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직원 해외 연수 가는 경북 청도군···"일본에 선진 문화 배우러"
전 직원을 해외에 보내주는 지자체가 있습니다.
경북 청도군입니다.
명목은 '선진지 견학'.
갓 입직한 신입부터 곧 퇴직을 앞둔 직원까지, 일반 공무원뿐만 아니라 행정 보조원과 환경미화원, 청원경찰, 도로보수원 같은 공무직 근로자도 모두 보내는데, 인원만 800명가량입니다.
한 명에 백만 원씩 지원해서 2년간 총 8억 원을 씁니다.
국가는 '일본'으로 정해놨습니다.
소속 과가 어디든, 직무가 뭐든, 연수 주제도 상관없이 일본 안에서 지역을 선택해 다녀오는 겁니다.
여행사 통해 자유롭게 떠나는데···'군민 복지'로 이어질 거라는 청도군
청도군의 추진 계획안을 보면, 3박4일 또는 4박5일 일정으로 직원들이 각자 자유롭게 계획을 짜라고 돼 있습니다.
'관내 여행사 이용을 권장'한다는 문구도 있습니다.
실제 여행사에 문의했더니 날짜와 인원, 가고 싶은 도시를 알려주면 연수 계획을 다 짜준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여행사 관계자 "날짜와 지역만 얘기해 주시면 그리고 취지가 뭔지만 얘기해 주시면 거기에 맞춰서 견적 뽑아드릴게요."
여행사가 참고하라며 보내준 해외연수 계획표에는 유명 관광지와 쇼핑몰 방문으로 3박4일 일정이 채워져 있었습니다.
2주 전까지 신청하고, 다녀와서는 A4용지 1~2장 분량의 보고서만 내면 됩니다.
선진지 견학이라 했지만, 사실상 전 직원을 대상으로 '선심성 해외여행'을 보낸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여기 투입되는 비용은 '국제화 여비' 예산에서 나왔습니다.
'국제화 여비'는 공무원의 업무 능력을 높일 목적으로 해외 시찰이나 견학을 보내고 국외 훈련에 쓸 수 있는 돈입니다.
청도군은 2023년 3억 원 수준이던 국제화 여비 예산을 2024년 7억 7천만 원으로 2.5배 늘렸습니다.
직원들의 식견을 넓혀서 지역 발전을 앞당길 거라는 게 청도군의 입장입니다.
백종인 경북 청도군 총무과장 "우리 군에서 추진하는 농업 대전환, 문화 관광 허브의 도시 또 평생학습 도시 이런 비전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서 우리 공무원 내부에서부터 좀 적극적인 마인드로 변화해야 하겠다, 그런 취지에서 견학을 추진하게 됐습니다. 우리 직원들이 가서 일본의 좋은 점 이런 점을 보고 오면 서서히 우리가 보는 높이만큼 생각이 높아지지 않겠나··· 그 높아진 생각은 앞으로 우리 주민들한테 그만큼 또 도움으로 더 큰 복지로 이어질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세금 쓰는 공무출장인데···서면으로 셀프 심사
해외 견학도 공무 국외 출장입니다.
청도군 공무 국외 출장 규정에 따라 별도의 위원회를 설치하고 출장의 타당성을 심사받아야 합니다.
규정에는 출국 30일 전까지 출장계획서와 관련 증빙서류를 첨부해 심사위원회에 심사를 요청해야 하고, 심사 대상이나 안건과 이해관계가 있는 사람은 심사 위원으로 참여하지 않아야 한다고도 정해놨습니다.
청도군에 따르면 현재까지 일본 선진지 견학에 다녀온 소속 직원은 11개 팀, 120여 명입니다.
청도군은 선진지 견학 대상인 군청 공무원으로만 구성된 심사위원회가 이들의 출장 계획서를 서면으로 심사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사실상 '셀프 심사'로 전 직원을 해외 견학 보내는 셈인데, 청도군이 업무 연관성이나 출장의 타당성을 제대로 따져봤는지 의문이 남습니다.
예산 그대로 통과시킨 군의회···알고 봤더니 의원 국외 여비도 1.5배 늘어
군의회의 감시도 없었습니다.
청도군의회는 2023년 12월 본회의에서 군의원 7명 전원이 참석한 가운데 이 예산안을 이견 없이 통과시켰습니다.
그보다 앞선 예결산특별위원회 회의에선 국제화 여비 증액과 관련해 "민생 예산들이 많이 줄어든 시점이다 보니 좋은 연수를 준비하셔서 성과가 있으셨으면 좋겠다"는 당부의 말뿐이었습니다.
