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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보니] 대구 팔현습지에 만드는 '사색이 있는 산책로'···'동식물 떠나는 산책로' 되나? | 빅벙커


강물이 가다가 산을 만나면 더 이상 가지 못하고 방향을 틀면서 만들어진 절벽을 '하식애'라고 합니다. 대구 팔현습지는 이런 하식애와 금호강 사이에 만들어진 습지입니다. 식물을 매개로 한 다양한 동물들이 서식하고 있는데요, 지형적 특성, 식물학적인 특성들로 하나의 생태계가 만들어져 있는 게 특징입니다.

팔현습지는 대구에서 달성습지, 안심습지와 함께 대구 3대 습지로 꼽히고 있습니다. 400년 왕버들 원시 숲이 있고 수달과 얼룩새코미꾸리 등의 1급 멸종위기종이 사는 중요한 생태공간이기도 합니다.

정수근 대구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 "우리나라는 산이 많기 때문에 산과 강이 연결된 생태계로 야생동물들이 산과 강을 오가며 살아가는데요. 그런데 대부분의 하천에는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도로가 놓여 있습니다. 이 도로가 산과 강의 생태계를 단절시켜 놓은 상황인 건데요, 팔현습지는 산과 강이 연결된 생태계로 금호강 대구 구간에서 거의 유일한 구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더군다나 도심 안에 이런 습지가 있다는 건 지켜내야 할 자랑거리인 거죠"


287억 예산 투입되는 금호강 고모지구 하천 환경 정비사업···"'사색이 있는 산책로' 만들려다가 '동식물이 떠나는 산책로' 될 수 있어"
이런 팔현습지가 포함된 금호강 일대의 하천 환경 정비사업, 정확한 사업명은 '금호강 고모지구 하천 환경 정비사업'인데 여기에 287억 7천9백만 원의 예산이 책정되어 있습니다. 처음에는 '금호강 사색 있는 산책로 조성 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됐다고 합니다.

우지영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 "대구 수성구 매호동에서 동구 효목동 일원 약 5.5km에 자전거 도로와 산책로를 조성하는 사업인데요, 계획에 따르면 기존에 있는 3,973m의 제방을 더 크게 보강하고 보도교를 포함해 1,585m의 산책로 연결도로를 만든다는 계획입니다. 사업비는 토지 보상비를 포함해 287억 7천9백만 원으로 편성되어 있는데요, 3.9km 고모보축, 즉 제방 보강구축에 200억 원, 팔현습지에 세워질 1.5km 교량형 보도교 산책로에 87억 원이 투입될 예정입니다. 국비 지원 사업으로 환경부 산하의 낙동강유역환경청이 시행기관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금호강 고모지구 하천환경정비사업과 관련해 낙동강유역환경청에 팔현습지와 관련된 예산을 청구하면서 팔현습지에 세워지는 보도교에 대한 세부 예산을 청구했는데요, 낙동강유역환경청에서는 보도교는 팔현습지가 아닌 시민들이 많이 다니는 친수지구에 지어지는 것이라서 예산을 줄 수 없다는 의견을 전해왔습니다. 보도교가 세워지는 위치는 친수지구로 습지로서의 보존 가치가 없다는 얘기도 함께 전하더군요"

정수근 대구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 "87억 원이 투입되는 1.5km 교량형 보도교 산책로는 팔현습지의 핵심 생태 구역이자 멸종위기종의 '숨은 서식처'를 통과해 들어가는 높이 8m의 새로운 길을 내는 공사인데요, 팔현습지의 생태계를 갈라놓는 공사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사색이 있는 산책로'를 만들려다가 '동식물이 떠나는 산책로'가 될 수도 있는 거죠. 실제로 절벽 가까이 건설하는 보도교는 앞이 탁 트인 둥지를 선호하는 수리부엉이의 번식 조건에 치명적인 위해를 가할 수 있고, 보도교의 불빛과 사람들의 소음공해로 야행성 조류의 번식 및 생태환경이 매우 위태로워질 수 있습니다"


