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2024년 윤석열 대통령 탄핵안 통과까지 부른 12.3 비상계엄 사태 이전에 있던 비상계엄 선포는 45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신군부가 사회정화를 명목으로 삼청교육대를 만들었는데, 많은 선량한 시민들이 끌려가 고초를 겪었습니다.
40년이 더 지난 가운데 인권유린을 당했다며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조재한 기자가 보도합니다.
◀기자▶
비상계엄령이 내려져 있던 1980년 여름.
당시 24살이던 김 모 씨는 평소 알고 지내던 경찰에게 사건 용의자 얼굴을 확인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대구의 한 경찰서를 찾았습니다.
체포영장이나 재판도 없었는데, 느닷없이 유치장에 감금시키더니 삼청교육대에 끌려갔고 8개월 가까이 고초를 겪었습니다.
◀삼청교육대 강제 입소자▶
"말이 교육이지 다 벌 아닙니까? 그때는 사람으로 취급 안 했어요. 개돼지라 생각하고 그랬어요.(대우했어요.)"
삼청교육대 낙인은 자신뿐 아니라 가족까지 꼬리표로 따라다니며 오랫동안 괴롭힘에 시달리게 만들었습니다.
◀삼청교육대 강제 입소자▶
"(삼청교육대에) 갔다 나와서는 어디 취직도 할 데도 없고 그때 소문나서 뭐 할 수도 없고 한참 애 먹었죠."
1979년 10월 박정희 전 대통령 사망 직후 정권을 장악한 신군부는 계엄을 선포했습니다.
1981년 1월까지 1년 3개월 동안 계엄 상황에서 영장 없이 6만여 명을 검거했습니다.
이 가운데 3만 9천여 명은 삼청교육대에 강제 수용돼 순화교육과 근로봉사, 보호감호란 이름으로 인권유린을 당했습니다.
◀하성협 변호사▶
"국가가 국민을 폭행하고 생명과 신체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위협을 가했단 말이에요. 불법적으로 체포·감금하고 강제노역을 시키고."
2018년 12월 대법원은 "(1979년 10월) 계엄 포고는 헌법과 법률에서 정한 요건을 갖추지 못했고, 국민의 기본권 침해, 영장주의와 죄형법정주의 원칙에 위배돼 무효"라고 판시했습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에서도 삼청교육 피해 사건은 위법한 공권력의 행사로 발생한 대규모 인권침해라고 판단하고 200여 명에 대한 진실 규명 결정을 내리기도 했습니다.
또한 최근에는 진실화해 과거사 정리위원회에 진실 규명 신청을 하지 않은 피해자가 법률구조공단을 통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해 '국가는 2억 원 지급하라'는 승소 판결을 받기도 했습니다.
40여 년 전 사건으로, 가장 큰 장애물로 여겨지던 권리 구제 소멸 시효에 대해서도 법원은 피해자 손을 들어줬습니다.
삼청교육대 피해자 가운데 대구를 중심으로 한 피해자와 가족 20명도 손해배상 소송에 나섰습니다.
◀하성협 변호사▶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피해자는 굉장히 소수입니다. 극소수라서.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용기를 가지신 분들이 계신다면 그분들을 모아서 추후 소송을 제기할 생각입니다."
신군부 시절 비상계엄 아래 인권유린의 상징이 돼버린 삼청교육대, 평생 후유증과 낙인의 고통 속에 지내던 피해자들이 손해배상과 함께 명예 회복에 나서고 있습니다.
MBC 뉴스 조재한입니다. (영상취재 김종준 그래픽 한민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