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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 "입학을 허가합니다"···나이 여든의 초딩, 산골 학교 살릴 해법 될까


산골 마을 초등학교서 열린 특별한 입학식
경북 김천 시내에서 산 넘고 강 건너 차로 50분을 더 가야 하는 벽지, 증산면.

사는 사람 천 명이 채 안 되는 이 산골 마을에 초등학교가 시끌벅적해졌습니다.

전교생이 3배로 늘면서 2024년 두 번째 입학식이 열리기 때문입니다.

2024년 봄 신입생은 2명뿐이었는데 초여름 문턱에서 새 학생이 15명이나 더 생겼습니다.

이 학교에 두 자릿수 입학생이 들어온 건 십여 년 만의 일입니다.

"입학을 허가합니다"···평균 나이 79살 '초1'
주인공은 평균 나이 79세 어르신들입니다.

평생을 이 산골 마을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먹고사는 게 고달파서, 시대와 상황이 허락하지 않아서 학교 다닐 기회가 없었습니다.

박래순 할머니 김천 증산초 1학년 "옛날 생각하니까 서러움이 확 북받쳐 올라와서 눈물이 막 쏟아져. 나는 8살부터 엄마가 돌아가셨어, 그래서 엄마 없이 컸기 때문에 너무 힘들게 컸어. 다른 애들 학교 가면 그거 따라가고 싶어서 막 혼자 울고 그랬어. 아직까지 실감도 안 나고··· 그저 그냥 마음만 울컥하고···"

자식들을 다 키운 뒤에도 첩첩산중에 사는 탓에 학업은 엄두를 내기가 어려웠습니다.

문해교실이 있는 노인대학이나 평생교육원을 다니려면 왔다 갔다 오가는 데만 차로 2시간 넘게 걸립니다.

그마저도 운전할 차가 있거나 데려다줄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하루 한두 번 다니는 버스를 타면 하루를 꼬박 버려야 하니, 이 마을 어르신들은 경로당에서 '행복 선생님'이 오는 날만 기다려야 뭘 배울 수 있었습니다.


못 배운 설움 풀고···학교와 마을도 살리고
이런 어르신들을 찾아내 학생으로 만든 건 학교와 마을 주민들입니다.

권경미 김천 증산초등학교장 "시대적으로 너무 어려운 시대를 지나면서 공부보다는 경제·노동 활동이 먼저였기 때문에 의무 교육을 못 받으신 분들이 아주아주 많은 거예요. 이런 분들에게 더 절실하게 학교의 역할이 필요했고··· 그리고 지역에서도 초등학교가 있어야지만 지역 소멸을 막을 수 있고 우리 아이들도 고생하지 않으면서 행복하게 학교에 다닐 수 있고···"

전교생 7명인 증산초등학교는 이 마을에 하나 남은 학교입니다.

사는 사람이 점점 줄고 아이가 없어지면서 학교도 하나둘 문을 닫았습니다.

증산초등학교 역시 다른 면의 초등학교와 통폐합이 여러 번 논의됐는데 학부모들이 동의하지 않자, 분교로 바뀌는 게 최근 확정됐습니다.

분교장 개편 다음은 폐교가 될 거라고 주민들을 예상했습니다.

만학도 어르신들의 입학은 학교와 마을 살릴 길이기도 했던 겁니다.

허상근 경북 김천 증산면 주민 "옛날에는 초등학교가 3곳 있었어요. 한 반에 40~50명 정도 됐습니다. 하나 남은 이 학교마저 없어지면 교육을 받으려면 굉장히 멀리 왔다 갔다 해야 하고··· 배울 곳이 없으면 젊은 사람이나 귀농·귀촌하는 분들이 여기로 살러 오지 않을 거 아닙니까?"

학교는 교육지원청을 설득해 어르신들 입학을 진행하고 교육 과정도 새로 준비했습니다. 매일 아침 등교하는 어르신들의 혈압 등 건강 상태를 확인할 의료 장비도 마련했습니다.

마을 사람들과 증산초 졸업생들은 어르신들이 학교 다니는 데 필요한 예산 4천만 원을 모아 기부했습니다.

이 돈으로 어르신들 책걸상도 사고, 교과서와 실내화, 책가방도 준비할 수 있었습니다.

밭일에 밀려 학업을 중간에 포기할까 어르신들에게 장학금도 주기로 했습니다.

온마을이 발 벗고 나서서 만학도들의 입학을 도운 겁니다.


온마을이 도와···마을 잔치 같았던 입학식
이렇게 열리게 된 5월 말 입학식.

이장님부터 온마을 사람들이 생업을 제쳐 두고 모였습니다.

축하 공연을 해줄 밴드도 왔습니다.

꽃다발을 안아 든 어르신은 왈칵 눈물을 쏟았습니다.

최병옥 할머니 증산초 1학년 "클 때 너무 없이 커서 그런 생각을 하니까··· (학교에) 들어오자마자 눈물밖에 안 납니다. 또 이렇게 용기를 내서 올 수 있다는 것도 반갑고 좋습니다."

가족들은 몰랐던 부모의 꿈을 응원했습니다.

전진식 최남주 할머니 아들 "예전에는 엄마, 부모님 손 잡고 (제가 입학생으로) 왔지만 지금 또 우리가 엄마 손 잡고 다시 오니까 새삼스럽네요. 그리고 또 이런 기회를 만들어주셔서 참 고맙고 좋습니다. 열심히 해서 대학교까지 가야지! 파이팅!"

어르신들은 이제 경로당 대신 매일 아침 학교에 갑니다.

배우지 못해 평생의 한이 됐던 글을 읽고 쓰는 법을 익히고 덧셈·뺄셈, 외국어도 공부하게 됐습니다.

담임 선생님이 생겼고, 반 친구도 생겼습니다.

만학도 학급의 목표는 성적이 아니라 '건강하게 졸업'하는 겁니다.

이달호 김천 증산초 1학년 "내가 44년생이에요. 살면서 표창장, 감사패 같은 건 많이 받았는데 졸업장이 하나도 없어. 오늘부로 한을 푼 것 같아. 졸업장 (받을) 생각하니까 얼마나 기쁜지 몰라요."

사실 만학도들이 폐교를 막은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경북에서도 울진 온정초가 2년 전부터 배우지 못한 어르신들을 신입생으로 받았습니다.

어르신들 입학이 아이 없는 농촌, 벽지 마을에서 학교를 살릴 방법이 될 수 있을까요?

증산초 선생님들과 주민들은 2025년에도 배우지 못한 어르신들의 입학을 돕고 이 마을에 학교가 사라지지 않게 힘쓸 계획입니다.

손은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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