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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보니] 밑 빠진 해수욕장에 모래 붓기? | 빅벙커


'부산'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 중의 하나가 아무래도 해수욕장일 것입니다. 부산은 그야말로 '바다 도시'라고 할 수 있는데요, 그런데 이 해수욕장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고 합니다. 정확하게는 해수욕장의 모래가 사라지고 있는 건데요, 모래가 사라지는 것을 막기 위해 매년 막대한 돈으로 모래를 사 붓고 있습니다. 2022년 전국에서 해수욕장 침식이 가장 심각한 곳이 부산으로 나타났는데요, '우려'와 '심각' 단계에 있는 연안 지역의 비율을 나타내는 침식 우심률이 부산은 88.9%로 나타났습니다.

산불이 나서 산에 나무가 없어지면 다시 나무를 심듯 모래가 빠져나간 해변에 다른 데서 모래를 가지고 와서 인위적으로 모래를 넣어서 유지하거나 넓히는 걸 '양빈'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부산 해수욕장 모래를 채우기 위한 양빈 사업에는 돈이 얼마나 들까요?

지난 10년 동안 부산 해수욕장 7곳에 넣은 모래는 총 71만 4,398㎡입니다. 25톤 트럭으로 약 4만 대가 투입된 양입니다. 25톤 덤프트럭 길이가 약 13m이니, 한 줄로 세우면 514km, 부산에서 평양까지 25톤 트럭이 쫙 서 있는 거라고 보면 됩니다.

부산 해수욕장에 넣은 모래 중에서 82.5%가 해운대에 들어갔습니다. 송도해수욕장, 일광·임랑해수욕장, 광안리해수욕장, 송정해수욕장 순으로 모래가 투입됐고, 다대포해수욕장에는 한 번도 모래를 넣은 적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렇게 부산의 해수욕장에 10년 동안 모래를 넣기 위해 쓴 예산은 162억 원입니다.


부산 해수욕장 침식, 전국에서 가장 '심각'
그렇다면 모래는 왜 이렇게 사라지는 걸까요? 파도나 조류, 바람, 해수면 상승 등 다양한 이유로 해안이 깎이거나 모래가 사라집니다. 해양수산부는 매년 전국 해안을 대상으로 어느 곳이 얼마나 깎였는지, 얼마나 모래가 사라졌는지 실태조사를 하고 있습니다. 부산은 모두 9곳을 대상으로 조사하고 있는데, 2022년 실태조사 결과에서 부산 해안의 침식 정도가 전국에서 가장 심각하다고 나온 겁니다.

윤성순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선임연구위원 "실태조사를 할 때 우리가 학점을 A, B, 이렇게 매기듯이 해안마다 침식 등급을 매기거든요? A는 '양호', B는 '보통', C는 '우려', 그리고 D는 '심각'인데요, 전체 해수욕장 중에서 C 등급과 D 등급이 차지하는 비율을 계산한 게 '침식 우심률'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부산은 얼마나 심각한 수준일까요? 이번 조사는 부산 해수욕장 9곳을 대상으로 했는데, 그중 8곳이 C, D 등급으로 89%를 기록해 전국 1위였습니다. 2위인 울산이 60%, 3위인 제주가 57.1%였고, 나머지 광역시·도는 50% 이하를 기록하면서 평균은 39.4%로 집계됐습니다. 그러니까 부산의 침식 우심률은 전국 평균보다 두 배 이상 높은 겁니다.

부산 해수욕장의 성적표를 자세히 살펴보면 해운대, 광안리, 송도, 임랑 등 7곳이 '우려'를 의미하는 C 등급을 받았고, 특히 송정해수욕장은 D 등급인 '심각'하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나마 유일하게 일광해수욕장이 '보통'인 B 등급을 받았는데, 부산 대부분 해변이 사라질 위험에 노출돼 있고 그만큼 각별한 관리가 필요하다는 진단서를 받은 거나 다름없습니다.

