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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크와이드] "흉상 철거 결정은 역사 쿠데타"···홍범도 장군의 '절규'

8월 말부터 육사 교정 내 홍범도 장군을 비롯한 독립 영웅 흉상 이전을 둘러싼 논란이 뜨거웠습니다. 육군사관학교는 결국 홍범도 장군의 흉상을 철거하기로 결정했고, 다른 흉상들은 교내 다른 곳으로 이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갑작스러운 독립 영웅 흉상 이전 소식에 반발 여론은 거세게 일고 있습니다. 특히 뉴라이트 성향의 학자가 홍범도 장군의 흉상 철거에 관여한 점이 알려지면서 윤석열 정부의 역사관도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이동순 영남대 명예교수로부터 홍범도 장군의 흉상 철거를 둘러싼 논란의 핵심 쟁점을 들어봅니다.

[김상호 사회자]
지난 8월 말 육군사관학교가 독립운동가들의 흉상을 이전 혹은 철거하겠다는 얘기가 전해지면서 그 논란의 중심에 서 있던 홍범도 장군을 둘러싼 이야기들이 계속 진행 중입니다. 오늘은 지난 42년간 홍범도 장군을 연구한 이동순 영남대 교수님 모시고 오늘 이런저런 이야기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교수님 어서 오십시오.

[이동순 영남대 명예교수]
안녕하십니까?

[김상호 사회자]
제가 말씀드렸습니다만 다소 뜬금없다는 이야기들이 처음에 대체로 차지했던 이야기인데요. 갑자기 육군사관학교가 홍범도 장군을 비롯한 여러 독립 영웅의 흉상을 이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누구보다도 홍범도 장군을 오랫동안 연구하신 우리 이 교수님은 감회 혹은 소회가 남다르실 것 같은데 먼저 이 교수님 소회를 먼저 듣고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이동순 영남대 명예교수]
이게 참··· 뭔가 좀 이야깃거리가 될 만한 이야기를 가지고 우리가 이렇게 만나서 진지하게 참 마음속을 털어놓게 된다면 얼마나 바랄 나위가 없겠습니까마는 너무 어처구니가 없는 일로 이렇게 여러분과 만나게 되어서 너무 막 만감이 교차합니다. 이번 정부 들어서 여러 가지의 어떤 징후가 나타나긴 했지만 이번에 육사 본관 앞에 다섯 분 독립투사의 흉상을 들어낸다고 하는 아주 충격적 보도를 접하고 난 다음에 딱 들었던 첫 번째 생각이 아하, 기존에 우리 오랫동안 지속돼 온 그 한국의 독립운동사 자체를 둘러 파낸다는 그런 생각. 그런데 워낙 국민적 저항이 아주 세찼고 그 유족이나 후손 혹은 기념사업회 이런 분들이 막 비판하고 반발하는 그러한 성토를 하니까, 그러면 내부는 육사 안의 다른 곳으로 이전하겠다, 그러나 홍범도 장군은 철거하겠다, 이런 이야기를 했는데, 여기서부터 아주 엄청난 문제가 발생하죠. 단추 잘못 끼우기.

[김상호 사회자]
제가 지금 교수님 말씀을 듣는 과정에서 굉장히 많은 걸, 감정적인 걸 억누르고 계신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여러 가지 그 어느 특정한 부분보다는 전체적인 좀 더 큰 의미에서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은데, 우리 교수님께서는 독립운동가인 이명균 선생님의 후손이시기도 하시고 오랫동안 홍범도 장군을 연구해 오셨습니다. 그래서 굉장히 방대한 양의 홍범도 장군 관련 전기를 집필을 하시기도 하셨는데요. 특별히 이래서 또 홍범도 장군을 콕 집어서 누구보다 잘 아시니까 이런저런 이유를 붙여서 더 이상 육사 교정에 홍범도 장군의 형상이 있는 것은 안 된다, 이런 취지의 말이 나올 때마다 누구보다 잘 아시니까 다른 남다른 심경이 있으실 것 같습니다. 일종의 뭐 지금도 말씀을 분노를 누르고 계신 것 같은데, 짧게 처음 얘기, 제일 처음 이 발표를 들으셨을 때 제일 먼저 드신 생각은 어떤 겁니까?

