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이 2월 5일 대구에서 북 콘서트를 열었습니다. 자신의 회고록 출간 기념행사였습니다.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화환을 보냈고, 김관용 전 경북도지사와 김관진·한민구 전 국방부 장관, 조윤선 전 여성가족부 장관 등이 북 콘서트에 참석했습니다. '현재 권력'과 '과거 권력'이 총선을 두 달가량 앞둔 시점에 모인 셈입니다. 이미 이번 선거에 출사표를 던진 '최측근' 유영하 변호사는 박 전 대통령과 함께 단상에 올라 질문에 답하기도 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대구시당은 "총선을 앞두고 대단히 부적절하다"며 "주변 측근 때문이라면 더욱더 부적절한 행위"라고 비판하고, "박 전 대통령은 역사의 뒷길로 걸어가셔야 한다"는 싸늘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한때 '선거의 여왕'이라고 불렸던 박근혜 전 대통령이 이번에도 의미 있는 영향을 끼칠 수 있을까요? 박 전 대통령이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직접 들어봤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
Q. 재임 당시 대북정책은?
무엇보다도 북한이 핵을 포기하도록 국제사회와 함께 미국을 비롯해서 하여튼 국제사회와 함께 부단히 힘을 썼어요. 그리고 만약에 북한이 핵을 포기한다면 우리가 경제적으로 북한이 성장할 수 있도록 돕고,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남북의 동질성을 회복을 해가면서 그 바탕 위에서 평화통일을 이룩해야 하겠다 하는 것이 커다란 목표였고 또 그 실천 과정이었습니다. 그래서 당시에 4대 국정 목표가 있었는데 그중의 하나가 평화통일 기반 구축일 정도였어요.
그런데 일부에서는 대북 정책에 대해서 당시 비판도 있겠지만 북한 도발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대처한다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국가를 수호하고 국민을 보호하는 거, 이거는 대통령의 책무 중에서도 최고의 책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사실 그 개성공단을 철수할 적에 또 거기에 기업들이 다 이렇게 개성공단을 폐쇄하고 철수하게 될 적에 무엇보다도 가장 신경을 썼던 것이, 그리고 정말 피 말리게 어떤 애태웠던 것이 마지막 국민 한 명까지 다 무사히 돌아오는 거였거든요? 그래서 그때도 가장 신경을 쓰고 중시했던 것이 단 한 명의 국민이라도 하여튼 안전하게 끝까지 돌아와야 된다 하는 국민 안위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사실 힘없는 평화라는 것은 구호에 그치는 거죠. 그러니까 그런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그런 힘 없는 평화라는 건 어떻게 보면 참 위험하기도 한 거거든요? 그건 평화라기보다는 그래서 그런 생각으로 대북 정책을 펼쳤습니다.
Q. 위안부 합의는 어떻게?
위안부 합의를 이루어내기 위해서 사실 외교부에서 위안부 그쪽 관계된 할머니들을 찾아뵙고 일일이 뭐를 가장 바라시는가 이걸 전부 여쭤보고 이렇게 그분들의 의견을 전부 수렴을 해서 사실은 우리가 반영을 시키려고 노력을 한 거거든요? 이 합의를 위해서 당시 아베 총리한테 강하게 촉구를 했을 뿐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압박을 했어요. 그래가지고 결국은 합의까지 이게 된 것인데 사실 이 합의로 인해서 아베 총리도 일본에서 굉장히 강한 비판을 받았습니다. 그 아베 총리를 향해서 과연 아베 총리 당신은 일본인 맞냐 이렇게까지 나올 정도로, 큰 말하자면 항의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아베 총리도 어쨌든 역사적인 큰 결단을 내려서 이런 합의가 이루어졌습니다.
사실 모든 사람이 다 만족하는 합의라는 거는 참 어렵죠, 있기가.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 한일 두 나라가 협력해 나갈 일도 많고 미래로 나아갈 일도 많은데 수십 년을 계속 이 문제를 해결 못하고 기성세대도 못하고 그다음에 미래 세대한테 또 이걸 그대로 넘겨주고 그다음 미래세대 점점 힘들어지겠죠. 시간이 갈수록 또 그 미래 세대가 이걸 또 받아야 하고 이렇게 나간다는 것은 안 될 일이다, 언제까지 이래야 하느냐 하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조금 아쉬움이 있더라도 국익에 맞고 또 이 전체를 위해서 이것이 이익이 된다 하고 판단을 하면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생각을 했고요.
또 그래서 뭐 어떤 그 결과에 대해서는 역사의 판단에 맡길 수밖에 없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외교라는 건 상대가 있기 때문에 100%로 하겠다 하면 사실 합의될 수 있는 게 없어요. 그러니까 그런데 사실은 이 합의문을 이렇게 양국의 외교장관이 발표를 하고 이럴 때는 좀 조용히 엄숙하게 하지만 이 합의가 있기까지 그 막후 뒤에서 실무자들이나 외교 당국이나 할 것 없이 이건 거의 전쟁에 가까울 정도로 문구 하나 가지고 자구 하나 가지고 그냥 전쟁 치르듯이 난리를 치고 따지고 싸우고 이렇게 해서 만들어낸 결과입니다. 그래서 지금 생각해도 그 합의는 최선이 아니었는가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Q. 문재인 정부 평가는?
