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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 농사까지 도입되고 있는 AI···"호락호락하게 봤다면 큰코다쳐"

농사일의 기계화는 갈 수밖에 없는 길?
'인구 감소' '고령화' '소멸 위기'

'농촌'이라고 하면 너무나 자주 등장해서 이제는 익숙해져 버린 말입니다.

농사철이면 이런 말도 어김없이 등장하죠.

'인력난' '인건비'

그래서 농촌의 인력난을 극복하기 위해 농사일을 기계화하려는 노력이 곳곳에서 다양한 분야에서 이뤄지고 있습니다.

기계화가 매우 높은 수준에 다다른 분야도 있지만 이제 막 시작 단계인 분야도 있습니다.

두 달 전쯤에도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만, 농촌진흥청 자료를 보면 벼농사는 기계화가 99%를 넘어서지만, 밭농사는 2022년 기준으로 63%를 조금 넘어선 수준입니다.

과일 생산지에서는 어떤 변화가 있을까요?
과일이 많이 나는 곳에는 농산물 산지 유통센터가 있습니다.

수확 철이면 이곳에서는 그 지역 농가에서 생산한 과일을 선별해서 포장하는 작업이 많이들 이뤄집니다.

선별과 포장 과정은 유통센터마다, 과일의 종류에 따라 다릅니다만, 일반적인 과정을 소개해 드리면 이렇습니다.

농가에서 보내온 과일은 가장 먼저 베테랑 작업자 여러 명이 달라붙어 결점이 있는지를 빠르게 살펴봅니다.

병이 들었거나 상처가 난 과일, 이른바 결점과(결점이 있는 과일)는 이 과정에서 걸러집니다.

이 과정을 통과한 과일은 당도와 무게를 자동으로 측정하는 기계를 통과하면서 분류가 됩니다.

분류된 과일은 작업자들이 마지막으로 결점이 있는지를 살펴서 포장합니다.

선별 이후 포장에 이르는 과정은 기계화가 많이 이뤄져 있습니다.

이렇게 포장된 과일은 유통센터와 거래하는 대형마트 등지로 납품돼 소비자들을 만나게 되죠.

(물론 경매 등 다른 과정을 거쳐서 소비자들을 만나는 과일도 많습니다.)

확산하는 AI(인공지능) 선별기
2020년에 AI(인공지능) 선별기를 도입했다는 농산물 산지 유통센터가 있어서 찾아가 봤습니다.

경북 청도군 금천면의 들녘에 자리 잡은 이 유통센터에서는 농가에서 생산한 천도복숭아를 대형마트 등지에 납품하기 위한 선별과 포장 작업이 한창이었습니다.

(참고로 이 지역 천도복숭아는 2024년 출하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합니다.)

농가에서 보내온 천도복숭아가 선별 대에 오르자, 베테랑 작업자 4명이 예리한 눈으로 결점 있는 복숭아를 쉴 새 없이 걸러내고 있었습니다.

이 부분까지는 다른 곳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가장 큰 차이는 다음 단계였습니다.

사람이 한 번 걸러낸 복숭아가 AI 선별기를 통과하면서 또 한 번의 엄격한 심사를 받고 있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사람이 미처 찾아내지 못한 탄저병과 세균성 구멍병은 물론이고 씨가 갈라지는 핵할이 있는 복숭아가 순식간에 걸러지고 있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걸러져 나오는 복숭아의 양도 꽤 돼 보였습니다.

이 AI 선별기가 골라낼 수 있는 기능은 28가지인데 모두 사용하지는 않고 상황에 따라 필요한 기능을 골라서 사용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AI 선별기를 도입한 후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유통센터장의 말을 들어보니 AI 선별기를 도입한 이후 품질만 생각하며 5년간 거래업체와 신뢰를 쌓아가다 보니 매출이 6배나 늘었다고 했습니다.

육안 선별에 AI 선별까지 하다 보니 포장 속도도 빨라졌고, 인력 절감 효과도 거두고 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이 단계까지 오기까지가 너무나 힘들었습니다."
어려운 점은 없었냐는 질문에 유통센터장은 이렇게 답했습니다.

AI 선별기가 지금의 능력을 갖출 때까지 3년간은 수없이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다고 했습니다.

AI 선별기가 내가 원하는 결점을 정확하게 찾아낼 수 있도록 하는 게 그냥 이뤄지는 게 아니란 말이었습니다.

쉽게 말해 AI 선별기가 일을 제대로 하게 하려면 학습을 많이 시켜야 한다는 말입니다.