문제는 이런 일이 갑자기 발생한 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최근 10년의 평가 결과를 살펴봤더니 A 등급을 받은 곳은 2015년에 해운대, 송도해수욕장 이렇게 단 두 곳뿐입니다. 그러니까 10년 동안 꾸준히 성적표가 안 좋았다는 이야기입니다. 10년 동안 모래를 162억 원어치나 넣었는데도 왜 이렇게 성적표가 안 좋은 걸까요?

반선호 부산시의원 "지난 10년 동안 A 등급을 받은 게 2015년 해운대와 송도해수욕장 단 두 곳이었는데요, 이때가 두 해수욕장에 모래를 대규모로 넣었을 때예요. 이렇게 모래를 많이 넣으니까 당시에는 A 등급을 받았는데요, 그런데 그 성적이 오래 가지 못했고 점점 안 좋아졌어요"

양빈, 그러니까 모래를 넣는 게 효과가 없는 건 아닙니다. 실제 해운대 해수욕장의 경우 모래를 넣고 나서 축구장 8개 면적 정도가 늘었다고 합니다. 해운대처럼 대규모로 모래를 넣지 않은 송정해수욕장은 10년 전과 비교해 보면 축구장 3개 면적의 백사장이 사라졌습니다. 그러니까 일단 해수욕장 면적이 줄어드니까 모래를 사서 넣는, 일종의 응급조치를 하는 셈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해수욕장 모래, 왜 사라질까?
모래가 사라지는 원인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볼까요? 크게 자연적인 원인과 인위적인 원인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자연적인 원인은 기후변화로 해수면이 올라가면서 바다가 육지를 '먹는 것'입니다. 경사도 1:10의 해안을 가정하면 해수면이 10cm 상승하면 1m의 해변이 물에 잠기게 됩니다. 그러면 수심이 깊어져서 파랑의 강도도 세지기 때문에 침식이 더 심해지게 됩니다.

인위적인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죠. 해운대해수욕장의 경우를 자세히 살펴볼까요? 지금 해운대해수욕장을 가 보면 동백섬 뒤쪽으로 '춘천천'이라는 강이 흐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원래 이 하천은 동백섬 뒤쪽이 아니라 해운대 해수욕장 한가운데로 지나갔다고 합니다. 그런데 해수욕장 주변을 개발하면서 해수욕장 가운데를 지나갔던 하천의 방향을 지금처럼 동백섬 뒤로 바꿔버린 겁니다.

윤성순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선임연구위원 "일반적으로 하천 상류에서 자연적으로 흘러 내려온 모래가 강줄기를 따라 이동하다가 해변에 쌓이게 돼요. 그러면 해변에 있던 모래가 파도에 깎여나가더라도 하천에서 내려온 모래가 다시 쌓이니까 백사장이 유지가 되는 건데, 해운대 해수욕장처럼 하천의 흐름이 바뀌어 버리면 모래가 들어올 곳이 없어져 버리는 거죠"

결국 들어오는 모래는 없는데 계속 모래는 나가니까 백사장이 줄어들 수밖에 없게 되는 겁니다. 결국 지금 해수욕장 크기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앞으로도 계속 돈을 써서 모래를 넣어야 할 수밖에 없는 걸까요?

반선호 부산시의원 "만약에 해수욕장이 없어지면 부산에는 엄청난 타격이 오죠. 사실 부산의 가장 큰 자랑거리가 해수욕장이잖아요? 2022년 부산 해수욕장 방문객이 약 2,100만 명이에요. 부산시민의 7배에 가까운 규모인데, 만약 해수욕장 백사장이 줄어 방문객도 줄어든다면 얼마나 심각한 경제적 손실로 이어지겠어요? 그러니까 지자체, 국가 차원에서 관리해야 하는 거죠"

실제 한국해양수산개발원에서 2009년에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해운대 해수욕장의 경우 백사장 폭이 10% 감소하면 경제적인 편익이 1인당 95,000원에서 74,500원으로 22%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2022년 해운대 해수욕장 방문객이 881만 명이니까, 만약 해운대 해수욕장 백사장 폭이 10% 감소할 경우 1,807억 원 정도 경제적 손실이 발생한다고 계산할 수 있습니다.


