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처벌법 적용, 50인 이상→5인 이상 확대
일하다 근로자가 숨지거나 여러 명이 크게 다치는 '중대한 재해'가 발생했을 때, 일터에 '안전보건 관리체계'를 제대로 만들고 지키지 않은 사업주를 형사 처벌할 수 있도록 정한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
2021년 법안이 국회를 통과했고, 2022년 1월부터 시행됐습니다.
다만 지난 2년 동안은 상시근로자 수가 50인 이상인 사업장과 공사비 50억 원이 넘는 건설 현장에만 적용됐습니다.
상대적으로 영세한 사업장은 준비할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현실을 감안해서 일부 법 적용 시기를 미뤄준 겁니다.
유예 기간이 끝나고, 2024년 1월 27일부터 상시근로자 5인 이상인 모든 사업장이 중대재해처벌법 테두리 안에 들어오게 됐습니다.
전국의 5인~49인 사업장 837,000여 곳, 근로자 8,000,000명이 새로 법 적용을 받게 된 걸로 고용노동부는 추산했습니다.
이들 사업장은 이제 경영책임자를 중심으로 한 '안전보건 관리체계'를 만들고 지켜야 합니다.
사업장의 특성과 규모에 맞게 재해 예방에 필요한 인력과 예산을 편성하고, 일터에 안전·보건상 유해 요인과 위험을 파악해 관리, 개선할 구체적인 방침과 목표를 세워야 합니다.
또 안전사고가 발생할 경우 어떻게 대응할지 매뉴얼을 마련하고 같은 사고가 또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한 대책도 세워야 합니다.
이걸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가 사망 사고 같은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사업주나 경영책임자 등은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 원 이하 벌금 등 형사 처벌받을 수 있습니다.
대구지방고용노동청 집계 기준, 새로 중대재해법 적용을 받게 된 대구·경북 지역 5인~49인 사업장은 9만 곳 정도입니다.
이 현장들은 달라졌을까요?
대구의 금형 부품 제조 공장에 가 봤더니···"아직 안전보건 관리체계 마련 못 해"
대구 북구에서 6명의 직원을 두고 금형 부품을 만드는 제조 공장에 가봤습니다.
작업별 안전 수칙을 적어 놓은 포스터와 '조심하라', '주의하라'는 문구 스티커가 사업장 곳곳에 붙어 있습니다.
사업주는 2023년 노동청에서 안전 관리에 대한 교육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 뿐입니다.
아직 중대재해법이 정한 '안전보건 관리체계'를 마련하지 못 했습니다.
법이 정한 의무가 뭔지, 직원이 6명뿐인 데다 그마저도 일거리가 없어 일부 출근을 않고 있는데 안전관리자를 반드시 뽑아야 하는지 사업주는 잘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박병문 금형 부품 제조업 운영 "지금 하나도, 전혀 준비를 못 했거든요. 두 번 연장(2년 유예)을 했다고 하는데 그 사실은 들었지만 전혀 준비를 못 했습니다. 솔직히 매출도 감소하고 작은, 소기업 입장에서 여러 가지 어려운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거든요? 코로나로 몇 년 동안 정말 힘들었거든요? 마스크만 벗으면 해결될 줄 알았는데 오히려 제반 사항이 너무 많이 바뀌어서 지금 유동성 위기를 대단히 많이 겪고 있습니다. 여기다 중대재해법까지 확대되면 정말 영세 업체들은 너무 부담입니다."
실제로 대구고용노동청은 산업안전보건공단과 함께 2022년부터 50인 미만 사업장에 지원하고 있는 안전보건관리체계 컨설팅 현황을 보면, 컨설팅받은 사업장은 2022년 400곳, 2023년 2,100곳 정도에 불과합니다.
2024년도 2,500개 중소 사업장에 안전보건 관리체계 구축을 도울 계획이지만, 5인~49인 사업장 전체 수를 감안하면 5%도 안 되는 비율입니다.
