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 교향곡이 종교 문제로 공연을 못 하게 됐습니다. 이게 말이 됩니까?"
처음 듣는 순간 귀를 의심했습니다.
베토벤이 종교? 그것도 편향?
무슨 소리냐고 몇 번을 되물었더니, 대구시 종교화합자문위원회라는 곳이 베토벤의 교향곡 9번 '합창'이 종교 편향이라며 공연 불가 판정을 내렸다는 겁니다.
중학교인가 고등학교 음악 시간에 배웠던 그 '합창'?
가사와 음을 흥얼거리면서 이 곡 맞냐고 물었더니 맞다고 하더군요.
이게 뭔 소리지? 음악 교과서에도 실리는 곡이 종교 편향이라고?
당장 사실 확인에 들어갔습니다.
종교편향위원회? 종교화합자문위원회!
종교화합자문위원을 수배해서 그 과정을 물었더니 이분 역시 말이 안 된다면서 한숨부터 쉬었습니다.
세계적인 음악의 거장 베토벤의 작품이 신을 찬양하는 것이라며 부결됐다는 거였습니다. 독일어로 쓰인 가사 가운데 '신'이라는 말이 몇 번인가 나온다는 것이 이유였다고 합니다. '지저스 크라이스트'도 아니고 영어로 'God'라는 말이 문제가 됐다고 하는데 이분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저 역시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위원회에서 부결된 것이 더 문제 아니냐고 물었더니 '만장일치제'라서 위원 가운데 한 명만 반대해도 부결된다는 겁니다.
이 문제 때문에 법조나 학계, 언론계 쪽 위원 가운데 아예 회의에 참석을 하고 있지 않는 위원들도 있다고 합니다.
특정 종교 위원 한 명이 계속 반대하고 만장일치제이다 보니까 부결될 수밖에 없는 일이 되풀이돼 왔다고 합니다.
'폭탄' 맞은 수성아트피아
수성아트피아가 1년 하고도 4개월 만에 시설 등 내부 단장을 거쳐서 5월 1일 야심 차게 준비해 온 공연이 베토벤의 교향곡 9번 ‘합창’이었습니다.
대구시립교향악단과 합창단의 공연 참여를 요청했는데 4월 4일 자로 부결 통보를 받은 겁니다. 공연까지 4주도 안 남긴 상태에서 수성아트피아는 거의 '멘붕'에 빠지게 된 거죠.
급히 민간 연주단체에 도움을 요청해서 교향악단을 꾸리고 구미시립합창단에 부탁해서 어찌어찌 공연은 하기로 했습니다.
다만 준비기간이 짧아 교향곡 합창의 전 악장은 하지 못하고 4악장만 하기로 하고 나머지 부분은 협주곡 등으로 대신 하기로 했습니다.
수성아트피아에서도 한숨은 흘러나왔습니다.
세계적인 망신
음악협회는 강도 높게 비판했습니다.
시립예술단 상당수가 서양 음악에 기반을 두고 있고 서양 음악은 상당수가 교회 음악에서 시작된 것이 많은데 그렇다면 오페라도 못하고 콘서트도 못해야 하는 거냐?
시립국악단이 하는 공연은 괜찮고 시립교향악단과 합창단은 안 되냐?
방송이 나가고 나서 이탈리아나 유럽에 유학 가 있는 후배들이, 제자들이 '이게 무슨 일이냐?'며 연락이 오고 원로음악가들도 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대구는 유네스코 음악 창의 도시로 선정돼 있는데, 유네스코에서 이런 일을 알면 뭐라고 할까? 왜 대구에서만 종교 편향 문제로 공연을 못 할까?
다만 종교 문제로 번지는 것은 막아야 하니 예술공연을 막는 만장일치제라도 개선을 하자며, 참을 것은 참고 노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십 년 가까이 된 문제라고 하는데 종교화합자문위원회가 어떻게 설치된 것인지를 비롯해 왜 만장일치가 된 것인지 그 이전의 상세한 내용을 알기 위해 조금 더 오래전 일로 거슬러 올라가 봤습니다.
대구시민회관을 아시나요?
대구에는 시민회관이 있었습니다, 대구역 옆쪽에. 지금은 콘서트하우스가 됐죠.
당시 시민회관이 오랜 기간 리모델링을 마치고 재개관할 때 관장을 찾았습니다. 그때가 2013년이었고 재개관 후 관장을 맡았는데 당시 시민회관에 소속된 대구시립합창단이 파이프 오르간을 사용한 공연을 하기 위해 모 대학 XX관에서 공연을 했는데, 이 공연이 특정 종교의 음악이었다며 다른 종교에서 문제를 삼아 큰 소동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 사건으로 당시 합창단장과 콘서트하우스 관장이 자리에서 물러나게 됩니다.
당시 권영진 대구시장은 재발 방지를 약속했고 대구시립예술단 설치조례에 종교편향위원회 설치와 운영 조항을 두면서 시작이 된 겁니다.
이후 '종교 편향'이라는 어감이 좋지 않다는 의견에 따라 종교화합자문위원회로 이름만 바뀌었고 대구시립예술단의 공연, 특히 시립합창단 공연에 대해 종교 편향성을 따지기 시작한 겁니다. 대구시립교향악단은 '할 수 있다'고 돼 있을 뿐 시립합창단에 대한 심의만 이어졌다고 합니다.
실제로 이번에도 합창단에 대해서만 부결했고 교향악단에 대한 심의는 따로 하지 않았는데 콘서트하우스에서 합창단이 안 되면 교향악단도 안 되는 것 아니냐? 며 불참 통보를 했다고 합니다.
대구음악협회에 확인한 결과, 그 이후 헨델의 '메시아' 같은 공연이 대구에서는 사라지다시피 했다고 합니다. 실제로 시립예술단이 공연을 한 적이 없다고 하더군요.
웃지 못할 코미디
음악협회는 예총과 함께 대구시에 문제를 제기했고 대구시는 종교계, 학계 등과 폭넓은 토론을 해보자며 의견을 듣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종교계를 의식해서인지 그다지 적극적이지는 않아 보입니다.
언제 할 것인지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몇 번이고 시간이 필요하다는 대답만 되풀이하더군요.
공무원들의 입장도 이해는 합니다만 이 문제는 시간을 끌수록 더 커지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전 세계로 확대할 것도 없는 것이 이미 이 문제는 부산을 비롯한 자치단체마다 겪은 일이고 종교 편향을 문제 삼아 공연을 중단시키는 곳은 대구 빼고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헌법에는 '종교의 자유'를 규정하고 있죠, 하지만 예술의 자유 역시 국민의 기본권으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법에도 맞지 않고 상식에도 맞지 않는 일이라면 하루라도 빨리 개선 하는 것이 답이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