모래 부어 겨우 살려낸 송도해수욕장···사라진 '원조' 다대포해수욕장
해수욕장이 사라진다는 게 먼 미래의 일일까요? 부산이 이미 경험했던 일이기도 합니다. 부산 송도해수욕장은 1960년대까지만 해도 전국에서 가장 많은 관광객이 몰리던 곳이었습니다. 신혼여행지로도 유명했죠. 그런데 1980년대 후반에 태풍 때문에 백사장 면적이 크게 줄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해수욕장 개발은 계속하는데 모래가 들어올 곳은 없으니 모래가 계속 빠져나가면서 자갈밭 비슷하게 되어버렸습니다. 해수욕장으로서 기능을 잃으면서 사실상 없어진 거나 다름없어졌습니다.

모래가 없어지자 어떤 대책을 세웠을까요? 바로 모래를 붓는 것이었습니다. 송도해수욕장을 되살리기 위해서 2010년부터 2015년까지 약 299억 원이 투입됐고, 그 중 29억은 모래를 붓는 데 썼습니다. 이렇게 모래를 부으면서 백사장이 넓어지니까 송도해수욕장을 찾는 관광객은 두 배 정도 증가한 것으로 집계됩니다. 송도해수욕장은 2021년 '연안 정비사업 우수사례 경진대회 최우수 지역'에도 선정됐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짚어야 할 게 있습니다. 2021년 해양수산부가 실태조사를 했는데 송도해수욕장은 '우려' 등급인 C 등급을 받았습니다. 모래를 넣고 몇 년간은 A, B 등급으로 잘 받다가 시간이 지나니까 다시 내려간 겁니다. 인위적으로 다른 곳의 모래를 가지고 와서 붓는 게 아예 효과가 없는 건 아니지만 자연적으로 모래가 유입되지 않는 한 단기적인 효과밖에 얻지 못한다는 의미입니다.

이에 대한 대책은 있을까요? 부산 서구청은 "해수욕장 침식은 자연적인 현상이기 때문에 서구청에서 답변할 수 있는 바가 없다. 필요하다면 용역을 발주해서 전문가 의견을 검토해 볼 수는 있으나 현재 상황에서 서구청 자체적으로 마련한 대책은 없다"는 입장입니다.

송도해수욕장은 위기를 맞았지만 그래도 모래를 부어서 백사장을 만들었는데, 지금은 아예 사라진 해수욕장도 있습니다. 바로 다대포 동측이라는 곳인데요, 바로 '다대포해수욕장' 바로 옆에 있었습니다. 지금은 산책로가 조성돼 있어서 그 흔적을 거의 찾아볼 수 없지만 사실 이곳이 다대포해수욕장 원조였던 겁니다.

윤성순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선임연구위원 "다대포 동측은 주변이 난개발되면서 점차 모래가 빠져나가게 됐어요. 그래서 자갈밭만 남게 되면서 해수욕장 기능을 잃게 된 거죠. 그러면서 끝내 1995년부터 해수욕장이 폐쇄가 됐는데요, 실제 당시 위성을 보면 그전과 달리 백사장이 거의 사라진 걸 볼 수 있어요"

해양수산부는 다대포 동측을 복원하기 위해 2015년부터 약 285억 원을 들여서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모래만 붓는 게 아니고 땅이 덜 깎이게, 그리고 모래가 빠져나가지 않게 하기 위해 여러 시설물을 만들고 있습니다. 1단계로 해안이 깎여나가지 않도록 호안을 정비하고, 2단계로 25톤 트럭 약 3,500대 분량의 모래를 넣어서 2024년에 해운대해수욕장 규모만큼 복원하는 게 목표라고 합니다.

