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MBC 특별기획 'KAL 858기 실종사건, 국가는 없었다' 두 번째 시간입니다.
대구MBC 특별취재단은 2020년 1월 미얀마 안다만 해저에서 KAL 858기 추정 동체를 촬영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4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당시 촬영한 비행기 동체가 KAL 858기가 맞는지 확인조차 못 하고 있어 유족들을 절망에 빠뜨렸습니다.
이런 이해할 수 없는 일은 문재인 정부가 사건의 진실을 알 수 있는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것을 두려워하며 시간을 허비한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전두환 정권, 한 구의 유해도 찾지 못한 채 사건 발생 열흘 뒤 서둘러 수색 중단
제13대 대통령 선거일을 보름쯤 앞둔 한국시간으로 1987년 11월 29일 오후 2시 1분 미얀마 안다만 상공에서 사라진 KAL 858기 실종 사건은 국민에게 메가톤급 충격을 줬습니다.
외국인 2명을 포함한 탑승객 115명이 탄 KAL 858기는 이라크 바그다드 공항을 떠나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를 경유해 다음 기착지인 태국 방콕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비행기가 감쪽같이 사라졌지만 전두환 정권은 사건 직후 대한항공과 함께 KAL 858기가 테러에 의해 공중 폭발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습니다.
전두환 정권은 먼저 중간 경유지인 아랍에미리트 공항에서 내린 15명의 외국인 탑승자 명단 가운데 일본인 국적의 하치야 신이치와 하치야 마유미를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추적에 나섰습니다.
실종 사건 발생 이틀 뒤인 1987년 12월 1일 바레인 당국은 공항에서 출국 수속을 받던 이들을 연행해서 조사하던 중, 하치야 신이치 등이 갑자기 음독자살을 시도했습니다.
나중에 김승일로 밝혀진 하치야 신이치는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 김현희로 드러난 하치야 마유미는 목숨은 건졌습니다.
전두환 정권은 음독 수법과 여권 위조의 경로 등으로 미뤄 북한과의 관련성이 높다고 보고 외국 정부의 수사보다 한국의 수사가 더 적절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리고 대통령 선거일 전날인 1987년 12월 15일 김현희를 국내로 압송했습니다.
그러나 전두환 정권은 사건 발생 열흘 뒤인 12월 9일 단 한 구의 유해도 찾지 못한 채 서둘러 수색을 중단했습니다.
실종사건 발생 20일 만인 1987년 12월 19일 전두환 정권의 교통부는 유족들의 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탑승자 전원이 사망했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리고 1988년 1월 15일 국가안전기획부는 KAL 858기 실종사건에 대한 수사 결과 내용을 발표하면서 북한 공작원들의 소행이라고 밝혔습니다.
북한 공작원 김승일과 김현희가 88 서울올림픽 참가 신청을 방해하기 위해 김정일의 친필 지령을 받고 대한항공 여객기를 폭파했다는 것이 주요 발표 내용입니다.
1990년 3월 27일 대법원은 김현희에 대한 상고심에서 사형을 선고했습니다.
김현희, 사형 선고 17일 만에 특별사면···단 하루도 감옥 생활 하지 않고 700여 회 반공 강의 활동
그리고 17일 뒤인 4월 13일 유례가 없는 믿기 힘든 일이 벌어집니다.
노태우 당시 대통령이 김현희를 역사의 증인으로 남겨야 한다면서 특별사면 조치를 발표한 것입니다.
유족들은 극렬하게 반대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습니다.
김현희는 국가안전기획부의 촉탁 직원으로 채용되어 1997년까지 전국을 돌며 반공 강사로 700여 회의 강의 활동했습니다.
대한민국 국민 113명과 외국인 2명을 폭탄 테러로 죽였다는 김현희는 단 하루도 감옥 생활을 하지 않는 등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았습니다.
훗날 노무현 정권 때인 2005년 '국정원 과거 사건 진실 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가 발족해 2년여 동안 이 사건에 대해 다시 조사를 벌였습니다.
