니다. 문화 다양성, 지역 다양성의 일부로서 영화에 지원을 해야 한다는 겁니다. 산업으로 접근해 예산 삭감을 하는 것이니, 지자체도 산업으로서가 아니라 문화로서 접근해야 한다는 시각이 필요하다고 지적합니다. 또한 독립영화는 수익을 목적으로 하는 상업영화가 아니고 제작 지원이 반드시 필요한 기초 예술인만큼 지원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영화진흥위원회의 설립 취지를 되돌아볼 필요도 있습니다. 영화진흥위원회의 설립 목적은 '영화의 질적 향상을 도모하고 한국 영화 및 영화산업의 진흥을 위함'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영진위의 임무 중에는 '예술 영화, 독립영화, 애니메이션 영화, 소형영화 및 단편 영화의 진흥, 그리고 지역 영화문화 진흥'이라고 영진위 홈페이지에 명시되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지역 영화문화 활성화 지원 예산을 삭감한 것은 설립 취지와도 맞지 않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천용길 뉴스민 기자 "헌법재판소에서 '영화 발전 기금의 설치 목적은 한국영화 발전의 기반이 되는 다양성 신장을 기하고 안정적 투자 환경을 마련함으로써 한국 영화의 국제적 경쟁력을 강화하며 영화상영관에서의 한국 영화 의무 상영일수의 축소 정책을 보완함으로써 한국 영화산업의 위축을 방지하여 한국 영화가 산업적, 예술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기반을 구축함에 있다'고 판시한 바가 있습니다. 지역 영화도 한국 영화거든요? 그런데 지역 영화를 한정해 예산을 삭감하는 것은 영화 발전 기금의 설치 목적과도 맞지 않는 것이죠"

OTT를 비롯해 여러 매체의 발달로 전체 영화계는 물론 독립영화계는 더 어려워지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이 때문에 기업의 영화 발전 기금 부담금을 높이거나 온라인에서 영화 콘텐츠를 상영하는 사업자에게 세금을 부과하는 방법을 검토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습니다.

최창환 대구경북독립영화협회 공동대표 "전체 영화산업은 제작사, 배급사, 극장 등 이해 당사자가 너무 많습니다. 영화관이 서울에만 있는 게 아니고 지역에도 있고, 그렇기에 지역에서도 영화 발전 기여분이 있습니다. 수도권을 제외한 지역이 영화발전기금의 절반 가까이 기여하고 있는 만큼, 그에 상당한 지역 안배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지영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정부가 경제 논리로만 문제를 해결하려는 방식을 벗어나서 지원을 통한 새로운 길 마련에 목적을 둬야 합니다. 정부가 정책 방향을 바꾸고 지자체는 지원을 강화하는 게 필요하겠죠"

천용길 뉴스민 기자 "당장은 국회에서 예산안을 수정해 지원 삭감한 걸 원점으로 돌려야 합니다. 쪽지 예산 등을 활용하는 방안도 있을 수 있겠죠"

K-영화의 저력을 위해 필요한 지역 영화 지원
작은 이슬방울들이 모여 바다를 만듭니다. 오늘날 세계 속의 한류, K-팝, K-드라마를 비롯한 K-컬처의 성공은 각 현장에서 구슬땀을 흘린 예술인들의 노력이 모여 이룬 결과가 아닐까요? 그렇다면 지역 곳곳에 뿌리내린 영화인들의 열정이 남아 있어야 K-영화의 저력이 될 수 있는 것 아닐까요?

<예산추적 프로젝트 빅벙커> 대구MBC·부산MBC 매주 목요일 밤 9시 방송>


윤영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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