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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교사도 열광한 만화가 박시백] ①"한겨레 그림세상, 만화로 표현한 칼럼"

박시백 화백이 대중과 처음 만난 공간은 한겨레 신문의 '한겨레그림판'이었습니다. 당시 시사 만화계의 '넘사벽'으로 평가받던 박재동 화백으로부터 넘겨받은 건데요, 부담감을 이겨내지 못했기 때문인지 1년 뒤 다른 화백에게 넘겨줍니다.

1컷짜리 한겨레그림판 대신 박 화백은 '스토리'가 있는 '박시백의 그림세상'을 연재하는데요, 6년여 간의 한겨레신문 활동을 끝낸 뒤 박시백 화백은 역사 만화에 뛰어듭니다.

조선왕조실록, 일제강점기를 다룬 35년과 친일파 열전, 그리고 최근에는 고려사에 대한 만화도 시작했는데요, 시사 만화가가 바라본 우리나라 역사는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서상국 MC]
박시백 화백의 역사적 순간. 네, 오늘 역사적 순간은요, 좀 특별한 시간이 될 것 같습니다. 저는 이분을 신문 속 시사 만평가로 처음 만났었는데 역사 만화가로 더 잘 알려지신 분이죠.

[김규종 MC]
그렇습니다. 오늘은 차쌤이 아니라 박시백 화백의 역사적 순간으로 만나보려고 하는데요. 박 화백은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으로 우리나라 역사 만화의 새로운 지평을 연 분입니다.

[서상국 MC]
네, 조선왕조실록뿐만 아니라 35년, 또 친일파 열전 등으로 우리 근현대사에도 관심을 가지셨는데 이번에 고려 시대로 돌아왔다고 합니다. 오늘 시인의 저녁에서는 박시백 화백 모시고 차경호 선생님과 함께 역사적 순간 특집으로 한번 꾸며 보겠습니다. 두 분 어서 오십시오. 반갑습니다.

[박시백 화백]
네, 반갑습니다.

[차경호 역사교사]
예, 안녕하십니까? 반갑습니다.

[서상국 MC]
아니, 그런데 두 분의 조합이 좀 생경한데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되셨습니까?

[차경호 역사교사]
박시백 화백께서는 금방 말씀하신 것처럼 조선왕조실록으로 워낙 역사 교사들 사이에서 유명한 분이셨거든요? 사실 제가 팬이었습니다. 그래서 언제나 한번 만나 뵙고 싶었고 만나 뵐 수 있을까? 했었는데요.

마침 비아북 출판사를 통해서 35년이라고 하는 일제강점기를 다룬 역사 만화 작업을 시작하신다고 하셔서 거기에 뭐랄까요? 약간의 도움? 먼저 한번 읽어보는 경험? 뭐 이런 것들을 할 수 있는 그런 영광을 얻게 되었습니다.

[서상국 MC]
성공한 덕후네요.

[차경호 역사교사]
네, 성덕이죠. 네.

[김규종 MC]
그럼 박 화백께서도 잠깐 좀 부연 설명을 좀 해주시죠.

[박시백 화백]
네. 출판사 측이 제게 역사교사 선생님들 몇 분을 모셔서, 일종의 사전에 뭐 특별한 문제가 있는 건 뭔지 확인하고 하는 이런 과정을 밟게 됐는데, 그때 차경호 선생님을 비롯해서 몇 분의 선생님들이 오셨어요. 그리고 나서 한 몇 년 동안 쭉 관계를 이어왔죠.

[서상국 MC]
선생님들하고 같이 작업을 하시니까 또 이렇게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 같은 경우는 약간 현장감이 너무 전문적으로 갈 수도 있고 그런데, 현장에서 우리 학생들 가르치는 선생님들하고 작업하시니까 또 조금 남다르셨을 것 같아요.

[박시백 화백]
네, 뭐 일단 워낙 역사에 대해서 열정들이 굉장히 깊으시고 그리고 제 작업에 대해서도 일단 일제 강점사라고 하는 이 부분에 대해서 학생들한테 이와 같은 형태의 일종의 교재, 이런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들을 많이 하고 계셔서, 좀 흔쾌하게들 함께 하셨고 또 만났을 때마다 소주도 한 잔씩 하고 해서 재밌었습니다.

[김규종 MC]
박시백 화백님 하면 우리들이 떠올리는 게 대개 아직까지 두 가지로, 아까 하나 차경호 선생님 말씀하신 조선왕조실록, 또 하나 한겨레 만평 그쪽인데, 학생운동 하시면서 만화 그리셨다는 얘기가 나오던데, 설명을 좀 부탁드립니다.

[박시백 화백]
제가 대학 4학년 때쯤이었던 거 같은데요. 그때 뭐 구속돼서 있다가 나오니까, 마땅히 역할을 받지 못해서 할 일이 별로 없는 이런 상황이었는데. 그래서 시간도 많고 해서 제가 워낙에 만화 그리는 거 좋아해서, 당시 광주 항쟁을 소재로 한 일종의 벽만화, 대자보라고 할 수 있는 벽만화를 해서 복도에 쭉 붙였는데 그게 되게 반응이 괜찮았어요.