그 결과 전두환 정권의 안기부가 노태우 후보를 대통령에 당선시키기 위해 이른바 무지개 공작을 벌인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하지만 KAL 858기는 김현희 등에 의한 폭탄 테러 사건으로 결론 내렸습니다.
전두환 정권 때 안기부의 수사 발표 내용과 다르지 않은 것으로 유족들은 크게 반발했습니다.
그리고 30여 년 동안 진상 규명과 함께 희생자 유해만이라도 찾아줄 것을 정부에 줄기차게 요구해 오고 있습니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자 다시 희망 품었지만···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동체 수색 반대
2017년 5월 보수정권 9년이 끝나고 노무현 정권을 계승한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자 유족들은 다시 희망을 품었습니다.
그리고 문재인 정부에게 KAL 858기 동체를 찾아줄 것으로 강하게 요청했습니다.
당시 KAL 858기 대책위원장인 신성국 신부는 유족 대표들과 함께 청와대와 국무총리실, 국토교통부 등을 찾아 유족들의 눈물을 닦아줄 것을 호소했습니다.
하지만 항공사고 조사 주무 부서인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동체 수색에 강하게 반대하여 다시 한번 절망에 빠졌습니다.
신성국 신부는 " 2019년 가을 무렵 모 의원의 주선으로 김현미 장관과 어렵게 만남을 가졌는데, 김 장관은 그 자리에서 자신은 수색에 관심이 없다고 잘라서 말했어요."라고 밝혔습니다.
신 신부는 "유족들을 위해서라도 다시 한번 생각해 달라고 하니까 김현미 장관은 유족들이 억지를 쓰고 있고 이미 끝난 사건을 가지고 문제를 제기한다는 식으로 거절하며 유족과는 눈도 마주치지 않았어요."라며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그런데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2019년 4월 대구MBC의 보도특집 '일본군 위안부 ' 취재진이 미얀마 현지에서 KAL 858기가 떨어졌다는 위치에 대한 결정적인 제보를 확보하게 되었습니다.
대구MBC 특별취재단, KAL 858기 추정 동체 촬영 성공···등록번호 확인만 남아
대구MBC는 KAL 858기 희생자 유족들의 간절한 소망을 이루기 위해 2019년 6월 특별취재단을 꾸리고 미얀마 현지 취재에 나섰습니다.
그리고 2020년 1월 4일, 미얀마 안다만의 50미터 해저에서 KAL 858기 추정 동체를 촬영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제 추가 수색을 통해 추정 동체의 꼬리 날개에 있는 KAL 858기의 등록번호만 확인하는 일만 남았습니다.
30여 년 동안 눈물로 호소했던 유족들의 염원이 눈앞에서 이루어지기 직전이었습니다.
그런데 다시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2020년 1월 23일 MBC의 첫 보도 이후 넉 달 동안 문재인 정부는 유족들의 간절한 수색 요청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습니다.
청와대는 KAL 858기 추정 동체를 발견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수색 여부를 두고 찬반 의견이 갈려 결론을 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안민석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은 "이것은 남북 관계뿐만 아니라 미국과의 관계에도 아주 충격적인 그러한 일이고 역사가 새로 쓰여야 할 일이기 때문에 청와대에서도 굉장히 심각하게 난상토론이 있었던 걸로 제가 확인을 했어요."라고 밝혔습니다.
문재인 대통령 "인권 차원 문제로 접근하라"···그러나 정부 차원 수색 노력은 보이지 않아
결국 문재인 전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인권 차원의 문제로 접근하라고 정리를 했고, 2020년 5월 정부 차원의 수색이 결정됐습니다.
안민석 의원은 "청와대에서 MBC 취재가 상당한 신뢰성이 있고 따라서 이거를 정부가 MBC 취재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청와대에서 최종 결론을 외교부가 확인하도록 지시를 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외교부를 중심으로 한 정부 차원의 수색을 위한 노력은 좀처럼 보이지 않았습니다.
한시가 급한 유족들은 먼저 대구MBC 특별취재단을 다시 보내 추정 동체가 KAL 858기인지만 확인하자고 청와대에 요청했습니다.
