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MBC 특별기획 'KAL 858기 실종사건, 국가는 없었다' 마지막 시간입니다.
백 명이 넘는 국민이 억울하게 숨졌는데도 정부는 제대로 된 진상 규명은커녕 유해 한 구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KAL 858기 동체를 수색해 줄 것을 외면해 왔던 국가는 이제라도 희생자와 유족들의 한과 눈물을 닦아줘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 정부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준비해야 할 것인지, 향후 과제를 짚어봤습니다.
미얀마 군사 쿠데타로 연기된 KAL 858 추정 동체 수색···윤석열 정부 들어 상황은 더욱 악화
2021년 1월 문재인 정부는 미얀마 현지에 KAL 858기 추정 동체 수색을 위한 정부 수색단을 2월에 보내기로 확정했습니다.
하지만 2월 1일 미얀마에서 군사 쿠데타가 발생하면서 수색은 무기한 연기됐습니다.
주무 부서인 외교부는 2021년 안으로 수색단을 파견할 계획으로 미얀마 군사정권과 협상을 시도했지만 합의를 끌어내는 데는 실패했습니다.
그 대신 상황이 호전되면 언제든지 미얀마 정부와 협의를 다시 할 수 있다고 보고 이듬해에도 수색 예산을 편성했습니다.
그러나 외교부는 2022년 9월 말 유족들과 만나 미얀마 군사정권의 비협조로 수색이 무산되었다고 밝힐 수밖에 없었습니다.
보수 정권인 윤석열 정부가 2022년 5월 출범하면서 상황은 더욱 악화하였습니다.
새 정부가 2023년 미얀마의 국내 사정이 2022년보다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면서 더 이상 수색 예산을 잡지 않은 것입니다.
사실상 수색을 포기한 셈입니다.
유족들은 미얀마 군사 정권과 협상이 잘 되면 언제든지 수색단을 출발할 수 있도록 예산을 잡고, 수색을 위한 임시 조직을 유지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유인자 KAL 858기 유족회 부회장은 "기획재정부는 미얀마 수색이 가능해지는 즉시 예비비로 수색 비용이 책정되도록 사전에 모든 준비를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라고 윤석열 정부에 호소했습니다.
KAL 858 추정 동체가 KAL 858기인지 확인하는 방법은?···추정 동체의 '꼬리 날개'가 열쇠
만약 미얀마 측과 합의가 이뤄져 수색이 가능해진다면 추정 동체가 KAL 858기인지 확인하는 것에 집중해야 합니다.
이 작업은 추정 동체의 꼬리 날개에 있는 KAL 858기 등록번호나 태극 문양을 확인하는 것으로 이제 그렇게 어렵지 않습니다.
대구MBC 특별취재단과 KAL 858기 수색단이 4차례에 걸친 수색 끝에 50미터 해저에 있는 추정 동체 주변에 대한 정보를 많이 확보했기 때문입니다.
이전까지 수색에서는 꼬리 날개에 있는 등록번호 등을 확인하기 위해 직접 잠수사를 바닷속으로 내려보내는 것은 시도할 수 없었습니다.
추정 동체를 뒤덮고 있는 그물들이 너무 많아서 자칫 잠수사가 그물에 걸릴 경우 물 위로 돌아오지 못해 사망할 수 있어서입니다.
그러나 4차례에 걸친 수색으로 이런 위험을 피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정보를 얻었고 수색 노하우도 확보한 만큼 이제는 위험한 도전이 아닙니다.
이종인 KAL 858기 수색단장은 "정부가 계획 세우고 대책 회의를 하고 관계자 회의를 안 해도 우리는 늘 하고 있는 거니까 그런 기술적인 문제는 내일 떠나더라도 오늘 당장 짐 꾸려서 가면 되는 거예요."라고 밝혔습니다.
문재인 정부 때 세운 수색 계획 허점은?···"증거 인멸 막아야"
문재인 정부 때 세운 수색 계획의 허점도 바로잡을 필요가 있습니다.
정부 수색단의 과업에 KAL 858기 확인을 넘어 동체와 떨어져 있는 일부 잔해를 인양하는 것까지 포함돼 있기 때문입니다.
잔해 일부를 인양하게 되면 자칫 본격적인 조사가 이뤄지기 전에 증거가 인멸될 우려가 큽니다.
항공 사고 조사는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철저한 계획과 준비를 통해 증거를 기반으로 제대로 진행되어야만 원인을 밝힐 수 있습니다.
김성전 KAL 858기 유족회 고문(전 조종사)은 "선박 사고가 아닌 비행기 사고입니다. 모든 비행기 사고 조사는 조사를 하기 전에 항공기 전문가들끼리 어떻게 사고 조사를 할 것인지에 대해서 기획 회의를 하고 거기에 따라서 진행을 하면 되는 거예요."라면서 원칙에 입각한 철저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1988년 팬 아메리칸항공 폭탄테러 사건은 어떻게 조사했나?···3년여에 걸친 철저한 공조 수사
원칙에 따른 항공 사고 조사의 대표적인 사례로 1988년 12월 21일(현지 시각) 발생한 팬 아메리칸항공 103편(팬암 103기) 폭탄테러 사건이 꼽힙니다.
팬암 103기는 보잉 747기종으로 승객과 승무원 등 259명을 태우고 비행하던 중 영국 스코틀랜드의 로커비 상공에서 폭발해 추락하면서 마을을 덮쳤습니다.
이 때문에 탑승자 전원과 마을 주민 11명 등 270명이 숨지는 초대형 참사가 발생했습니다.
영국의 항공사고 조사국은 경찰과 군인들을 동원하여 만 개가 넘는 부품을 찾아내 일일이 태그를 붙이고 그 정보를 컴퓨터 시스템에 입력했습니다.
조사관들은 그렇게 모은 부품들을 근거로 보잉 747을 재조립해 비행기의 앞부분 화물 적재실에 450g짜리 폭탄이 폭발하면서 남긴 20인치(51cm=510mm)짜리 구멍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유류품 중에서 시한장치 부품을 발견한 뒤 관련 정보를 영국과 미국 정보기관에 넘겨 이 시한장치에 대한 구입처를 찾아냄으로써 범인들이 리비아 카다피 정권의 지시를 받고 테러를 한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이런 일이 가능했던 것은 비행기 잔해를 최대한 확보하기 위해 노력했던 조사 당국과 3년여에 걸친 영국과 미국의 철저한 공조 수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추정 동체가 KAL 858기로 최종 확인되면 우리 정부는 영국 항공사고 조사국과 같은 철저한 재조사에 착수해야 합니다.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부속서에 따르면 새로운 증거나 중대한 증거가 발견되면 재조사를 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너무도 당연한 조치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항공사고 조사 전문가들로 구성된 '항공사고 전문 조사단'을 구성해야 합니다.
그리고 사고 원인을 밝히는 데 결정적인 증거가 될 수 있는 비행기 잔해를 최대한 확보하는 조사 계획을 수립합니다.
정부는 이 조사 계획을 바탕으로 관련 예산과 전문 인력을 확보한 뒤 본격적인 조사에 들어가면 됩니다.
이와 함께 정부는 정해진 절차에 따라 조사 과정과 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해 국민들에게 한 점 의혹도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만이 대한민국이 뒤늦게라도 국가로서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스스로 입증하고 억울하게 죽어간 희생자들과 유족들에게 사죄하는 길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