[이동순 영남대 명예교수]
뭔가 근본에 대한 부정, 이런 생각이 들었고요. 정말 우리 한국인이라면 차마 해서는 안 될 금단의 영역을 이렇게 함부로 건드리고 있구나,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김상호 사회자]
이게 과정이 더 우리 국민들이 의아한 것이 그동안 사실은 좌든 우든 진보든 보수든, 어떻게 보면 우리가 전혀 손을, 그러니까 말을 함부로 할 수 없고 절대로 이렇게 쉽게 얘기를 할 수 없는 영역으로 여겨져 왔던 게 독립 영웅들에 대한 부분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사실 실제로 홍범도 장군도 지난 2021년 8월에 굉장히 여러 어려운 과정을 사실은 오랜 세월 동안 노력을 거쳐서 진보 정부든 보수 정부든 다 노력을 해서 결과적으로 2021년에 국내로 유해를 모셨는데, 그리고 대전 현충원에, 이것도 약간 아쉬운 점이 있긴 합니다만 안장했습니다. 무려 123년 만의 귀환이고요. 그리고 이 모실 때 그 공군 조종사의 그 말은 굉장히 많은 울림이 있었는데, 딱 2년 지나고 난 뒤에 평가가 이렇게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분이 궁금해하시는 것 같아요. 교수님 보시기에는 윤석열 정부가 왜 육사 내의 홍범도 장군의 흉상을 옮기려고 할까, 어떻게 그 이유가 뭐라고 추측하시는지요?

[이동순 영남대 명예교수]
굉장히 아주 농도 짙게 그런 것들이 드러나고, 또 여러 뉴스 보도에서도 밝혀진 바이지만, 육군사관학교 안에 그 뉴라이트 계열의 학자가 총 실무 책임을 지고 흉상 이전의 모든 일을 관장하고 있더라고 하는 게 밝혀진 사실이죠.

[김상호 사회자]
일종의 그것만 봐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렇게 보시는군요. 아까 말씀하셨지만 다른 다섯 분의 독립 영웅 중에서 다른 네 분은, 다 네 분이 다 같은 배경을 가지신 게 아니고 조금씩 배경들이 다 다르신데, 그중에서 홍범도 장군이 사실은 콕 찍혔다고 할까요? 아니면 딱 집어서 홍범도 장군을 지목해서 더 이상 육사 교정은 불가능하다고 얘기한 이유가, 교수님 말씀하신 것처럼 공산주의자다, 공산당에 가입했다는 건데요. 그것 이제부터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다른 분보다 제가 생각할 때는 우리 이 교수님만큼 홍범도 장군의 생애에 대해서 잘 알고 계신 분이 없다고 봅니다. 그래서 누구보다 잘 아실 것 같은데, 국방부 입장을 토대로 얘기를 하자면 1921년에 발생한 자유시, 이른바 자유시 참변이라는 이것에 연루가 되어 있다, 이 자유시 참변은 무엇이고 교수님, 연루 가능성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십니까?

[이동순 영남대 명예교수]
참 오늘의 우리가 우리 민족 전체를 고통 속에 빠뜨리고 있는, 그리고 헤어나지 못하는 그 분단의 비극, 그 분단의 비극의 발생은 바로 말씀하신 그 러시아 땅의 그 스보보드니, 옛날 이름은 알렉세옙스크(Алексеевск)인데, 그 스보보드니라고 하는 말의 뜻이 자유라는 것이거든요? 그래서 우리가 자유시, 자유시라고 부르는데, 그 봉오동 전투와 연속해서 일어났던 청산리 전투에서 엄청난 대승을 거두었던 우리 대한독립군 부대와 약 한 16개 이상의 군소 독립군 조직들이 일본군 사단급 병력의 아주 대규모 공격을 앞두고 피신을 하게 되죠. 그냥 있으면 그냥 아주 엄청난 비극이 발생하니까.

