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대표 문화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는 대구 간송미술관

굵직한 나무 기둥 11개와 짙은 먹색 멱돌의 외벽이 주위 자연과 어우러진 대구간송미술관. 간송 전형필 선생이 일제강점기, 사비를 털어 수집해 보존한 우리 문화유산을 만날 수 있습니다. 대구간송미술관은 서울에 있는 간송미술관의 첫 지역 분관이자 상설전시관으로 관심을 모았습니다. 이를 증명하듯 개관기념 국보보물전 여세동보는 78일 전시기간 동안 22만 4천여 명이 찾았습니다.
2025년에도 국보 3건과 회화·도자·서예 등 간송의 대표 소장품을 볼 수 있는 상설전시와 조선 중기부터 말기까지의 조선 중기부터 말기까지의 화조화를 통해 시대적 미감을 조망한 화조미감, 탄은 이정의 삼청첩 56면을 전면 최초 공개한 광복 80주년 기획전 ‘삼청도도’ 2개의 기획전시를 선보였습니다.
2025년 한 해 동안 26만 5000여 명의 관람객이 대구간송미술관을 찾았는데, 방문객의 49%는 대구 외 지역 방문객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미술관 방문 시 관람객 1인당 평균 소비 금액은 6만 원으로 한해 부가가치유발 효과는 126억 원, 생산유발 효과는 237억원으로 추정됐습니다.
대구간송미술관은 개관 3년차를 맞으며 지역을 대표하는 문화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2026년에는 추사 김정희 탄신 240주년을 기념해 기획전 ‘추사의 그림 수업’ 기획전을 진행했습니다. 조선시대 인물화를 대표하는 혜원 신윤복의 걸작 ‘미인도’를 언제든 관람할 수 있도록 상설 전시 공간을 지난 7월 공개하면서, 루브르 박물관에 가면 모나리자를 볼 수 있듯 대구간송미술관에 가면 '미인도'를 볼 수 있다는 말이 나오는데요.

지난 9월부터는 조선 산수화의 대가, 겸재 정선의 작품 216점을 선보이는 겸재 정선 특별전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4년 전부터 간송미술문화재단과 삼성문화재단이 공동으로 추진한 전시로, 정선 작품만으로는 역대 최대 규모가 한 자리에 모인 만큼 '앞으로 50년 안에 없을 전시'로 주목받고 있는데요. 대구 간송미술관 개관 이후 지난 2년, 지나온 시간과 앞으로의 방향을 토크ON에서 자세히 다뤄봅니다.

[김상호 사회자]
전인건 대구간송미술관장 모셨습니다. 관장님, 어느덧 벌써 개관한 지 2주년이 훌쩍 넘었습니다.
[전인건 대구간송미술관장]
그러게 말입니다. 세월이 정말 빨리 가는 것 같습니다. 지역 자치단체와 간송미술문화재단 같은 비영리 공익법인이 함께 운영하는 이런 모델은 우리나라에서 지금까지 없었던 모델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걱정하시는 분들도 많이 계셨는데, 대구 시민들과 우리나라에서 문화를 사랑하시는 많은 분들의 관심과 사랑 덕분에 대구를 비롯한 전국 단위에서도 사람들이 흥미롭게 생각하고 많이 찾는 문화 마당이 된 것 같아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김상호 사회자]
개관 첫 전시가 귀하고 보기 힘든 국보와 보물 작품들을 모아서 선보인 '여세동보' 전시였습니다. 엄청난 화제를 모았던 걸로 기억합니다. 대구에서 간송의 문화유산이 만나면서 지역의 문화유산 지형도 많이 변화가 있었다고 보는데요. 관장님은 어떤 생각이 드시는지요?
[전인건 대구간송미술관장]
대구는 근대 미술의 발상지이기도 하고, 국채보상운동이 시작된 곳이자 2·28 민주운동 등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이 굉장히 강한 곳이기도 합니다. 문화적인 전통도 예전에 유림이라고 불렸던 문화와 학술의 중심지였기에, 저희가 온다고 해서 지형이 크게 변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저희가 있으면서 범위가 넓어지는 효과를 드리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김상호 사회자]
말씀대로 예술의 지평이 넓어진 것은 체감하고 있는데요. 서울 간송미술관은 봄과 가을에 짧게 문을 열고 주로 간송의 뿌리와 역사 연구를 해온 곳이라면, 대구 간송미술관은 상설 전시관으로서 1년 내내 문이 열려 있는 곳 아니겠습니까? 서울 간송과 대구 간송을 보면 다른 차별점이 있을 것 같은데 어떻습니까?

