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발하는 '응급실 뺑뺑이'
2023년 9월 2일 토요일, 구미에 사는 김 모 씨는 19개월 된 아기가 밤사이 혈변을 보고 복통 때문에 자지러지게 울자, 8시쯤 아기를 데리고 인근 A 병원으로 향합니다.
이 병원은 구미시로부터 연간 수십억 원의 지원을 받아 365일 소아 진료센터를 운영하는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병원 관계자들로부터 아기가 장중첩이 의심되지만, 자신들의 병원에서는 치료가 어렵다는 말을 듣게 됩니다.
김 씨 부부는 우는 아이를 자가용에 태운 채 대구의 병원으로 향합니다.
이때 김 씨 부부는 119의 안내로 B 병원에 도착했지만, 이 병원은 장중첩 자체를 처치하지 못하는 곳이었습니다.
아기의 상황을 본 병원 의사는 119구급차를 불러 곧장 다른 종합병원으로 안내합니다.
꽤 먼 거리의 그 병원으로 가기 전 그나마 거리가 가까운 다른 C 병원에서 처치가 가능하다는 신호가 떴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병원에 도착해 보니 초음파는 어렵고 CT는 가능하며 장중첩을 처치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아기의 부모는 그 병원을 떠납니다.
병원 관계자가 설명하기는 했지만, 된다는 것이 아니라 안된다는 뉘앙스였다고 합니다.
응급 상황에서 그 정도면 그 병원에서 처치하지 않은 이유를 물었더니 아기의 부모는 된다는 말이었으면 왜 다른 병원으로 갔겠냐고 반문했습니다.
구급차 안에서 D, E 병원에 연락했지만 받아주기 힘들다는 답변을 받았고 결국 F 병원으로 가서 처치를 받았습니다.
응급실 뺑뺑이가 아니라고?
취재 과정에서 각 병원은 각자의 대응 상황을 밝혔는데, 이번 사례는 대처가 잘 된 사례로 문제가 없다는 태도이었습니다.
물론 아기가 9월 4일 월요일 아침 건강하게 퇴원했으니 다행이고 8시부터 3시간 만에 병원 처치를 받을 수 있는 상황이 됐으니 여타 뺑뺑이 사례와는 다르다는 건데요, 대처를 잘한 사례로 치부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아 보입니다.
그중에서 한 가지만 들자면 직접 방문한 두 곳의 병원 모두 초음파는 안되고 CT 촬영은 된다는 것입니다.
왜 이런 사태가 벌어지는지 응급의학과와 영상의학과 교수와 전문의들에게 물어보니, 초음파는 의사가 보는 것이고 CT는 영상기사가 촬영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보통 큰 병원의 경우 영상기사들은 당직을 서는데 초음파 담당 의사는 당직을 서지 않거나 서더라도 기존의 수술 등의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어느 한 병원이 아닌 시스템의 문제
응급환자를 제때 치료하기 위해서는 전문 진료과목별로 대여섯 명의 의사가 당직을 서야 하는데 현실적으로는 힘들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병원에 도착해 진료받기 전까지 차 안에서, 119구급차라 하더라도 환자의 병명을 정확하게 알 수 없어서 응급환자를 쉽게 받기 힘든 구조라고 합니다.
조석주 부산대 응급의학과 교수는 "환자가 머리를 다쳤는데 뇌출혈로 수술해야 할지 수술 안 해도 될 환자인지 알 수가 없는데 응급실에서 오라 마라가 가능하겠나? 오라고 했는데 뇌 수술을 해야 하는데 자기네 병원에서 수술이 안 되면 오라고 한 의사는 대책이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조 교수를 비롯한 응급의학 전문가들은 예전의 1339 같은 시스템을 보강해서 이송 중 기초 진단과 병원 간 전원을 원활하게 할 방안이 시급하다고 조언하고 있습니다.
2023년 3월 대구에서 10대가 응급실 뺑뺑이를 돌다 사망하는 사건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처치할 수 있는 병원을 찾아 응급환자를 최대한 빨리 이송할 수 있는 시스템 구축이 시급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