해수욕장 살리기 위한 모래는 어디서 구하나?
모래가 사라진 백사장에 모래를 다시 넣을 때 그 모래가 유지가 될 것인가도 짚어봐야 하겠지만, 이 모래를 어디서 구하는지도 중요한 문제입니다. 실제 2019년 부산 해운대구가 해운대, 송정해수욕장에 모래를 넣으려고 했지만 당시 모래 파동이 일어나서 구하지 못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반선호 부산시의원 "해수욕장에는 아무 모래를 넣는 게 아니라 비슷한 입자, 그리고 오염되지 않은 모래를 넣어야 해요. 부산 해수욕장 모래와 가장 비슷한 게 인천 옹진군 모래인데, 이것도 그냥 가져올 수 있는 게 아니라 모래 채취 허가를 받고 돈을 내고 가져오거든요? 그런데 당시 어민들의 반대로 모래 채취가 중단되면서 아예 해수욕장에 모래를 넣지 못했던 거죠"

우지영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 "해수욕장에 넣는 모래가 아무 모래나 되는 게 아니거든요? 지금 해수욕장 모래의 크기나 색이 비슷해야 해요. 그래서 서해 배타적 경제수역과 인천 옹진군, 이렇게 두 곳에서만 채취를 하고 있는데요, 여기서 채취한 모래가 모두 해수욕장에 가는 게 아니에요. 대부분 건축용으로 쓰이기 때문에 부동산 경기가 좋으면 건설 붐이 부니까 그쪽으로 모래가 몰리는 거죠. 그래서 해수욕장에 넣을 모래를 수급하는 게 어려워지기도 해요"

백사장은 관광객을 끌어들이기 위한 것뿐 아니라 안전 문제와도 직결됩니다. 해운대해수욕장은 파도가 먼바다 쪽으로 빠르게 되돌아가는 '이안류'가 자주 발생하는 곳입니다. 실제 이안류 때문에 입욕이 통제된 적도 있습니다. 그래서 해운대구는 이안류 안전 대책으로 이안류가 발생하는 바다 바닥에 모래를 넣고 있습니다.


10년 동안 1,260억 든 부산의 연안 정비사업
해마다 백사장 모래는 빠져나가고 있고, 해수욕장을 유지하기 위해서 돈으로 모래를 사서 넣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돈이 들어갈 것입니다. 그런데 해수욕장이 사라지는 것을 막기 위해 이보다 더 많은 돈을 들여서 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연안 정비사업'인데요, 쉽게 이야기하면 태풍과 같은 재해가 발생했을 때 피해를 복구하고, 피해가 많은 지역을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 보수·보강하는 사업을 말합니다.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데 첫 번째로는 모래를 붓는 '양빈 사업'처럼 해안의 침식을 막거나 해안의 범람·침수 등 자연재해의 피해를 복구하거나 예방하기 위한 사업이 있습니다. 두 번째로는 다대포 동측의 해변 산책로처럼 해변공원, 산책로 같은 친수공간 조성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부산 연안 정비사업에는 얼마나 쓰였을까요? 2010년부터 2019년까지 10년 동안 부산의 21개 해안에 쓰인 연안 정비사업비는 모두 1,260억 5,994만 330원입니다. 이 가운데 약 64%는 모래를 붓는 양빈 사업과 구조물을 만드는 데, 그러니까 연안이 깎이는 걸 막는 데 쓰이고 있습니다.

