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종 서상국의 시인의 저녁

김규종 서상국의 시인의 저녁

18시 15분

누구나인문학

2월 22일 영화 <컨테이젼>


거침없는 세계화가 당신을 죽인다! (<컨테이젼>)


스티븐 소더버그의 영화 <컨테이젼>.

그는 첫 번째 영화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1989)로 ‘칸 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하면서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1998년에는 <조지 클루니의 표적>으로 새로운 형태의 액션을 선보여 세상을 놀라게 한다. <트래픽>과 <에린 브로코비치>(2000)는 사회문제를 영화 속으로 끌어들인다.

소더버그는 <오션스> 시리즈로 대표되는 오락영화와 <솔라리스> (2002) 같은 공상과학 영화에도 명함을 내밀었다. 2004년에는 홍콩의 왕가위와 이탈리아의 안토니오니 감독과 함께 옴니버스 영화 <에로스>를 감독했다. 지금까지 25편의 영화를 연출한 소더버그의 장르는 드라마, 범죄, 스릴러, 공상과학, 희극, 액션, 미스터리에 이르기까지 다채롭다.


개인과 가족, 그리고 국가

홍콩으로 출장을 다녀온 베스(기네스 펠트로)가 느닷없이 발작을 일으키고 사망한다. 아주 짧은 시간 뒤에 베스의 아들 또한 같은 증상을 보이고 죽는다. 이런 사태에 직면한 베스의 남편 미치(맷 데이먼)는 혼란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든다. <컨테이젼>은 이렇게 가족 이야기를 전반부에 배치함으로써 앞으로 있을 전체적인 서사구조를 준비한다.

미치는 아내와 아들의 느닷없는 죽음의 원인을 알아내고 싶다. 하지만 평범한 시민 미치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보건 당국이 시키는 대로 무조건 따르는 일 말고 그가 할 수 있는 일이 어디 있는가. 여기서 영화는 무력한 시민이 일점혈육 딸아이를 보호하는 일 이외에는 아무 가능성도 없는 아메리카에서 살아가는 개인의 일상을 서늘하게 보여준다.

가정의 출발은 아내와 남편이고, 그 외연이 확장되어 나타난 결과가 아들과 딸이다. 가정이란 남편과 아내의 조합에서 출발하여 대물림의 과정을 되풀이하면서 오늘에 이른 것이다. <컨테이젼>은 가정이 얼마나 신속하고 파괴되어 폭동에까지 이르는지를 확연히 재현한다. 허다한 사람들의 죽음과 가정파괴의 원인은 영화 끝에서야 확인할 수 있다.

개인이 모여 가족을 이루고, 가족이 모여 지역사회가 되고, 지역의 결합으로 국가가 만들어진다. 가족의 위기가 국가의 위기로 연결되는 건 당연한 이치다. 따라서 국가가 가족의 안전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면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은 당연지사. 신속한 감염으로 발생하는 위기를 국가도 감당하지 못한다는 충격적인 결과 보고가 영화의 핵심적인 전갈이다.


개인과 언론, 그리고 국가

개인의 사생활 보호와 국민의 알 권리와 언론의 사실 보도 의무가 서로 충돌한다면 여러분은 누구 손을 들어주겠는가. 2009년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故 장자연 사건’의 내막을 여러분은 상세하게 알고 있는가! 전도유망한 배우 장자연은 왜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됐는가. 그녀가 남긴 ‘성상납목록’의 인간들에 대한 검찰의 전면적인 조사는 이뤄졌는가.

장자연과 관련됐다고 보도된 해당 언론사는 국민의 알 권리 충족에 최선을 다했는가. <컨테이젼>은 이런 복합적인 문제에도 시선을 던진다. 여기서 핵심적인 인물은 주드 로가 연기한 크럼위드다. 크럼위드는 개인 블로그 운영자이자 의학 관련 프리랜서다. 그는 세계 전역에서 발생한 치명적인 전염병에 대한 명확한 판단기준과 치료제를 가지고 있다.

크럼위드는 질병통제센터와 제약회사가 언론과 한통속이 되어 전염병 감염경로와 치료제 개발과정을 은폐하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한다. 기존의 종이언론과 담을 쌓고 살아가는 그는 블로그에서 그런 생각을 밝히고 사태가 악화함에 따라 블로그 방문객은 날로 증가한다. 더욱이 크럼위드는 자신이 개발한 ‘개나리 치료제’ 선전에도 앞뒤 가리지 않는다.