그다음 정부, 문재인 정부에서는 사실 외교, 안보, 경제, 하여튼 모든 분야에서 상당히 다른 방향으로 갔습니다. 예를 들면 뭐 일본과의 관계에서 지소미아 협정의 경우도 이거는 우리 안보를 위해서 필요한 것이었고 또 동맹국인 미국도 그 안보의 중요성 필요성을 우리한테 역설하면서 강력하게 요청한 것이었어요. 그래서 오죽하면 제가 탄핵을 앞두고도 제 소임을 다 하려고 했던 것이고 그랬기에 협정이 맺어지고 제가 감옥에 갔거든요? 그래서 감옥에 가서도 그렇기 때문에 안도할 수가 있었습니다.
또 위안부 합의의 경우도 그 새 정부에서 뒤집어졌잖아요? 그냥 없던 일로 돼버렸는데 사실 세계가 다 지켜보고 있는데 그런 어렵게 맺어진 합의가 그냥 하루아침에 뒤집어진다 하면 어떤 나라가 한국을 신뢰하겠습니까? 또 한국과의 약속의 연속성에 대해서 큰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거거든요? 그렇다고 해서 무슨 또 대안이 있었느냐, 그 대안도 없었어요. 더 좋은 방법도 또 없었고, 이제 그런 거를 겪으면서 참 안타까운 마음을 많이 가지고 있었어요.
또 사드 배치만 해도 중국하고의 관계에서 물론 중국이 반대를 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나라 간의 관계라는 것이 서로 존중하고 또 어떤 신뢰를 형성하기 위해서 노력을 물론 해나가야 하지만 이 국익, 국가 수호에 대해서 딱 그 문제가 부딪히면 이건 우리 뜻을 관철할 수밖에 없는 거예요. 아닌 건 아니죠. 그래서 내 어깨에 지금 5천만 국민의 생명이 달려 있다, 이 넓지도 않은 어깨에. 북한이 핵을 포기한다면 우리 사드 배치 안 해도 된다, 그런데 북한의 핵이 있기 때문에 이것은 우리로서는 할 수 없이 최소한의 방어 조치지 이게 무슨 공격용도 아니다, 그런 얘기로 중국을 설득하고 그랬지만 하여튼 중국은 다른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대사 외교 채널을 통해서 이런 문제는 우리가 지금 의견을 달리해서 여러 문제가 있지만, 그러나 중국은 한국과 그동안 쌓아온 우호적인 관계를 이런 걸로 허물어뜨리고 그럴 생각은 전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 문제는 이 문제대로 의논을 해나가면서 다른 부분은 우리가 또 좀 협력해 나가자는 그런 얘기를 전해왔고, 또 그 후에 제가 중국에서 열리는 국제 정상들이 모이는 그런 회의가 있어서 가게 돼 있었어요. 그 부분도 많은 정상이 주최국의 정상을 만나려고 하지 않겠어요? 그러니까 여러 가지 좀 힘든 부분도 있지만 어쨌든 한국을 우선적으로 잘 배려해서 정상회담도 주선하고 뭐 여러 가지 신경을 쓰겠다고 그래서 그런 노력은 또 노력대로 기울였어요.
그래서 이런 문제도 상당히 서로 반대 의견으로 부딪힌 건데 그건 뭐 어디까지나 우리 생각을 그 견지할 수밖에 없는 거고요. 이런 데서 그거를 굴종적으로 그 어떤 태도를 보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을 합니다.
Q. 수감 생활은 어떻게?
그러니까 힘들지 않았고 뭐 억울하지 않았다 이렇게 말하면 그건 정말 거짓말이겠죠. 그러나 제가 돌아봐도 재임 중에 사소한 실수는 있었을지라도 의도적으로 제게 부끄러운 일이라든가 또 국민 앞에 부끄러운 일은 한 적이 없다 이렇게 생각을 했기 때문에 떳떳하고 당당했습니다. 그 어려운 시간을 지켜내는 데 국민의 위로와 더불어 큰 저한테는 기둥 같은 힘이 됐어요. 다만 제가 너무 가까이 있던 사람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서 국민께 실망을 드렸던 거, 이거는 참 저를 힘들게 했습니다. 그러나 어쨌든 진실은 언젠가 밝혀질 것으로 생각을 했기 때문에 그 담담히 견뎌낼 수가 있었습니다.
Q. 재임 시절 청와대에 가족 못 오게 했는데?
역대 정권을 보면 그 친인척 문제로 곤욕을 치르곤 했습니다. 그래서 저 개인적으로는 동생 가족들이 청와대 자유롭게 드나들고, 그래서 또 동생 가족들도 자주 만났으면 하는 마음이 있지만 만약 그랬다면 우리 사회가 동생 가족을 그대로 둘 리가 없다, 그리고 어떻게든지 이용을 하려고 했을 거고, 또 그런 과정에서 불미스러운 일도 있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판단을 했습니다. 그래서 마음은 좀 안 좋고 아팠지만 재임 중에는 만나지 않으려고 그렇게 했던 것이고요. 또 지금 생각해도 그게 동생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는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Q. 앞으로 계획은?
이미 여러 번 말씀을 드렸지만 저는 정치 일선은 떠났고 또 정치를 다시 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런데 물론 제가 재임 중에 하지 못했던 일에 대한 아쉬움은 있고 누군가가 그것을 해줬으면 하는 그런 바람은 있습니다. 정치는 하지 않겠지만 제가 국민으로부터 받은 사랑이 너무 크고 또 감사하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제가 할 일이 있다면 어떤 일이라도 해서 보답해 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