반선호 부산시의원 "다대포 동측 복원하는 데 예산이 거의 300억 원 가까이 드는데요, 이 돈을 지자체가 다 내기엔 재정적인 문제가 있죠. 그래서 일단 지자체가 해양수산부에 우리 동네 해안이 깎였고 백사장이 줄어들었으니 모래 넣는다거나 구조물을 만들어야 할 것 같아요, 이렇게 사업을 신청해요. 그러면 해양수산부가 그걸 받아서 진짜 보강이나 개선의 필요성이 있는지 현장 조사를 해서 이 사업이 진짜 필요하다고 판단이 서면 선정하는 거예요. 여기에 선정이 되어야 중앙정부로부터 예산 지원을 받을 수 있고요. 그러니까 해양수산부의 선정에 따라 예산을 지원받냐, 못 받냐가 정해지는 거죠"


중앙정부 지원 없이는 현상 유지도 어려운 해수욕장
부산 해운대구도 해운대 송정해수욕장 연안 정비사업을 위한 총사업비로 약 300억 원을 추산하고 있는데요, 전액 국비 지원을 받지 못하면 해운대구가 부담해야 할 돈이 적지 않습니다.

원래 국비 지원 사업비 기준은 100억 원이었는데 2015년 연안관리법을 개정하면서 200억 원으로 늘어났습니다. 그러니까 200억 원이 넘는 규모의 사업이어야만 전액 국비를 지원받을 수 있게 된 겁니다. 물론 200억 원이 넘는다고 무조건 선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지영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 "기준 금액을 100억 원으로 하니까 국가에서 100% 돈을 내는 사업이 너무 많아졌다, 국가 재정에 부담이 있다, 이렇게 기재부에서 문제를 제기한 거죠. 사업비가 200억 원 이상 되는 것도 어렵지만 200억 원이 넘었다고 해서 무조건 국가가 100%를 대는 게 아니에요. 국가사업을 할 수 있는 조건을 만족시킨 거죠. 200억 원 넘었다고 국가가 무조건 전액 지원을 해야 하는, 그런 의무 사항은 아니거든요? 해양수산부에서 '이 사업은 국가에서 하는 걸로 할게' 이렇게 선정해야 하는 거예요"

여기에 선정되지 못하면 지자체가 시행하게 되는데, 이때 국가에서 70%를 지원하고 나머지 30%를 해당 지자체가 부담해야 합니다. 앞서 송정해수욕장의 경우, 전액 국비 지원에 선정되지 못하면 계획된 총사업비 300억 원 중에서 30%인 90억 원을 부산시와 해운대구가 내야 하는 겁니다.

연안 관리는 해당 기초자치단체가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광안리해수욕장이면 수영구가, 송정해수욕장은 해운대구가 하는 겁니다. 그런데 2022년 부산 16개 구군 평균 재정자립도는 20%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만큼 부산 기초자치단체가 벌어들이는 수입이 적다는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수십억, 수백억이 드는 사업을 스스로 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결국 중앙정부 재정 지원 없이는 지금 상태를 유지하는 것도 힘들다는 이야기입니다.

우지영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지자체 재정이 어렵다 보니까 결국 사업이 필요한데도 시작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는데요. 국가가 하는 사업과 지자체가 하는 연안 정비사업이 실제 얼마나 집행됐는지 비교해 보니까요, 국가는 90% 이상 집행된 반면, 지자체는 50%대예요. 그만큼 지자체 스스로 예산을 마련하는 게 쉽지 않다는 거죠"

'발 동동 구르는' 기초자치단체···10년째 '마스터플랜' 안 짠 부산시
해수욕장이 있는 기초자치단체 입장에선 관광과 직결된 문제라서 사활을 걸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2022년 연안 침식 실태 조사에서 심각(D) 등급의 송정해수욕장이 있는 해운대구청장은 최근 총사업비 298억 원을 전액 국비로 지원받기 위해 해양수산부를 직접 찾아가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부산시는 어떤 역할을 하고 있을까요?

