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부터 수돗물에서 악취가 나요"···페놀 함유된 대구 수돗물
1991년 3월 16일 토요일 대구시 수도사업본부로 전화 한 통이 걸려 옵니다. 며칠 전부터 수돗물에서 악취가 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전화를 끊으니 또 전화벨이 울립니다. 이후 수백 통의 전화가 걸려 옵니다.
다음 날인 3월 17일, 대구의 한 언론사 당직 기자가 출근을 하자마자 시민들의 전화가 빗발칩니다. 수돗물에서 악취가 줄어들기는커녕 더 심각해졌기 때문입니다. 놀란 기자가 바로 대구시 상수도사업본부로 달려갔고, 대구시가 원수 수질 검사를 해 보니 수돗물에 페놀이 함유되어 있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 자리에 있던 기자가 보고 기사를 송고했고 많은 시민이 깜짝 놀랐습니다.
맹독성 물질 페놀···세계적으로도 최악의 환경 사건 중 하나
페놀은 맹독성 물질입니다. 단순한 악취 문제가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독극물은 통상 맹독성, 고독성, 보통독성, 저독성으로 나누는데요, 페놀은 최고 등급의 독극물이라서 물에 1ppm만 있어도, 그러니까 0.0001%만 있어도 중독을 일으켜서 간이나 신장을 손상하고 중추신경에 장애가 생기는 물질입니다. 수돗물에서 이런 독극물이 흘러나왔던 사건이니까 국내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최악의 환경 사건 중의 하나였습니다.
공장에나 있어야 할 페놀이 왜 수돗물에 들어 있었던 걸까요? 구미에 있는 한 공장에서 시작됐는데요, 1991년 3월 14일 경북 구미시 구미공단에 위치한 두산전자의 페놀 원액 저장 탱크에서 페놀수지 생산라인으로 연결되는 파이프가 파열되면서 무려 30톤의 페놀 원액이 유출된 겁니다.
이 페놀은 전자회로 기판에 사용되는 원료였는데요, 당시 유출된 페놀은 옥계천을 거쳐 대구 상수원인 다사 취수장으로 흘러 들어갔고, 페놀에 오염된 수돗물이 각 가정으로 빠르게 퍼졌습니다.
당시 대구 인구 71%가 페놀 오염 수돗물에 노출···거의 이틀 동안 대구시 상수도본부는 파악도 못 해
당시 다사 취수장을 상수도로 하는 곳은 대구 남구, 달서구 전 지역과 중구, 동구, 북구, 수성구 일부까지 약 42만 세대, 162만 명이었습니다. 당시 대구 인구의 71%가 페놀로 오염된 수돗물에 노출된 겁니다. 그렇다면 정수장 직원들은 페놀이 각 가정으로 흘러가는 동안 이 사실을 몰랐던 걸까요?
이재용 전 환경부 장관 "시민들의 신고가 3월 16일에 있었는데요, 페놀 원액은 이보다 앞선 14일 22시부터 15일 6시까지 약 8시간 새어 나와 낙동강으로 유입됐습니다. 그러니까 다시 가정집까지 다다르는 동안 무려 이틀 가까운 시간이 있었음에도 대구시 상수도본부에서는 그 사실조차 발견하지 못했는데요, 시민들의 신고 전화를 받고 그제야 수돗물에 악취가 난다는 걸 알게 된 거죠. 그런데 16일이 토요일이었어요. 시민들의 수돗물 악취 전화가 오던 3월 16일 오후 2시 30분경에는 당시 다사 수원지의 수질 검사 요원 7명이 모두 퇴근하고 기사 자격증이 없는 공채 3개월의 9급 직원 한 명만 있었어요. 전문 수질 검사 요원이 상주하지 않았던 게 문제가 되었죠. 게다가 알아보니까 야간, 주말, 공휴일에는 수질 검사를 하지 않았더라고요. 평일에도 상수원 수원지의 수질 검사가 형식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으니 발견이 쉽지 않았던 거죠. 당시 보건사회부령 제744호 제5조에 음용수의 수질 기준에 대한 규칙이 있는데, 매일 1회 이상 검사해야 할 수질 항목조차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게 밝혀졌었죠"
점점 더 심해진 수돗물 악취···이번에는 염소 투입이 원인
하지만 악취는 점점 더 심해졌습니다. 수돗물에서 악취가 난다고 시민들은 자꾸 항의하고 악취는 계속 나는데 원인을 모르겠으니 소독을 한다고 수돗물에 염소를 다량 투입했는데, 그것 때문에 악취가 수백 배 더 심해졌습니다.