[전인건 대구간송미술관장]
큰 차별점이 두 가지 정도 있을 것 같습니다. 첫 번째는 '상설 전시'가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서울 보화각 같은 경우에는 봄과 가을로 한 달 반씩 짧게 전시하므로 항상성이 늘 떨어집니다. 예를 들어 교육이나 항상 미술관을 찾고 싶은 사람들이 '아, 지금 벌써 문이 닫혔는데' 하면서 못 오셔서 끊기는 부분들이 있는데요. 대구 간송미술관은 새로 지어진 현대적이고 큰 규모의 건물이기 때문에 더 많은 분이 편하게, 가까이에서 재미있게 보실 수 있도록 다른 전시 기법을 활용한다든지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 같은 것들을 운영할 수 있기 때문에 교육적인 면에서도 중요한 공간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김상호 사회자]
관람객에게 대구간송미술관은 항상 찾아가서 볼 수 있는 부분이 큰 장점으로 다가올 텐데요. 이번 특별전 '겸재 정선- 조선의 눈으로 조선을 그리다'가 개막했습니다. 개관 전시 못지않게 많은 관심을 끌고 있는데요. 매번 전시를 기획하실 때 큐레이션 의미를 담고 계실 텐데, 이번 특별전을 기획하게 된 계기와 전시 규모에 대해 말씀해 주시죠.
[전인건 대구간송미술관장]
2년 전 개관전이 기획 전시실과 상설 전시실 전관을 개방했던 특별한 전시였는데요. 이번 겸재 정선 특별전 역시 기획 전시실과 상설 전시실, 미디어 전시실까지 전관을 총동원한 초대형 전시입니다. 상설 전시실도 1년에 세 번씩 작품을 교체해 늘 새로운 감상을 전하지만, 이번 특별전은 더욱 특별합니다.

2025년 봄에 호암미술관에서 삼성문화재단 창립 60주년을 기념해서 겸재전을 공동으로 개최한 바 있습니다. 삼성문화재단과 간송재단이 같이 했던 전시였는데, 그것을 확대 개편해서 '완전체'를 볼 수 있는 2부가 올가을 대구 간송에서의 전시입니다. 그런 부분에서 더 특별한 전시라고 할 수 있을 것 같고요. 특히 2026년은 간송 전형필 선생 탄신 120주년이자 겸재 정선 탄신 35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입니다. 18세기 진경산수화풍을 완성한 '화성'(그림의 성자) 겸재의 생애와 예술 세계 전반을 아우르는 216점이 출품되는 대규모 전시인 만큼 꼭 놓치지 말고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김상호 사회자]
관장님은 간송 전형필 선생님의 손자이신데요. 간송 선생님의 문화재 수집사에서 겸재 정선의 작품들은 빼놓을 수 없는 작품들인데요. 일제강점기 때 흩어질 뻔했던 화첩과 명작들을 모아두시고 지켜두시는 데는 많은 노고와 힘든 일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겸재 작품들과 관련한 간송 선생의 일화가 있으면 하나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전인건 대구간송미술관장]
간송 컬렉션은 개인의 취향으로 모은 것이 아니라 민족 미술과 전통문화를 연구하기 위한 학술 자료로서 수집되었습니다. 중국이나 일본과 뚜렷이 구별되는 우리 고유의 미의식과 독창성을 담은 작품을 중심으로 모으셨고, 그 정점에 있는 것이 바로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였습니다. 그중 이번에 특별히 전면을 공개한 '경교명승첩', '해악전신첩'이 있는데요. '해악전신첩'에는 극적인 일화가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때 송병준이라는 대표적인 친일파의 집에서 한 골동상이 하룻밤 신세를 지게 되었습니다. 술 한잔 하면 밤에 갑자기 소변이 마려울 때가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밤에 마당을 지나다 보니 하인이 군불을 때우면서 고서를 모아놓고 찢어서 불쏘시개로 넣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거기 있으면 안 될 것 같은 비단으로 싸인 책이 있어서 봤더니, 70대의 겸재가 자신의 모든 것을 완성해서 금강산의 모든 모습을 담아놨던 '해악전신첩'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송병준의 손자에게 물었더니 "어차피 탈 뻔한 것이니 장작값만 내라" 이렇게 말했답니다. 어떤 가치를 갖고 있는지 전혀 관심이 없었던 거죠. 그래서 골동상이 간송에게 가져가서 간송은 정당한 가격을 주고 사들여 소중한 보물을 지켜낼 수 있었습니다. 저희가 겸재 연구를 하는 데 굉장히 중심이 되는 화첩이 불길 속으로 사라질 뻔했던 아찔한 순간이었습니다.