그래서 초겨울이 시작되는 무렵에 그 대장정을 거쳐서 아무르강을 건너가죠. 걷고 걸어서 아무르강을 건너가자마자 나타난 도시가 스보보드니인데요. 약 한 3,000명가량의 독립군 병력이 스보보드니로 진입하죠, 전부 완전 무장한 상태에서. 스보보드니 시민들은 깜짝 놀랐죠. 총기를 들고 있는 뭐, 이렇게 외국의 군대가 막 이렇게 함부로 막 돌아다니고 있고 그 지역의 치안을 관리하는 경찰과 군대 측에서 시민들의 불안감을 아주 굉장히 중시하고 요청했습니다. 무기를 좀 반납해라, 다른 나라에 일단 진입했으니까 당신들은 그냥 잠정적으로 여기 와 있는 어떤 체류민에 불과하다, 독립군으로서의 어떤 위상을 인정해 주는 것이 아니라 잠시 머물러 가는 이런 대우를 하면서 이제 무기를 반납하라고 하니까 여기에 대해서 의견이 둘로 나뉘었습니다. 이르쿠츠크파와 상해파라고 하는 두 파가 나뉘어져 있었는데, 이르쿠츠크파 반응은 러시아 측에 보다 친화적인 그러한 빛깔을 가지고 있었고 상해파는 뭔가 그 어떤 독립운동의 본질의 근간, 이런 것들을 굉장히 보수적으로 해석하면서, 우리는 근본이 군인인데 군인에게 어떻게 무기를 이렇게 무장을 해제하려고 하느냐? 이래서 결국은 그 두 파가 갈등이 아주 깊어졌는데, 러시아 홍군 측에서는 이렇게 이르쿠츠크파, 자기들의 요구를 수용하는 그 파를 앞세워서 반대하는 무장 해제에 반대하는 파를 공격하게 한 거죠.

그 무참한 공격 끝에 약 한 170명가량이 죽고 600명가량이 포로가 되고 그다음에 70명가량이 도망치다가 강에 익사하고 그리고 행방불명자가 또 여럿이고, 이렇게 아주 비극적 사건 이념 갈등, 분단의 깊은 골, 이런 것들이 6.25 전쟁이 일어나기 27년 전에 러시아 땅 스보보드니에서 일어났던 그 사실을 두고 보면 6.25 전쟁은 자유시 참변의 복제판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고요.

[김상호 사회자]
교수님이 보시기에는 홍범도 장군의 이른바 자유시 참변과의 관여 가능성은 그 정도라고 보십니까?

[이동순 영남대 명예교수]
그리고 난 다음에 생포된 600명을 대상으로 재판이 열렸을 때 홍범도 장군은 자청해서 재판관이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재판관이 되기를 원했던 까닭은 그 600명을 철저히 변호하고 러시아 홍군 측에서는 막 그 죄의 경중을 막 가리고 엄벌하려고 할 때 홍범도 장군이 나서서 거의 대부분 무죄로 석방을 시키고 약 30명가량이 그 감옥에 있었는데 이 30명도 그 이듬해에 모스크바에서 회의가 열렸을 때 레닌의 초청을 받았죠. 조선의 위대한 독립군 홍범도 장군을 정말 만나 뵙고 싶었다, 이래서 비밀리에 호텔로 사람을 보내서 면담을 요청했죠. 레닌이 요청했죠. 홍 장군이 먼저 가신 게 아니라 그때 그 자리에서 소원을 하나 좀 말씀해 주시면 돕겠다 했을 때 그 체포되어 있었던, 구속되어 있었던 30명을 마저 석방하는, 이러한 요청을 해서 모든 게 해결이 됐죠.

