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104년 전 3월 1일, 당시 들불처럼 번져나갔던 3.1 만세운동은 대구에서도 대규모로 열렸습니다.
대구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한 사람 가운데 한 명이 대구의 의사이자 교육자인 이범교 선생이었습니다.
40년 가까운 세월, 일제의 압박에도 병원을 열고 독립 운동을 이어갔지만, 그의 헌신적인 삶은 제대로 조명받지 못했습니다.
김철우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기자▶
1919년 3월 1일.
종로의 탑골공원에서 울려 퍼진 대한독립 만세 외침은 전국으로 퍼져나갔습니다.
사흘 뒤 독립선언서는 대구에 도착했고 이만집 선생을 비롯한 독립운동가들은 3월 8일 서문시장 장터에서 대한독립 만세를 외쳤습니다.
시민과 학생들이 합류하면서 만세 행렬은 대구시가 행진으로 이어졌습니다.
3.1운동 1년 전부터 독립운동에 합류한 이범교 선생은 당시 대구 시내에 병원을 연 지 6년 된 의사였습니다.
이범교 선생은 이만집 선생과 함께 3.8대구만세운동을 주도했다가 일본 경찰을 피해 중국으로 가 상해임시정부에서 요직을 맡게 됩니다.
◀박현규 경북남부보훈지청▶
"3.1운동 당시 대구에서 일어난 3.8만세운동을 주도하시고 그 후로 상해임시정부로 가셔서 교통부의 교통위원(국무위원)이 되셔서 인재 발굴과 정보 수집에 힘쓰셨습니다."
군자금 모집을 위해 러시아로 간 이범교 선생은 배영학교와 병원을 설립한 뒤, 1921년에는 이범석 장군을 모셔서 군사 훈련을 포함한 인재 양성에 주력합니다.
1922년 학교 업무로 영천에 돌아온 이범교 선생은 일본 경찰의 감시 때문에 출국하지 못한 채 신간회를 중심으로 국내에서 독립운동을 이어갑니다.
◀고원구 영천항일독립운동 선양사업회 사무국장▶
"항일운동을 하시면서 영천 과전동에서 병원을 개원하시고 일경(일본 경찰)들의 압박에 못 이겨서 영천 청통면 원촌리라는 곳에 가서 다시 병원을 개원해서 (항일운동을) 하다가 너무 심한 압박을 받고."
일제의 재판 기록과 상해임시정부 기록에 일부 남아있을 뿐 그간 덮여있다시피 한 선생의 독립운동은 후손들의 끈기와 노력으로 재조명되고 있습니다.
MBC NEWS 김철우입니다. (영상취재 한보욱, CG 김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