[김상호 사회자]
하마터면 못 볼 뻔했군요? 눈앞에 보물이 있어도 못 알아본다는 재미있는 얘기였습니다. 이번 특별전 전시 제목도 눈길을 끄는데요. '겸재 정선, 조선의 눈으로 조선을 그리다'는 말씀하시고 싶은 내용이 분명히 제목에 있다고 봅니다. 어떤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까?
[전인건 대구간송미술관장]
우리나라 산수화는 굉장히 오래전부터 그려진 주제이기도 합니다만, 17세기 이전까지 조선의 산수화는 대부분 상상 속 중국 풍경을 답습하던 '관념산수'였습니다. 본인이 상상으로 유명한 중국의 풍경을 그리는 경우가 굉장히 많았었는데요.

진경산수 화풍을 만든 겸재 정선은 우리 땅과 산천을 우리만의 시각으로 바라보았습니다. 특히 조선 성리학이라는 사상적 토대 위에서 우리 산하의 지형적 특징을 가장 잘 구현할 수 있는 독창적인 화법을 창안해 낸 것이 바로 진경산수화입니다. '조선의 아름다운 산하를 조선의 눈으로 보고, 조선 고유의 기법으로 그려냈다'라는 점이 겸재 예술의 본질이기에 이를 강조하고자 전시 제목으로 정했습니다.

[김상호 사회자]
관장님, 겸재 정선을 '화성(畵聖)'이라고도 부르셨는데요. 겸재 정선이 조선 500년 역사를 통틀어서 가장 훌륭한 화가로 손꼽히는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요?
[전인건 대구간송미술관장]
훌륭한 화가들이 많이 계시긴 합니다만, 겸재의 특이성은 어린 시절을 굉장히 불우하게 보냈다는 점입니다. 조선 초 개국공신인 사대부 집안이지만 몰락하다 보니까, 보통 삼대를 과거에 급제하지 못하면 몰락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겸재가 4대째였는데 너무 어렵게 살다 보니까 공부에 전념할 수가 없어서 그림으로 가게 된 마음 아픈 사연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다 극복을 하고, 옛것을 온전히 배운 다음에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법고창신(法古創新)'의 경지를 이루어냈습니다. 중국과 우리나라의 옛 기법들, 그림에 관한 공부를 비롯해 성리학과 철학 공부를 다 마쳐서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서 자신만의 화풍을 일궈냈습니다. 흔히 천재적 재능으로 일가를 이룬 화가를 신선에 빗대어 '화선(畵仙)'이라 부르는데요. 오원 장승업 같은 분이 대표적입니다. 반면 뼈를 깎는 수련과 학문적 깊이로 거대한 성취를 이룬 겸재 정선은 '그림의 성자, 화성(畵聖)'이라는 칭호가 가장 잘 어울리는 화가입니다.
- # 대구간송미술관
- # 겸재정선
- # 특별전
- # 문화유산
- # 금강산
- # 미인도
Copyright © Daegu Munhwa Broadcasting Corporation.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