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일제 식민지 잔재를 청산하기 위한 활동을 지원하는 조례가 최근 안동시의회에 발의됐습니다.
그런데 조례안이 상임위에서 다뤄지기 직전 전격 보류됐는데 이유가 석연치 않아 보입니다.
이도은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기자▶
1924년 관동대지진 당시 일본 후지오카에서 현지 일본인들의 손에 목숨을 잃은 예천 출신 노동자 고 남성규 씨.
예천에 있던 가족들은 숨진 이유는 물론 유해가 어디에 묻혀 있는지조차 모르다, 90년이 흐른 2013년에서야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서를 통해 관동대학살의 피해자인걸 확인했습니다.
◀권재익 관동대학살 조선인 희생자 유가족▶
"(조선인이) 요코하마에서 벌써 엄청 많이 죽었잖아요. 그 소문이 퍼졌겠죠. (취업했던) 회사도 이 조선사람들이 있어야 필요하니까 가까운 경찰서에 '보호해 주십시오' 했는데 경찰은 보호해 주지 못했고 결국은.."
동북아역사재단의 발굴 조사 결과 1923년 9월 5일 고 남성규 씨를 포함해 영주와 예천 등 경북이 고향인 조선인 13명이 한날 모두 살해됐습니다.
◀장세윤 전 동북아역사재단 명예연구위원▶
"조선인 학살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은 (일본)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집행유예나 무죄로 풀려났고 실제로 판결을 받은 경우도 기껏해야 징역 1년에서 3년 정도로 그쳤고 이마저도 거의 대부분 사면으로 쉽게 풀어나 버렸어요."
이렇게 지역과 관련된 일제 식민지 시절의 자료를 발굴하고, 아직 남아 있는 식민지 잔재를 청상하는 활동을 지원하는 조례안이 최근 안동시의회에 발의됐습니다.
당초 이 조례안은 지난 3일 안동시의회 상임위에 다뤄질 예정이었지만 회의 당일 상정이 보류됐습니다.
'근현대 문화유산 보존 조례안'이 함께 올라왔는데, 일제시대에 만들어진 유산의 성격 규정을 놓고 논란이 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권기윤 안동시의회 문화복지위원장(국민의힘)▶
"문화복지위원회에서 보류한 게 아니고 발의한 분이 상정 보류를 한 겁니다. (근현대 유산도) 일제 잔재로 볼 수 있는데 청산되면 상충되는 조례다.."
하지만 해당 조례안을 발의한 시의원의 설명은 조금 달랐습니다.
본인이 자진 보류한 건 맞지만, 국민의힘이 다수인 상임위 통과 가능성이 높지 않다며 위원장의 압박을 받았다고 주장했습니다.
◀김새롬 / 안동시의회 문화복지위원회 위원(더불어민주당)▶
"(상임위 과반이) 반대할 것이기 때문에 시기를 보고 (재상정하라고) 문화복지위원장님이 제안하셨죠. 일제 식민지 잔재가 어떤 것인지 명확히 알게 되면 오히려 근현대 문화유산에 어떤 걸 보존할지 (명확해집니다.)"
관동대지진이 발생한지 올해로 101년이 지났습니다.
조선인 6천여 명이 희생됐지만 경상북도 출신 13명의 희생자처럼 고향, 이름과 나이가 정확하게 확인된 건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우리 지역 차원의 일제 식민지 피해를 정리하고 관련 잔재를 청산하기 위한 노력이 최근 중앙 정치권의 친일-반일 논란으로 혹여나 악영향을 받는 건 아닌지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MBC뉴스 이도은입니다. (영상취재 임유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