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대통령 직선제 선거를 보름쯤 앞두고 대한항공 KAL 858기가 미얀마 안다만 상공에서 실종된 지 2023년으로 벌써 36년이나 됐습니다.
대구문화방송 특별취재단이 2020년 1월 안다만의 50미터 해저에서 KAL 858기 추정 동체를 촬영한 지도 4년이 다 돼 갑니다.
하지만 아직도 당시 촬영한 비행기 동체가 KAL 858기가 맞는지 확인조차 못 하고 있고, 희망에 부풀었던 유족들은 다시 깊은 절망의 늪에 빠졌습니다.
"그대로 거기 있으면 안 되니까 나 살아있을 때 데려왔으면 좋겠습니다"
2023년 아흔여섯 살의 주덕순 할머니(인천시 중구 거주)는 36년 전인 1987년 11월 29일 KAL 858기와 함께 사라진 당시 서른다섯 살의 큰아들 김선호 씨를 단 한 순간도 잊은 적이 없습니다.
당시 김선호 씨는 가족들을 위해 열사의 땅, 중동 건설 현장에 자원해 현대건설의 관리직으로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주덕순 할머니는 KAL 858기 실종 소식을 텔레비전을 통해 들었을 때, 선호 씨가 탑승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이라크에서 근무해야 하는 계약 기간이 몇 달 더 남아서 KAL 858기를 탈 이유가 없다고 여긴 때문입니다.
그래서 실종사건 당일 다른 유족들이 김포공항에서 KAL 858기를 타고 귀국하는 이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과 달리 공항에는 나가지도 않았습니다.
뒤늦게 아들이 비행기에 탑승했다는 소식을 듣고 할머니는 하늘이 무너지듯 그 자리에서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당시 예순의 나이로 이미 손주를 봤던 주덕순 할머니는 이제 아흔을 훌쩍 넘겼습니다.
그러나 큰아들을 잃은 상실감과 비통함은 36년 전 그날과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취재진을 만나자마자 주덕순 할머니는 "그대로 거기 있으면 안 되니까 나 있을 때 데려왔으면 좋겠습니다. 정말 해 주십시오. 꼭 해주길 바라겠습니다."라며 눈물을 쏟아냈습니다.
할머니는 눈을 감기 전 아들이 아닌, 다른 탑승객이라도 좋으니 유해만이라도 꼭 찾아주길 갈망했습니다.
주덕순 할머니는 "우리는 찾아온 게 없으니까 해줘야 하잖아요. 세월호 희생자들은 다 시신 찾고 해서 다 갖다 모시고 했으니까 억울한 건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시신을) 찾았는데 우리는 없잖아요. 우리는 모르잖아요. 어디 있는지도 모르잖아요."라고 애원했습니다.
미얀마 안다만 상공에서 감쪽같이 사라진 KAL 858기···전두환 정권, 사건 열흘 뒤 서둘러 수색 중단
한국 시각으로 1987년 11월 29일 오후 2시 1분.
탑승자 115명을 태우고 김포공항으로 향하던 KAL 858기는 미얀마 안다만 상공에서 감쪽같이 사라졌습니다.
KAL 858기는 한국 시각으로 같은 날 오전 5시 27분에 이라크 바그다드 공항을 이륙해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를 경유해 다음 기착지인 태국 방콕으로 향하던 중이었습니다.
탑승자 115명 가운데 승객은 95명, 승무원은 20명이었습니다.
승객 95명 가운데 2명은 외국인이고 나머지 대부분은 중동지역 건설 현장에 파견된 노동자들로 오랜 외국 생활을 마치고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백 명이 넘는 자국민들이 실종된 항공 참사가 발생하자 대한민국은 큰 충격에 빠졌습니다.
하루라도 빨리 실종자들이 가족으로 돌아오길 바라는 것은 온 국민의 염원이었습니다.
그러나 전두환 정권은 사건 발생 열흘 뒤인 12월 9일 단 한 구의 유해도 찾지 못한 채 서둘러 수색을 중단했습니다.
그리고 30년이 넘는 긴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 단 한 명의 희생자도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대구MBC, KAL 추정 동체 촬영 성공···항공 전문가 "추정 동체, 여객기가 확실"
그러던 2020년 1월 초, 사건의 전말을 밝힐 것으로 기대를 품게 하는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대구MBC 특별취재단이 미얀마 안다만 해저에서 KAL 858기 추정 동체를 촬영하는 데 성공한 것입니다.
유해만이라도 찾겠다는 유족들의 간절한 소망이 강산이 세 번이나 바뀌는 시간이 흘러서야 드디어 이뤄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대구MBC 특별취재단은 2020년 1월 15일 서울 마리스타 교육관에서 KAL 858기 유족회 대표들에게 미얀마에서 촬영한 추정 동체 영상을 공개하고 수색 경과와 현지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유족 대표들은 처음에는 믿어지지 않은 소식에 어리둥절한 표정들이었지만 항공 전문가들이 추정 동체가 여객기가 확실하다고 말하자 기쁨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동생이 승무원으로 KAL 858기에 탑승했던 유인자 KAL 858기 유족회 부회장은 "그 비행기가 다 온전히 꼬리 부분까지 있다면 제 동생을 만날 날을 기다리고··· 제가 좌석 배치도를 보니까 제 동생이 그때 당시에 맨 말석에 앉아 있었더라고요. 정말 이 비행기가 858기이기를 간절히 바랍니다."라고 소회를 말했습니다.
여러 이유로 늦춰지다 무기한 연기된 정부 수색···눈물바다로 변한 36주기 추모제
그러나 정부의 수색은 미얀마 정부와의 협상 등 이런저런 이유로 늦어졌습니다.
2021년 2월 1일 미얀마에서 군사 쿠데타가 발생하면서 이마저도 무기한 연기되고 말았습니다.
희망에서 다시 절망으로, 2023년 36주기 추모제는 슬픔의 깊이가 더욱 깊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건 당일인 11월 29일 오전 11시 30분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교육회관 7층 체칠리아홀에서 열린 ‘KAL 858기 사건 36주기 추모제’는 온통 눈물바다로 변했습니다.
김호순 유족회 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858기 동체를 찾아 유해를 수습하여 가족들의 슬픔이 조금이나마 덜어지기를 그리고 온 천하에 진실이 밝혀지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말하며 끝내 눈물을 흘리고 말았습니다.
유족들은 아직 귀환하지 못한 희생자들에게 국화꽃을 헌화하며 억울한 원혼이 되어 차가운 바닷속을 떠도는 슬픔은 이제는 멈춰지기를 하늘에 기도했습니다.
KAL 858기 실종 사건이 발생했을 때부터 36년이 지난 지금까지 국가는 희생자들과 유족들을 외면했습니다.
그들의 한과 눈물을 닦아줘야 할 국가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KAL 858기 실종 사건이 발생한 지 36년이 흐르면서 유족 중 고령으로 돌아가시는 분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유족들은 더 늦기 전에 유해만이라도 찾았으면 하는 자신들의 간절한 바람을 외면하지 말아 달라고 호소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