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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굶주림에 죽어가는 독수리···사라지는 대구·경북 독수리 월동지

2022년 2월 3일, 야생동물 구조센터로 지정된 대구시의 한 동물병원에 독수리 한 마리가 119 구조대에 의해 구조돼 들어왔습니다. 이 독수리가 구조된 곳은 대구시 달성군 화원읍과 고령군 개진면이 접한 낙동강 강변입니다. 이곳은 대구·경북의 대표적인 독수리 월동지입니다. 한 시민이 죽어가고 있는 독수리를 발견해 119 구조대에 신고를 한 것입니다. 동물병원에 실려 온 독수리는 생후 1년~2년 정도 되는데, 사람으로 치면 청소년에 해당합니다. 애처롭게 수의사들을 쳐다보는데 고개조차 들 수 없을 정도로 완전히 탈진 상태입니다.


"얘가 음식을 못 먹은 지 적어도 2~3주는 됐다고 봐야 해요"

동물병원의 원장이자 대구·경북 야생동물연합 대표인 최동학 씨는 가련한 독수리를 엑스레이 검사부터 실시했습니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한 상태였습니다. 최동학 대표는 "가슴에 살 자체가 근육이 아주 좁아져 있거든요? 그러면 얘가 음식을 못 먹은 지 적어도 2~3주는 됐다고 봐야 되죠. 지금처럼 이렇게 탈진돼 들어오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이렇게 탈진된 독수리들이 병원에 들어오게 돼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몽골에서 독수리가 날아오는 겨울철이면 굶주림 때문에 구조되는 개체들이 적지 않습니다. 2014년 고령군 개진면 월동지에서 독수리 3마리가 굶어 죽은 채로 발견되는 등 아사하는 독수리도 많습니다. 사냥을 할 수 없는 독수리는 동물 사체를 주 먹이로 하고 있는데 산업화와 도시화로 야외에서 썩어가는 동물 사체를 찾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지방자치단체나 동물보호단체가 먹이주기 행사로 독수리 보호에 나서 독수리들은 근근이 생명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천연기념물' 독수리, 한국에는 500~1,500쌍 월동하는 것으로 관측

독수리는 한국 정부가 지정한 천연기념물이자(제243-1호, 1973년 4월 12일 지정) 세계적인 멸종위기 야생동물입니다. IUCN(국제자연보존연맹, UN의 지원을 받는 세계 최대의 환경 단체)의 적색 리스트에 '취약(VU)'으로 분류돼 있습니다. IUCN은 야생에서 절멸 위기에 처할 가능성이 높은 생물종을 '취약(VU)'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8,400~11,400 쌍(성체 기준)이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유럽에는 2,900~3,400 쌍, 아시아는 5,500~8,000쌍이 살고 있고 한국에는 겨울철 조류 동시 센서스에서 500~1,500쌍이 월동하고 있는 것으로 관측되고 있습니다.

홍순복 박사(대구·경북 야생동물연합 연구위원)는 20여 년 동안 낙동강과 영남 지역의 조류 실태를 조사해 오고 있습니다. 매년 독수리의 월동 실태도 빠짐없이 관찰하고 있습니다. 홍 박사는 “겨울철 조류 동시 센서스는 물새 위주의 조사여서 들녘이나 산야에 서식하는 개체 수는 빠졌기 때문에 한국에서 월동하는 개체 수는 500~1,000 쌍보다는 더 많다고 봐야 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독수리 먹이는 주로 중대형 포유류 사체이고 사냥을 하지는 않아요"

독수리(학명:Aegypius monachus , 영명: Cinereous Vulture)는 매목(Falconiformes) 수리과(Accipitridae) 가운데 대형 종으로 암수 같은 색이며 전체 몸길이 100~110㎝, 양 날개를 편 길이는 250~295㎝이나 3m가 넘는 경우(305㎝)도 관측됩니다. 전체가 암갈색으로 목이 붙어 있는 부분에는 탐스럽게 많이 모인 긴 깃털이 있으며, 목도리 모양입니다. 목 부분에는 흐린 담황색의 피부가 드러나 있습니다.


홍순복 박사는 “독수리는 숲과 민둥산, 초원과 같은 다양한 지형에서 활동합니다. 둥지는 나무나 암석 위에 만들며 느슨한 군집으로 모여 사는데 먹이는 주로 중대형 포유류의 사체이고 사냥을 하지는 않아요.”라며 독수리의 생태에 대해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홍 박사에 따르면 독수리는 최대 75km까지 비행하는 것도 관측되었으며 수명은 야생에서 20년 정도 되는데 최근 유럽에서는 독수리 개체 수가 증가하고 있지만 아시아는 개체 수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고 합니다.

조류 인플루엔자 발병 이후 독수리 먹이 주기 행사 크게 위축

2014년 독수리 생존이 위협받는 결정적인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다름 아닌 조류 인플루엔자의 발병입니다. 정부가 조류 인플루엔자의 원인으로 가창오리를 지목하면서 독수리의 생명을 근근이 이어주던 야생동물의 먹이 주기 행사가 크게 위축됐습니다. 법적으로 먹이 주기를 금지하는 것은 아니지만 농림축산식품부는 먹이 주기 행사를 하지 말 것을 권고하고 있습니다. 대구시 담당 부서 관계자는 "법적으로 금지하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 자제를 권고하잖아요. 환경부서에서 주로 하던데. 저희 방역부서에서는 자제를 권고합니다, 하지 마라 소리죠, 우리 쪽에서는 안 했으면 좋겠다."라고 취재진에게 밝혔습니다.

