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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형제 경영권 분쟁' 화성산업, 최후의 승자는?


 대구백화점과 함께 대구·경북 백화점 업계의 양대 산맥이던 동아백화점이 2010년 3월 8일 이랜드 그룹에 팔린다는 발표가 나오자 지역민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38년 전통의 동아백화점은 지역민과 애환을 함께 한 향토 백화점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1972년 9월 동성로에서 문을 연 동아백화점은 대구의 명소였습니다. 1990년대까지 주말이면 동아백화점은 인파로 북적였습니다. 지역민들의 추억과 함께 한 기업으로 동아백화점은 동백으로 불렸고 이곳에서 물건을 사보지 않은 사람이 드물 정도였습니다. 

화성산업이 동아백화점을 인수한 기막힌 사연

 동아백화점은 사실 의도치 않게 화성산업의 품에 안겼습니다. 동아백화점 신축을 맡았던 화성산업이 공사 대금을 받지 못해 어쩔 수 없이 백화점을 인수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백화점을 인수하는 바람에 화성산업은 기존 건설 부문 이외에 유통 부문을 두게 되었고 이 덕분에 기업은 더욱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창업주인 고 이윤석 회장은 1983년 장자인 이인중 씨에게 유통 부문을 경영하게 했습니다. 둘째 아들인 이홍중 씨는 부사장을 거쳐 1992년 건설 부문 사장을 맡았습니다. 이인중 씨는 고려대학교 상대를 졸업하고 한국은행에 다녔고 이홍중 씨는 서울대학교 토목학과를 졸업하고 현대건설에 근무한 경력이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화성산업은 두 형제에 의해 유통과 건설, 양 바퀴로 굴러가는 수레처럼 튼튼한 구조를 만들어냈습니다. 고 이윤석 명예회장은 평소 두 아들에게 화합하며 경영해야 한다는 말을 자주 했고 그런 의미에서 회사 이름도 화성(和成)이라고 지었다고 합니다.

 1990년대 동아백화점 본점은 전성기를 누렸습니다. 1990년대 남성 매장 한 층에서만 매출이 수억 원이 나올 정도로 현재 가치로 산출하면 웬만한 백화점 점포 하루 전체 매출과 맞먹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이런 유통 부문의 강세 덕분에 1997년 외환위기로 휘청거렸던 화성산업이 화의(워크아웃)를 통해 거듭 태어나는 데 일등 공신 역할을 했습니다. 유통 부문 매출은 대부분 현금이기 때문에 돈줄이 막혀서 생긴 금융위기 당시 화성산업에게는 생명줄 같은 존재였습니다. 이런 화성산업의 유통부문이 2010년 5월 이랜드 그룹에게 2,680억 원에 팔린 것입니다. 대구와 구미의 백화점 5곳과 대구·포항의 대형마트 2곳이 매각 대상이었습니다.

화성산업이 유통 부문을 매각한 이유

 화성산업 이인중 명예회장은 당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국내 유통시장이 거대 유통그룹 체제로 재편되고 있는데 지역만의 사업으로 유통업의 미래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회사는 선택과 집중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라고 밝혔습니다. 2,680억 원의 매각대금은 헐값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서는 “매각 과정에서도 가격 부분에 진통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양측이 최소한 만족할 수 있는 수준으로 결정되었습니다. 우리 회사가 가장 관심을 가진 부분은 고용 안정과 협력업체 계약 승계 부분이었습니다. 여기에 초점을 맞췄고 가격은 그다음 문제였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나 이인중 명예회장이 말하지 않은 매각의 진짜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미국발 전 세계 금융위기로 인해 대규모 아파트 미분양이 발생하면서 화성산업의 건설 부분에서 생긴 손실을 메울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프로젝트 파이낸싱 대출(PF) 사업장에서 대규모 부실이 나왔고 미청구공사와 매출채권, 미분양 주택관리비 등이 급격히 늘었습니다. 화성산업은 2010년 영업 손실 222억 원을 기록하며 적자 전환했습니다.

 화성산업의 사장급 한 인사는 “채권단에서도 은행에서 돈을 안 빌려주는 거야 부채비율이 높고 하니까, 그러다 보니까 방법이 없잖아요? 그래서 유통 부분을 판 겁니다. 그래도 유통은 적자는 아니었거든요. 장사가 조금 되고 했으니까요. 빚을 청산하고 남은 100~200억 원으로 화성산업이 다시 살아났죠.”라고 말했습니다.