[김상호 사회자]
레닌을 만났다고, 초청에 의해서 레닌이 보자고 하고 보고 싶다고 해서 초청을 해서 만났다고 하셨는데, 바로 그런 부분입니다. 홍 장군이 공산당이라고 어쨌든 공산당 가입이 되어있지 않느냐, 그래서 계속 얘기하는 게 홍 장군의 공산당 가입 이력 때문에 본격적으로 더 문제로 삼는 것 같습니다. '소련 공산당에 홍범도 장군이 분명히 가입했다', 이건 어떻게 보십니까?

[이동순 영남대 명예교수]
한 나라의 공식적인 문서, 기자라든지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발표하는 공식적인 문서는 정말 철저히 검증되고 학계의 어떤 자문을 거쳐서 조금도 무언가 왜곡이나 모순이 없는 완전한 문장을 발표해야 하는데요. 왜 이런 말씀을 드리는가 하니까 이번에 국방부에서 발표한 공식적인 문서를 제가 읽고 아주 기절초풍을 할 뻔했습니다. 자유시 참변을 일으킨 주범이 홍범도 장군이고 자유시 참변에서 몰살당한 약 수천 명이라고 하더라고요. 몰살당한 수천 명 독립군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사람이 홍범도다, 이런 얼토당토하지 않은, 막돼먹은 그러한 문장을 국방부에서 발표했고요.

그다음에 레닌과의 면담도 레닌이 그 전설적인 조선의 독립군 홍범도 장군을 만나고 싶어서 사람을 보내서 불렀는데, 국방부 문서에는 막 그냥 홍 장군이 막 애걸복걸해서 만나고 싶어서 그렇게 막 볼셰비키 당원으로서의 보고를 하기 위해서 찾아갔다, 이런 또 막 터무니없는 왜곡을 하는 걸 보고 너무 놀랐는데요.

홍범도 장군이 소련 공산당에 가입한 건 맞죠. 왜냐하면 러시아 땅에 들어가서 독립군 휘하 조직들을 거느리고 있고 그들에게 군량과 피복과 여러 가지 생계를 책임을 지고 있는 사령관으로서 공산당에 입당해야지 그게 모든 게 해결되죠. 그뿐만 아니라 차후에 일본 제국주의와의 어떤 전투가 벌어지게 되었을 때 무력을 지원 요청을 할 수도 있다는 그러한 어떤 긴 안목과 홍 장군 나름의 계산속에서 입당을 한 것이지 그게 무슨 공산주의자로서의 어떤 입당과 활동 이런 것과는 전혀 거리가 먼 것이죠.

[김상호 사회자]
교수님 보시기에는 홍 장군은 그 당시의 공산주의 이념에 대해서 그것이 바탕에 깔린 것이 아니고 우리 민족의 독립이라는 어떤 효용을 위해서 이념을 선택한 것이다, 이렇게 보시는군요?

[이동순 영남대 명예교수]
홍범도 장군은 1922년 모스크바에서 열렸던 극동 피압박 민족대회에 초청받고 참석하실 때, 거기에 서류가 있습니다, 작성하는 난에. 러시아 말과 한자로 이렇게 항목이 되어 있는데 거기에 참 감동적인 대목이 있죠. 직업을 묻는 난이 있는데 거기에 의병 28년, 의병 28년이란 대목이 있고, 그다음에 장래 희망, 고려 독립, 이렇게 딱 네 글자를 보는 순간에 막 가슴이 울컥하고 눈물이 날 것 같았습니다.

