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수성의료지구는 지난 2008년에 경제자유구역으로 지정됐습니다. 경제자유구역은 원래 외국인 투자 자본과 기술을 적극적으로 유치하기 위해 세제 감면이나 규제 완화 등의 혜택을 부여한 특별 지역을 의미합니다. 당초 의료시설과 교육, 문화시설, 그리고 IT 관련 R&D센터와 외국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조성된 구역입니다. 하지만 핵심 시설인 의료시설 용지는 10년이 지나도록 빈 땅으로 방치되면서 대구시장이 바뀔 때마다 개발 컨셉만 변경되고 가시적인 성과는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그린벨트를 해제해 경제자유구역이 주거‧상업 타운으로 변질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는 게 문제입니다.
8년간 지지부진한 대구 롯데몰 건립, 탄력받나?
가장 최근 쟁점이 된 내용은 수성알파시티 내 롯데쇼핑몰 건립 문제입니다. 롯데쇼핑몰은 수성의료지구가 조성될 당시 개발 계획에는 빠져있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2014년 권영진 대구시장이 취임하면서 교육시설 조성계획을 백지화하고 해당 부지를 롯데쇼핑에 매각했습니다. 롯데는 2014년 말 대형 쇼핑몰을 짓겠다며 대구로부터 7만 7천㎡ 규모의 땅을 싼값에 사들였습니다.
하지만 롯데쇼핑은 홍준표 시장이 취임한 이후에도 계속 땅 파는 시늉만 내다가 여론의 따가운 비판을 받아왔습니다. 그동안 롯데가 땅을 사두고 10여 년 동안 공사하는 시늉만 한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착공을 미루기만 하면 건축 허가가 취소되고, 땅을 놀렸다가는 여러 세금을 많이 물게 되기 때문입니다. 롯데는 이걸 피하고자 설계 변경을 세 차례나 했습니다. 결국 대구시가 '부지 환수'를 검토하려 하자 롯데쇼핑은 공사를 이어가겠다고 했습니다. 2023년 2월 홍준표 시장이 롯데쇼핑 측에 법적 구속력 있는 합의 각서를 요구했습니다. 이후 대구시, 롯데쇼핑, 대구경북경제자유구역청은 수성알파시티 내 롯데복합쇼핑몰 개발사업의 신속한 추진을 위한 합의 체결식을 열었습니다. 그렇지만 3자가 체결한 공사 이행 합의서 내용에는 여전히 남아있는 문제들이 있습니다.
이행 담보조항에 공사를 지연하면 늦어지는 만큼 지연 보상금을 얼마 부과한다는 내용이 담겨야 하는데, 해당 내용이 없는 합의서인 것입니다. 또한, 이번에 3자가 합의한 롯데쇼핑몰 완공 시기는 2026년 6월로 민선 8기 홍준표 시장 임기가 끝나는 때입니다. 대구시 관계자는 "서로 간 협의에 의해서 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 시가 얼마 내놓으라 하는 것은 무리고 지금은 설계변경과 신속한 착공에 포인트를 두고 진행을 하고 있고, 그 관계로 협의하고 있습니다"라고 밝혔습니다. 이 같은 이유로 합의서 체결의 실효성은 다소 부족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의료시설 용지'는 '지식기반 산업시설 용지'로···용도 변경 후 과제는?
대구 수성의료지구 내 롯데쇼핑몰 건립 이슈 외에도 짚어봐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의료시설 용지'입니다. 홍준표 시장이 온 뒤 대구경북경제자유구역청은 수성의료지구 의료시설 용지 8만 2천여㎡ 중 5만 6천㎡를 지식기반 산업시설로 바꾸겠다고 고시했습니다. 홍준표 시장은 '제2의 판교 밸리'로 만들겠다는 공약과 함께 ABB,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블록체인 산업을 육성하겠다는 계획을 밝혔습니다. 지역 신문을 보면 수성알파시티에 역외 ABB 기업이 옮겨왔다는 기사를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역외 기업 본사 이전 유치 문제를 좀 더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대구시는 8개 ABB 기업 본사가 옮겨왔다고 하는데, 실제 본사까지 옮긴 것은 아니고 일부 기업은 임대 형식으로 사무실을 낸 것은 맞습니다. 기업 2개가 지사 형식으로 사무실을 냈고, 본사를 옮기기로 했던 3개 역외 기업은 대구로 본사 이전을 백지화 또는 미정 상태입니다. 나머지 기업도 아직 본사 이전 계획이 없다고 답했습니다.