 화성산업은 유통부문을 매각한 뒤 화성개발과 동진건설 등 3개 계열사 체제로 새 출발을 했습니다. 매각대금 2,680억 원으로 차입금을 상환한 뒤 화성산업은 부채비율이 114%로 낮아졌고 현금 유동성을 나타내는 유동 비율은 220% 수준으로 개선됐습니다. 2012년 영업이익 88억 원으로 흑자 전환했고 2012년 부채 비율도 80.78%로 줄었습니다.


통 부문 매각이 회사를 살렸지만, '형제의 난' 불씨가 돼

 그러나 화성산업의 유통 부문 매각은 회사는 살렸지만 이인중, 이홍중 형제간의 갈등의 불씨가 되고 말았습니다. 화성산업의 건설 부문은 동생인 이홍중 대표가 지배하며 30년 이상 경영해 왔습니다. 직원들은 물론 임원들을 대부분 장악하고 있습니다. 화성개발과 동진건설 등 계열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유통 부분을 책임졌던 이인중 명예회장은 아들인 이종원 씨를 통해 화성산업 경영에 참여하려고 했지만 살아남은 건설 부문의 텃세가 심해 쉽지 않았습니다.

 1998년 입사한 이종원 씨는 상품본부장과 영업본부장, 기획본부장을 역임했지만 유통 부문이 팔린 상태에서 회사 내에서 뿌리를 내리기는 어려웠습니다. 전무이사를 거쳐 현재 이홍중 대표이사와 함께 화성산업의 공동 대표이사가 된 이종원 씨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이인중 명예회장님이 화성개발 사장에게 전화를 걸어 경영과 관련해 물어보려고 해도 전화도 받지 않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종원 대표와 매우 가까운 한 인사는 “이종원 씨가 회사 일이 힘들어 사임할 의향도 보였지만 제가 적극적으로 말렸습니다. 죽이 되던 밥이 되던 화성산업에서 뼈를 묻으라고 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화성산업의 1대 주주였던 이인중 명예회장 측은 회사 일은 모두 이홍중 대표이사가 좌지우지했고 자신들은 관여할 수 없는 구조였다고 말했습니다. 두 형제간 갈등은 2010년 화성산업의 유통 부문 매각 이후부터 이어져오고 있었던 셈입니다.

'형제의 난' 뇌관은 화성개발의 화성산업 지분 매각

 오랫동안 이어져 오던 양측의 갈등이 폭발한 것은 2021년 12월 28일 이홍중 대표의 최측근이 대표로 있는 화성개발이 동진건설에게 화성산업 지분 9.27%를 매각한 것입니다. 이 지분은 이인중 명예회장과 이홍중 대표이사가 약 10년 전 경영권 방어를 위해 화성개발이 사들인 것입니다. 화성산업이 화성개발의 지분 31.69%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화성개발이 이때 매입한 지분 9.27%는 상호주가 돼 상법 제369조 제3항에 의해 의결권을 제한받습니다. 이처럼 상호주의 의결권을 제한하는 것은 상호주를 통해 출자 없는 자가 의결권 행사를 함으로써 주주총회 결의와 회사의 지배구조가 왜곡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입니다.

 하지만 화성개발이 동진건설에게 112만 주를 팔면서 이 지분은 의결권을 갖게 되었고 동진건설은 화성산업의 1대 주주가 되었습니다. 동진건설은 이홍중 대표이사가 실소유주로 알려져 있고 실제로 금융감독원의 전자공시에 특별 관계자로 등재되어 있습니다. 이홍중 대표이사는 화성산업 지분 중 5.2%을 소유하고 있는데 동진건설과 화성개발, 동생인 이익중 씨 등 특별관계자를 포함하면 모두 21.4%의 지분을 가지게 됩니다. 이홍중 대표이사 측은 기존 11.44%에서 동진건설이 가진 주식 9.96%까지 합하면서 이인중 명예회장 측의 지분율보다 높아졌습니다. 이인중 명예회장 측은 이 명예회장 지분 9.34%와 화성 장학문화재단 3.16% 등 19.94%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지분 다툼이 검찰 고소전으로 비화