금호강 개발 계획은 홍준표 대구시장의 핵심 공약 중 하나···"810억 투입해 금호강을 시민 이용 중심의 강 만들겠다"
시민들의 편의를 위해 금호강을 개발하겠다는 계획은 홍준표 대구시장의 핵심 공약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사업비 810억 원을 들여서 금호강을 시민 이용 중심의 강으로 만들겠다는 계획입니다. 2024년부터 본격적으로 추진을 한다는 얘기도 나오는데요, 금호강 르네상스 프로젝트의 선도 사업은 3가지입니다. 디아크 문화관광 활성화 사업(사업비 300억 원), 동촌유원지 일원 금호강 하천 조성 사업(사업비 450억 원), 금호강 국가생태탐방로 조성 사업(사업비 60억 원)이 포함되어 있는데요, 실제 팔현습지에 생기는 산책로 사업도 이런 개발 사업의 전초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낙동강유역환경청의 팔현습지 소규모환경영향평가에는 법정보호종 3종뿐···환경단체 조사 결과 14종 확인
계획은 이렇다 하더라도 개발 사업을 아무렇게나 할 수는 없습니다. 환경영향평가도 해야 하고 다양한 환경전문가의 의견도 수렴을 해야 합니다. 팔현습지의 경우도 환경영향평가를 했습니다.

그런데 환경부 산하 낙동강유역환경청이 2021년에 작성한 소규모환경영향평가(변경협의)에서는 법정보호종이 수달, 삵, 원앙 등 단 3종류밖에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대구환경운동연합은 2022년 9월부터 전국의 생태전문가들과 함께 팔현습지 구석구석을 누비며 생태 조사를 했는데요, 그 결과 팔현습지에서 14종의 법정 보호종 서식이 확인됐습니다. 수달, 삵, 담비, 얼룩새코미꾸리, 남생이, 수리부엉이, 흰목물떼새, 큰고니, 큰 기러기, 황조롱이, 새매, 참매, 하늘다람쥐가 발견된 겁니다. 제3차 전국 자연 조사에 따르면 금호강 대구 구간 42km 전체의 법정보호종이 13종으로 되어 있는데, 팔현습지에서 14종이 발견된 겁니다. 결국 그 전의 환경영향평가가 제대로 되지 않은 것이 확인된 셈입니다.

대구지방환경청은 협의기관으로 문헌 조사상 큰기러기와 황조롱이, 큰고니 등 법적보호종 7종이 발견된 것과 소규모 영향평가에서 3종이 발견된 것의 차이를 이유로 시행기관인 낙동강유역환경청에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습니다. 그래서 환경영향평가 이후 추가적인 조사가 이루어지긴 했습니다만 대구환경운동연합이 발견한 14종과는 차이가 있어 대구환경운동연합의 요구로 결국 대구지방환경청에서 거짓·부실 검토 전문위원회를 열게 됩니다.


거짓·부실 검토 전문위원회 열렸지만···"거짓·부실에 해당하지는 않는다"
'거짓·부실 검토 전문위원회'는 환경영향평가법 시행령 제6조의 3 제6항에 따라 10인 이내로 구성되고 출석위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됩니다. 환경부 소속 및 관계기관 공무원 5급 이상 각 1명, 판·검사 또는 변호사로서 5년 이상 재직한 사람, 환경영향평가에 관한 학식과 경험이 풍부한 사람, 환경 관련 협회·단체·공사·공단 및 연구기관 임직원 등이 전문위원으로 위촉될 수 있는데요, 전문위원회 개최 결과 거짓·부실로 의결되는 경우에는 사업 승인이 정지 혹은 취소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결국 환경영향평가가 '거짓·부실에 해당하지는 않는다'고 결론이 났습니다.

천용길 뉴스민 대표 "거짓·부실 검토 전문위원회의 검토 후 발표된 내용은 이렇습니다. 소규모 환경영향평가서상의 현장 조사와 관련하여 법정보호종 출현에 시간·계절적인 차이가 있을 수 있고, 현장 조사 당시 법령에서 정한 관련 전문가의 통상적인 주의 의무를 위반할 정도 등의 거짓 또는 부실이 발생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건데요, 환경이 바뀔 수도 있는 중요한 토목공사 앞에서 4계절에 이르는 철저한 조사 없이 현장 조사 몇 번에 개발 여부를 결정지을 수 있는 거라면 사실 환경영향평가를 하는 의미가 퇴색되는 거죠"

