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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크ON] ① 희생자 절반이 대구·경북민 ‥·84년 전 '장생탄광' 수몰 참사는?

김은혜 기자 입력 2026-03-02 10:00:00 조회수 20

1942년 2월 3일, 일본 야마구치현 우베시에 있는 해저 탄광인 ‘장생탄광’에서 수몰사고가 발생해 138명의 조선인 노동자들이 희생됐습니다. 84년이 지났지만, 희생자들은 아직도 차가운 물 속에 있습니다. 3.1절을 맞아 장생탄광 희생자 유해 발굴을 위해 어떤 움직임이 있고, 앞으로 어떤 노력과 지원이 필요할지 살펴봅니다.

[김상호 사회자]
조덕호 장생탄광 한국추모단장, 장생탄광 희생자 귀향 추진단 대표이신 최봉태 변호사 두 분 모셨습니다. 먼저 조덕호 단장께 장생탄광 사고가 어떤 것인지 들어보겠습니다.

[조덕호 장생탄광 한국추모단장]
장생 탄광은 일본 야마쿠치현 우베시에 있는 중소 규모의 탄광입니다. 1913년에 채굴을 시작해서 1922년에 갱도가 무너지는 사고가 한차례 발생했고요. 1932년에 다시 채굴을 시작했지만, 1941년에 또 수몰 사고가 있었습니다. 이후 1942년 2월 3일에 또 수몰하고가 나면서 더 이상 복구가 어렵게 되자 갱도 입구를 막아버렸습니다.

장생 탄광은 일본의 많은 탄광 중에서도 작업 환경이 매우 열악한 지역으로 알려진 곳으로 희생된 노동자 183명 중 조선인이 136명, 일본인 47명입니다.

[김상호 사회자]
최 변호사님 일본 내에서도 사고 위험이 높기로 악명이 높았다는데, 작업 환경에 도대체 어느 정도였나요?

[최봉태 장생탄광 희생자 귀향추진단 대표]
제가 일반적으로 설명을 하는 것보다는 그 당시에 강제 동원된 대구 분인 김원달씨가 가족들에게 보낸 편지가 있습니다. 그 편지를 그대로 제가 한번 읽어드리는 게 훨씬 더 실감이 날 것 같습니다. 편지 내용은 이렇습니다.

<바다 밑에 이 갱도가 통과하고 있소. 바다 위를 다니는 어선의 통통거리는 소리가 들려올 정도로 아주 위험한 장소이고 탈출하기도 상당히 어려운데 울타리가 3m 정도로 두꺼운 송판으로 둘러져 있고 그 밖을 빼곡한 철조망이 둘러쳐져서 있어서 마치 포로수용소와 같은 곳이다>

<경비도 엄하고 일체의 자유도 없이 외출도 할 수 없는 구속된 가운데 생활하고 있고 몸 상태가 좋지 않아서 일을 거부하면 동물 이하의 취급을 받고 폭력을 당해 식사도 하지 못하고 굶고 지낸 일이 많다, 어머님 어떻게 해서라도 살아서 탈출해서 꼭 가겠습니다>

이 편지 것만 보더라도 작업 환경이 얼마나 험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김상호 사회자]
수몰 희생자들의 70% 이상이 조선인이었고 절반은 대구경북 출신이라고 하던데요. 조 단장님, 워낙 위험하고 열악한 상황이니까 조선인들을 강제로 이에 투입한 건가요? 아니면 뭐 다른 특별한 이유가 있었을까요? 또 대구 경북 출신이 많은 이유가 있을까요?

[조덕호 장생탄광 한국추모단장]
사고 당시 조선인 138명 중 75명이 대구경북 출신으로 많은 이유는 일제 강점기 후반에 처음에는 모집, 그다음에는 정부 알선, 나중에는 강제 징용 형태로 모집이 강화됐고요. 한 사람이 먼저 가면 뒤따라서 마을 사람들 혹은 가족들이 전부 따라가는 그런 형태를 취했습니다. 특히 지리적으로, 교통의 측면에서도 대구경북이 매우 가까웠습니다.

