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문객 3위 규모의 '핫플' 달성공원···우리나라 세 번째 동물원
달성토성이 잊히고 본격적으로 달성공원으로 불리는 시대가 왔습니다. 달성공원 덕분에 대구가 전국에서 '핫'한 도시가 됐는데요, 1973년 6월 18일 한 신문 기사에서는 하루 전날인 일요일(17일) 전국 주요 명소 방문객 수를 집계했습니다. 서울 뚝섬이 15만 7천여 명으로 가장 많았고, 경기도 안양유원지가 8만 2,700여 명, 그리고 달성공원이 6만 8,900여 명으로 3위 규모였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제이크 레빈 계명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 "미국도 동물원이라면 꾸준히 인기가 많아요. 관광객에게도 유명한 뉴욕 센트럴 파크 내에도 동물원이 있는데요, 1864년 뉴욕 의회 허가를 받아 설립한 국가 소유의 두 번째 동물원입니다. 쉽게 볼 수 없는 살아있는 동물을 직접 보고 경험한다는 건 신비롭죠. 저도 애리조나 투손에 있는 동물원에 가서 기린에게 당근을 먹인 적이 있습니다"
오찬호 사회학자 "한국은 특히 더 열광할 만한 상황이었어요. 우리나라 최초의 동물원은 일제강점기인 1909년 11월 1일 문을 연 창경원 동물원인데요, 세계에서 36번째, 동양에서는 7번째로 세워진 동물원입니다. 지금의 서울대공원 전신이죠. 이후에 1965년 부산에 이어 대구 달성공원 동물원은 우리나라에 세워진 세 번째 동물원입니다"
지금과 같은 형태는 아니지만 다른 나라의 동물을 싣고 와서 사람들이 구경한 역사는 그전에도 존재합니다. 신라 경주의 월지에 진귀한 동물들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고 중국과 한국, 일본의 각 시대 왕궁에는 진귀한 동물들을 두고 감상했다고 하는데요, 왕궁이나 성곽 거의 전체를 동물원으로 조성한 사례는 없습니다.
1970년 6월 19일 자 매일신문 6면에는 개관한 지 한 달이 지난 달성공원 동물원의 이모저모에 대한 기사가 실렸습니다. "만삭이 된 꽃사슴, 37개의 알을 부화장에 보내 병아리 부자가 될 공작 등 연거푸 경사를 목전에 둔 달성공원 동물원은 오는 20일로 개관 1개월을 맞이한다"로 시작하는 이 기사에는 당시 달성공원 동물원의 모습이 자세히 기록돼 있습니다. 4일 전 물새 방사장의 물을 갈아 넣는 날 폭풍이 오는 바람에 방사장의 물새들이 인공섬에서 오들오들 떨었다는 이야기도 있고, 동물원에서 가장 높은 곳에 두어야 할 코끼리 사육장이 업자가 사육장 공사를 늑장 공사하는 바람에 가건물에서 발이 묶인 채 죄수 취급을 받고 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당시에는 예산이 부족해 사자와 같은 맹수류를 데리고 오지 못했다는 안타까운(?) 이야기도 함께 있습니다.
1970년 6월 21일 자 매일신문 7면을 보면 '꽃사슴 새끼 순산'이라는 기사가 실려 있습니다. 1970년 6월 20일 오전 2시쯤 분만에 성공했다고 나오는데요, 출생 3시간 만에 엄마를 따라 아장아장 걸음마를 배워 벌써부터 인기를 얻고 있다고 말합니다. 달성공원에 올 때부터 임신한 상태여서 달성공원으로 이사올 때 특별 배려를 받으면서 왔다고 하는데, 개장 한 달 만에 맞이한 경사였습니다.
철망을 뛰어넘은 사자···관람객에게 침을 뱉는 침팬지
전국에서 6만 명이 찾아올 정도였으니 크고 작은 사고도 있었습니다. 1993년 1월, 30대 관람객이 술에 취해서 사자에게 눈을 던진 적이 있습니다. 이때 사자가 화가 나서 철망을 뛰어넘었고, 관람객이 물려서 크게 다쳤습니다. 또한 침팬지 사육시설 앞에 유리가 설치되어 있는데 이것도 관람객 행동 때문입니다. 알렉스라는 암컷 침팬지가 있었는데 사람들이 자신에게 침 뱉는 모습을 보고 그걸 배운 겁니다. 그때부터 관람객이 앞에 오면 이 침팬지가 침을 뱉기 시작해 유리를 설치했다고 합니다.
