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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염병과의 전쟁, 역대 정부는 어떻게 해왔나?

최근 20년 동안 감염병과의 전쟁을 치르지 않은 정부는 없었습니다. 
노무현 정부는 사스(SARS), 이명박 정부는 신종인플루엔자(H1N1), 박근혜 정부는 메르스(MERS)와 싸웠고, 현재 문재인 정부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과 씨름하고 있습니다. 감염병이 찾아올 때마다 정부는 병에 대처하는 능력과 정부에 대한 신뢰를 시험받게 됩니다. 시민들은 응당 정부가 국민을 병으로부터 보호할 것이라고 믿지만, 잘 대처하지 못한 정부는 그러한 믿음을 무너뜨리기도 했습니다. 지난 20년간 우리나라 정부는 감염병 위기를 어떻게 대응하고, 관리했을까요? 과거 전염병 대응 성공과 실패의 역사를 짚어봤습니다.


1. 한국, ‘사스 예방 모범국’ 되다
-노무현 정부, 2003년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2002년 11월 중국에서 최초 발생한 감염병 사스. 2003년 3월 16일 국내 사스 경보가 최초 발령됩니다. 참여정부 출범 한 달도 채 되지 않았을 때였습니다. 같은 해 7월 7일 상황 종료가 선언되기까지 총 114일이 걸렸습니다. 그 기간 동안 노무현 정부는 체계적이고 빠른 대응 능력을 보였다고 평가받습니다.

방역 기간 동안 전국 242개 보건소가 사스 감염 위험지역 입국자 23만 명을 전화 추적 조사했습니다. 항공기 5400여 대, 선박 1만여 척의 탑승객 90만여 명에 대해 검역을 벌였고, 환자 접촉자 등 2200여 명을 자택에 격리했습니다. 군 의료진 70명이 방역에 투입되기도 했습니다. 범정부차원의 대응도 이뤄졌습니다. 노무현 대통령과 고건 당시 국무총리가 컨트롤타워 역할을 했고, 사스정부종합상황실,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내 위기관리센터가 출범했습니다. 2004년에는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현재 감염병 대응의 중추 조직인 질병관리본부가 출범했습니다.

그 결과 국내 감염자 수는 3명, 사망자는 0명으로 그치며, 전염병에서 한국을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었습니다. 2003년 세계보건기구(WHO)는 한국을 사스 예방 모범국으로 인정하기도 했습니다.



2. 빠른 조치, 그러나 예상된 인재?
-이명박 정부, 2009년 신종인플루엔자(H1N1)

전 세계적으로 유행한 신종플루는 2009년 3월 말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서 시작됐습니다. 같은 해 5월 1일 국내에 첫 2차 감염환자가 발생했고, 31일 확진자가 39명까지 증가했습니다. 3개월 뒤인 8월 15일에는 첫 사망자가 발생했습니다. 이명박 정부는 같은 해 4월 중앙인플루엔자대책본부를 구성하고 빠르게 격리조치를 취하는 등 초기 대응이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하지만 예상된 인재였다는 평가도 존재했습니다. 

당시 연초부터 신종플루 대유행이 예상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정부 대응 및 독감 치료인 타미플루 확보가 미흡했다는 문제점이 제기됐습니다. 2009년 10월 국회에서 열린 ‘신종플루 대처’ 토론회에서 우석균 당시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은 “이명박 정부는 작년까지 신종플루 백신 선구매를 하지 않았고, 올해 초 백신의 마지막 구입 시기를 놓쳐 6월 정부백신 입찰시 다국적 백신회사와의 입찰은 모두 성사되지 못했다”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1)

이명박 정부 들어 항바이러스제 구입 예산이 대폭 삭감됐다는 비판도 있었습니다. 2009년 9월 3일 국회 보건복지가족위원회 송영길 민주당 의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07년 참여정부 시절 항바이러스제 구입 예산은 약 60억원이었으나 2008년에는 27억5천만 원, 2009년에는 13억7천500만원으로 삭감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송 의원은 “2년 전부터 감사원이 타미플루 비축량을 확보하라고 지적했고 6월 임시국회에서도 항바이러스제와 백신 확보 대책을 요구했는데 보건복지가족부가 늑장대응했다”고 발언했습니다.