우리가 공산주의자라고 했을 때 박헌영 혹은 또 이동휘 혹은 또 이승엽, 전문적 공산주의자들은 모스크바까지 가서 공산주의 이론을 대학교에서 학습도 하고 막 그렇게 돌아온 전문가들이겠죠. 홍범도 장군은 이름자도 겨우 쓰시는 아주 일자무식이죠, 학교도 안 다니셨고. 그런 분이 어떻게 마르크스-레닌주의에 무슨 책을 읽고 공산주의자가 되고 이렇게 이런 관점으로 함부로 매도할 수 있겠습니까? 그건 말도 안 되는 얘기이기 때문에···

[김상호 사회자]
또 하나, 참 어떻게 보면 교수님 입장에서는 참 낯 뜨거운 또 하나의 문제가 있는데 이거 짧게 그냥 한 번 여쭤보겠습니다. 이유는 뭔지 모르겠습니다만 '홍범도 장군이 빨치산이었다' 이야기합니다.

[이동순 영남대 명예교수]
바로 이 대목인데요. 우리가 빨치산이라고 했을 때 그 용어에 대한 개념 규정을 먼저 하고 들어가야 하죠. 1920년대 빨치산이라고 부르는 것은 러시아에서는 제정 러시아의 왕조 정부가 거느린 군대, 봉건 왕조의 군대와 싸우던 볼셰비키의 군대를 모두 빨치산이라고 그랬습니다. 파르티잔(partisan) 이것을 북한에서 번역할 때, 파르티잔이 발음하기 어려우니까 그냥 빨치산, 뭐 이렇게 했는데, 그 용어 자체가 한국의 험악한 근현대사를 거쳐 오면서 빨갱이와 빨치산의 빨자가 서로 음이 같으니까 굉장히 뒤숭숭하고 아주 좀 흉한 단어로 쓰였거든요? 지리산의 빨치산 이것과 1920년대 러시아의 빨치산 개념이 다릅니다. 그냥 유격대 비정규군 이렇게 보면 되고요. 홍범도 장군에게 빨치산이라는 용어를 썼거든요? 레닌도 그러고 조선의 위대한 빨치산이 있는데 그 말의 뜻은 조선의 위대, 일본 제국주의와 싸웠던 위대한 항일 투사 유격대, 이런 뜻이었습니다.

[김상호 사회자]
들으면 들을수록 가슴이 먹먹해지는 부분 중의 하나가 무엇이냐 하면, 홍범도 장군 독립운동하시면서 자녀와 아내를 잃으셨는데 가족들이 없어요. 그래서 이번 사태가 벌어졌을 때도 유족의 입장을 표명할 수 있는 유족이 모두 다 돌아가셔서 안 계시고, 그래서 또 특별한 목소리가 안 나오는 거 아니냐 이런 생각도 있고, 그다음에 한편 또 고려인 크질오르다, 원래 홍 장군 계시던 그 카자흐스탄에 있는 고려인들은 굉장한 많은 분노를 표시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이 벌어지고 있는 이 모든 사태에 대한 유족이 안 계신 상황, 그리고 그 고려인들의 반응, 이런 걸 보시면서 교수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이동순 영남대 명예교수]
홍범도 장군은 온 가족을 구국 활동에 바치신 분입니다. 국가에 전 가족을 헌납했다는 이런 말씀이 되는데요, 아들 둘과 아내가 있었죠. 아들 둘 가운데 큰아들이 홍양순인데요. 아버지를 닮아서 체격이 크고 15살인데 키가 한 170m 가까이 되고 막 아주 우람한 체격을 가졌다고 하더라고요. 둘째 아들은 결핵을 앓아서 아주 약골이었고, 큰아들은 아버지의 의병대에 합류하고 싶어서 늘 졸랐는데 어려서 안 데리고 가고 하다가 15살에 결국은 아버지 의병대로 들어갔습니다. 들어가서 막 모범적 활동을 하다가 중대장의 직책까지 맡았습니다.

