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국가보훈처가 국가보훈부로 승격하면서 정부는 국가를 위해 희생하신 분들에 대한 예우를 강화하겠다고 밝힌 바 있죠.
하지만 보훈 대상자로 인정받기 위한 문턱은 여전히 높습니다.
한국전쟁에서 부상을 입고 전역한 참전용사가 70년 넘게 보훈 대상자 지정을 거부당하다, 돌아가시기 직전에서야 보훈 대상자로 인정받은 일이 최근 영주에서 있었습니다.
김서현 기자가 보도합니다.
◀기자▶
한국전쟁이 막바지로 접어들던 1952년 입대한 고 강성일 씨가 부상을 당한 건 휴전 직후인 1953년 겨울입니다.
38선 접경 고지 평탄화 작업에 투입됐다가 산사태에 매몰된 겁니다.
후방의 육군 병원으로 후송된 강 씨는 결국 이듬해 봄 의병 전역이 결정됩니다.
◀강완구(64) 강성일 씨 아들▶
"몇 달 만에 깨어났는지 하루 만에 깨어났는지 그거는 아버지도 모르고. 포대장이 하는 말씀이 '성일이 너는 조상이 솔밭에 들었다. 사망신고 내려고 하는데 깨어났다'면서.."
강 씨는 고향 영주로 돌아왔지만, 사고 후유증으로 허리, 폐 등 이미 온몸이 망가진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없는 형편에 병원에 가볼 엄두조차 못 냈습니다.
◀유재순(95) 강성일 씨 아내▶
"아파 일을 못 하고 농사일을 내가 짓고, 일을 못 하고..치료하고 돈이 훨씬 (들어서) 약도 못 써보고 시난고난 아팠지."
강 씨는 전역한 지 40여 년이 지난 2007년, 국가보훈기본법이 제정됐다는 소식에 처음으로 부상에 대한 보상을 받기 위해 공상군경 국가유공자 인정을 신청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국가보훈처는 이를 거부했습니다.
'관련 의무기록이 없어 군 복무 중에 다쳤는지 확신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1954년 당시 육군병원에 입원한 기록에 강 씨의 이름도 있었지만, 질병 사유에 '사적인 부상'을 의미하는 '사상' 환자로 분류돼 있던 겁니다.
강 씨 가족들은 의무기록, 병상일지 등 관련 기록을 육군에 요구했지만, 자료가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습니다.
◀강완구(64) 강성일 씨 아들▶
"억울하니까요. 아버지는 분명히 군대 가서 의병 전역을 했는데 기록이 명명백백하게 있는데, 병상일지는 국가가 갖고 있고 기록을 안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잘못인데…보훈처의 설립 목적이 뭡니까?"
국가보훈처는 지난 10여 년 동안 5번이 넘는 신청을 거부했고, 그 사이 강 씨의 건강은 크게 나빠졌습니다.
그러던 지난 연말, 법원이 강 씨의 주장을 일부 인정했습니다.
대구고등법원 행정부는 "1954년 당시 63육군병원 환자 306명 중 강 씨를 포함한 302명이 '사상'으로 기록돼 있는데, 휴전 직후 상황에 비춰보면 국군장병 대다수가 사적인 부상을 입고 입원해 있었다고 생각하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또 "강 씨가 사적인 원인으로 인한 부상을 입었다면 징계 절차 등이 기록돼 있어야 하는데 그런 기록이 없다"며, 국가유공자 요건에는 부족하지만, 군 복무 중 부상은 인정했습니다.
◀상무균 강성일 씨 소송대리인 변호사▶
"(전쟁 중)정말 부상당했고 그렇다면 국가에서 어떤 식으로든지 간에 보훈을 베풀어야 되는데 증거가 없다고 해서 그걸 배척하는.. 재판부도 국가의 어떤 책임이 있다는 걸 인정한 것 같아요."
하지만, 국가보훈부는 처음 공상군경 유공자 신청을 했던 2007년도가 아닌 가장 최근 신청한 2019년부터 소급된 보훈 급여만 지급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국가보훈부 경북북부보훈지청 관계자▶
"법령과 관련 판례에 의하면 보상의 기점이 되는 등록 시점은 국가유공자에 해당한다는 결정이 내려지게 된 등록 신청을 한 날을 의미하기 때문에, 강성일 님의 경우에는 2019년 11월이 바로 그 시기가 되는 것입니다."
사실상 반쪽짜리 보훈 보상 대상자 통지문을 받는 데까지 무려 70년이 걸린 강 씨.
하지만 기쁨도 잠시, 통지문을 받아 든 강 씨는 석 달 뒤인 지난달 15일, 향년 91세의 나이로 가족의 품을 떠났습니다.
너무 뒤늦은 '보훈'이었습니다.
MBC뉴스 김서현입니다. (영상취재 차영우, CG 황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