청와대는 제대로 된 수색과 안전을 위해서는 많은 예산을 들여서라도 정부 차원의 수색이 필요하다면서 이 제안을 거절했습니다.
KAL 858기 수색단장으로 대구MBC 특별취재단의 일원으로 참여했던 해양 구조 전문가인 이종인 대표는 정부의 주장이 말도 되지 않는다고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이종인 수색단장은 "보통 쓰는 다이빙 보트로 들어가면 그 자체가 안전한데 무슨 10억 짜리 탐사선으로 해서 들어가야 안전하다는 논리로 끌고 나오며 딴지를 건 게 정부 측이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수색단장은 "그걸 누가 지시했냐고 물었더니 위에서 시켜서 그렇게 했지 자기들은 모른다고 외교부 미팅 때도 말했다."고 증언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정작 외교부는 2020년 8월까지 석 달 동안 미얀마 정부와 협상 중이라고만 밝힐 뿐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했습니다.
수색단을 보내기로 결정하는 데 4개월을 보낸 문재인 정부는 다시 석 달을 허비한 셈입니다.
안민석(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깜짝 놀란 게 청와대의 KAL 858 동체로 추정되는 물체를 확인하라는 지시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외교부가 그 해 여름 동안 아무 일도 하지 않았어요."라고 취재진에게 밝혔습니다.
안민석 의원은 같은 해 9월 외교부 국정감사에서 외교부의 미온적인 태도를 강하게 질타했고 유족들의 불만이 걷잡을 수 없이 커졌습니다.
외교부는 그제야 움직이기 시작해 미얀마 정부와 본격적인 협상을 벌였습니다.
마침내 수색 하기로 결정했지만···예산 잡지 않아 착수도 못 해
마침내 2020년 10월 그해 안에 수색을 하기로 일정까지 합의했습니다.
하지만 어처구니없게도 외교부는 20여억 원의 수색 예산을 잡지 않아 결국 그해 수색은 착수도 하지 못한 채 실패로 끝났습니다.
유족들에게 많은 예산을 들여서라도 정부 차원의 수색이 필요하다는 말이 무색합니다.
문재인 정부가 KAL 858기 동체 수색에 의지가 있었는지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김호순 KAL 858기 유족회 회장은 "화가 너무 많이 났어요. 저희 유가족들이 여태까지 10개월 정도 정부 말하는 대로 그대로 따랐더니 정부가 우리를 무시하고 속였구나 믿을 수가 없어요."라며 당시 상황을 떠올리며 분노했습니다.
2020년 11월 대구MBC 취재진은 당시 청와대 담당 비서관에게 정부 대응의 문제점을 지적하자 그는 "결과적 책임에 대해 변명을 하고 싶지 않지만 시기별, 지위별,책임은 구분해서 판단해 주기를 부탁한다고" 해명했습니다.
KAL 858 추정 동체 촬영 1년 지나서야 미얀마 수색단 보내기로 확정···미얀마 군사 쿠데타로 수색 무기한 연기
외교부는 이듬해인 2022년 1월 예산을 확보하고 2월에 미얀마에 수색단을 보내기로 확정했습니다.
대구MBC가 KAL 858기 추정 동체를 촬영한지 1년이 지난 뒤였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2월 1일 미얀마에서 군사 쿠데타가 발생하면서 수색은 무기한 연기됐습니다.
유족들은 인권을 강조했던 문재인 정부가 과거 보수 정권과 다르지 않은 행보를 보인 것에 대해 억장이 무너진다면서 울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김호순 회장은 "유족들이 동체를 찾아달라고 호소할 때는 그렇게 냉정하게 외면하더니 대구MBC가 큰 비용과 위험을 감수하고 추정 동체를 찾으니까 그제야 정부 일이라고 나서고는 또 이런 절호의 기회를 날린 것을 생각하면 원통해서 잠이 안 온다."라고 말했습니다.
문재인 정부의 의지 부족 때문에 32년 만에 찾아온 절호의 기회를 날리면서 유해만이라도 찾기를 바랐던 유족들의 간절한 바람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