그런데 함경남도 정평의 바맥이라는 곳에서 정규 일본군과 교전을 하던 날, 날이 저물어도 아들 홍양순이, 중대장이 돌아오지 않아서 모두 사람을 시켜서 찾아보게 했더니 솔밭에서 왜적의 총탄을 맞고 막 숨이 꺼져가는 중이었죠. 황급히 아버지가 달려갔을 때는 그냥 대화도 못 나누고 아들이 숨이 끊어져 버렸죠. 기가 막힌 장면 아니겠습니까, 참. 그날 저녁에 그 홍 장군은 밤새도록 책상 앞에 앉아서 막 아무 말씀도 안 하시고 꼬박 밤을 새우고 막 눈물도 흘리셨겠지요. 날이 샐 무렵에 당신이 쓰시는 일기장에 한 줄을 남겼다 그래요. 내 아들 양순이 죽었다, 딱 이것만 쓰셨고요.

둘째 아들은 결핵을 치료시키기 위해서 저 북만주에 홍 장군이 잘 아는 한의원에 맡겨두었는데, 여러 가지 모함 사건에도 걸리고 일본 밀정이 와서 괴롭히고 이러다가 결핵을 치료하지 못하고 악화하여서 죽었습니다.

집에 혼자 남아있던 아내는 일본군 밀정의 신고로 북측 순사 대장 임재덕과 김원흥, 두 아주 그 악당에게 체포돼 모진 고문을 받다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과정에서 '네 남편한테 편지를 써라, 순순히 귀순에 응하면 천황 폐하의 음덕으로 우리가 잘살게 될 것이오, 저항하면 죽음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편지를 쓰라고 하니까, '계집이나 사나이나 영웅호걸이라도 한 계집의 이야기를 어떻게 들을 수 있겠느냐, 너희들은 홍범도 장군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구나, 이 시간 이후로 나는 아무 말을 하지 않을 테니까 너희들이 알아서 해라'하고 난 다음에는 혀를 깨물어서 막 실신을 하셨는데 더욱 모진 고문을 해서 옥살이를 하셨죠.

그러니까 홍 장군은 남아있는 식구가 아무도 없습니다. 혼자인데 이 절대 고독 속에서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까지 당하셨고 노년기에도 그 차디찬 군불도 못 누는 방에서 혼자 쓸쓸하게 지내셨고, 극장 경비원 내지는 고려인 방앗간의 보조 역, 뭐 이런 거를 하시면서 노년기를 보내시다가 70대 중반에 작고하셨는데 이번 이런 일을 당하고 보니까 유족이 이렇게 계신 독립투사 어른들께서는 모두 막 이래서는 안 된다는 비판이 올라오는데 홍범도 장군의 경우는 아무도 이렇게 방패막이가 없단 말이죠. 그래서 저라도 나서야 하겠다라고 하고 막 시도 쓰고 막 글도 올리고 이런 노력을 미약한 노력을 이렇게 해 왔었습니다.

[김상호 사회자]
그 시 한 번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선생님, 직접 한 번 지금 말씀하신 모든 마음의 내용들이 아마 잘 표현되어 있는 시라고 생각이 듭니다. 직접 교수님 육성으로 시를 한 번 낭독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이동순 영남대 명예교수]
기회 주셔서 감사합니다. SNS에서 이 작품을 올리고 아주 엄청난 화제가 되기도 했었습니다.