반선호 부산시의원 "백사장이 줄어들고 있다는 게 최근 1, 2년 사이에 발생한 문제가 아니잖아요? 오래전부터 제기됐던 문제였고, 그래서 2013년 부산시가 모래 유실 예방과 같은 체계적인 해수욕장 관리를 위해 마스터플랜을 수립하겠다고 밝혔더라고요. 10년이 지났으니 마스터플랜이란 게 나왔을 거잖아요? 그런데 그런 게 있는지 없는지 파악조차 안 되고 있더라고요. 부산시에도 해수욕장 부서가 있거든요? 하지만 해수욕장 침식과 관련해서는 계획을 세우거나 직접 추진하는 사업은 없고요, 향후 계획도 없는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연안 정비사업 같은 경우도 실태 조사는 해양수산부에서 하고 있고 사업은 해양수산부랑 구·군에서 하고 있잖아요? 거기서 부산시는 예산 전해주는 역할 정도에 그치고 있는 거죠"

부산시가 이와 관련해서 하는 게 아예 없는 건 아닙니다. 모래 유실과 관련해서 2014년부터 송정과 광안리해수욕장 모니터링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모니터링을 토대로 대책을 세우거나 해당 지자체인 해운대구나 수영구와도 정보를 공유하는 등의 활동은 하고 있지는 않은 것으로 파악됩니다.

윤성순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선임연구위원 "부산시의 연안 침식 모니터링의 경우 조사 방식은 해수부와 동일해 보이는데, 차이는 계절이더라고요? 해양수산부는 봄, 가을에 하고 부산시는 여름, 겨울에 실시했는데, 그러면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 모두 모니터링이 된 거죠. 그런 의미에서는 유의미하다고 생각은 드는데, 여기서 문제는 그럼 이걸 종합해서 어떤 결과가 나와야 하는데 누가 이 결과를 합칠까요? 시도는 좋았으나 따로 예산을 들여서 한 만큼 결과로 이어져야 하는데, 그런 점에선 조금 아쉬운 점이 있습니다"

해양수산부만 바라보는 지자체···"7:3 구조 바꿔야"
모래를 사서 넣든 수중 방파제 같은 구조물을 만들든 결국 돈이 많이 드니까 지자체는 해양수산부만 바라보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나랏돈이 정해져 있으니 동시에 다 해 줄 수는 없는 것도 현실입니다. 이렇게 시간만 계속 흐르면 결국 손 놓고 해수욕장이 없어지는 걸 그냥 보고만 있어야 하는 걸까요?

사실 2021년 국정감사에서 이런 상황이 지적됐습니다. 30% 매칭비도 부담이 돼 사업을 시작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지자체가 많은데, 해마다 해수욕장 침식은 심각해지는 만큼 국가 70%, 지자체 30% 내는 이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온 겁니다.

당시 해양수산부 장관은 "재정 당국과 협의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는데요, 해양수산부에 문의해 봤더니 "총공사비 200억 원 미만의 지자체 사업에 대해서 재해 예방 목적에 맞게 연안 침식이 심각한 지역에 집중적으로 예산을 지원할 수 있도록 현재 지원 체계 변경을 재정 당국과 협의 중이다. 현재 국가 시행 기준인 사업비 200억 원에서 시급성 등 공공의 이해에 미치는 영향이 큰 사업으로 국가의 역할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개선을 추진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관광지 사라져서 아쉽다' 문제?···삶의 터전 위협받는 수준
기초자치단체는 돈이 없어서 해양수산부만 바라보고 있고, 해양수산부는 모든 지역에 예산 지원을 해줄 수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문제는 이런 상황에서도 해수욕장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건데요, 단순히 관광지가 사라지는 문제가 아니라 삶의 터전이 위협받는 수준이 될 수도 있습니다.

백사장은 태풍이나 해일과 같은 자연재해를 막아주는 완충지대 역할도 합니다. 백사장이 줄어들면 파도가 마을로 바로 덮치게 되면서 위험한 겁니다. 부산 임랑해수욕장은 바다와 주택가가 굉장히 가까운데요, 실제 2020년 태풍이 온 이후에 민간 파손도 있었고, 그만큼 주민들의 생명에도 위협이 되는 겁니다.

