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최근 경북 봉화의 한 농협 조합장이 마을 주민을 성폭행한 혐의로 재판받고 있다는 소식, 전해드렸죠.
폐쇄적인 농촌 마을에서 잇따라 권력형 성폭력 사건이 발생하고 있는데요, 청송군에서는 이웃 주민을 상습 성추행한 마을 이장이 법원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습니다.
성추행만큼 피해자를 괴롭게 했던 건 이장 편에 선 마을 주민들의 2차 가해였습니다.
김서현 기자가 보도합니다.
◀기자▶
경북 청송군에서도 깊은 산골 마을, 10년 전 남편과 사별한 뒤 혼자 살아온 70대 A 씨가 끔찍한 일을 겪은 건 지난 2019년 11월쯤이었습니다.
당시 마을 이장이었던 70대 오 씨가 평소처럼 마을 일을 본다며 마을과 조금 떨어져 있는 A 씨 집을 찾아와 강제로 끌어안고 성추행한 겁니다.
◀피해자 A 씨▶
"(이장이) 우리 집에 가스도 넣고 CCTV도 넣고 마을 방송 그것도 하고. 어느 날 오더니 내가 방 안에 앉아 있으니까···"
이렇게 오 씨가 A 씨의 집에 마을일 핑계로, 또는 억지로 들어와 성추행한 게 1년 사이 6차례.
이 밖에도 마을 사람이 없는 곳에선 성희롱을 서슴지 않았고, '보고 싶다', '사랑한다'며 문자나 전화로 수없이 해 괴롭혔습니다.
◀피해자 A 씨▶
"'왜 그렇게 했냐'고 하니까 (오 씨가) '내가 아줌마 예뻐서 그랬다, '밥 사 먹으러 가자. 밥 사줄게' 이러더라."
이장이 보복을 할까, 혹은 자녀들에게 알릴까 두려워 입을 닫고 있었던 A 씨는 참다못해 2023년 2월 마을총회에서 오 씨의 행각을 폭로했습니다.
하지만 오 씨는 반성은커녕 되레 주민들이 없는 곳에서 자신을 폭행했다고 A 씨는 말합니다.
◀피해자 A 씨▶
"멱살을 딱 잡고 숨을 못 쉬도록 조르니까 내가 힘이 하나도 없었어."
뒤늦게 피해 사실을 알게 된 A 씨 자녀들이 경찰에 오 씨를 신고했고, 결국 재판에 넘겨진 오 씨는 최근 징역 8개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습니다.
대구지법 의성지원은 "오 씨의 죄질이 상당히 불량하고, 특히 가해자의 지위가 마을 이장이란 점 때문에 피해 사실을 공론화하지 못한 피해자가 오랜 기간 정신적 고통을 겪었다"며 성추행 6건 모두와 폭행 일부를 유죄로 인정했습니다.
재판 결과가 나왔지만 A 씨는 여전히 마을 자택에 돌아가지 못하고 자녀들과 생활하고 있습니다.
평생을 함께 지내온 마을 사람들의 피해자를 탓하는 듯한 입소문에 '합의금이 얼마면 되냐'는 합의 종용까지···
가까운 이웃들의 2차 가해로 여전히 정신적 고통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피해자 A 씨▶
"'혼자 사는 할머니가 있는데, 혼자 사람이 있는데 연애하자고 할 수 있지'라고 이 영감(마을 주민)이 그러더라고요. 그러니 내 억장이 무너져서···"
◀피해자 가족▶
"어머님이 주무시다가도 경기도 많이 하시고 주무시다 일어나서 눈물도 흘리시고 '피해자인 내가 왜 여기 와 있어야 하느냐'"
성폭력 상담 전문가들은 이 사건의 경우, 이장이라는 지위가 위계·위력으로 작용한 성폭력의 전형적인 양상에 해당한다고 분석했습니다.
◀김민지 '대구여성의전화' 활동가▶
"개인과 개인의 문제가 아니고 마을 안에서 권력을 가진 사람이 가해를 한 행위라고 보이고, 주변에서 많은 지지를 해주셔서 피해자분이 가정으로 돌아가셔서 일상을 회복하실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폐쇄적인 농촌사회에서 홀몸 어르신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가 적지 않게 발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까운 주변인들의 2차 가해와 낮은 성 인지 감수성 탓에, 피해 사실을 알리고 보호받는 데 어려움이 큰 게 현실입니다.
◀마을 주민▶
"'할머니 혼자 살면 그럴 수 있지'라고 하고 소문에, '화장 빨갛게 해서 다닌다' 하고, 세상에 혼자 사는 사람은 화장도 못 하고 다녀요? 남자들이 '남자가 그럴 수 있지'라는데 너무 후져요. 자기 아내나 딸이 그러면···"
MBC 뉴스 김서현입니다. (영상취재 차영우, CG 도민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