2009년 시작된 신종플루의 위기단계는 1년 후인 2010년 4월에 ‘주의’에서 ‘관심’으로 하향 조정됐습니다. 질병관리본부는 2009~2010년간 신종플루 감염자는 약 70만 명, 사망자는 약 260명에 이른다고 발표했습니다.



3. 불통, 불투명했던 전염병 위기 대응
-박근혜 정부, 2015년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메르스 발병 당시 한국은 사우디아라비아 다음으로 사망자가 많은 국가였습니다. 또한 정부의 뒤늦은 정보 공개로 초기 대응에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2015년 5월 20일 국내 첫 메르스 확진환자가 발생했습니다. 그로부터 9일 후에야 보건복지부 산하 중앙메르스대책본부가 구성됐습니다. 청와대 내 메르스긴급대책반, 국민안전처 산하 범정부메르스대책지원본부 등 태스크포스(TF)가 양산되면서 위기대응을 전두 지휘할 컨트롤타워의 부재가 드러났습니다. 
또한 전 정부와 다르게 ‘사회 혼란이 우려 된다’는 이유로 메르스 환자 발생 병원의 실명을 즉각 공개하지 않아 문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시민사회의 공개 요구가 커지자 결국 병원 명단을 공개했지만, 병원명이 틀리는 등 정보공개의 정확성·투명성을 갖추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3차 감염이 발생했음에도 첫 확진 이후 감염병 위기단계를 ‘주의’로만 유지해, 정부의 위기의식 수준이 낮다는 문제 제기도 있었습니다. 
2017년에는 청와대가 메르스 유행 당시 “메르스 유가족들이 모임화하려는 움직임이 있다”며 유가족에 대한 동향을 조사하라고 지시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기도 했습니다.



메르스는 7개월 만인 2015년 12월에 공식 종료됐습니다. 국내 감염자는 186명, 사망자는 39명에 달했습니다. 메르스 사태로 2015년 5월까지 40% 수준이었던 박근혜 정부의 국정 지지율은 6월 29%까지 급락하게 됩니다. 정부가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시민들의 신뢰를 잃었기 때문입니다.

메르스 이후 전문가들은 위기소통을 정부 대응체계의 문제점으로 꼽고 있습니다. 관계 기관 간 내·외부 커뮤니케이션 체계의 부재, 병원명 공개 등 정보공개와 중앙정부/지방정부, 의료기관 및 유관기관, 지역사회 및 일반국민 간의 정보공유의 부족 등이 구체적으로 제시됐습니다. 2)



4. 초기 대응 빠르게 이뤄졌으나 앞으로가 문제
-문재인 정부, 2020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

1월 20일 국내 첫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확진자가 발생했습니다.
질병관리본부는 감염병 위기경보 수준을 ‘관심’에서 ‘주의’ 단계로 올리기로 했다고 밝혔습니다. 27일에는 ‘주의’에서 ‘경계’로 격상했습니다. 또한 정부는 25일 후베이성 전역에 대한 여행 경보를 3단계 철수권고로 상향 조정했습니다. 28일에는 중국 전역을 검역대상 오염지역으로 지정했고, 감염병 감시·관리 대상을 우한에서 후베이성 방문자로, ‘폐렴 또는 폐렴의심 증상’에서 ‘발열 또는 호흡기 증상’으로 확대했습니다. 우한 한국 교민들의 귀국을 위한 전세기가 31일 오전 우한 교민 367명을 태우고 김포공항에 도착했습니다. 

문재인 정부의 초기 대응은 빠르게 이뤄졌다고 볼 수 있으나 앞으로가 문제입니다. 해외에서의 감염증 확산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31일 0시 중국 국가위생건강위원회 발표에 따르면 중국 내 누적 확진자는 9,692명, 사망자는 213명으로, 하루 사이 확진자 1,982명, 사망자 43명이나 증가했습니다. 한동안 감염증의 확산세가 쉽게 꺾이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매 정부마다 찾아오는 감염병은 과거에도 그랬듯, 현 정부의 위기대응 능력과 시민사회의 신뢰를 시험하고 있습니다.     (팩트체커 김서현, 윤여훈)


1) (송수연, “신종플루 확산은 인재...정부 부실대응 탓”,청년의사, 2009.10.27., http://www.docdocdoc.co.kr/news/articleView.html?idxno=78619)
2) 백혜진,“전략적인 감염병 위기대응 소통: 변화하는 공중의 역할과 미디어 환경”,대한의사협회지 60권 4호(2017), 306-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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