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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보니] 재개발에 가려진 사람들 | 빅벙커


대구의 거리를 지나다 보면 한 블록 건너 공사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부산 역시 다르지 않은데요. 곳곳에서 공사가 진행되고 있거나 재개발 사업 관련 현수막이 붙어 있습니다.

백경록 대구의정참여센터 운영위원장 "부산도 비슷하지만 대구는 도시 전체가 공사판입니다. 높은 곳에 올라가서 내려다보면 공사 크레인밖에 안 보일 정도예요"


재개발은 '민간'의 영역? 대구·부산 모두 공공 예산 투입

재개발은 보통 민간의 영역이라고 생각하지만 공공 예산이 들어가기도 합니다.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기금'이라는 것인데, 대구는 2001년, 부산은 2003년부터 이 기금을 운용하고 있습니다. 2022년의 경우 대구의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기금은 1억 2천만 원, 부산은 무려 103억 천만 원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우지영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아무리 개인이 하는 재개발, 재건축 사업이라고 해도 그걸 허가해줄 수 있는 권한을 가진 건 지자체잖아요? 지자체가 이 돈으로 재개발, 재건축 사업이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교육도 지원하고요. 도로나 공원 같은 기반 시설을 마련하기도 합니다"


대구·부산 재개발·재건축 6백 곳 넘어···축구장 3,500개 면적

2022년 3월 기준으로 대구의 재개발, 재건축은 모두 323곳에서 실시되고 있습니다. 부산은 289곳입니다. 대구와 부산 두 곳에서만 6백 곳이 넘는 건데, 각 지역 행정구역 숫자보다도 많습니다.

면적으로 따져 볼까요? 부산은 축구장 약 2천 개, 대구는 약 1,500개의 축구장 면적만큼 재개발 중입니다. 숫자로는 대구가 부산보다 많지만 면적으로는 부산이 대구보다 넓은 지역을 정비하는 중입니다.

양미숙 부산참여연대 사무처장 "원래 재개발, 재건축 같은 정비사업들은 대개 기간이 오래 걸리잖아요? 그런데 박형준 시장 들어서는 속도를 빨리하기 위해서 절차들을 간소화하고 규제도 완화했습니다. 이건 박형준 시장의 공약이기도 했었죠. 별개로 나뉘어 있던 고시계획위원회, 경관위원회도 통합 운영하는 걸로 바뀌었고 부산시의 기준 용적률을 10% 더 상향시켰습니다"

백경록 대구의정참여센터 운영위원장 "대구도 마찬가지로 이런 재개발, 재건축 사업에 정책 지원을 활발하게 하고 있습니다. 2021년에는 지역 건설사가 재개발 사업에 참여하면 지을 수 있는 건물 높이를 의미하는 용적률을 최대 43%까지 확대했습니다"

재개발 시작되면 갈 곳 잃는 세입자···집주인도 예외 아니야

축구장 3,500개 면적만큼 진행되고 있는 재개발과 재건축, 다양한 계층의 주민들이 살고 있지만 정비사업을 활성화하기 위한 내용만 있고 정작 주민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재개발 공사가 시작되고 주변 집값과 전셋값도 같이 뛰면서 갈 곳을 잃는 세입자들이 적지 않습니다. 세입자이기에 보상 대상에서 빠지고 최소한의 주거 이전비만 받는 겁니다. 집주인이라고 해서 모두 웃는 건 아닙니다. 어마어마한 분양권 금액을 감당하지 못하고 다른 곳으로 이주하는 집주인 역시 적지 않습니다.

백경록 대구의정참여센터 운영위원장 "대구에서 지금 재개발, 재건축이 많이 되는 중구, 동구, 서구의 경우에는 주거 취약계층 거주 비율이 굉장히 높습니다. 특히나 쪽방살이를 하고 계신 분들이 많거든요? 그런데 이런 곳에서 재개발을 하게 되면 어떤 문제가 있는지 시민 활동가분들이 살펴보니까 재개발을 하지 않는 인근에 있는 쪽방의 월세가 두 배까지 오른다는 겁니다"

결국 원래 살던 곳보다 더 열악한 곳으로 가거나 더 비싼 곳을 택할 수밖에 없게 되는데요. 부산 동구 매축지 마을 일대의 경우에도 주민 대다수가 어르신이고 집도 판자촌이 대부분이었다고 합니다.

양미숙 부산참여연대 사무처장 "부산 동구 범일대 일대 근처 아파트들이 2021년 한 해 동안 얼마에 거래됐는지 금액을 보니까 32평에서 34평 기준 평균 매매 금액이 약 5억 6천만 원, 평균 전세 보증금은 약 4억 원이었습니다. 세입자도 문제지만 집을 소유하고 있어도 이분들이 이 동네에서 어떻게 계속 살 수 있겠어요?"