이렇게 준비가 안 된 영세 업체들이 법망을 피하려고 직원 수를 5인 이하로 줄이거나 임시직으로 고용 형태를 바꾸고, 사업장을 소규모로 쪼개는 방식으로 편법 대응할 수 있어 일자리만 더 열악해질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옵니다.
앞서 대한상공회의소와 한국경제인협회, 한국경영자총협회, 한국무역협회, 한국중견기업연합회 등 주요 경제단체는 중소·영세 사업장에 중대재해법 유예를 요구하는 성명을 내기도 했습니다.
중대재해처벌법의 근본 목적이 경영인 처벌이 아니라 산재 예방을 통한 중대재해 감축에 있는 만큼 유예 기간을 통해 사업장 스스로 개선 방안을 찾도록 논의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방향이라는 겁니다.
또 이들 단체는 만약 이대로 중대재해법이 시행되면 사업장 폐업과 근로자 실직 등 많은 우려가 현실화할 거라고도 밝혔습니다.
중대재해 수사관도 태부족···"실태 파악에도 오랜 시간 걸릴 듯"
문제는 더 있습니다. 노동 당국도 준비가 안 됐다는 겁니다. 당장 수사관이 턱없이 모자랍니다.
중대재해법 적용 대상 사업장은 8,280곳(50인 이상 사업장)에서 100,238곳(5인 이상 사업장)으로 10배 이상 많아졌습니다.
대구·경북 지역 중대재해를 수사하는 감독관은 2024년 1월 기준 11명, 한 달 뒤부터 4명 더 늘어나는 데 그칩니다.
대구고용노동청 관계자는 업무량이 2~3배 더 많아질 거라고 예상했습니다.
지금도 중대재해 사고 조사가 6개월에서 1년 이상 걸리는 상황에서 사고 처리 기간이 더 길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노동부는 4월 말까지 5인~49인 사업장을 대상으로 안전 관리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산업안전 대진단'을 합니다.
정부는 이 결과를 바탕으로 열악한 사업장에 필요한 지원을 하겠다는 방침입니다.
하지만 사업주가 자가진단표 15개 문항에 '전혀 그렇지 않다'~'매우 그렇다' 등을 선택하는 형태로 자신의 사업장을 진단해 보고하는 방식입니다.
제대로 된 실태 파악이 어려울 거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노동계 "중대재해처벌법은 최소한의 안전장치일 뿐···모두 사업장으로 확대해야"
중대재해법이 시행된 지난 2년 동안 대구·경북에서 발생한 산재 사망사고는 130건입니다.
이 가운데 중대재해법이 적용돼 수사 중인 건 44건, 33%뿐입니다.
중대재해 위험은 소규모 사업장에서 훨씬 크다는 게 현실입니다.
노동계는 중대재해처벌법이 일터에서 노동자의 목을 지킬 최소한의 안전장치일 뿐이라며 이 법을 모든 사업장으로 확대하고 사업주들이 법을 잘 지켜 안전한 일터를 만들도록 구체적이고 폭넓은 지원을 내놔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길우 민주노총 대구지역본부장 "그동안 50인 미만 사업장, 공사 대금 50억 원 미만 사업장에서 중대재해의 상당수가 발생해 왔다. 대구 곳곳에서도 계속해서 사람들이 떨어져 죽고, 물체에 맞아 죽고, 숨이 막혀 죽었다. 하지만 그 어느 사건에서도 처벌이 제대로 이루어진 것은 없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하루빨리 전면 확대 시행되어야 하고 법 위반 시 처벌도 강화해야 한다. 특히 산재에 취약한 50명 미만 사업장에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을 유예하자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기업들의 실효성 없는 자발적인 대진단에 맡길 게 아니라 정부가 공동안전 관리전문가 지원 예산을 대폭 늘려 1인당 담당 사업장 수를 최소화해야 한다. 실질적 책임자가 책임을 지도록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