이렇게 통과된 청도군의 2024년 세출 예산을 살펴봤더니, 군의원들 해외연수에 쓰는 '의원 국외 여비도 2,600여만 원에서 4,100만 원으로 전년보다 1.5배 늘었습니다.
외유성이란 비판에도 군의원 본인들 역시 해마다 가는 해외연수, 군청 직원들은 가지 말라고 하기 어려웠던 걸까요?
군민들 생각을 들어봤습니다.
다녀와서 좋은 정책으로 결과를 내면 된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박종환 경북 청도군 주민 "좋은 거를 보고 배우고 와서 청도군을 위해 활성화하면 되는 거 아닙니까?"
지방의원들에 이어 이젠 공무원들까지 세금으로 해외여행 다니냐는 비판이 거셌습니다.
채민식 청도시장 상인 "세금이 많네? 100만 원씩 주고. 좋은 거 보고 와서 여태까지 잘한 거 있나? 없잖아."
코로나 때보다 더 힘들다는 요즘, 죽어가는 지역 경제 살리고 더 힘든 사람 돕는 데 쓰라고도 호통쳤습니다.
윤주희 경북 청도군 주민 "외유성 출장을 다니거나 그런 건 좀 지양해야 할 것 같아요. 복지죠. 일단 서민 복지에 많이 써주셨으면 좋겠고··· 그래도 경제를 선순환으로 만들어서 잘 되게 하는 게 좋지 않을까 그런 생각입니다."
경북 청도군 주민 "취약한 사람들을 위해서 그리고 고령자들, 혼자 (사는) 독거노인들 그런 데 쓰면 좋겠습니다. 그 8억이라는 돈을"
재정자립도는 전국 186등인데···국제화 여비 예산은 9번째로 많이 써
전 직원 해외연수 보낼 만큼 청도군의 살림살이가 넉넉할까요?
청도군의 재정 자립도는 9.6%입니다.
한 해 쓰는 총예산이 100만 원이라고 가정하면 그 중 청도군이 지방세 등으로 직접 벌어들이는 돈은 96,000원뿐이라는 뜻입니다.
쓰는 예산 대부분을 국고보조금과 지방교부세 등 중앙정부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전국 기초자치단체의 평균 재정자립도는 18.8%, 청도군은 평균의 겨우 절반에 미치는 수준입니다.
등수로 따져 봐도 마찬가집니다.
청도군은 전국 226개 시군구 중 재정자립도는 186등, 하위 20% 이하에 속합니다.
반면, 국제화 여비 예산은 226개 기초자치단체 가운데 9번째로 많았습니다.
상위 4% 안에 듭니다.
한 해 예산 규모가 6천억 원 안팎으로 청도군과 비슷한 경기 의왕시, 서울 용산구, 부산 남구 등을 보더라도, 국제화 여비 예산이 청도군의 5분 1수준에 불과했습니다.
조광현 대구경실련 사무처장 “정말 웃기는 거죠. 해외연수가 필요해서 예산을 편성하려면 그 전에 수요를 파악하고 연수가 그 목적에 맞는지 심사하고 그런 과정을 통해서 타당한 사유가 있어야 하는데··· 선심성 예산을 쓴다는 측면이 있고. 지금 같은 경기 상황이라든가 예산 수요라든가 전체적으로 봤을 때 그 예산은 서민 생계를 위해 쓰는 게 맞죠, 차라리.”
행정안전부는 '지자체 세출예산 집행 기준'에서 국제화 여비를 쓸 때 "직무와 연관성이 적은 선심성·단순 시찰 목적 국외여행, 초청장 없는 세미나·회의 참석 등은 최대한 억제"하라고 명시해 놨습니다.
특히, 단순히 업무 관련 자료 수집이나 조사를 위한 해외 출장 시에는 "우선적으로 인터넷이나 대상 국가 파견 주재관 등을 통한 업무 수행이 가능한지 검토해 불가피한 경우에 한해 시행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열악한 지방재정의 낭비 요인을 개선하고, 국민 눈높이에 맞는 투명하고 책임 있는 예산 집행을 하라고 정해 놓은 기준입니다.
장기화하는 경기침체, 저출생, 고령화, 지역소멸··· 지자체마다 한 푼이라도 더 들여 당면한 위기 돌파에 나서는 와중에 정부 지침도 무시하고 세금을 들여보내는 전 직원 해외 견학이 얼마나 새로운 정책으로 청도군 발전을 이끌지 지켜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