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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무독성 물질을 '남세균'으로 둔갑시켰다고?


'쌀알' 형태로 보이는 이 사진을 두고 국립환경과학원은 "MBC가 '남세균'이라며 보도에 쓴 현미경 관찰 사진이며 부경대 이승준 교수팀이 시료를 현미경 관찰하는 과정에서 직접 찍은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또한 이 사진은 "형태학적으로 남세균과 전혀 무관한 물질로 수돗물 필터에서 발견됐다는 물질이 남세균일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밝혔습니다. 과학원 측은 "MBC가 무해성 물질을 녹조 독소로 둔갑해 보도했다"라고까지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이 사진은 국립환경과학원의 주장대로 부경대 이승준 교수팀이 찍은 현미경 사진일까요?


이 사진은 대구MBC가 10월 18일 '대구시, 현미경 검사하고 "인체에 무해한 녹조류"?'라는 제목으로 보도한 리포트 중 한 장면입니다. 자막에서도 보이듯 '대구상수도사업본부 수질연구소 연구원'의 설명이 나옵니다. 즉 이 사진은 대구시 상수도사업본부가 녹조 의심 사례로 직접 신고받은 대구 달성군 가정집의 수돗물 필터를 '현미경'으로 조사한 결과인 겁니다.

두 사진을 비교해 보면 같은 사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국립환경과학원이 "부경대 이승준 교수팀이 직접 찍은 사진"이라고 주장한 사진은 사실은 대구시 상수도사업본부 수질연구소의 조사 결과를 대구문화방송이 촬영한 화면이었던 겁니다. 국립환경과학원은 "이승준 교수가 수돗물 필터에서 찍은 사진은 쌀알 형태의 물질→쌀알 형태라면 '마이크로시스티스'가 아니므로 수돗물 필터에서 발견된 물질은 '남세균'일 가능성 희박→MBC는 무해성 물질을 녹조 독소로 보도"라는 논리를 펼쳤습니다. 그런데 가장 기본적인 전제부터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국립환경과학원은 왜 대구시 상수도사업본부의 조사 결과 사진을 부경대 이승준 교수팀의 현미경 관찰 사진이라고 착각한 것일까요? 대구문화방송은 10월 12일 '[심층] 대구 가정집 수돗물 필터에 낀 연두색 물질, 녹조 일으키는 남세균으로 확인'이라는 기사를 인터넷을 통해 공개했습니다. 대구시 달성군 현풍읍 아파트 단지의 한 가정집 수돗물 필터를 부경대 이승준 교수팀이 유전자 검사를 한 결과 남세균으로 최종 확인됐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대구문화방송은 이 보도를 한 날인 10월 12일 대구시 상수도사업본부도 찾아가 취재를 했습니다. 대구시 상수도사업본부가 이에 앞서 10월 5일 기자회견을 열고 "해당 가정집이 있는 아파트 단지의 세 가구를 임의로 선택해 수돗물에 대한 마이크로시스틴 측정 검사를 하고 이상이 없다"는 발표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취재진이 대구시 상수도사업본부를 찾아갔을 때 대구시 상수도사업본부는 대구MBC와 별도로 또 다른 연두색 수돗물 필터를 제보 받았고 자체적으로 '현미경'으로 분석했더니 무해한 녹조류인 ‘코코믹사’로 확인됐다고 설명했습니다. 당시 대구시 상수도사업본부가 '코코믹사'라고 보여준 화면을 취재진이 촬영했고, 이 사진이 '[심층] 대구 가정집 수돗물 필터에 낀 연두색 물질, 녹조 일으키는 남세균으로 확인' 기사에 들어가게 됐습니다.

대구문화방송은 기사 속 사진에 '대구시 상수도사업본부 수질연구원 조사 결과'라는 자막도, '부경대 이승준 교수팀 조사 결과'라는 자막도 넣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사진 위치가 이승준 교수 인터뷰 바로 위에 배치되어서 마치 이승준 교수팀의 조사 결과로 일반 독자들이 착각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 나와 오해를 피하기 위해 10월 18일 온라인 기사에서 해당 사진을 삭제했습니다. 그런데 국립환경과학원은 이 사진이 누가, 어떻게 찍은 사진인지 확인조차 하지 않고 이승준 교수팀이 찍은 사진이라고 규정하고 이 교수팀의 조사 결과 자체를 부정하는데 급급한 모습을 보였고 이는 정치적 공방으로까지 진행됐습니다.

취재진이 제기한 질문은 이것이었습니다. 낙동강을 식수로 사용하는 영남권 가정 곳곳의 수돗물 필터가 연두색으로 변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데 이 물질이 도대체 무엇인지, 취재진이 수거한 필터를 연구진에 의뢰를 했더니 독성 물질을 일으키는 ‘남세균’이라는 결과가 나왔는데, 대구시 상수도사업본부가 별도로 확보한 필터에서는 왜 인체에 무해한 녹조류인 ‘코코믹사’이라는 결과가 나왔는지, 혹시 대구시 상수도사업본부에서는 '현미경' 검사를 했고 취재진이 의뢰한 연구진은 '좀 더 정밀한' 유전자 검사법을 사용했기 때문이 아닌지 등이었습니다. 이런 질문들은 정치적 공방이 아니라 과학적인 조사 방법을 통해 어렵지 않게 결론이 날 수 있는 문제일 수 있습니다. 국립환경과학원은 주장의 근거가 된 '사진'이 어디에서 나왔는지부터 확인한 뒤에 과학적인 결론을 내려야 하지 않을까요?

윤영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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