 이인중 명예회장은 이 주식 거래가 경영권 프리미엄을 고려하지 않은 채 헐값으로 매각해 회사에 피해를 끼친 배임 행위라면서 2022년 2월 15일 이홍중 대표이사와 관계자 대표 2명을 검찰에 고소했습니다. 이홍중 대표이사 측은 이종원 대표 이사를(이인중 명예회장 아들) 8억 6천만 원에 대한 횡령과 배임 혐의로 역시 맞고소했습니다. 이인중 명예회장은 지난 3월 10일 대구지방법원에 동진건설 지분의 의결권 행사를 금지해 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냈습니다. 지분 5%가 넘는 대규모 주식 거래는 대량보유 보고 제도에 의해 증권거래소에 신고하도록 돼 있는데 이를 무시했다는 것이 이유입니다. 이종원 대표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이홍중 대표 측은 이게 공동 보유 목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이고 주식 거래가 있었지만 지분 변동은 없었다고 주장을 하고 있고 보유 목적도 동일하다고 이야기를 하지만 말이 안 됩니다.”라고 밝혔습니다.

 이홍중 대표는 2022년 2월 16일 이사회를 소집하고 주주총회 의안 중 이사회가 결정하는 본인의 사내이사 후보 안을 상정했습니다. 그러나 해당 의안은 폐기되었고 주주 제안으로 자신을 포함한 사내이사 후보 2명과 사외이사 후보 2명을 상정하여 주주총회 의안으로 가결했습니다. 그러자 이종원 대표(이인중 명예회장 아들)는 “이홍중 대표 측이 2월 16일 이사회 때 주주 제안을 넣은 그 시점 기준으로 해서 이사회를 장악하려고 하는 모습을 보인 것은 더 이상 공동의 목적을 가진 것이 아니고 화성개발에서 동진건설로 지분이 넘어간 것은 신규로 봐야 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홍중 대표는 언론과 인터뷰에서 “동진건설과 화성산업 주식 거래는 화성개발의 주택사업을 위한 택지 매입 입찰 참여를 위한 자금 확보 차원에서 이뤄진 정상 거래 이고 법률 전문가의 자문을 얻어 내린 결정”이라고 밝혔습니다. “애초 형제 간 공동 경영하라는 선대 회장의 유지에 따라 이번 이사회에서 임기 만료 이후 연임을 하려고 했으나 이인중 명예회장과 이종원 대표 측에서 이를 저지하면서 회장 연임 안건 등 주주 제안을 한 것이며 회장직을 유지하고 그간 이어 온 공동 경영 체제만 지켜지고 합의가 이뤄진다면 경영권 자체엔 별다른 욕심이 없습니다.”라고 덧붙였습니다.

경영권 승부는 3월 31일 주총에서 판가름

 경영권의 향방을 결정짓는 주주총회는 3월 31일에 개최됩니다. 양측의 지분율은 20% 안팎으로 비슷한 상황인데  특별관계인 이외의 약 60%에 이르는 일반 주주와 외국인 주주의 마음을 누가 잡느냐에 달려있습니다. 현재로서는 주주총회 회의를 주재하는 의장을 맡은 이종원 대표(이인중 명예회장 아들)측이 유리한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습니다. 이종원 대표도 기자와의 통화에서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판단이 됩니다. 왜냐하면 1,200만 주 중에 특수관계인은 500만 주 밖에 안 됩니다. 나머지는 일반 주주와 외국인 주주인데 이분들이 어디에 위임할 것인가의 싸움이나 마찬가지거든요. 저희가 어느 정도 확보했기 때문에 이런 자신감의 표출이라고 좀 이해해 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법원 판단이 승부의 관건

 여기에 또 하나의 주요한 변수가 더 있습니다. 이홍중 사장 측의 ‘5% 룰 위반’ 여부에 대한 법원의 판단입니다. 2022년 3월 22일 이인중 명예회장 측이 신청한 ‘의결권 행사 금지 가처분’에 대한 첫 심리가 열렸습니다. '5% 룰'은 기업이 외부의 적대적 인수합병 시도를 방어할 수 있도록 1991년 12월 도입된 제도입니다. 어느 누구라도 상장사 지분의 5%를 신규로 가지거나 5% 이상을 보유한 자의 지분율이 1% 이상 변동하는 경우 변동일로부터 5일 내에 공시해야 합니다. 이를 위반하게 되면 해당 지분에 대해 일정 기간 의결권 행사를 제한할 수 있습니다. 이인중 명예회장이 의결권 제한을 요구한 지분은 동진건설이 보유한 전체 주식 124만 주 중 92만 8,827주입니다. 만약 법원에서 이 명예회장의 주장을 받아들인다면 승부는 끝이 납니다. 대구지법은 화성산업 주주총회가 예정된 31일 이전인 29일까지는 최종 결정을 내리겠다고 밝혔습니다.

