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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동요로 우리말 지켜낸 영주 강신명 목사

◀앵커▶
3월 1일은 2024년으로 105주년을 맞은 삼일절입니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을 주도한 경북 북부에도 다양한 방식의 투쟁이 존재했습니다.

영주 출신 고 강신명 목사는 일제의 눈을 피해 어린이를 위한 한글 동요집을 펴내 우리말 보급에 앞장섰는데요.

김서현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기자▶
경북 영주시 평은면 내매마을의 한 교회.

지어진 지 100년이 넘었습니다.

상자를 열자 끈으로 엮은 얇고 낡은 책자 한 권이 보관돼 있습니다.

일제강점기였던 1935년, 이 마을 출신 고 강신명 목사가 평양에서 신학 공부를 하던 중 펴낸 어린이 동요집 '새서방 새색시'의 국내 단 하나뿐인 초판본입니다.

직접 그려낸 22곡의 악보, 반듯하게 쓴 한글 가사가 80년이 넘는 세월에도 고스란히 남아 최근 한국기독교사적 유물로 지정됐습니다.

◀윤재현 영주 내매교회 목사▶
"강신명 목사님의 당시에 부목사를 하시던 강윤구 목사님이 본인이 보관하기에는 너무 큰 거다, (기증받은 뒤) 보는 분마다 모두 다가 '너무 희귀본이다'···"

뒤표지에 적힌 발행인은 '윤산온', 일본이 강요한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추방된 미국인 선교사의 이름입니다.

강 목사가 당시 평양신학교 교장이었던 윤산온을 비롯해 기독계의 지원을 받으며 동요집을 펴낸 이유는 무엇일까.

◀강영미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연구교수▶
"식민지 시대는 국어가 일본어라서 학교에서도 조선어를 배울 수가 없었거든요. 그런데 주일 학교에서는 조선어 교육을 해줬고 또 어린이들을 모아서 일상생활에 대한 수칙, 위생 관념 이런 것들을 교육을 해줬으니까···"

강 목사의 집안 배경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아버지는 '한글 목사'라는 별칭으로 유명한 故 강병주 목사, 조선어학회의 유일한 목사 위원이자 3·1운동에 참여해 옥고를 치렀던 독립운동가입니다.

영주 내매교회와 함께 운영된 내매학교의 초대 교장이기도 했습니다.

◀윤재현 영주 내매교회 목사▶
"내매학교라고 말하면 이 (영주) 지역에서 최초로 근대 보통 학교죠. (강병주 목사의) 그 아드님이 강신명 목사님, 내매학교의 9회 졸업생입니다."

강 목사는 동요집 '새서방 새색시'에서 그치지 않고, 이 동요집을 기반으로 1936년, 일제강점기 조선 동요를 집대성한 '아동가요곡선 300곡'까지 편찬합니다.

이번에는 일본의 검열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초판본이 '반일 감정'을 조성한다는 이유로 일본 총독부로부터 벌금형을 받게 됩니다.

하지만 강 목사는 곡 일부를 변경해 재판본을 내고, 다시 원곡을 살린 수정 증보판까지 내면서 귀한 한글 동요집을 지켜내고자 했습니다.

그렇게 지켜낸 곡은 해방 후까지 남아, 강 목사 음성으로도 보존돼 있습니다.

◀고 강신명 목사▶(1972년 2월 25일 지인 약혼식 피로연)
"'새서방 새색시'입니다. 깟닥깟닥 새서방 애기 새서방 왈랑절랑 말타구 장가 가누나···"

강 목사의 한글 동요집은 정규 교육을 받을 수 없는 학교 밖 어린이들의 음악교재이면서 동시에, 일본의 민족말살정책이 강화됐던 1930년대, 종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해방 후 미래를 기약할 수 있게 해준 소중한 우리말 교재였습니다.

MBC 뉴스 김서현입니다. (영상취재 차영우, 그래픽 황현지)
























김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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