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20년 전, 2월 18일 오전 지하철 1호선 중앙로역에서 시커먼 연기 기둥이 치솟았습니다.
192명이 숨지고 151명이 다친 대구 지하철 참사.
그날 거센 불길과 시커먼 연기 기둥은 많은 이들의 일상과 삶을 집어삼켰습니다.
생존 부상자들은 생각지도 못한 참사 현장에서 그저 살아 나온 것만으로도 감사했지만 20년이란 긴 시간이 흘렀고, 여전히 치유되지 않는 상처를 안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하는데요, 김은혜 기자 나와 있습니다.
김 기자, 당시 부상을 당한 분 직접 만났죠?
◀기자▶
제가 만난 분은 20년 전 한복 주단을 운영하며 신앙심 깊은 평범한 50대였던 전영자 씨입니다.
전 씨는 평소처럼 지하철을 탔던 그날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전 씨는 중앙로역에 불이 난지 모르고 진입한 1080호 열차를 탔습니다.
인명피해는 이곳에서 더 많이 났죠.
정말 구사일생으로 현장을 나오다 구조됐지만 1년이 넘도록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습니다.
건강 악화로 생업은 포기해야 했고, 결국 신앙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여전히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고 숨쉬기 힘들 때가 많지만, 신앙에 의지해 버텨온 전 씨는 같은 피해를 본 다른 이들을 걱정합니다.
직접 들어보시겠습니다.
◀전영자 대구 지하철 참사 부상자▶
"저는 나이를 먹었다 하지만 젊고 한참 크는 아이들이 그때 국민학생 중학생 형제 하나가 있었을 겁니다. 서울에 치료를 가는데 가면서 막 덜덜덜 떠는 거예요. 불쌍해서 내가 진짜 가슴이 찢어지더라니까… 그걸 못 고치는데 어쩌나, 평생 가야 하는데…"
◀앵커▶
공식 집계된 대구 지하철 참사 부상자는 151명인데 당시 다수가 10~30대 젊은 층이었습니다.
이들은 만나기도 쉽지 않다고요?
◀기자▶
저도 몇분에게 전화를 드렸는데 사실 통화는 해도 언론에 비치고 싶지 않다 거절도 하셨습니다.
다시 또 상처를 묻는 제 입장도 참 어렵더라고요.
부상자 가족대책위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들어봤는데요.
당시 어리고 젊었던 부상자들의 경우 우울증, 대인기피 등으로 극단적 선택을 하려 한 이도 있고, 대부분 학업, 결혼, 취업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말합니다.
산 것만으로 감사했다고 하기에 이들에게 20년 세월은 너무 가혹했습니다.
아직도 호흡기 증상을 호소하고 있고, 10여 명은 후두암 판정을, 69명은 음성언어 장애 판정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몸이 아픈 것보다 더 힘든 건 치유되지 않는 정신적 상처입니다.
◀앵커▶
부상자 지원은 어떻게 됐나요?
◀기자▶
참사 이후 국민 성금을 특별위로금으로 지급받은 것 외에 다른 조치가 없었습니다.
이후 16년 만인 지난 2019년에 대구시가 부상자 의료 지원을 위한 조례를 마련했었습니다.
하지만 이게 5년 동안이라 내년이면 시행이 끝나고 나아진 건 없습니다.
부상자대책위는 트라우마와 같은 심리 치료와 의료지원, 부상자들이 참사 이후 어떤 상황에 놓였는지 정확한 실태조사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동우 부상자 가족대책위 위원장의 말 들어보시겠습니다.
◀이동우 지하철 참사 부상자 가족대책위 이사▶
"시가 하는 과정을 보면 믿을 곳이 한 군데도 없단 말입니다. 공무원 바뀔 때마다 달라지고 시장 바뀔 때마다 달라지고 하기 때문에 이제는 제대로 약속을 받고 부상자들이 도움을, 힘이 될 수 있게끔 해야 하고…"
전문가들은 대형 재난 후 부상자들의 심리 안정과 사회 복귀를 도울 수 있도록 지속적인 관심과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지하철 참사 당시 부상자들을 상담한 최남희 서울내러티브연구소장의 말 들어보시겠습니다.
◀최남희 소장▶
"트라우마 이후, 직후에 증상이 나타나고 이런 게 아니라 시간을 두고 나타나는 경우도 있고 다양하게 나타나는 경우도 있단 말이죠. 심리적인 것뿐만 아니라 신체적인 것들도. 그렇기 때문에 팔로업(추적)을 해야 하는 거고"
단순 방화가 아닌 총체적인 부실 대응, 안전망 오류가 부른 사회적 참사.
생존 부상자들의 상처를 치유할 지원과 후속 조치는 20년이 지난 지금도 풀지 못한 숙제로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