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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굴당한 우리 문화재] ① 고위 공직자 도굴범 '모로가'

◀앵커▶
일제 강점기, 당시 조선에 진출한 일본인들 가운데 일부는 조선 팔도 곳곳에 있던 고분들을 파헤쳤고 거기서 나온 유물들을 반출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일본 황실 관계자도 당시 국가기관인 경주박물관으로부터 도굴된 것으로 보이는 유물을 받았다는 기록이 공개됐습니다.

당시 조선총독부가 만든 법에도 이런 행위는 명백한 불법이었습니다.

김철우 기자의 보도입니다.

◀기자▶
영남대학교 정인성 교수는 지난봄 일본 경매업체에서 신라 토기를 구입했습니다.

구입한 토기는 신라 고분에서 부장품으로 발견되는 '굽다리 긴목 항아리'입니다.

원형 그대로 보존이 잘 된 토기입니다.

토기에 붙은 설명 판에는 "군함 후루타카를 타고 조선 동해안을 운항하던 중 1926년 9월 21일 다카마쓰노미야를 모시고 경주를 방문했다가 경주박물관으로부터 받은 것"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그러면서 "유서 깊은 고귀한 고분에서 발굴된 경질토기인데 지금으로부터 1,300년 전에 사용된 것"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이 토기 소유자이자 설명판을 쓴 '시게지로(重治郞)'는 당시 일본의 해군 전함 '후루타카'의 기관장이자 의장원으로 근무한 '구도 시게지로'로 추정됩니다.

1926년 9월 23일 발간된 매일신보도 일본 황실의 경주 방문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제2함대는 21일 오전 9시 50분부터 21시까지 경북 포항에 입항하였고 다카마쓰노미야(高松宮)전하는 2시 15분 경주박물관에 도착해 고적에 관한 설명을 듣고 박 군수 외 7명을 만난 뒤, 기념식수를 하고 부근 고적을 둘러보았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설명 판에는 누가 누구에게 줬다는 기록은 없이 '경주박물관으로부터 받았다'라고만 기록돼 있습니다.

◀정인성 영남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당시에 경주박물관의 관장 역할을 하고 있었던 인물이 모로가 히데오입니다. 모로가 히데오의 허가 없이는 이런 유물들을 증여하거나 할 수 없었죠. 수행원에게 이런 신라 토기를 줬다는 이야기는 실제로 공개되지 않은 유물들이 왕실 방문단에게 많이 선물 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추정까지 가능하게 하는 대목이죠."

1926년 당시 총독부 박물관 경주분관의 분관장을 맡고 있던 '모로가 히데오(諸鹿央雄)'는 1908년 조선으로 건너와 무역업을 하던 인물로 1910년부터 경주에서 사실상 도굴을 통한 유물을 수집했습니다.

1921년 금관총 발굴에도 관여를 하는 등 도굴을 하고 도굴한 유물을 팔거나 고관들에게 선물하는 식으로 총독부 박물관 경주분관의 관장 대리까지 맡았습니다.

1933년 5월 9일 자 부산일보에는 모로가 히데오가 유물을 도굴하고 판매한 혐의로 자택 등을 압수 수색당한 뒤 구속됐다는 기사가 나옵니다.

'경주박물분관 주임 모로가 히데오 씨 수감되다'라는 제목의 기사에는 대구지방법원 경주지원 검사의 지휘에 의해 취조됐으며 경주경찰서의 유죄의견을 붙여서 검사 분국에 송치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한상 대전대학교 역사문화학과▶
"일본에 많은 유물들이 넘어가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환수하려고 할 때 (일본 정부는) 일본으로 넘어갔을 때의 불법성을 제시해 보라 이런 얘기를 많이 해요. 경주박물관장도 역임했던 모로가 히데오가 그런 일을 했다는 것이 밝혀진다면 일본에서 우리 문화재를 환수할 때 상당히 도움이 될 것 같아요."

금령총, 식리총, 금관총 등 경주에 있던 신라의 귀한 고분마다 도굴을 한 것으로 보이는 모로가의 행적은 백 년 가까이 지난 지금 구체적인 기록을 찾기는 쉽지 않습니다.

조각에 해당할 수도 있지만 이번 신라 토기는 그들을 향해 피해자에게만 입증 책임을 묻는 태도에 대해 수정을 요구할 수 있는 값진 자료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MBC NEWS 김철우입니다. (영상취재 장성태, 그래픽 이수현)

김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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