오찬호 사회학자 "사람들에게 동물은 오락거리에 가까웠죠. 우리나라에서는 동물권에 대한 인식이 생겨난 지가 얼마 되지 않았어요. 반려견을 키우는 가정이 늘면서 동물 보호, 동물 복지에 대한 인식이 변화하는 중인데 여전히 동물원의 동물 복지는 사각지대입니다. 사육시설뿐만 아니라 관람객이 동물을 바라보는 시선도 더 달라져야 합니다"
제이크 레빈 계명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 "피터 싱어라는 철학자가 1973년에 쓴 '동물 해방'에서 처음 동물권을 주장하는데요, 동물도 지적, 감각 능력을 지니고 있으므로 보호받기 위한 도덕적 권리를 가진다는 개념입니다. 이 책과 후에 조나단 사프란 포어의 '동물을 먹는 것'은 채식주의와 비건 의식을 더 대중적으로 만들었습니다. 만약 우리가 동물들의 고통을 느끼고 의식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정말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합니다. 왕의 권력과 부를 과시하기 위해 시작된 동물 수집에서 동물원의 역사가 시작됐는데요, 단순 전시에서 지금의 모습으로 바뀐 동물원을 소개하자면 미국 센트럴파크 동물원입니다. 처음 개장했을 때는 빌딩에 있었어요. 지금의 위치로 옮긴 건 조금 뒤인 1870년인데, 그때 동물이 살던 곳과 유사하게 환경을 만들어 주고 인간은 되도록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관람하도록 한 거죠. 오히려 동물이 사람을 관람하는 것처럼···"
동물원, 이제는 없어져야 하나? 계속 있어야 하나?
달성공원 동물원은 1960년과 1970년대 과거 우리가 동물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그 시선을 그대로 나타낸 공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생명이 아니라 전시 동물로써만 대한 건데요, 많은 사람이 이제는 동물원이 없어져야 한다, 여전히 있어야 한다, 다양한 의견을 내고 있습니다. 종 보존 차원에서 있어야 한다, 동물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인식을 바꿔야 한다는 의견이 있고, 자연에서 자유롭게 살아갈 권리를 빼앗아서는 안 된다, 인공적인 공간에서 고통을 겪게 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제이크 레빈 계명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 "우리에게 동물원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는 복잡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인간이 자연을 인간의 문명과 분리된 어떤 것으로 취급하느냐가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사실은 우리가 자연이라는 것입니다. 또는 자연의 모든 것이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구분이 없습니다. 그래서 동물원이 인간과 자연이 분리되어 있다는 생각을 강화하는 것이라면 동물원을 폐지해야 합니다"
2017년 5월 16일 달성공원 동물원이 대구대공원으로 이전하기로 확정됐습니다. 준공이 2027년으로 좀 늦어지고 있는데, 이전하면 전문적인 동물병원부터 생태적인 공간까지 조성된다고 합니다.
김수박 시사만화가 "동물권이 보장된 새로운 보금자리로 빨리 갈 수 있었으면 싶네요. 저도 어린 시절 좋은 추억이 됐습니다만 자라나는 어린이들에게 동물을 어떻게 지켜야 하고 생명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새로운 대구대공원 동물원이 그 방향을 제시해 줬으면 합니다"
9개의 기념비에다 경상도 지키던 '관풍루'까지 들어선 달성공원···일제강점기 대구읍성이 파괴되고 도시화한 것이 계기
현재 동물원 외에 달성공원을 둘러보면 다양한 종류의 기념비가 있습니다. 모두 9개가 있는데 다 다른 내용의 기념비입니다. 역사성이 있는 인물의 동상부터 헌장비, 시비까지 있는데, 이렇게 의미 있는 기념비를 달성공원에 세운 이유는 뭘까요?
정인성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달성공원이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곳이고, 경상감영이었던 대구읍성은 일제강점기에 파괴되고 도시화했기 때문에 그나마 공간이 보존되었던 달성공원에 기념비를 옮기거나 세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또 하나 눈여겨 보실 만한 게 경상도를 지켜온 관청의 문, 관풍루입니다. 원래 위치가 이곳이 아니었는데요, 대구읍성이 헐리고 본격 개발되면서 읍성의 부속 시설들도 파괴되거나 이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당시 달성 말고는 적당하게 공간을 확보할 방법이 없었던 거죠. 그래서 역사 맥락이 해체된 관풍루 등의 시설이 달성토성으로 옮겨지게 됐습니다. 시기는 1920년 정도로 알려집니다"
3년 전 경상감영 정문터 주변이 정밀 조사됐고, 여기에서 관풍루의 기초 시설로 여겨지는 유구가 발견되면서 관풍루의 원래 위치도 확인됐습니다.