정수근 대구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 "환경단체 입장에서 심의 결과를 신뢰할 수 없는 게, 이 중요한 위원회 내용을 비밀에 붙였다 말이에요. 위원회의 위원들이 신뢰할 만한 사람들인지, 회의에는 어떤 내용이 나왔는지 전혀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그나마 알려진 게 심의위원을 9명으로 구성했다는 건데요, 환경부 본부 추천 5명, 대구지방환경청 임기제 위원 3명, 협의기관 소속 공무원 1명으로 구성이 되었습니다. 환경부 소속청에서 한 환경영향평가를 환경부 소속인들이 다시 검증하는 것과 같은 그림이 그려지지 않습니까? 누가 어떻게 검증을 하는지 알 수 없으니 저희로서는 공정성에 의심이 갈 수밖에 없는 거죠. 저희 환경단체에서 참관을 요구했지만 비공개라면서 문을 닫아버렸어요. 평가 위원분들을 직접 현장에서 보고 우리의 입장을 전달하기 위해서 피켓도 들고 서 있었는데 만날 수가 없었어요. 왜 우리 미래세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환경문제에 시민이 참여할 수 없는 건지 이해할 수 없는 지점입니다. 처음 평가가 잘못되어 다시 재평가하는 만큼 더 많은 의견을 수렴하고 제대로 평가해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2015년에는 람사르습지 등재 움직임도 있었던 팔현습지···대구시 요청으로 보전지구→친수지구 변경
수리부엉이나 수달 같은 멸종 위기 동물들을 보호하기 위해 1989년부터 멸종 위기 개념을 도입해 법정 보호 생물종인 특정 야생 동식물을 고시하고 있습니다.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 6조 1항에 보면 환경부 장관은 멸종위기 야생생물 등 특별히 보호하거나 관리할 필요가 있는 야생생물의 서식 실태를 정밀하게 조사하여야 한다고 규정되어 있습니다. 8조에는 지자체의 인공구조물로 인해서 야생동물의 피해가 가지 않도록 조사하고 관리하고 시정을 요구할 의무도 있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사실 팔현습지는 대구지방환경청이 2015년 람사르습지로 등재하려고 노력했던 적이 있을 정도로 생태적으로 인정받던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대구시가 2017년 야생동물 보호구역 해제를 국토부에 요구하면서 운명이 달라지게 됐습니다. 국가하천인 금호강 일대는 복원 및 보전지구로 지정돼 있어 하천법상 친수공간 조성을 위해서는 국가수자원관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하천기본계획을 변경해야 합니다. 하천지구는 자연 상태로 유지해야 하는 보전지구와 파괴된 생태계를 복원, 개선하는 보전지구와 주민을 위한 휴식 및 레저공간으로 이용되는 친수지구로 나뉘는데요, 대구시 요청에 의해서 2018년 4월 당시 국토교통부 부산지방국토관리청이 총 214만 5,085㎡에 달하는 6곳의 금호강 복원·보전지구를 모두 친수(근린친수)지구로 변경하면서 당시 보전지구였던 팔현습지 구역도 친수지구로 바뀌게 됐습니다. 토목 공사가 가능한 땅이 된 겁니다.

시민들이 발품을 팔아 14종의 법정보호종을 확인했지만, 낙동강유역환경청에서는 공사를 강행한다는 입장입니다. 대신 낙동강유역환경청은 교각 수 45개의 강관 거더교를 교각 수 6개로 줄인 아치교로 변경해 환경 피해를 축소하고, 수중에 공작물을 설치할 때 일시적으로 쌓은 가물막이를 물고기의 통행로를 확보하는 방식으로 변경하고 얼룩새코미꾸리 등의 어류 산란 시기를 피해서 설치한다는 계획, 또 공사 중 비산먼지 발생을 막기 위해 운반 차량을 저속 운행하고 환경 분야 상시 감시원 1명을 고정 배치해 관리하겠다는 계획입니다.


생물 다양성의 가치 인정하고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이용할 책임을 국제적으로 약속한 대한민국
우리나라는 1994년 유엔 생물다양성 협약에 가입했습니다. 생물 다양성의 가치를 인정하고 보존하고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이용할 책임이 있음을 국제적으로 약속한 셈인데요, 그 책임을 잊지 않는 사회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멸종 위기 생물들이 하나씩 사라지는 환경이라면 인간의 생존 역시 보장하기는 갈수록 어려워지는 것 아닐까요?

<예산추적 프로젝트 빅벙커> 대구MBC·부산MBC 매주 목요일 밤 9시 방송>


윤영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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