또한 1940년경에는 대구경북 지역에 큰 흉년이 많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생활 환경 탓 여러 가지로 어려운 형편이었기에 조선인들은 일본인들이 가기 꺼리는 열악한 곳으로 집중 배치된 탓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김상호 사회자]
사고가 난 뒤에 일본 정부와 회사, 일본 언론까지도 우리가 수긍할 수 있는 방향은 아니었던 것 같다는 말들이 나오고 있는데 최 대표께서 설명해주시죠.

[최봉태 장생탄광 희쟁자 귀향추진단 대표]
제가 알기로는 일본에 있는 해저 탄광에서 난 사고 중에서도 가장 큰 사고라고 알고 있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도도 제대로 안 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게 보도가 되면 전쟁하는 데 방해가 된다고 통제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래서 제대로 알려지지도 않은 상황에서 입구를 막아버렸습니다.

갱도 입구를 막겠다는 것은 일체의 구조 활동을 하지 않겠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거 아니겠습니까?노동자들을 인간으로 보지 않고 그냥 전쟁 물자 취급을 하고 그러니까 갱도 입구를 막아버리니까 지금까지도 다시 구조할 수도 없는 그런 상황이 된거죠.

[김상호 사회자]
이후에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귀환을 하기 위한 여러 가지 노력이 진행되고 있는데요. 민간 차원에서 어떤 활동이 이어지고 있나요?

[최봉태 장생탄광 희생자 귀향추진단 대표]
귀향추진단 설립은 제가 주도적으로 한 것은 아니고요. 현지에 다녀오신 분들이 그냥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모여서 단체를 만들어야 하지 않겠느냐 해서 자연스럽게 구성됐고요. 그동안 현장 방문단을 꾸려서 현장에 가는 행사를 주로 해 왔고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통해서 이 부분을 제대로 알려내는 일, 장생탄광 유족들을 만나서 앞으로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협의를 하는 일, 대구시의회에서 조례를 만들어내는 이런 일들을 주로 했고요.  3월 28일에 창립대회를 예정하고 있습니다.

[김상호 사회자]
지난 2월 7일에 일본 현지에서 열린 희생자 84주기 추도식은 6차 방문이었다고 하는데요. 이전 방문과는 차이가 있었다고요?

[조덕호 장생탄광 한국추모단장]
여러 가지 측면에서 많은 차이가 있었습니다. 2024년 7월 15일에 1차 방문을 시작으로 2026년 2월 6일, 6차 방문까지 약 일 년 반 동안에 6차례의 방문이 있었습니다.특히 2025년 3차 방문 때는 서울, 전남 지역을 포함해서 100여 명에 이르는 대규모 방문단이 가게 되었습니다.

이번 6차 방문에는 귀향추진단 이외에도 희생자 유가족회, 한일의원연맹 다수의 의원들, 행정안전부와 대한변협 등에서 많은 분이 참석했습니다. 또한 특히 두개골이 발견된 이후 처음 시행되는 한일 합동 추모제라서 더욱 뜻이 있는 것 같습니다.

[김상호 사회자]
방금 두개골 발견이 있었다고 말씀하셨는데 유골 수습을 위해서 수중 조사가 진행됐었는데요. 이 과정에서 두개골을 발견한 성과도 있었지만, 대만 국적 잠수사가 목숨을 잃는 안타까운 사고도 있었다고 합니다. 어떻게 보면 한일 두 나라가 공식적으로 역할을 하지 않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한데요. 앞으로 유해 발굴을 위한 수중 조사에 어떤 조치가 필요하다고 보시나요?

[최봉태 장생탄광 희생자 귀향추진단 대표]
숨진 대만 잠수사는 자원봉사를 하러 오셨습니다. 오게 된 배경을 말씀드리면 장생탄광이 해저탄광이라 일반 다이버는 상당히 하기가 어렵습니다. 테크니컬 다이브라고 해서 동굴 탐사 같은, 탐험에 준하는 행위를 하는 전문 잠수사들이 필요한데 이런 분들이 전 세계적으로 많지가 않습니다.