신재호 경북대 농업생명과학대 응용생명과학부 교수 "염소는 정수에 쓰는 가장 안전하고 강력한 살균제입니다. 당시에 악취 신고가 접수되니 미생물 부패가 원인일 거라고 생각해서 염소를 투입했는데요, 문제는 염소와 페놀이 결합하면 염소화페놀이 되면서 악취가 약 5백 배 증가합니다. 당시 저도 군대 가기 직전이었는데, 물을 끓여도 냄새가 안 없어졌습니다. 페놀이나 염소화페놀은 끓는점이 181℃인데요, 175~220℃ 정도 끓이면 오히려 농축됩니다"
부산까지 흘러 내려간 낙동강 페놀···"문제없다"던 대구시와 환경처
수돗물에 유해 물질이 늘어나는 동안 물은 또 자꾸 아래로 흘러갔습니다. 페놀 물은 마산과 창원을 거쳐 부산까지 흘러갔는데요, 3월 18일부터 칠서 취수장에 유입되어 마산, 창원 지역 수돗물을 오염시키고, 3월 19일에는 부산 시민들의 상수원인 경남 물금 취수장에서까지 페놀이 검출되기 시작합니다. 그야말로 대규모 수돗물 페놀 오염 사태가 발생한 건데, 창원과 마산에서도 수돗물을 먹은 사람들이 설사를 했다는 사례들이 쏟아졌고, 7년 동안 임신을 못 하다가 2년 약 먹고 겨우 아이를 가졌는데 유산이 됐다는 피해가 접수되기도 했습니다.
오찬호 사회학자 "대구에서 빨리 대책을 마련하거나 다른 지역의 취·정수장에 알려서 대비를 하게 해야 했을 텐데요, 대구시는 페놀 유출을 확인한 뒤 대책 마련이 아니라 다른 행보를 보였습니다. 사건 발생 이후 대구시는 3월 17일 수질 분석으로 통해 수돗물에 페놀이 함유되어 있음을 최종적으로 확인했습니다. 대구시는 3시 30분부터 6시 50분까지 신천의 소화전 배수전 대형 밸브를 열어 배출 작업을 확대하고 안동댐 방류량을 초당 30톤에서 50톤으로 늘려줄 것을 요청하면서 언론매체를 통해 이런 발표를 합니다. 페놀 농도가 음용수 기준치 이하이므로 냄새는 나지만 인체에 무해하다"
이재용 전 환경부 장관 "당시 상수도 사업본부장은 물론 환경처 장관도 '클로로페놀은 인체에 아무런 영향이 없다'고 했을 뿐 아니라 대구시는 일부 전문가를 동원하면서까지 일관되게 사건을 조작하려 했다는 의심을 받았습니다. 대구시에 의하면 다사 수원지 페놀 오염 농도 측정치가 0.003ppm으로 당시 음용시 기준치 0.005ppm보다 낮다라는 건데, 당시 대구시민이 호소한 증상들이 두통, 복통, 붉은 반점, 두드러기, 무력증 등이었습니다. 이러한 신체적 증상이나 악취의 정도로 봤을 때 페놀 및 크로로페놀이 최소한 3ppm 이상이 아니었을까 하는 정황상 추측이 가능합니다"
신재호 경북대 농업생명과학대 응용생명과학부 교수 "장관님 말씀에 덧붙이자면, 민감한 사람은 대략 0.04ppm의 페놀 농도부터 냄새를 감지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시민들이 냄새가 난다고 신고까지 하려면 적어도 신고 당시의 수돗물 페놀 농도는 0.04ppm보다는 높은 농도였던 것이죠"
또한 당시 대구지방환경청이 상시 단속반 일일 보고서를 허위로 기재한 사실도 드러났습니다. 이번 페놀 사태가 일어나기 전인 1990년부터 두산전자 구미공장의 페놀 폐수 소각로가 고장 나 방치되어 작동하지 않았고, 공장 앞마당에는 폐수 드럼통이 야적되어 심한 악취가 풍기고 있었는데요, 아무런 위반 사항이 없었던 것으로 일일 보고서를 작성했습니다. 실제 현장 점검을 한 건지, 안 한 건지, 하고도 모른 척한 건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당시 환경을 바라보는 시대적 시선을 알 수 있습니다.
* '시민의 품격', 대구MBC 매주 목요일 밤 9시 방송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