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제79주년 광복절을 맞아 준비한 기획뉴스 전해드립니다.
일제강점기 당시 가져간 문화재를 돌려달라고 할 때마다 일본은 불법을 저지른 증거가 없다고 주장하는데요.
그런데 100년 전 조선총독부 산하 경주박물관장을 지냈던 일본인이 신라 고분을 도굴했고, 또 그 유물을 조선총독부 유력인사에게 줬다는 내용 편지가 최근 공개됐습니다.
김철우 기자가 보도합니다.
◀기자▶
영남대학교 정인성 교수는 일제강점기인 1916년에 쓰인 편지 한 통을 공개했습니다.
모로가 히데오가 당시 경주박물관장을 맡기 전, 야쓰이 세이야스라는 조선총독부 고적 조사자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자신이 통일신라시대 지어진 사천왕사지에서 전상, 즉 녹유신장상을 하나 손에 넣었다는 내용입니다.
사진을 함께 보낼 테니, 고고학 잡지에 써 달라고 요청합니다.
모로가는 사천왕사지에서 발견한 녹유신장상을 조선총독부 심의위원인 아유가이에게 이미 하나 줬고 이번에 하나 더 발견한 것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편지에서 모로가는 자신이 사천왕사지에서 괭이질했고 조선아이가 '호메이' 즉, 호미로 파내서 발견한 것이라고 적고 있습니다.
◀정인성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이전에 발견한 것(녹유신장상)은 아유가이 씨한테 선물했고 이번에 새로 도굴했더니 여기서(사천왕사지) 물건(녹유신장상)이 또 나왔다."
편지에 동봉한 평면도에는 사천왕사지와 사찰에 있던 두 탑이 표시되어 있습니다.
두 탑 가운데 하나에서 두 개의 녹유신장상이 발견했다며 위치까지 표시해 뒀습니다.
여기서 등장한 녹유신장상은 사천왕사지에 있던 탑의 기단을 장식하고 있던 것으로 최근의 발굴 조사에서도 다시 확인됐습니다.
사천왕사는 신라 문무왕 19년, 즉 679년에 세워진 사찰로 이곳의 신라의 수호신인 녹유신장을 비롯한 각종 유물들은 당시 완숙하고도 섬세한 신라의 예술적 수준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모로가는 이런 도굴한 유물을 조선총독부의 유력자들에게 선물하면서 자신의 입지를 키우고 넓히는 데 사용한 걸로 보입니다.
◀정인성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본인(모로가)의 도굴 행위에 대한 고백 그리고 자기가 소장하고 있는 불법 유물이지만 이런 것들에 대한 물타기, 면죄부를 이렇게 부여받는 그런 행위라고 할 수 있겠죠. 이것이 소위 식민지 학문 권력과 지역 유력인사들과의 공생관계의 시작입니다."
금관총, 금령총, 식리총 등 조선의 문화재가 이렇게 도굴되고 일본으로 반출됐는데, 이번에 공개된 모로가의 편지는 자신의 도굴과 불법 반출 등을 스스로 인정한 증거가 됩니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의 유력인사들이 관련된 도굴과 문화재 불법 반출에 대한 일본 정부의 책임 있는 해명과 반환 조치가 뒤따라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MBC 뉴스 김철우입니다. (영상취재 장성태, 그래픽 이수현, 화면 제공 국립경주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