일본에서 수중 조사를 시작했던 이사지라는 분이 전문 동굴 탐사 전문의 잠수사다 보니까 전 세계에 인맥이 있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좀 도와주면 좋겠다고 호소했고, 그분이 오신 겁니다. 이분도 일반 잠수사를 대상으로 교육하던 진짜 전문적인 잠수사임에도 불구하고 유골을 수습하러 오셨다가 숨지신 안타까운 일이 발생했는데요.

대구 경북 사람으로서 참 미안합니다. 우리 조상들 유골을 수습해 주러 오셨다가 특히나 대구 경북 분들이 많잖아요. 이 대만 잠수사 분이 무슨 이해관계도 있는 것도 아니고 국적도 다른데도 이렇게 돌아가셨어요. 국적을 넘어서 의를 행한 분에 대한 빚을 갚고, 죽음이 헛되이 되지 않도록 정말로 정말 시민 정신을 발휘해서 나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상호 사회자]
유골 수습을 위한 수중 조사 자체가 진행되기 위해서 앞으로 더 필요한 조치 어떻게 보십니까?

[조덕호 장생탄광 한국추모단장]
지금까지는 주로 일본의 ‘역사를 새기는 모임’에서 주도적으로 해 왔습니다. 그런데 이번 사고로 일본 시민단체들이 상당히 좀 운신의 폭이 좁아진 상태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대한민국의 시민단체와 유족회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해야 하고 특히 우리 정부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상호 사회자]
최근 한일 정상회담에서 장생탄광 관련 합의가 있었는데요? 수중 조사에 진전을 줄까요?

[최봉태 장생탄광 희생자 귀향추진단 대표]
정확하게 양국 정상이 어떤 약속을 했는지 좀 짚어봐야 하는데요. 양국 정상이 장생탄광 관련 합의는 수습된 유골에 대한 DNA 감정에 대해서 협력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민간인들이 목숨을 걸고 유골을 수습해 오면 DNA를 감정해서 유족을 찾고, 보관하는 정도의 협력을 하겠다는 이야기를 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저는 굉장히 양국 정부가 무책임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양국 정상은 나라를 국민을 대표하는 사람들 아닙니까? 그리고 일본 정부가 자기들이 전쟁하는데 필요해서 강제 동원을 한 것이고 또 우리 국가는 힘이 없었기 때문에 국민을 지켜주지 못한 것 아닙니까? 양국 정부가 정말 책임 의식이 있다면 직접 정부가 최선을 다해서 희생자 유골을 수습하겠다고 해야 국가의 격이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고작 민간인들이 위험을 감수해서 수습하고 오면 DNA 감정을 하겠다는 정도의 태도로 밖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저는 민주 국가에서는 있을 수 없다고 생각을 하고 있고요.이제 국가가 나서야 합니다. 지금 국가가 나서면 저는 충분히 유해 발굴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현장에 가보면 바다가 그리 깊지 않습니다. 피아라고 해서 환기구가 설치돼 있는데 80년 전에 이 환기구를 바다에 설치할 수 있었다면, 이렇게 기술이 발전된 지금은 물막이를 설치해서 물을 빼고 하거나 다른 장비를 동원해서 유골을 수습할 수 있을 겁니다.

지금은 수중 조사를 민간 잠수사들이 하고 있지만, 우리 해군이나 일본 해상 자위대에도 전문 인력이 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나서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조덕호 장생탄광 한국추모단장]
이번 잠수사 사망 사고를 보면 수중 조사가 얼마나 위험한지 잘 알 수 있습니다. 이제는 민간에게 맡기지 말고 양국 정부가 외교적으로는 말할 것도 없고 기술, 재정적으로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이번 사고를 계기로 세계도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세계적으로 많은 잠수부들이 모여서 유해 인양 작업에 동참하고 있고요. 이와 같은 관점에서 볼 때 양국 정부는 이런 상황을 명확히 인식하고 이에 대한 조치를 선제적으로 취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사건을 대한민국 국민도 많이 잘 모르고 계시거든요. 양국 국민이 과거의 일을 명확히 파악하고 특히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도록 여러 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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