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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 '춥지만 따뜻한' 동대구역 3번 출구 무료 급식소

요즘 정말 춥습니다.


밤사이에는 대구도 체감온도가 영하 15도 아래로 떨어집니다.

이런 한파가 몰아치는 날, 오히려 거리로 더 나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매일 같은 자리, 길 위에 서서 갓 지은 밥을 준비해 기다리고, 간식과 핫팩, 양말에 장갑, 갖가지 상비약까지 든 '만물상 가방'을 들고 거리 구석구석을 살피며 돌아다닙니다.

길에서 생활하는 노숙인을 돕는 사람들입니다.


동대구역 3번 출구 무료 급식소
매일 저녁 7시.

대구 도시철도 동대구역 1번 출구와 3번 출구 사이에 트럭 한 대가 자리 잡습니다.

7개 교회가 돌아가며 여는 무료 급식소입니다.

겨울 메뉴는 뜨끈한 김치 돼지국밥입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영하의 칼바람이 불어도 이 국밥 한 그릇을 먹으러 오는 사람들로 저녁마다 트럭 앞에는 긴 줄이 이어집니다.

흰밥을 눌러 담고 넘치게 국을 부어 건네면, 두 그릇이 기본입니다.

무료 급식소 이용자 "두 그릇째예요. 너무 맛있습니다. 목사님이 참 잘합니다. 뜨뜻하니 잘 먹었습니다. 이렇게 해주니 참 고맙죠. 여기 아니면 저녁에 밥 먹으러 갈 데가 없습니다. 없어지면 안 됩니다. 필요하죠. 꼭."

짐가방을 옆에 두고 꽁꽁 언 손으로 길 위에서 하루 마지막 식사를 합니다.

무료 급식소를 여는 교인들은 그렇게 배를 채우는 사람들을 이리저리 살피다 가져온 목도리와 장갑, 귀마개, 핫팩을 나눠줍니다.

오늘 밤도 무사히 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이 무료 급식소를 찾는 3명 중 2명은 일정한 주거지가 없는 노숙인입니다.

여기서 저녁 끼니를 때우고 나면 근처 터미널이나 도시철도 역사로 가 밤을 지내는 겁니다.

손성일 사랑나무공동체 대표 "60% 정도가 노숙하는 분들이고 나머지가 독거노인들이 많이 오십니다. 대부분 집에서 식사를 스스로 해결 못하기 때문에··· 가장 슬플 때가 춥고 배고플 때인데 지금이 가장 그럴 때거든요. 이분들에게 따뜻한 밥 한 끼라도 드림으로 인해서 마음도 다치고 하신 분들에게 조금 위로가 될까 싶어 이렇게 매일 (무료 급식소를) 하고 있습니다. 경제가 점점 어려워지다 보니까··· 힘든 때일수록 노숙자들에게도 관심을 좀 더 가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입니다."


"가족에게 연락하는 것도, 시설에 가는 것도 싫어"···노숙인 상담, 사회 복귀 마음먹을 때까지
이렇게 매일 정해진 곳에서 밥을 챙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구석구석 노숙인을 찾아다니는 이들도 있습니다.

대구 노숙인종합지원센터 직원들입니다.


동대구역, 역사 안에서 가장 따뜻할 만한 곳을 이리저리 살핍니다.

그러다 대합실에 자리 잡은 여성 노숙인을 발견하고 그 앞에 한참을 마주 앉아 떠나지 못합니다.

퉁퉁 부은 다리가 걱정돼서입니다.

20분 넘게 설득하다 결국 '더 아파지면 병원에 가자'라는 약속만 받고 일어섭니다.

가족에게 연락하는 것도 시설에 가는 것도 끝내 싫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권용현 대구 노숙인종합지원센터 사무국장 "다리가 부었어요, 다리가 부어있는데 본인이 치료할 생각이 없어요. 그냥 괜찮다··· 거리 생활하신 지 몇 년 되셨거든요, 여기 계신지가? 연세도 있으시고 하니까 건강이 나빠졌는데 가족들이 있는 집에도 안 간다고 하시니까··· 기초생활수급자시고 자녀도 있고 한 경우에는 강제 조치가 힘든 거죠, 본인이 거부하면. 지금 상황에서는 계속 지켜보고 필요한 부분들을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지원할 수밖에···"

동대구복합환승센터로 이동해서도 아픈 노숙인 곁에서 한참을 설득합니다.

