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년간 대구·경북에서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은 사람은 445명입니다.
더는 이렇게 일하다 죽는 사람이 없도록 가장 윗선인 최고 경영자에게까지 일터의 안전 관리 책무를 무겁게 지우는 '중대재해처벌법'이 1월 27일부터 시행됩니다. 이 법이 시행되면, 사망사고 같은 중대한 재해가 발생할 경우 현장 책임자뿐만 아니라 경영자도 강한 처벌을 받습니다. 사업주와 경영 책임자 등에게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도록 했는데, 형사 처벌의 상한은 없고 하한선이 생긴 겁니다. 동시에 기업도 50억 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 법은 경영자에게 현장의 위험요소를 미리 확인하고 점검해 없애는 안전보건관리체계를 만들어 지키도록 의무화하고 있습니다. 이런 의무를 소홀히 했다 사고가 나면 이 법의 적용을 받게 되는 겁니다.
정부는 앞으로 일터에서의 안전 의식이 크게 바뀔 거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김윤태 대구지방고용노동청장은 "최고 경영자의 안전에 대한 강한 의지와 실천이 현장 근로자에게 전달되고, 기업의 안전 문화가 확산해 결과적으로 중대 재해가 예방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이 법, 모든 근로 현장에 적용되는 건 아닙니다. 당장 법 적용을 받는 곳은 대구·경북 전체 사업장 5만여 곳 가운데 1% 정도에 불과합니다. 노동자 50인 미만인 사업장과 공사금액 50억 원 미만 건설 현장은 2024년 1월까지 예외로 둔 탓입니다. 그나마 5인 미만 사업장은 아예 적용 대상에서 빠졌습니다.
문제는 법 밖에 있는 중·소 규모 사업장에서 산재 사망자의 80%가 발생한다는 겁니다. 현실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민소현 (전국건설노조 대구경북지역본부 교육선전부장) "안전한 시공을 위해선 뭐가 필요하고 공사 기간은 어느 정도 해야 하고, 비용도 어느 정도 된다. 이런 것들을 담아야 되는데 중대재해법은 그런 걸 담는 게 아니다 보니까..."
또 건설업계에선 불법 도급이나 저가낙찰제 같이 현장에서 사고를 유발하는 근본 원인을 이 법으로 바꾸기엔 부족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하루를 앞두고 포스코 포항제철소를 방문한 정의당 여영국 대표는 "최정우 회장 임기 4년 동안 20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사망했다"며 근본적인 대책을 요구했습니다.
여영국(정의당 대표) "50인 이하 사업장과 50억 이하 공사 현장에서 산재 사망사고의 80%가 발생하고 있는데 중대재해처벌법은 이들 사업장과 공사 현장에 대한 법 적용을 3년 동안 유예했습니다"
반면 중소기업중앙회가 법 시행을 앞두고 전국 중소기업 322개 사를 대상으로 중대재해처벌법을 따를 수 있는지 물어봤는데 53.7%는 의무사항을 준수할 수 없다고 답했다고 합니다.
사실상 대기업을 겨냥한 법인데 피해는 중소기업들에게 다 돌아갈 수 있다는 겁니다.
오순영 대표이사/금속가공업체
"영세한 기업들은 더 도산할 수밖에 없어요. 비용을 감당할 수 없어요. 영세기업의 특성은 어떻게든지 수작업으로 해서 그냥 벌어먹는 게 다인데, 그런 식으로 강제해 놓으니까 여기서 빠져나갈 수도 없고. 3년 지나면 5인 이상 다 해야 하거든? 누가 할 거나고. 할 사람 없어요"
더는 일 하다 죽는 사람이 없도록 하자며 만든 법이 너무 약하다는 반발과 너무 강하다는 반발이 동시에 나오고 있는 것이 2022년 대한민국의 현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