센터장은 지금도 보완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고 했습니다.

김종복 동청도농협 유통센터장 "몇 날 며칠 밤도 새면서까지 저희가 자료를 만들고, 이건 어떻게 할지 저건 어떻게 할지, 기계적으로 이게 될지 안 될지 그것까지 검증과 검증을 거쳐서··· 앞으로도 AI 선별기 학습은 계속해야 합니다. 이상기후의 여파로 예상 못 한 병충해가 나타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공선회원들도 처음에는 불만이 많았습니다."
공선회원?

공선출하회라고도 한다는데요. 사전을 찾아보니 '농협 단위의 공동선별, 공동계산 실천을 원칙으로 하는 출하 조직'이라고 돼 있습니다.

설명을 들어보니 '농산물 선별과 포장, 출하를 함께하는 농민들'이라고 보면 될 거 같았습니다.

공선회원들이 생산한 농산물을 농협 유통센터로 보내오면 센터에서 선별과 포장을 한 뒤 대형마트 등지에 납품하게 되는데요, 유통센터에서 AI 선별기를 도입한 초기에는 공선회원들의 불만도 컸다고 했습니다.

도입 초기 AI 선별기가 너무나 작은 결점까지 찾아내 너무 많은 과일을 결점과로 분류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공선회원 즉 농민들을 설득하는 것도 과제 중 하나였다고 했습니다.

최희군 동청도농협 조합장 "AI 기계 지나가면 원품(납품할 수 있는 제품)의 개수가 나옵니다. 절반 정도를 파지(결점 있는 과일)로 빼내니까 팔 게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가격이 공판장 보내는 것보다 반값밖에 안 된다.' 이래서 처음에 애먹은 겁니다. 그런데 이제는 신뢰를 받는 제품이 됐고, 판매가격도 높아졌습니다."

다른 산지 유통센터는 어떨까?
털이 있는 복숭아를 선별하고 있다는 또 다른 산지 유통센터를 가 봤습니다.

이곳 역시 2023년 가을에 AI 선별기를 도입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2024년 8월 초순부터는 AI 선별기는 안 쓰고, 기존에 쓰던 선별기만 가동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이유를 물어보니 털이 있는 복숭아 중에 딱딱한 복숭아 생산이 마무리됐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지금은 털 복숭아 중에 부드러운 복숭아만 들어오고 있는데 상처가 날 우려 때문에 AI 선별기를 쓰지 못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가을에 청도반시를 수확하면 그때 다시 사용할 계획이라고도 했습니다.

"청도반시 선별에도 쓰고 내년에 딱딱한 복숭아 선별에 다시 쓰겠지만 보완해야 할 부분은 많아"
털이 있는 복숭아의 경우 아무리 딱딱한 복숭아라 해도 굴려 가며 카메라로 촬영했다가는 상처가 날 수밖에 없어 받침대에 올려놓고 카메라로 찍어서 결점을 찾아내야 하는 데 바닥 면은 촬영할 수 없는 것도 아쉬운 점이라고 했습니다.

카메라 사각지대를 없애야만 보다 정확한 선별이 가능해지는 숙제를 안고 있는 것이죠.

안병철 청도농협 유통센터장 "처음이다 보니까 얘(AI 선별기)가 백지상태에서 시작했습니다. 앞으로 2~3년간 더 우리가 필요한 부분에 대해서는 계속 학습을 시켜서 보완을 시키는 그런 과정들이 필요하고··· 카메라가 비출 수 없는 부분이 밑에 받침 부분 그쪽 부분이 전체 면적의 3분의 1 정도인데, 그 부분은 현재까지는 해결 방안이 없는 거 같아요."

이런 어려움 등으로 몇 해 전 AI 선별기를 도입해 놓고도 지금은 쓰지 않고 있다는 산지 유통센터도 있었습니다.

"가야 할 길이기는 한데 호락호락하게 봤다간 큰코다쳐"
고질적인 인력난 극복과 보다 나은 품질의 농산물 판매를 위해 AI 선별기 도입한 산지 유통센터들은 "가야 할 길인 거는 같은데 호락호락하게 봤다가는 큰코다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긴 시간 무수한 시행착오를 겪을 각오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남들이 한다고 생각 없이 덤벼들었다가는 낭패 볼 수 있다"는 말이 회사로 돌아오는 내내 귀에 맴돌았습니다.

입추가 지났지만, 아직 더위가 극성입니다. 우리 농민들 건강 챙기는 것 절대 잊지 마세요.

서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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