대구 재개발 구역, 열 명 중 여덟 명 떠나

각 지자체의 도시 정비 조례에 근거해서 재개발 사업을 처음에 계획하고 관할 지자체에 신청할 때는 주민들의 동의가 필요합니다. 부산은 약 60% 이상, 대구는 66% 이상의 주민 동의가 필요하죠. 여기서 60%에 속하지 못하는 주민들은 보호받지 못하고 결국 자신이 살던 곳에서 떠나야 하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그렇다면 얼마나 많은 주민이 삶의 터전을 떠나고 있는 걸까요? 대구시와 부산시 모두 정확한 현황은 파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가장 최근에 조사된 자료가 2015년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서 실시한 건데요. 이 조사에 따르면 재개발 사업 구역에서의 원주민 재정착률이 2012년에는 87%였지만 2013년 49%, 2014년 38%로 매년 낮아지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대구 대현3지구와 대구 노원지구 재정착률은 각각 22%, 23%에 불과했습니다.

대구시·부산시 "도시정비사업은 민간의 영역"

대구시와 부산시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기본적으로 도시정비사업은 민간에서 주도하는 것이고 대책 역시 민간에서 마련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자신들의 일이 아니라는 이야기죠.

그렇다면 앞서 말했던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기금'은 세입자를 위해 얼마나 쓰였을까요? 대구의 경우 2020년의 도시 정비기금은 21억 원, 2021년은 13억 원 정도였는데요, 두 해 모두 재개발 사업 지역에 사는 세입자를 위해 사용된 금액은 0원이었습니다.

재개발을 진행할 때 민간에서는 지자체에서 정한 일정 비율을 기준으로 임대주택을 건설해야 합니다. 저소득층을 위한 임대주택은 얼마나 지어지고 있을까요? 부산 재개발 사업에서 공급된 임대주택은 2020년 5.3%, 2021년 6.6%, 2022년 5.2%입니다. 재개발을 할 때 민간이 건설해야 하는 임대주택 기준 비율은 부산의 경우 10%인데 이에 못 미칩니다. 대구의 기준 비율은 5%로, 기준은 모두 충족했습니다. 2020년 5.7%, 2021년 5.2%, 2022년 5.2%로 나타났습니다. 대구와 부산 모두 재개발로 아파트 백 채를 짓는다면 그 중 임대주택은 5채 정도라는 겁니다. 이처럼 부족한 임대주택에 저소득층, 세입자를 위한 예산은 0원에 불과하다 보니 주거 취약계층이 살기에는 갈수록 힘든 세상이 되고 있습니다.

우지영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사실 저는 지자체의 태도도 문제가 있다고 봐요. 이런 정비사업에 쓸 수 있는 예산이 있고, 이 돈으로 세입자에게 주거 지원을 할 수 있어요. 법적으로 명시가 되어 있고 이런 문제에는 공공이 재정을 지원해야 합니다. 그런데 무조건 해야 한다가 아니라 여러 항목 중 이걸로 쓸 수 있다니까 예산이 적어서, 아니면 민간에서 하는 사업이니까 그건 민간에서 지원하는 거라는 이유로 두 손 놓고 있는 건 너무 무책임한 태도죠. 지자체가 더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021년 기준 미분양 건수, 대구 2천 세대·부산 천 세대

이렇게 도시 전체를 공사판으로 만들면서 지어지는 아파트는 그렇다면 잘 팔리고는 있을까요? 전국에서 인구 감소율이 가장 높은 곳이 부산이고 그다음이 대구입니다. 2021년 기준 미분양 건수가 대구가 약 2천 세대, 부산은 약 천 세대였습니다. 대구의 경우 주택 적정 수요는 약 1만 6천 가구 정도인데, 2023년에는 약 3만 3천 세대가 공급되는 것으로 예측됩니다. 정작 집이 필요한 주민들은 살던 집에서 쫓겨나고 그 자리에는 텅 빈 아파트가 새로운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입니다.

백경록 대구의정참여센터 운영위원장 "정작 주거 개선이 필요한 주민들에게는 오히려 피해를 준 거나 마찬가지인데 결국 재개발 사업이 주민을 위한 게 아닌 꼴이 되어 버린 거죠. 특히 세입자의 경우 임대료를 차등적으로 지원한다든지, 전세나 월세 보증금 융자 같은 제도를 도입해야 합니다. 그리고 중요한 건 지자체가 이런 정비사업의 속도를 조절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개발되는 지역 주민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들어야겠죠"

더 빠르게, 더 높이 지어지고 있는 지역의 아파트들. 재개발 소문이 돌면 '억'이라는 단위는 우스워지고, 공사가 시작되면 '재개발 난민'이 쏟아져 나오는 현실. 더 나은 주거를 위한 도시 정비인지, 더 많은 돈을 위한 도시 정비인지 되돌아봐야 할 때가 아닐까요?

윤영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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