[김규종 MC]
그때 대자보 유행했던 시절인가요?

[박시백 화백]
그렇죠. 네, 그래서 그러면 '나의 이후의 직업을 만화가로 삼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죠

[서상국 MC]
네, 그런데 경제학도 출신이시잖아요? 뭐 어디 불러주는 데가 없어서 만화 그리기 시작하셨다고 하셨는데 저희로서는 되게 행운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고, 원래 만화 좋아하셨습니까?

[박시백 화백]
네, 뭐 어렸을 때부터 만화를 워낙 좋아했고 초등학교 때부터 장래 희망하면 만화가로 썼었으니까. 다만 고등학교 지내면서 잠깐 잊혀졌던 게 대학 때, 그때부터 시작해서 다시 옛날 생각도 나고 그러면서 만화의 길을 가게 된 거죠.

[김규종 MC]
가장 좋아한다거나 아니면 정말 이 만화는 읽어야 한다고 소개를 해 주실 수 있습니까?

[박시백 화백]
우리 선배들 만화는 너무 좋은 게 많습니다. 많은 분이 다 좋아하시는 뭐 고우영 화백이라든가 또는 이두호 화백님이라든가 뭐 이현세 허영만 화백 등등 워낙 걸출하신 분들이 많았고. 또 아이들 때 어렸을 때는 아이들을 위한 만화를 많이 그리셨던 뭐 신문수 선생, 윤승운 선생, 박수동 선생, 그런 분들의 만화도 워낙 좋아서, 정말 굉장히 만화 환경이 척박했던 시절이잖아요? 그런데 그런 환경에서 그런 작가분들이 이렇게 많이 나왔다는 게 굉장히 정말 혜택이지 않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서상국 MC]
네, 선생님 같은 경우는 박 화백님 만화 언제 보셨어요?

[차경호 역사교사]
지금 말씀하신 저런 분들, 저는 어릴 때 잡지 이야기하잖아요? 보물섬, 뭐 이런 만화잡지로 봤고요. 솔직히 화백님 작품은 제가 거의 대학교 들어가서. 왜 대학에 보면, 신문 가판대들이 이렇게 쫙 있잖습니까?

쫙 돌아가면서 보는데, 저 같은 경우에는 항상 신문의 한 컷 만화하고 네 컷 만화, 만평하고 꼭 봤거든요? 그런데 한겨레 신문이 그때 굉장히 와닿고 탁월하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때는 박시백 화백님 이름만 제가 알고 누군지도 몰랐습니다.

그리고 나서 조선왕조실록 보면서 그때 제가 수업을 시작하고 있을 때였거든요? 와, 이것만 그냥 해도 되겠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되면서 확실히 마음속에 각인이 되었죠.

[김규종 MC]
그 딱 한 장면만 가지고 한겨레에서 내는 만평, 전 그거는 굉장한 노고, 집중력, 그다음에 어떤 사회 비판 의식, 그다음에 역사적 지식, 이런 게 총동원해야 한다고 보는데, 그리시기에 힘드시지 않았습니까? 날마다?

[박시백 화백]
엄청 힘들죠. 사실 저는 그걸 1년밖에 안 했습니다. 워낙에 저보다 앞서 있었던 분이 박재동 화백이셔서, 이분이 거의 뭐 신문 시사만평을 개척하신 분이라고 할 수 있는 분인데, 워낙 잘하셨고 그분 후임으로 가게 되니까 굉장히 저로서는 좀 힘든 자리기도 했었거든요?

그래서 1년 하다가 저는 좀 스토리가 있는 일종의 만화 평론, 이런 느낌의 박시백의 그림 세상이라고 하는 좀 스토리가 있는 만화를 그리게 됐어요.

[김규종 MC]
그게 원래 일제시대 때 전통 중의 하나인 만문만화라고 하는 그쪽의 전통을 이어받으신 것 같은데, 그림 하나 나오고 이야기가 기승전결로 해서 설명이 나오는···

[박시백 화백]
예, 뭐 이어받았다고 할 수도 있겠고 조금 다를 수도 있는데, 어쨌든 저는 일종의 만화로 표현하는 칼럼이라고 생각했어요. 제 만화 칼럼이라 생각을 했고, 때문에 시기의 가장 중요한 이슈들, 이걸 가지고 때로는 그야말로 평론식으로 논리적으로 끝나기도 하고, 때로는 스토리를 엮어서 좀 감성적으로 접근하기도 하고, 뭐 이렇게 했었죠.

[김규종 MC]
그러니까 '모던뽀이, 경성을 거닐다'라고 하는 책에서 지은이가 석영 안석주라는 사람을 소개하는데, 이 1920년대 후반 30년대 초 경성을 정말 주름잡고 있었던 가난뱅이이자 신출내기 지식인 흉내를 냈던 모던 보이, 모던 걸들이 어떤 식의 타락한 삶을 살았는지에 대한 게 아까 말씀드린 말풍선 있는데, 그림 하나 딱 그려놓고서는 그 이야기를 읽을 때 그렇게 속이 상하더라고요. 근데 박 화백님은 전통으로 연결된 게 아닌가 해서 잠시 여쭈었습니다.

윤영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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