대구시는 ABB 사업의 핵심인 빅데이터 산업에 필요한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해 추진 중인 1조 4천억 원 규모의 예타 준비사업을 육성할 계획을 세우고 있지만, 후발 주자이다 보니 어려움이 많습니다. 이미 ABB 산업을 선점한 곳이 많기 때문인데요. 광주는 정부 지원으로 인공지능산업집적단지를 조성하고 있고, 부산은 블록체인 특구입니다. 빅데이터와 관련한 사업인 '가이아엑스'는 중앙정부인 중소벤처기업부 사업과 겹치다 보니 대구시 프로젝트가 실현되기까지 쉽지 않은 사업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청일 중소벤처기업부 제조혁신지원과장 "가이아엑스라는 유럽에서 쓰고 있는 데이터 주권이나 데이터 공유, 활용, 표준을 한국에서도 연구해 보자, 허브를 설치한다는 취지입니다. 우리 산하의 스마트제조혁신추진단에 설치가 됐고 독일하고 네트워크가 됐죠. 독일에서 연구하는 것 같이 공유도 하고"
대구시는 홍준표 시장 취임 이후, ABB 산업을 대구시의 새로운 미래 산업으로 육성하기로 하고 인공지능, 블록체인과 빅데이터 등을 묶어 미래ICT국을 신설했습니다. 하지만 2023년 들어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공모한 '2023년도 지역 선도기업 사업화 지원사업'에 지역 기업은 한 곳도 신청하지 못했습니다. 신청요건을 갖춘 기업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인천시의 경우, 블록체인과 AI(인공지능) 분야를 대상으로 공모를 통해 지역 선도기업 3개 사를 지원했고 모두 정부 공모에 선정돼 국비 5억 7천6백만 원을 확보했습니다. 대전시의 경우도 지역 내 성장 가능성이 큰 소프트웨어(SW) 기업을 대상으로 3개를 신청해 모두 선정되면서 인천시와 동일한 국비를 지원받게 됐습니다.
수도권과 지역 ICT 기업 간 격차 커···선택과 집중 필요한 시점
ICT(정보통신기술) 산업의 경우 기업 수, 매출액, 종사자 수 등에서 수도권 비중은 70%를 넘었습니다. 대구시의 경우 기업 수는 4%, 매출액은 2%, 종사자 수는 3%를 나타내고 있으며 대부분 기업이 10인 미만의 영세 기업입니다. 특히 ABB 기술 관련 기업 비중은 인공지능은 1.8%, 빅데이터는 1.9%, 블록체인은 2.4%, 메타버스는 1.2%에 불과합니다. 대구시는 단기간에 5% 이상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공격적인 투자와 관련 기업 유치가 필요하다고 234억 펀드 조성 등 예산을 쏟아붓고 있지만, "선택과 집중이 없다"는, 아직은 부족하다는 목소리도 듣고 있습니다.
국회에서 관련 일을 다룬 한 관계자는 "ABB 사업은 모든 지자체가 다 하고 있는 사업이다. 광주의 경우 인공지능(AI), 부산의 경우 블록체인으로 앞서 나가기 시작했다. 대구시가 늦게나마 ABB 산업을 육성한다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성공 가능성은 크게 낮아 보인다"며 "과기부와 MOU까지 맺어놓고 공모사업에 신청조차 못 했다는 것이 우리 지역 현실이다", "가능성 있는 사업에 집중 투자와 지원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지난 3월 말 대구경북경제자유구역청이 발표한 수성알파시티 내 입주기업은 모두 240개입니다. 해당 기업의 최근 3년 동안 매출과 영업이익을 분석한 결과, 입주기업의 90%가 연간 영업이익이 3억 원 미만이었습니다. 이런 영세기업들을 인공지능이나 블록체인 등 디지털산업으로 전환하려면 ICT 산업을 활성화하는 핵심 기반 시설이 있어야 하는데, 그게 바로 '데이터센터'입니다. 전국의 자치단체들이 데이터센터 유치에 사활을 걸고 있는 것도 일자리를 창출하고 정보통신기술 생태계를 강화하기 위해서입니다. AI 중심도시를 표방한 광주는 정부예산을 지원받아 국내 최대 규모의 국가 데이터 센터를 건립하고 있습니다. 대구시도 가이아엑스 허브와 같은 빅데이터 허브 유치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이아엑스 허브는 국가별로 한 곳만 설치가 가능하고 이미 중소벤처기업부에 설치돼 ICT 기업들을 지원하고 있어서 대구시의 디지털산업 육성정책의 방향성을 다시 모색해 봐야 하는 상황입니다. 대구시가 수성알파시티에 데이터센터나 클라우드 관련 대기업 또는 연구소를 유치하지 못한다면 수성 알파시티를 제2의 판교밸리로 만들겠다는 민선 8기 홍준표 시장의 공약은 말 잔치로 끝날 수도 있습니다.
이대로 가면 경제자유구역이 주거·상업타운으로 바뀌게 되나?
경제자유구역 122만여 ㎡ 가운데 ABB(인공지능과 빅데이터, 블록체인) 산업 육성을 위한 부지와 의료시설 부지를 모두 합쳐봐야 19.7%에 불과합니다. 그나마 지식기반 산업시설지구에 입주한 기업들은 앞서 언급한 대로 대부분 10인 미만 영세기업이어서 의료시설 용지에 외국 자본을 유치하지 못하고 ABB 산업 육성 못 하면 경제자유구역은 상업과 주거 타운으로 바뀔 가능성도 있습니다.
수성의료지구는 해외자본을 유치해 첨단 의료 인프라 구축을 목적으로 조성됐기 때문에 전체 면적의 50%가 도로와 공원, 완충 녹지 등 공공시설 용지로 돼 있습니다. 지금 수성 알파시티 현장에 가보면 아파트 두 곳과 근린 상업지역에 소규모 건물만 잇따라 신축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동안 10년 넘게 조성해 온 수성의료지구가 명실상부 대구 미래를 위한 핵심 기지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더욱 세심한 추진 방안을 모색해야 할 때입니다.
* 이 기사는 대구MBC 이태우 기자, 스픽스대구 김태우 취재본부장 공동 취재로 작성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