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오늘 스승의 날 이틀 뒤인 5월 17일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동화작가 권정생 선생께서 타계하신 날입니다.
올해 17주기를 맞습니다.
안상학 시인과 함께 권 선생께서 생에 마지막까지 머물던 흙집을 찾아 그의 삶의 흔적을 더듬었습니다.
엄지원 기자가 보도합니다.
◀기자▶
야트막한 빌배산에서도 가장 낮은 곳에 자리한 다섯 평 남짓 흙집 한 채.
의자 삼아 앉으셨던 댓돌 위 문틀에는 권 정 생 세 글자, 직접 쓴 종이문패가 붙어 있습니다.
사십 년 세월의 풍파에도 얼레벌레 진흙을 이겨 바른 흙집은 여전한데, 주인은 17년째 집을 비웠습니다.
곁에서 오래 사숙했던 그의 제자도, 이젠 예순을 넘긴 초로의 나이가 되었습니다.
◀안상학 시인▶
"오월이 되면 유독 권정생을 생각하는 날이 많아집니다. 우선 어린이날 생각해 보면 권정생 선생께서 만들어 내신 수많은 동화들의 어린이 캐릭터들이 떠오르고요. 저희 같은 사람들에게 어버이 같은 사랑을 많이 베풀어주셨는데 그래서 어버이날에도 생각에도 생각나고요. 스승의 날 당연히 생각나죠"
평생 아픈 몸을 부여잡고 한 사람 누울 공간에서 글을 쓰고 잠을 자고, 성인 키보다 조금 더 높은 빌뱅이 언덕과, 강아지 뺑덕이를 가족 삼아 살아온 무소유의 삶.
◀안상학 시인▶
"옷은 가리면 되고, 집은 비 안 맞으면 되고 먹을 것은 배 안 고프면 된다. 이 정도로 생각하셨거든요. 그리고 자기에게 남아있는 모든 것들을 가지고 있는 거 자체를 불편해하셨어요. 그래서 다 돌려준 거죠. 세상에··· 자기를 위해 한 푼도 쓰지 않으셨습니다"
대표작 '강아지똥'처럼 권정생 선생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낮고 연약한 존재에 주목했고, 그의 삶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안상학 시인▶
"가난한 사람을 보고 같이 할 수 있는 길은 자기 자신도 가난해질 수밖에 없다. 울고 있는 사람과 같이 할 수 있는 길은 당신도 같이 울어주는 그것을 끝까지 실천하셨던 분입니다. 낮은 곳, 어두운 곳, 힘든 곳 함께하는 길인 거죠"
전쟁과 이념 갈등이 끊이지 않는 이 시대, 선생께서 살아 계시다면 어떨까.
◀안상학 시인▶
"전쟁을 겪으면서 선생님은 교육의 기회도 잃어 버렸고 지극히 가난한 삶 속에서 병까지 얻은 몸으로 평생 문학에 매달려 사셨습니다. 그래서 그분의 큰 꿈은 어떻게 하면 이 세상이 전쟁과 폭력이 없고, 아주 평화로운 세상이 되어서 그 안에서 어린이들이 마음껏 자기 꿈을 펼치며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그런 염원을 갖고 계셨거든요. 지금도 살아계셨으면 여전히 그 아픈 몸으로 그 속에서 특히 고통받고 있는 어린이들을 걱정하셨을 겁니다."
큰소리 말보다 삶으로, 작품으로 보여줬던 권정생 선생님의 가르침, 참 스승이 그리워지는 오월입니다.
MBC 뉴스 엄지원입니다. (영상취재 임유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