2008년 환경부로부터 생태, 경관 보전지구로 지정된 동해안 최대 사구인 강원도 안인사구의 경우 침식으로 인해 도로가 붕괴하고 생태 탐방로 접근 금지까지 됐다고 합니다. 2020년과 2023년을 비교했을 때 해안 모래가 약 2만㎡가 유실된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이렇게 심각한 상황이면 하루빨리 뭐라도 시작해야 하는 거 아닐까요? 연안 정비사업 중에 10억 원 미만의 소규모 사업으로 단기간에 완료되는 사업도 있습니다. 모래 붓는 양빈 역시 그것만 놓고 보면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에서 진행되는 연안 정비사업을 보면 대부분 구조물을 만드는 게 포함돼 있습니다. 구조물이라는 게 바다에서 공사를 하는 것이다 보니 돈도 많이 들고 시간도 많이 걸리게 됩니다. 게다가 사업비가 2백억, 3백억이 넘는 대규모 사업은 예산 투입이 한 번에 되는 게 아니라 몇 년에 걸쳐서 내려오다 보니까 그 여건에 따라 기간이 길어질 수도 있습니다.

윤성순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선임연구위원 "많은 돈과 시간을 써서 한 만큼 효과가 있으면 그나마 잘했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을 텐데요, 제가 한 사례를 들어 보겠습니다. 속초시 영랑동 지역 해안에 침식을 방지하기 위해서 무려 7년에 걸쳐서 커다란 해상 구조물을 설치했어요. 그런데 워낙 공사가 오래 걸리다 보니까 다 완공돼서 효과가 나타나기 전에 먼저 설치된 시설로 인해서 새로운 침식 현상이 발생한 거예요. 이렇게 거대한 시설물이 설치됐는데도 불구하고 현재 영랑동 침식 수준은 D 등급, 그러니까 '심각' 수준으로 나타났어요"

해안침식 문제를 겪는 건 30~40년 전부터 전 세계적인 현상이기도 합니다. 프랑스는 연안 토지 매입제도를 1975년부터 도입해서 시행하고 있습니다. 재해위험 지역인 토지를 정부가 직접 사서 개발에 따른 침식을 사전에 차단하는 방식을 택한 겁니다.

미국이나 호주에서는 기존 주거지와 시설물을 해안선과 멀리 떨어진 안전한 곳으로 옮기는 '해안선 후퇴'라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실시한 적이 있는데요, 경남 거제시 와현마을이 태풍 매미로 마을 전체가 큰 피해를 입자 거제시가 2003년부터 2004년까지 약 139억 원을 투입해서 '와현마을 이주단지 조성사업'을 실시했습니다. 방파제나 다른 구조물을 설치해도 비슷한 피해가 또 발생할 거라는 판단에 기존 마을을 복구하는 게 아니라 바다로부터 일정 거리 멀어진 안전한 지역에 거주지를 조성한 겁니다.

해수욕장 침식 원인 차단할 근본적인 대책은?
들어오는 모래가 없는 상황에서 빠져나가는 모래를 100% 막을 수는 없습니다. 해수욕장은 갈수록 줄어들 수밖에 없겠지만, 그때마다 많은 예산을 들여서 모래를 사다 채우고 구조물 설치를 하는 건 언젠가 한계에 다다를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침식의 원인을 차단할 근본적인 대책을 적극적으로 개발하고 바다가 회복력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는 장기적인 방안을 마련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래야 우리 다음 세대도 부산에서, 강릉에서 여름을 즐길 수 있지 않을까요?

 <예산추적 프로젝트 빅벙커> 대구MBC·부산MBC 매주 목요일 밤 9시 방송


윤영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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