<홍범도 장군의 절규> - 이동순

그토록 오매불망

나 돌아가리라 했건만

막상 와본 한국은

내가 그리던 조국이 아니었네

그래도 마음 붙이고

내 고향 땅이라 여겼건만

날마다 나를 비웃고 욕하는 곳

이곳은 아닐세 전혀 아닐세

왜 나를 친일 매국노 밑에 묻었는가

그놈은 내 무덤 위에서

종일 나를 비웃고 손가락질하네

어찌 국립묘지에 그런 놈들이 있는가

그래도 그냥 마음 붙이고

하루하루 견디며 지내려 했건만

오늘은 뜬금없이 내 동상을

둘러파서 옮긴다고 저토록 요란일세

야 이놈들아

내가 언제 내 동상 세워달라 했었나

왜 너희들 마음대로 세워놓고

또 그걸 철거한다고 이 난리인가

내가 오지 말았어야 할 곳을 왔네

나, 지금 당장 보내주게

원래 묻혔던 곳으로 돌려보내 주게

나, 어서 되돌아가고 싶네

그곳도 연해주에 머물다가

무참히 강제 이주되어 끌려와 살던

남의 나라 낯선 땅이지만

나, 거기로 돌아가려네

이런 수모와 멸시당하면서

나, 더 이상 여기 있고 싶지 않네

그토록 그리던 내 조국 강토가

언제부터 이토록 왜.놈.의 땅이 되었나

해방 조국은 허울뿐

어딜 가나 왜.놈.들로 넘쳐나네

언제나 일본의 비위를 맞추는 나라

나, 더 이상 견딜 수 없네

내 동상을 창고에 가두지 말고

내 뼈를 다시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로 보내주게

나 기다리는 고려인들께 가려네

[김상호 사회자]
듣고 있는 저도 마음이 먹먹해집니다. 그런데 교수님께서는 뭐 오죽하셨을까 싶습니다. 그래서 인터넷에서 처음에 여러 가지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 그런데 조금 황당한 일이 있었습니다. 페이스북이 9월 2일 이슈를 두고 혐오 발언,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인데요. 혐오 발언으로 규정해서 삭제 조치를 했습니다.

[이동순 영남대 명예교수]
그렇죠. 여기 혐오가 뭐가 있습니까?

[김상호 사회자]
그러게 말입니다. 여기서 그런데 뭐 이 일이 알려지자 지금 온라인상에서는 캠페인이 벌어져서 이슈를 다시 전하고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데 처음에 그 얘기 듣고 어떤 생각이 드셨습니까?

[이동순 영남대 명예교수]
1970년대에 언론 검열과 단속이 아주 심했지 않습니까? 사전 검열받고 또 자체 검열하고 뭐 그냥 압수수색, 이런 것들을 많이 했는데, 그로부터 세월이 참 수십 년이 흐른 2000년대 초반인데도 불구하고 SNS가 여전히 단속과 검열의 대상이 되는구나, 세상이 거꾸로 퇴행하고 있구나, 이런 아주 가슴이 갑갑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김상호 사회자]
오늘 홍범도 장군 관련해서 이런저런 다른 얘기도 좀 더 듣고 싶지만, 시간이 허락되지 않아서 끝으로 질문드리고 마쳐야 할 것 같습니다. 아직 이 논란의 후속 여파가 끝나지 않았습니다. 국방부는 계속해서 홍범도함의 이름을 변경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고, 해군은 그럴 생각이 없어 보이고 아직도 어떤 반응이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변경에 관한 이 논란 일어나는 것 자체와 앞으로 전망 어떻게 하시는지요?

[이동순 영남대 명예교수]
글쎄요. 이 정부가 막 작심하고 펼치는 이 무모한 일을 계속 관찰할 것 같은 그런 불안감이 드는데요. 양심을 갖춘 정상적 사고를 갖춘 인간이라면 절대로 해서는 안 될 불경스러운 짓, 손을 대서는 안 될 그러한 어떤 존엄한 부분, 이런 것들을 감히 손을 대었단 말이죠. 그래서 다시 한번 간곡히 요청하는 바이지만 적어도 독립투사 다섯 분의 흉상만큼은 손을 대지 않았으면 좋겠다, 원래 있던 자리 그대로 두어서 평지풍파를 일으키지 말라,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네요.

[김상호 사회자]
네, 오늘 시인이시고 지난 42년간 홍범도 장군 연구해 오신 이동순 영남대 명예교수 모시고 홍장군 관련해 여러 가지 이야기 듣고 좋은 시도 들었습니다. 오늘 나와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이동순 영남대 명예교수]
감사합니다.

이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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