대구시와 경상북도의 이런 방침 때문에 대구·경북의 대표적인 독수리 월동지인 대구시 달성군 화원읍과 경상북도 고령군의 접경지에서는 개체 수가 급격히 감소했습니다. 이 지역에서 독수리 월동 모습이 처음 목격된 것은 2006년 겨울입니다. 대구·경북 야생동물연합이 최초로 독수리를 관측했는데 2006년 20~30마리였던 것이 매년 늘기 시작해 한때 150여 마리로 증가했습니다. 그러다가 2011년 4대강 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개체 수가 줄기 시작해 2016년 이후 급격히 감소해 2021년 기준으로 20~30마리 수준으로 떨어졌습니다.

"독수리와 조류 인플루엔자는 아무 관련 없어"

그러나 조류 인플루엔자는 주로 오리류에서 발병하기 때문에 독수리를 같이 취급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최동학 대구·경북 야생동물연합 대표(수의사)는 " 독수리, 큰 맹금류에서는 아직 발생 보고가 없거든요? 얘들의 분변에서 나왔다든지 그런 거는 없기 때문에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대구·경북 야생동물연합 뿐 아니라 대구환경운동연합도 근거 없는 먹이 주기 행사 금지보다는 제한적으로라도 독수리에게 먹이 공급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경상남도 고성군과 김해시는 사정이 완전히 다릅니다. 고성군에는 이번 겨울에도 800마리가 넘는 독수리들이 찾았습니다. 연지산 정상 부근 하늘에는 수백 마리가 군무를 펴며 유유히 활공하는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김덕성 한국조류보호협회 독수리 자연학교 대표 등 지역 주민들은 자발적으로 20여 년 전부터 가축 부산물을 독수리에게 주며 독수리의 월동을 도와 왔습니다. 독수리가 조류 인플루엔자 발병과 관련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는 오히려 보호 여론이 형성됐습니다.

고성군, 독수리 생태관광 체험 프로그램에도 선정

고성군은 2021년 문화재청, 낙동강유역환경청, 몽골 명예영사관과 독수리 보호 네트워크 구성 업무협약을 맺고 독수리 보호에 앞장섰습니다. 2020년과 2021년에는 문화체육관광부 생태녹색관광 육성 사업에 독수리 생태관광 체험 프로그램을 신청해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독수리 생태관광 프로그램은 11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화요일과 목요일, 토요일, 일요일에 하루 두 차례씩 운영해 독수리에게 먹이를 주는 행사를 해 좋은 반응을 얻고 있습니다. 고성군은 2021년 12월 3일부터 5일까지 고성읍 기월리 일원에서 제2회 고성 독수리 철새맞이 생태 축제 ‘고성에서 몽골까지 날아라 고성 독수리 축제’를 개최했습니다.


김해시, 10년째 독수리 먹이 주기 사업 이어와

김해시는 2013년부터 매년 김해 화포천습지에서 독수리 먹이 주기 사업을 펴고 있습니다. 시가 10년째 먹이 주기를 하면서 찾아오는 독수리 개체 수가 늘었고 많을 때는 500마리에 이릅니다. 독수리를 비롯한 천연기념물이자 멸종위기종인 노랑부리저어새와 큰고니 등 1만여 마리의 겨울 철새가 화포천습지에 월동을 합니다. 김해시는 철새 서식지를 보호하기 위해 주변 농가와 생태계 서비스 지불제 계약을 맺었고 철새 먹이인 보리 재배와 볏짚 존치, 철새 휴식공간인 쉼터 등을 조성했습니다.

고성군과 김해시의 이런 적극적인 자세는 독수리와 같은 멸종위기 종을 보호하는 것은 물론 생태 관광으로까지 연결시켜 지역 경제와 활력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과학적인 근거 없이 독수리 먹이 주기 행사를 위축시키는 대구시와 경상북도의 탁상행정과는 너무나도 다릅니다. 대구MBC는 2022년 3월 1일 뉴스데스크 시간에 굶주리는 독수리에게 먹이 공급을 해야 한다는 내용의 리포트를 내보내며 이런 문제점을 지적했습니다.


대구시·경상북도의 변화는 언제쯤?

대구지역 환경단체들은 이 뉴스를 접하고 바로 행동에 나섰습니다. 환경과 생명을 지키는 대구교사모임과 아이들 놀이공동체인 협동조합 ‘작땅’, 그리고 대구환경운동연합이 먹이 주기 행사를 시작한 것입니다. 2022년 3월 5일을 시작으로 9일, 12일, 16일, 19일 등 모두 5차례의 '독수리식당'을 경북 고령군 개진면에 있는 ‘개경포공원’에서 운영했습니다. 이들 단체들은 앞으로 매년 굶주리는 독수리에게 먹이를 주기로 결정했습니다. 이런 깨어 있는 활동이 언제쯤 대구시와 경상북도의 경직된 행정에 변화를 불러일으킬 수 있을까요? 전향적인 자세를 기대해 봅니다.

심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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