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3·1운동 이후 한국 유림이 일제의 침략상과 한국의 피해 상황을 알리는 독립 청원서를 작성했고, 곽종석, 김복한 등 유림 대표 137명이 서명했습니다.
이를 상해 임시정부로 보내 영어와 중국어로 번역한 뒤 한국 대표로 파견되어 있던 김규식을 통해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세계 만국평화회의에 제출했지만, 일제의 방해 등으로 파리강화회의 정식 안건으로 상정되지 못했습니다.
한국유림독립운동 파리장서비는 이들의 공적과 정신을 기리기 위해 1997년 10월 건립됐고 2003년 2월 현충 시설로 지정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