 이홍중 대표이사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명예회장님께서 이제 대표이사를 그만뒀으면 좋겠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러면 이제까지 형제 공동 경영이라는 취지에 어긋나는 것이 아니냐고 제가 말씀을 드렸고 그래서 이 사태가 시작된 것 같고 저는 우리 회사는 형제 공동 경영으로 원만하게 잘 화합을 해서 그렇게 하려고 마지막 순간까지 노력을 할 생각입니다.” 이 대표이사는 또 “화성개발과 동진건설은 제가 대표 이사도 아니고 제가 지배하는 회사가 아닙니다. 그렇게 알려진 것은 사실과 다릅니다. 제가 가까운 시일 내에 스스로 물러나고 조카인 이종원 사장에게 승계를 해주겠다고 양보 안을 내놓았죠. 명예회장님도 처음에는 좋다고 하셨는데 이제는 번복을 하셨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에 대해 이종원 대표이사(이인중 명예회장 아들)는 “명예회장님은 원상회복만 되면 이홍중 대표이사의 3년 연임을 보장하겠다고 말씀까지 하셨습니다. 하지만 이 합의가 실질적으로 상대가 깨뜨렸을 때 우리가 방어할 수 있는 게 없다고 제가 설득을 했습니다.”라며 기자에게 합의가 깨어진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경영권 다툼에 옛 추억이 된 형제의 우애

 화성산업은 1958년 창업해서 60여년 간 대구·경북의 대표적인 향토기업으로 자리매김해 왔습니다. 그동안 형제 공동 경영이라는 기치 아래 많은 성과를 거둬왔습니다. 이런 형제 간의 우애로 지역 사회에서는 좋은 귀감이라며 칭송을 받아오기도 했습니다. 두 형제의 우애를 상징하는 결정적인 사건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홍중 대표이사 납치 사건입니다. 당시 신문 기사에 따르면 1995년 1월 27일 오전 7시 20분쯤 대구시 수성구 지산동의 한 테니스장 입구에서 이홍중 대표이사가 20대 남성 3명에게 납치를 당했습니다. 납치범들은 테니스를 치고 나오던 이 대표이사를 납치해 미리 준비한 봉고차에 태운 후 이 대표이사의 부인에게 전화를 걸어 10억 원을 요구했습니다.

 이들은 납치한 장소에서 5km 떨어진 수성구 황금2동의 한 중국음식점 앞에서 이 대표이사의 손발을 묶고 눈을 가린 뒤 다른 승용차의 트렁크에 가뒀습니다. 그리고는 10시간 이상 대구 시내를 돌아다니면서 다섯 차례나 전화 협박을 했습니다. 공포에 휩싸인 가족들은 경찰 신고를 결정했고 이인중 명예회장의 역할이 컸다고 합니다. 이 명예회장은 동생을 구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습니다. 그리고 경찰은 납치범들을 체포했고 이홍중 대표는 천신만고 끝에 악몽의 시간에서 벗어났습니다.

 형제는 이 일 이후로 더욱 가까워졌습니다. 회사가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졌을 때는 함께 노력해 회사를 되살려 다시 반석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뿌려진 형제 간의 불화의 씨앗은 세월이 흐르면서 불신으로 커졌고 결국 수습할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한때의 아름다웠던 우정도 지금은 옛 이야기가 되어버렸습니다.

 2022년 3월 31일 주주총회에서 화성산업의 경영권의 향방은 어떤 식으로든 결론이 날 것 같습니다. 누가 승자가 되냐에 따라 회사는 많은 변화를 겪을 것입니다. 그러나 동백이라는 애칭으로 화성산업을 불렀던 지역민들은 형제 경영권 분쟁을 지켜보면서 씁쓸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심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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