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잦은 비로 마늘종 제거 시기도 열흘이나 빨라져"
이상 고온과 잦은 비와 같은 이상기후의 여파로 마늘 농가의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제주도와 남해 등지에서 들려오고 있습니다.
경북의 상황은 어떤지 확인해 보기 위해 영천을 찾아가 봤습니다.
영천의 농민들은 가을에 싹을 틔워 겨울을 나는, 이른바 난지형 마늘, 대서종 마늘을 많이들 재배합니다.
마늘 재배 면적으로 따지면 경북에서 1, 2위를 다툴 정도로 유명한 곳이기도 합니다.
기자가 찾은 영천의 들녘에서는 마늘종 제거가 한창이었습니다.
마늘종 제거는 마늘을 최대한 키우기 위해 꽃이 될 부분을 제거해서 꽃으로 갈 양분을 마늘로 최대한 보내기 위한 작업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작업이 2024년에는 2023년보다 열흘 정도나 빨라졌습니다.
지난겨울부터 내린 잦은 비 때문인데, 농민들은 비가 자주 오면 방제 작업도 신경이 더 쓰인다고 했습니다.
정재선 영천시 임고면(마늘 농사 경력 10년) "보시다시피 이렇게 땅이 질면 호스 들고 지나가야 하는데 호스를 당기지를 못해요, 힘이 들어서. 땅 마를 때까지 방제하기를 기다려버리면 병이 심해져 버리죠"
"한 해전보다 2배 이상 많은 비 내려···피해 있는 곳 일부 있지만 다행히 큰 문제는 없어"
2024년 1월부터 4월까지 영천 지역의 강수일수는 38일이나 됩니다.
1월에 7일 비가 내렸고, 2월에는 한 달에 절반가량인 14일이나 비가 왔습니다.
3월에는 9일, 4월에도 8일이나 비가 내리는 등 넉 달 동안의 강수일수가 38일이나 됩니다.
2023년 같은 기간 강수일수가 20일이었으니 18일이나 비가 더 내린 것이죠.
1991년부터 2020년까지 30년 평균 강수일수가 24.4일인데, 2024년은 이보다도 13.6일이나 비가 더 온 것입니다.
2024년 1월부터 4월까지 영천에 내린 비도 211.7mm나 됩니다.
2023년 1월부터 4월까지 104.5mm가 내렸으니 2배가 넘는 셈입니다.
농민들은 관리와 방제에 신경을 쓴 덕분에 아직은 습해나 병충해 피해가 심한 것 같지 않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돌아서면 내리는 비에 습해나 병충해 우려는 갈수록 커지고 있습니다.
들녘을 둘러보다 흑색썩음균핵병이 번진 곳이 있어서 그곳에서 일을 하던 농민을 만나봤습니다.
이 농민은 잦은 비 때문인지 병충해도 예년보다 일찍 찾아온 것 같다고 했습니다.
이동열 영천시 임고면(마늘 농사 10년 경력) "날이 건조하면 병든 뿌리만 상하고 마는데 비가 자주 오면 빗물을 타고 번져요. 온 밭에 지금 다 번졌잖아요"
관건은 수확까지 앞으로 한 달간의 날씨
영천 지역의 마늘 수확은 5월 말부터 6월 초 사이에 본격적으로 이뤄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습니다.
농민들은 그래서 앞으로 한 달 동안의 날씨, 특히 일조량이 관건이라고 했습니다.
이 시기 궂은 날씨가 이어지면 그야말로 낭패라는 겁니다.
정재선 영천시 임고면(마늘 농사 경력 10년) "결국에는 이게(수확한 마늘이) 건조장에 들어가서 깨끗하게 말려서 나중에 작업을 해야 하는데 흙이 마늘 뿌리에 다 붙어서 들어가게 되면 나중에 마늘이 엉망이 되죠"
박철민 영천시농업기술센터 농촌지도사 "(앞으로도 비가 잦으면) 수확 시기가 늦춰져서 마늘 품위가 저하가 되고요. 마늘 저장하는 시기에 저장성이 많이 떨어져서 마늘 가격 하락 우려가 굉장히 높습니다"
"농업은 하느님과 50대 50 동업이라 했는데···요즘은 80대 20"
농민 한 분은 기자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농업은 하느님과 50대 50 동업이라고 했는데 요즘은 하느님 80, 농민 20도 안 되는 것 같아요"
이상기후가 수확을 코앞에 두고도 작황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으로 농촌 들녘을 내몰고 있는 것입니다.
농민들의 바람처럼 수확이 이뤄질 6월까지 일조량이 풍부해 '2024년 영천의 마늘 작황은 좋습니다'라는 소식이 들려오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