거리에서 생활하는 노숙인 다수가 고령이라 여러 만성질환을 갖고 있습니다.

당뇨 때문에 몸이 붓고 아픈데 약이 떨어졌다거나 예전에 다쳐 수술받은 곳에 문제가 생겼는데 그저 방치하기 일쑤입니다.

터미널에서 도움이 필요한 다른 노숙자들을 찾아다니다, 노숙인을 보자 어디서 잘 건지 밥은 먹었는지부터 확인하고 오늘 밤을 버틸 핫팩을 여러 개 쥐여줍니다.

간식도 건넵니다.

센터에서 나올 때 컵라면과 물, 과자, 따뜻한 커피 같은 간식을 잔뜩 챙겨온 겁니다.

커다란 가방에는 핫팩, 장갑, 양말, 목도리 같은 방한용품에다 반창고, 파스, 연고, 해열제, 소화제 같은 상비약도 들었습니다.

만물상이 따로 없습니다.

권용현 대구 노숙인종합지원센터 사무국장 "바로 드실 수 있는 것도 있고, 추위 때문에 추위를 견딜 수 있는 건 핫팩. 장갑, 양말 필요하신 불 있으면 드리고··· 그리고 약품류는 일하시는 분들은 파스 많이 달라고 하시거든요? 그래서 파스. 노숙인들 갈 수 있는 진료소가 있어요. 진료소 오시기 전에 그래도 쓰실 수 있는 건드리려고···"

하지만 이렇게 가득 챙겨 나온 물품도 한파에는 금세 동이 납니다.

대구 노숙인종합지원센터의 직원은 10명입니다.

이 10명이 폭염과 한파 시기, 9개 구·군을 돌며 매일 노숙인을 살피고 있습니다.

당장 거리 생활에 필요한 물품을 지원하고, 필요할 경우 긴급 잠자리나 의료기관으로 데려가기도 합니다.

가장 중요한 건 지속해서 상담하는 겁니다.

노숙인들은 자기 이야기를 꺼리는 경우도 많고, 계속 지켜봐야 알아챌 수 있는 게 많습니다.

앓고 있는 병이나 만성질환부터 가족은 있는지, 언제부터 거리 생활을 시작했는지 등입니다.

그렇게 지켜보다, 거리 생활을 벗어나겠다고 스스로 마음먹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돕는 겁니다.

권용현 대구 노숙인종합지원센터 사무국장 "보는 시각에 따라서 다를 수 있겠지만, 노숙인들도 각자 거리에서 겨울나기를 하는 방식들이 있으시거든요? 저희가 그걸 최대한 인정하고 거기서 필요하신 것들을 지원해서 최대한 안전하게 겨울을 날 수 있도록 돕는 겁니다. 경우 따라선 이분들이 또 욕구가 생길 수도 있거든요? 가령 여기서 지내지만 자기가 계획이 있다든지 일자리나 아니면 주거나 요구하시면 그때그때 거기에 맞는 지원을 하는 거죠."


대구 노숙인 계속 줄기는 하지만···지원은 항상 모자라
2022년 센터가 실태조사로 파악한 대구의 노숙인은 182명입니다.

이 중 절반은 일시보호시설이나 자활시설로 들어갔고, 100명 정도가 거리에서 생활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2012년 실태조사에 대구에 노숙인은 257명이었으니까 10년 새 절반 수준으로 감소했습니다.

그 수가 매년 줄고는 있지만, 거리로 나오는 새로운 노숙인이 없는 건 아닙니다.

거리 생활을 벗어나는 사람도 있지만 새로 거리로 유입되는 노숙인도 계속 있습니다.

그런데도 보건복지부의 노숙인 위기관리 사업마저 아예 폐지됐습니다.

2024년부터는 대구 노숙인종합지원센터도 위기관리 사업을 위해 받던 국비가 사라집니다.

대구시가 줄어든 국비를 시비로 모두 메우기로 해 지금 하고 있는 지원은 계속할 수 있게 됐지만 겨울이 깊어지고 추위가 더해질수록 노숙인을 돕는 손은 점점 빠듯해지고 있습니다.














손은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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