오찬호 사회학자 "이 공간이 재미나는 건 과거 일제강점기 일본은 민족의 혼을, 대구의 기를 빼앗으려고 달성을 파괴했고, 당시 사람들은 여기를 어떻게든 기리려고 한 흔적들이 함께 보여요"
달성토성을 배경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새벽시장에 철학관, 코스길에 마을협동조합까지
달성은 범위가 많이 넓습니다. 달성공원 바깥 비산동으로까지 토성이 자리하는데요, 달성공원 정문으로 나오면 토성으로 배경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나옵니다. 새벽에는 시장도 잠깐 열리는데요, 달성공원 새벽시장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달성공원 입구 지나서 건너편에는 사주 봐주는 철학관이 많습니다. 달성공원 앞 철학관 거리라는 이름도 있는데요, 워낙 사람들이 많으니까 길거리에 앉아서 사주나 손금, 관상 같은 걸 봐주는 사람들이 있었고, 워낙 장사가 잘되니까 아예 점포를 얻어서 한두 집씩 차린 게 철학관 거리가 됐다고 합니다.
요즘 사람들에게 달성토성은 코스길로도 유명합니다. 사계절 느낌이 다 다른 것으로 인기가 좋은데요, 많은 동식물이 자생하고 있습니다. 2021년 6월부터 2022년 10월까지 달성토성 전역의 생물종을 조사했는데, 400여 종의 동식물들이 자생하고 있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이 정도 수치면 지역 소공원과 비교했을 때 3~10배에 달한다고 합니다.
김수박 시사만화가 "깃대종이라고 하죠. 발견된 것들이 참느릅나무, 애기자운, 말채나무인데, 초봄에 날 따뜻할 때 가면 달성공원 잔디밭이나 나무 아래에서 자그마한 보라색 꽃이 피어있을 거예요. 그게 애기자운입니다. 이 꽃이 대구 근교에만 있다네요"
2022년 달성토성 자연 생태계 연구가 열린 곳은 달성토성마을입니다. 토성을 배경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은데, 비산 2동과 3동을 지금은 달성토성마을이라고 부릅니다. 1950년대, 한국전쟁 피란민들이 만든 마을인데요, 자연적으로 생겨난 곳인데, 그때부터 대구가 섬유산업이 한창일 때까지 많은 사람이 이곳에서 터를 잡고 살았습니다. 1985년까지만 해도 동네 인구가 3만 3천 명이었다고 합니다.
정인성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달서 고분군은 대구와 경북에서 경주를 제외하고는 가장 큰 규모의 고분이 조성되어 있던 공간이었습니다. 그리고 토성의 내부와 바깥쪽에는 토성의 역사를 이야기해 주는 유구가 시대별로 켜켜이 만들어져 있고 발굴 조사를 해보면 이런 유구와 유물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곳은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제62호로 지정되면서 달성공원과 함께 개발 제한 구역으로 묶여 있습니다. 개발할 수 없으니까 재개발이 이뤄지지 않아서 대구 동네의 원형이 잘 보존된 곳이기도 합니다. 이런 공간들은 대체로 젊은이들이 떠나고 옛날부터 살아온 아버지와 어머니, 할아버지와 할머니 세대가 살고 있습니다.
이분들이 마을을 지키기 위해 직접 나섰습니다. 2017년에 달성토성마을을 만들었습니다. 마을협동조합인데요, 주민자치회를 통해 다양한 활동들을 하고 있습니다. 달성토성마을 골목 축제도 매년 열고 골목 정원을 만들어서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마을 이야기도 들려주면서 어르신들이 다양한 활동들을 하고 있습니다.
역사의 현장이면서 숲이면서 공원이면서 동물원···현재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
달성토성과 달성공원, 대구 도심 안에서 지금까지도 다양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고 숲이기도 하고 공원이자 동물원이기도 합니다. 이곳은 현재의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요?
김수박 시사만화가 "저에게는 1970~90년대까지 한 시절 꽤 강력한 공유 기억의 의미가 있습니다. 추억은 가끔 꺼내 물도 주고 닦으며 가꾸는 화초 같은 것이라던데, 추억에 기대면 안 되지만 가끔 꺼내 행복을 주는 것만을 틀림없죠. 많은 대구시민에게 행복한 추억으로 자리하고 있는 곳이 달성공원인 것 같습니다. 추억은 또한 행복한 것이지만 붙잡거나 기대면 안 되는 거잖아요? 마음속에 또는 어떠한 형식으로 잘 간직하고 보다 중요한 역사적 의미로서의 달성토성 복원을 지지하고 받아들여야 하겠죠"
대구 중구청에서는 2019년 10월에 달성토성 관련 유물을 시민들에게서 구입한다고 공고를 낸 적이 있습니다. 오랜 시간 잊혀서인지 달성토성 관련 유물을 찾지는 못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런 활동들이 토성을 복원하고 지키는 단계가 아닐까요? 달성공원이라는 익숙한 이름과 함께 잃어버린 이름, 달성토성을 지금부터라도 기억하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요?
** '시민의 품격', 대구MBC 매주 목요일 밤 9시 방송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