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3월 27일 중국의 금융 중심지 상하이를 전면 봉쇄했습니다. 4월 1일까지는 상하이 동쪽 지역을, 5일까지는 서쪽 지역을 봉쇄하면서 상하이 주민 전체를 대상으로 코로나 19 전수검사를 시행한다는 계획이었지만 사실상 상하이 도시 전체가 영향을 받았습니다. 중국은 신속하고 공격적인 조치를 통해 단 한 건의 감염도 허락하지 않는 '제로 코로나 정책'을 채택하고 있는데요. 봉쇄 마지막 날로 예정됐던 4월 5일 상하이에서는 만 명이 넘는 무증상 감염자가 나왔고, 중국 전체에서는 '우한 사태' 이후 처음으로 2만 명대 확진을 기록했습니다. 언제까지 전면 봉쇄가 이어질지, 현재의 상황은 어떤지, 대구MBC 시사 라디오 방송 '여론현장' 김혜숙 앵커가 장창관 대구MBC 통신원에게 들어봤습니다.
Q. 세계 각지의 뉴스를 현지 통신원을 통해서 직접 들어보는 월드 리포트 시간입니다.
오늘은 중국으로 가보죠. 현재 상하이에 거주하고 계시는 장창관 씨 연결돼 있습니다.
안녕하십니까?
A. 예, 안녕하세요? 장창관입니다.
Q. 지금 중국 상하이에 계신 지 얼마나 되셨어요?
A. 한 15년 됐습니다.
Q. 15년 만에 이런 봉쇄, 겪어보셨어요?
A. 15년이 아니라 평생에 처음 느껴봅니다.
Q. 아니 지금 며칠째 갇혀 계신 겁니까?
A. 공식적으로는 4월 1일부터 한다고 했으니까 오늘이 7일째이기는 한데요. 사실상 사무실도 봉쇄되고 그래서, 그리고 또 푸둥 같은 경우에는 더 일찍부터 했기 때문에 저 같은 경우에는 한 10일 정도 됐는데 푸둥 같은 곳에 계신 분들은 벌써 한 한 15일 정도.
Q. 이게 동과 서로 나눠서 먼저 시작했다가 한 4월 5일쯤에는 해제가 될 것이다, 그랬는데 지금 연장이 된 상황이어서 10일, 15일까지도 간다는 얘기시네요?
그러면 봉쇄되기 전에 준비를, 뭐 식료품도 좀 사고 했을 텐데 이미 그 시한을 넘겨서 괜찮습니까, 생활하시기가?
A. 아껴 먹고 있습니다, 지금은.
Q. 남아 있어요?
A.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시 정부에서도 이렇게 한 두 번에 걸쳐서 조금조금씩 이렇게 채소나 과일, 고기 정도 해서 이렇게 보급품이라고 주기는 했는데, 그게 1인 가구 같으면 한 3일 아니면 3인 가구 같으면 한 두 끼 정도 양밖에 안 됩니다.
Q. 아니 잠깐만, 3인 가구에 하루에 두 끼 먹을 양을 얼마 만에 한 번씩 공급을 하는 거예요
그러면?
A. 그게 정기적이지 않아서 얼마 만이라고 이야기할 수가 없습니다. 그냥 이렇게 주면 주는 대로 받고 안 주면 뭐 말할 수가 없습니다.
Q. 중국도 그러면 저희는 배달 음식으로도 격리자분들이 좀 요즘에는 이용을 많이 하고 계시거든요?
중국도 마찬가지인가요? 배달 음식 도움 좀 받고 계세요?
A. 지금은 모든 게 올스톱입니다. 사실은 3월 25일 이전까지만 해도, 3월 말까지만 해도 사실은 뭐 배달도 좀 되고 아파트 입구에서 오면 받으러 나가기도 하고 그렇게 해서 했는데···
Q. 그건 초기 얘기였군요?
A. 그렇죠. 그러니까 한국처럼 이렇게 아파트 입구까지 바로 오는 것이 아니라 아파트 전체 단지 입구까지만 오거든요?
Q. 나갈 수가 없잖아요, 받으러.
A. 그때는 아파트 입구까지는 저희들이 나갈 수 있었어요.
Q. 지금은 더 엄격해졌습니까?
A. 지금은 문 밖을 못 나서니까, 저희들 현관문을 못 나서니까 가지러 가지도 못하고 배달하는 사람들도 다 이렇게 격리돼 있어서 배달 자체도 안 되고, 그리고 음식점도 다 지금 이렇게 정지돼 있는 상태에, 문을 닫은 상태이기 때문에···
Q. 정말 말 그대로 셧다운이 됐네요, 도시 전체가.
A. 그렇죠. 도시에서 이렇게 조용한 적은 없었습니다.
Q. 평생에 처음이다 하셨고요.
A. 제가 고향이 울릉도인데, 울릉도 산에서 살 때···
Q. 그런 고립감을 느끼십니까?
A. 그 느낌입니다.
Q. 저희는 초기에 방역 당국에서 뭐랄까요, 위치 감시라고 할까요? 이탈하지 않도록 그런 앱 같은 게 있었거든요? 중국은 어떴습니까, 공산당이 지키고 있습니까? 외출하지 못하도록?
A. 중국도 지키는 게 아니고요. 저희들이 한국에서처럼 그런 앱을 통해서, 중국도 앱이 있는데 그 앱에 보면 색깔이 바뀝니다.
Q. 집 밖을 나갔을 때?
A. 위험 지역에 나갔을 때는 빨간색으로 이렇게 바뀌기도 하고 그래서 그게 일정 시간 지나지 않으면 다시 안 돌아오거나 안 그러면 잘못하면 격리를 당하거나 그렇게 됩니다.
Q. 어쨌든 철저하게 관리를 하고 있다는 말씀이시네요?
A. 아, 대단히 철저합니다.
Q. 그런데 이제 저희가 하루 전에 연락드렸을 때 코로나 검사를 받고 계셨잖아요?
지금 격리 기간에 코로나 검사는 그럼 얼마 만에 한 번씩 주기적으로 하시는 거예요?
