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지난 3월초 열흘 동안 경북 동해안을 휩쓴 울진·삼척 산불 다들 기억하시죠?
역대 최악의 산불로 기록된 동해안 산불 복구에 정부가 4천 170억 원의 예산을 투입하기로 했습니다.
이 중 80%에 달하는 3천 200여억 원이 불에 탄 나무를 베어내고 새 나무를 심는 조림 비용인데요,
산림청의 복구 방식을 두고 논란이 많습니다.
저희 취재진이 여러 의견들을 들어봤습니다.
손은민 기자입니다.
◀기자▶
두 달 전, 화마가 휩쓸고 간 산입니다.
검게 그을린 나무 기둥 아래에서 푸른 잎이 자라났습니다.
거센 불길에도 살아남은 활엽수들은 다 타버린 소나무림 주위로 다시 울창한 초록 잎을 피웠습니다.
환경단체와 일부 전문가들은 이렇게 불이 난 산을 그대로 두면 숲이 스스로 되살아난다고 말합니다.
◀홍석환 부산대 조경학과 교수▶
"한 30년, 40년은 산림으로 있었던 곳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낙엽이 썩어 있고요. 지금 현재 불탄 나무들의 양분이 그대로 산속에 녹아들어가 있기 때문에 굉장히 빠르게 복원됩니다. 지금 천연갱신이 되면 자연스럽게 활엽수림으로 발달하게 돼 있습니다. 그래서 (인공조림을 통해) 내화수림을 조성한다는 것 자체가 전혀 논리에 맞지 않고요."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산불에 강한 내화수림이 저절로 형성되기 때문에 산림청이 굳이 수천억 원의 돈을 들일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일 년 전 큰불이 났던 안동 산불 현장에 가봤습니다.
벌채한 곳보다 죽은 나무를 그대로 둔 곳에 나무와 수풀이 더 무성하게 자라났습니다.
자연 복원이 인공조림보다 복원 속도가 빠르다는 겁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토양에 있습니다.
중장비를 동원해 나무를 베고 옮기고 심는 과정에서 산은 더 척박해지고 훨씬 많은 흙이 쓸려 내려가게 됩니다.
◀최진우 서울환경연합 생태도시전문위원▶
"조림을 하려면 뿌리까지 다 뽑아야 해요. 흙바닥이 벌겋게 보일 정도로 지표면에 있는 흙을 다 긁어낼 수밖에 없는 거예요. 그냥 단순히 이게 소나무냐 참나무냐 논쟁을 넘어서 수백, 수천 년 동안 만들어오고 저장해온 토양 유기탄소, 표토의 손실이 엄청 크다는 거죠."
이렇게 되면 산사태와 홍수를 막는 힘도 약해집니다.
산불 피해지에 자연 복원을 원칙으로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홍석환 부산대 조경학과 교수▶
"현재 불이 난 곳을 그대로 두고 계곡 주변에 가장 위험한 곳들만 산에서 내려오는 토사를 막을 수 있는 그런 장치들만 조금만 해주게 되면 지금 현재 불이 난 지역의 2차 피해를 현명하게 극복할 수 있는 그런 상황이 만들어지거든요. 근데 나무를 모두 자르는 순간 이차적인 홍수 피해는 더 심각하게 일어납니다."
하지만 산림청의 생각은 다릅니다.
고사목은 해충이 자라날 수 있고 장마나 호우 때 쓰러지고 유실돼 2차 피해가 발생할 위험이 커서 벌채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자연 복원에 맡기면 경제성 있는 나무를 키우기 어렵다는 것도 이유입니다.
산주나 주민들이 송이버섯을 생산하기 위해 소나무 심기를 원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산림청은 학계와 시민단체, 주민 등의 의견을 수렴해서 자연 복원을 포함한 세부 복원 계획을 수립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올해 국내에서 발생한 산불은 500여 건. 2만 3,658ha의 숲이 잿더미가 됐습니다.
지금까지 관행적으로 해왔던 복구방식에 함몰되기보다는 숲을 더 건강하게 살려낼 수 있는 새로운 방식은 없는지 더 따져보고 고민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MBC 뉴스 손은민입니다.(영상취재 마승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