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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비하인드]② 대구시 정책토론 조례 '개악'···"시민 쓴소리 막아"


정책토론 청구제도는 시민들이 시의 주요 정책에 대해 공개 토론을 열고, 다양한 의견을 담아 더 나은 정책을 만들기 위해 운영되는 제도입니다. 최근 정책토론 청구제도를 두고 대구시와 시민단체가 불편한 관계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15년만에 정책토론 청구 조례 개정... 이전보다 4배 많은 청구인 수 모아야
대구의 정책토론 청구제도는 2008년 김범일 시장이 도입했습니다. 시정혁신 차원에서 시민이 대구시 정책을 두고 공개적으로 의견을 말하고 토론해 보다 나은 정책으로 살기 좋은 대구를 만들어 보자는 취지였습니다. 지자체를 상대로 한 정책토론 청구 조례는 2008년 당시 전국에서 최초로 제정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15년이 지난 올해부터 정책토론 청구 제도의 문턱이 높아졌습니다.

대구시는 지난 3월 정책토론 조례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습니다. 청구 가능 연령을 19세 이상에서 18세 이상으로 낮추고 청구인 수는 300명에서 1,500명으로 늘렸습니다. 대구시의회에서 조례안은 상임위에서 청구인 수가 입법 예고한 1,500명에서 1,200명으로 수정됐고, 5월 4일 본회의까지 통과했습니다. 제도를 처음 도입했을 때 '300명'이었던 청구인을 4배 이상 더 모아야 토론회가 가능해진 셈입니다. 청구인 수 ‘1,200명 서명받아서 토론하기가 그렇게 어렵나?’라고 반문할 수 있겠습니다만, 현실적으로 정책토론을 하기 위한 인원을 충족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청구인 성명과, 생년월일, 성별, 주소, 서명까지 받아야 하는데, 요즘 개인 정보를 보호하는 상태에서 이름과 서명뿐 아니라 생년월일과 주소까지 받아오라는 건 현장에서는 매우 어렵다는 것입니다. 또 이렇게 청구인 서명부를 만들면 대구시가 청구인이 사는 주소지로 보내 하나하나 확인하기 때문에 잘못된 것을 걸러내는 것까지 합하면 필요한 수의 1.5배는 서명을 받아야 합니다.

정책토론 청구 조례, 15년 만에 왜 바뀌게 되었나?
홍준표 대구시장은 정책토론청구를 마치 시정 혁신의 걸림돌이라고 보는 것 같습니다. 대구시의 당초 입법예고안에서 특정 집단의 주장을 논쟁거리로 만드는 수단으로 이용돼 행정력이 낭비되고 시민의 이익을 해치고 있다고 했습니다. 시민사회단체는 정책토론을 무력화하는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습니다.

은재식 우리복지시민연합 사무처장
“홍준표 시장의 공약이 대구의료원 강화, 제 2의료원 포기인데 갑자기 제 2의료원에 대한 정책토론청구가 이뤄졌으니 거기에 대해서 ”저게 뭐냐“는 문제 제기가 내부적으로 있었지 않았을까? 그래서 시민정책토론을 완전히 무력화 시키는 방안으로...”

 대구시가 왜 조례를 바꾸려고 하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 더 있습니다. 대구시청 고위 공무원이 대구시의회에 나와서 한 말은 다음과 같습니다.


황순조  대구시 기획조정실장 “대구가 제일 먼저 이거를 제정하다 보니까 오히려 모범사례가 돼서 “전국에서 정책토론회가 제일 잘되는 곳이 대구다.” 그걸 뛰어넘어서요. 정책토론을 조례만 만들어 놓고 안 하는 곳이 전부 다입니다. 정책토론청구제도가 이렇게 활성화된, 21건이나 한 곳은 대구밖에 없다. 다른 지자체는 아예 시행이 안 되는 정도로 하는데 그런 부분을 감안했을 때 이번에 정상화시키는 것이 맞겠다“

 대구만 활성화되어서 서명인 숫자를 다른 시도처럼 늘려 '정상화' 시킨다는 뜻인 것 같은데요. 대구시가 말한 것처럼 행정력이 낭비될 정도로 자주였는지 살펴봐야 할 부분입니다. 제도가 도입된 2008년부터 2023년까지 실제로 이뤄진 정책토론은 21번으로 연간 1.4회라고 볼 수 있습니다. 내용을 들여다보면 인권과 복지가 많았는데, 토론이 열렸다고 해서 그 내용을 꼭 시정에 반영해야 하는 것도 아니어서 대구시가 그렇게 부담을 가졌던 이유라고 하기에는 의문이 듭니다.

다른 지자체의 정책토론 청구 제도 상황은?
대구는 이렇게 정책토론 청구 문턱이 높아지면서 상황이 어려워졌습니다. 다른 지자체는 어떨까요? 각 지자체에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현황을 파악해 보니 서울과 제주도를 제외하면 한 번 이상 토론회가 개최된 곳이 없었습니다. 서울과 제주도도 각 1회에 그쳐서, 대구시가 상대적으로 모범적으로 제도가 운영된 셈입니다. 다른 지자체에 문의를 좀 해보니 최소 300명인 청구 인원수도 시민들이 나서서 모집하는 게 쉽지 않은 일이다 보니 청구 자체가 잘 없다는 설명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반면, 대구는 제도 도입 단계에서부터 시민사회단체가 함께 하다 보니, 시민사회단체를 중심으로 제도 활용에 대한 동력이 확보되어 있어서 활용도가 상대적으로 높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정책토론 청구 제도 문턱 높아진 대구, 예상되는 변화는?
그동안 전국에서 모범적으로 잘 운영되었던 대구의 정책토론 청구제도는 유명무실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옵니다. 강화된 조례가 대구시의회를 통과하자 시민단체는 '1,200명' 정책토론 장벽에 맞서 다양한 토론을 하자고 청구인 서명부를 제출했는데요. 지난 4월 27일, 8건의 정책토론을 무더기 청구했고, 19일에 300명 기준으로 서명을 받아 접수했습니다. 대구지역 시민단체가 대구시에 제출한 정책토론 의제는 총 8건입니다. 위기가구 종합지원계획, 통합 대구시행복진흥사회서비스원 개선, 지원주택 도입, 금호강 개발계획 점검, 석탄화력발전소 점검, 응급의료체계, 생활임금제, 장애인 이동권입니다.

기존 조례에 따르면 청구 접수 후 한 달 내에 개최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데, 대구시가 8건을 모두 개최할지도 지켜봐야 할 숙제이고, 대구시 결정에 따라 시민단체의 대응도 이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민주주의는 다양한 생각과 의견이 공존하고, 공동체의 미래를 함께 고민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국정을 제대로 살피기 위해서는 국민의 목소리를 경청해야 하는 것처럼, 진정한 지방자치를 위해서는 대구 시정 운영에서도 시민의 다양한 목소리와 쓴소리도 역시 잘 들어야 할 것입니다.

* 이 기사는 대구MBC 이태우 기자, 뉴스민 이상원 기자 공동 취재로 작성됐습니다.

이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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