A. 주기적으로는 아니었고요. 일단은 처음에 검사할 때 이틀에 한 번씩 이렇게 받다가 또다시 또 연장이 됐을 때 또 이제 그때부터 다시 또 이틀에 한 번씩 하고 자가 키트도 주고 해서 제가 이제까지 받은 게 한 10번 정도 됩니다.
Q. 근데 PCR 검사는 집에서는 할 수 없잖아요? 상하이가 지금 전수 조사한다고 하는데 그럴 때는 그럼 어떻게 합니까, 외출을 하셔야 되는데?
A. 아니 PCR 검사는 없습니다. 그러니까 핵산 검사한다고 하면
Q. 핵산 검사가 PCR에 해당하는 거군요?
A. 네, 그러니까 아파트 단지 안에 공터에 이렇게 각 동별로 사람들 내려오라고 그래서 거기서 합니다. 그리고 만약에 그 동에 확진자가 있는 동인 것 같으면 검사자들이 올라가서 직접 검사를 하고요.
Q. 그러면 확진된 분들은 대형으로 마련된 치료시설, 거기로 이제 또다시 격리가 되는 거네요?
A. 완전히 확진이 결정이 되면 그렇게 갑니다.
Q. 아니, 2,500만 명 되잖아요, 상하이 시민들이? 전수 조사하는 데만 해도 시간이 어마어마하게 걸릴 것 같은데 지금 전수조사 결과 나오면 어느 정도 되면 해제 풀겠다, 이런 얘기도 없어요? 마냥 기다려야 되는 거예요?
A. 원래는 계획이 이렇게 있었는데, 이게 검사할수록 계속 무증상 감염자들이 많이 나오다 보니까 이게 그냥 계속 연장이 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게 언제 끝날지가 모르는 게 지금 우리 교민들 사이에서도 가장 지금 불안한 상황입니다.
Q. 막막하시겠습니다. 지금도 한 2만 명 정도 상하이에서 나온다고 하는데 이거 제로 코로나 갈 때까지 할 수도 없고요. 일단은 상하이가 중국 경제 수도여서 국제 무역시장 물류에도 지금 타격이 크거든요?
A. 당연하죠. 지금 상하이로 들어오는, 외지에서, 그러니까 상하이 주변에 각 기업들이 있을 거 아닙니까? 공장들, 제조업체들이? 거기에서 들어오는 물건 자체가 상하이로 들어왔다 나가면 그 사람들이 그 동네 가서 상하이에 갔다 왔다고 격리를 시켜버리니까 기사들이 운행을 안 하려고 그요. 근데 공식적으로는 항만이나 공항에서는 물류 정상적으로 한다는데 물건이 와야 뭘 보내죠. 물건 자체가 오지를 않으니까 이게 보낼 수가 없다는 그런 상황입니다.
Q. 중국은 정말 코로나 초기 우한 사태로 다시 되돌아간 그런 느낌도 들고 세계 물류도 상하이 항구가 묶이면서 지금 동맥 경화를 겪고 있는 것 같습니다.
국내 기업들도 지금 상하이에 많이 진출해 있거든요?
A. 그렇죠, 많죠. 그래서 지금 국내 기업들도 지금 굉장히 힘들어합니다.
왜냐하면 공장은 돌릴 수 있는데, 충분히, 문제는 이게 사람들이 출근을 못 하니까 만들 수가 없는 거죠.
그래서 저희들도 대구 대표 기업인 평화정공이라든지 이런 데도, 이 상하이 근처에 있거든요? 상하이 시에 있는 게 아니고. 그런데 일부 직원들이 나와서 만들기는 하는데 또 부품 조달하기가 힘들다 보니까 이게 제대로 돌아갈 수가 없습니다.
Q. 어떻습니까, 중국 시민들이 생각하는 당국의 제로 코로나 정책. 좀 한인들도 그렇고 여론이 어떤지 마지막으로 들어야겠네요?
A. 중국은 그런 여론에 대해서는 거의 말을 하지 않으니까 잘 모르겠고요. 한국 사람들하고 이렇게 SNS를 통해서 이렇게 저렇게 이야기하지만 결론 나는 건 없습니다. 기업들은 다 애로사항이 있는 게 일단은 전 직원들이 출근을 하지 않다 보니까, 그래서 상하이에 대구은행 지점이 있거든요? 그런데 대구은행이 여러 지역하고 같이 연결하다 보니까 사무실에서 지금 먹고 자고 하면서 지금 그걸 지원하고 있습니다.
Q. 다음 중국 연결할 때는 꼭 좀 격리 해제 풀렸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잘 들었습니다.
A. 예, 제발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Q. 장창관 통신원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