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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대구 변호사 사무실 방화 사건 근본 원인은?


2022년 6월 9일 오전 10시 55분 대구 수성구 범어동 대구지방법원 옆 변호사 사무실 건물에서 방화로 보이는 화재가 발생해 방화 용의자를 포함해 7명이 숨지고 40여 명이 다쳤습니다.

방화 용의자인 C씨(69년생)는 시너로 보이는 인화물질을 들고 건물 2층에 있는 변호사 사무실로 들어가 불을 지르고 사무실 직원들과 함께 숨졌습니다. 경찰 조사에서 숨진 변호사 사무실 직원의 몸에 자상으로 보이는 흔적이 발견되면서 방화 전후 치열한 격투나 생각보다 더 끔찍할 수 있는 상황이 벌어졌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C씨가 불을 지른 변호사 사무실은 C씨가 6억 원대 투자금 반환 소송을 해온 신천시장 정비조합 업무대행사와 대행사 사장 L씨가 소송을 맡긴 변호사 사무실입니다.

L씨는 불이 난 변호사 사무실의 사무장과 친분이 있어 사건 수임을 맡긴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 사무장과 사건 수임 변호사는 둘 다 사건 당시 사무실에 없었습니다. 이 변호사 사무실은 변호사 두 명이 사실상 사용하고 있었는데, C씨는 정작 사건을 수임한 B변호사에게 원한에 가까운 감정을 가졌던 것으로 추정되지만 사건 당시 B변호사는 재판 참석 때문에 사무실에 없었습니다.

C씨의 재개발 소송 사건을 담당했던 변호사들의 전언에 따르면 K변호사와 나머지 직원들은 C씨 관련된 내용도 제대로 몰랐을 가능성이 크다고 할 정도였지만 화를 당한 것은 K변호사와 사무실 직원들이었습니다. 테러에 가까운 방화 자체도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지만 애꿎은 희생이라고밖에 볼 수 없는 결과가 되고 말았습니다.

악연의 시작

C씨는 방화로까지 이어진 문제의 소송들을 어떻게 시작하게 됐을까?

C씨와 L씨의 관계는 십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대구 범어동의 신천시장 시장 상인들은 재개발을 추진하게 됩니다. 상인들은 ‘신천시장 정비조합’을 결성했고 사실상 시행사 역할을 하게 됩니다.

재개발 경험이 없었던 신천시장 조합에서는 재개발 업무를 실무적으로 추진할 대행사를 찾기 시작했고 이 과정에 L씨가 신천시장 정비조합과 업무 대행 계약을 체결합니다. 이때가 2013년.

이후 재개발 사업이 추진되면서 대기업 건설사들이 신천시장 재개발에 뛰어들기 시작했고 그 과정에 대기업 건설사 대구지사장을 맡고 있던 C씨가 L씨를 통해 개발 사업에 투자를 하기로 하고 6억 원이 넘는 돈을 송금합니다.

하지만 당초 시장터에 주상복합아파트를 지으려던 시도는 사업성 때문에 실행되지 못했고 이후 대형마트로 개발한다, 현대식 상가를 조성한다, 여러 가지 가능성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사업은 제자리를 맴돌다시피 했고 시간만 흐릅니다.

C씨는 자기 돈만 투자한 것이 아니라 당시 사무실이 있던 건물의 신문사 직원의 돈까지 함께 넣었는데, 이 직원은 C씨를 믿고 돈을 넣은 상태여서 C씨에게 독촉을 했고 다시 시간만 흐르자 이 언론사 직원은 C씨가 일하는 대기업의 사장에게 이 사실을 알립니다.

C씨는 이 때문에 회사를 그만두게 됩니다.

소송의 시작

직장을 그만둔 C씨는 L씨를 상대로 투자금 반환 소송에 나서지만 몇 차례 소송에서 패소를 거듭하다가 일부 승소 판결을 얻어내기도 합니다. C씨는 이를 바탕으로 조합의 업무대행사가 용역비 명목으로 신탁사에 맡겨둔 수익금 증권에 압류를 거는 등 소송을 이어갑니다.

C씨는 대구의 한 건설사 임원으로 다시 일하기도 했지만 수시로 변호사 사무실과 법원을 오가다보니 여기마저 얼마 못 가 일을 그만두게 됩니다. 몇 년째 소송을 이어오면서 몇 번 변호사를 바꾼 C씨는 가족과 떨어져 혼자 대구에 살았는데 생활고에 시달리면서도 소송을 포기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시한폭탄

C씨가 변호사를 바꿔가며 소송을 이어간 것처럼 사업 진행이 되지 않다 보니 L씨와 L씨가 대표로 있는 업무대행사는 여러 건의 소송에 걸리고 큰돈 만져보려고 투자를 겸한 사업에 참여했다가 채권 채무 관계(이들의 주장이지만)만 생긴 사업자들도 생기기 시작합니다. 이들은 C씨가 L씨에 대한 원망도 많았지만 소송이 길어지면서 상대방 변호사나 관계자들에 대한 좋지 않은 감정도 표출하면서 평소에도 인화물질을 들고 다녔다고 합니다.

C씨와는 조금 다르지만 이런 저런 방법으로 투자를 겸한 사업참가자들 역시 신천시장 재개발 사업에 채권 채무 관계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정작 시장 재개발하려던 신천시장 상인들은 거의 고통에 가까운 현실을 감내하고 있다고 합니다.

온갖 문제가 발생하면서 신천시장 상인 비대위가 구성되는데 이곳의 비대위원장 Y씨는 간신히 시행사와 계약하고 공사를 마쳤지만, 분양이 제대로 되지 않는 바람에 공사대금 70억 원 정도를 지급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비대위원장은 상인들 백여 명의 개인 재산이 상가 등 건물을 지은 시공사에 의해 가압류된 상태로 C씨 못지않게 한계 상황에 이르는 상인들이 나올 수 있다고 걱정했습니다.


방치된 ‘민간 영역’

대구 수성구청에서는 신천시장의 상황을 파악한 뒤, L씨를 무자격 업자로 경찰에 고발하는 등 몇 차례 조치를 하고 그 외에도 민형사 고소·고발이 이어졌지만 실제 사업 주체에게 영향을 미쳐서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전통시장을 재개발하는 사업은 법적인 근거도 미약하고 상가 위치에 따른 수익 조정과 심지어 길거리 좌판 상인들과의 문제까지 겹치기 때문에 현행법과 제도 아래에서는 문제가 있음을 인지할 뿐 행정기관이나 사법기관에서 문제 자체를 풀어줄 방법이 없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규모가 있고 업력도 있는 정비업체들은 전통시장 정비 또는 재개발 사업에 뛰어들지 않다 보니 무자격 업자가 사업을 맡는 일도 많다고 합니다.

문제는 더 있습니다. 이런 정비사업이나 개발 사업의 경우, 사업 추진을 위한 금융권 대출을 안고 시작하게 되는데 대출 이자가 갈수록 늘어나기 때문에 분양이 안 되면 개발 사업 주체들의 집단 파산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대로면 제2, 제3의 신천시장은 더 생길 것이고 그로 인한 피해자도 늘면서 사회적 부담 역시 함께 커질 것입니다.

민간사업의 영역으로만 남겨두기 힘든 만큼 최소한 재개발 사업에 대한 전면적인 법과 제도의 재검토와 현실적 구제 방법을 찾아야 할 때입니다.

김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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