정의로운 인간을 자처하면서 그는 한편으로는 국가와 언론과 제약회사의 은밀한 결탁관계를 폭로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이 개발한 치료제 효능을 주식투기꾼에게 확신시켜 이득을 챙긴다. 우리는 국가 공권력과 개인의 일치점과 차이점을 생각하게 된다. 치명적인 파국에 직면한 국민의 선택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 하는 게 초미의 문제다.

당신의 손은 안전한가

<컨테이젼>은 충격적인 영화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가 날마다 접하는 허다한 물건과 악수 같은 일상적인 습관이 죽음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이 명확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컨테이젼(contagion)은 ‘접촉감염’이나 ‘전염병’을 뜻하는 영어 어휘다. 따라서 접촉으로 생겨난 질병이 대규모 전염병으로 확산한다는 의미를 영화 제목은 함축하고 있다.

당신은 하루에 몇 번이나 얼굴을 만지는가. 놀라지 마시라. 3,000번 이상이라는 게 알려진 통계수치다. 대개의 경우 사람은 1분에 4-5회 얼굴을 만진다고 한다. 하루는 1,440분이고, 거기서 8시간 수면시간을 빼면 960분이 깨어있는 시간이다. 고로 산술적으로 생각하면 하루에 3,000번 이상 얼굴을 만진다는 통계는 상당히 설득력 있어 보이는 수치다.

문제는 얼굴이 아니라 손이다. 당신의 얼굴을 만지는 손이 그 전에 무엇을 건드리고 무엇을 만졌는가, 하는 게 문제라는 얘기다. 엘리베이터 개폐단추, 공동주택 출입구의 문고리, 버스와 전철의 지지대와 손잡이, 대중음식점의 컵과 휴대전화기, 컴퓨터 자판과 자동차 운전대, 가까운 사람들과 나누는 악수와 포옹. 인간의 접촉은 이처럼 끝없이 이어진다.

의도적이든 아니든, 의식하든 못하든 우리는 무수한 접촉에 의지해 살아간다. 인간의 손은 영장류 가운데 최고도로 발전된 기능성의 총화다. 엄지손가락 재생 분야에서 인간은 여전히 속수무책이다. 그만큼 인간의 손은 오랜 세월 축적된 진화의 결정적인 산물이기도 하다. 따라서 손은 오늘날 인간을 진화의 사다리 꼭짓점에 있게 한 장본인 가운데 하나다. 손을 당신의 일상에서 제외하라. 그러면 무엇이 남게 되는가?!


세상에 우연은 없다?!

<컨테이젼>은 결말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감염경로를 구체화한다. 짧은 시간에 재현되는 경로는 충격적일 만큼 단순하다. 박쥐와 돼지, 인간이 상호 교차하는 아주 작고 우연적인 지점에서 발생하여 세계적인 규모의 대량살상으로 확산하는 원인이 규명될 때 객석은 잠시 숨을 죽인다. 어떤 이는 어처구니없어하고, 다른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인다.

“작은 개체에서 발생하는 우연적인 사건이 거대한 유기체에서 필연을 야기한다.”

프랑스 출신 생화학자 자크 모노가 <우연과 필연>에서 설파한 내용의 핵심이다. 세상의 모든 것은 우연에 기초한 필연의 사슬에 엮여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생명과 순환을 설파한 김지하의 ‘밥은 하늘이고, 똥은 밥이다’라는 생각과 같다. 세상의 모든 것은, 돌고 돌아서 원인 제공자에게 고스란히 돌아온다는 사유. 불가의 ‘회자정리’와 같은 맥락이다.

홍콩에서 만난 업자와 희희낙락하던 베스가 음식점 주방장과 손을 맞잡는다. 주방장의 손은 청결하지 않다. 베스의 손이 닿은 컵을 웨이터가 만지고, 그의 손은 애인과 겹쳐져 죽음으로 이어진다. 베스의 외도가 시카고에서 또 다른 죽음을 부르고, 그것은 아들의 죽음과 맞닿는다. 그런데 미치는 괜찮을까. 그것은 여러분이 영화관에서 몸소 확인하시라.


속도와 감시의 시간대 21세기

<컨테이젼>은 21세기 세계의 속도와 관계망을 사유한다. 1918년 에스파냐 독감으로 유럽에서 최소 5천만에서 많게는 8천만까지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그 시대는 느림이 지배한 시기였다. 자동차와 비행기와 고속철이 누비는 21세기는 그야말로 광속의 시간대다. 20년 남짓 진행된 거침없는 세계화의 물결이 상황을 악화시킨다. 바야흐로 지구촌 시대다!

누구도 과학과 기술이 몰고 온 광기의 속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과학, 의학, 통신은 발달했지만, 인류가 지구 전역을 빠르게 오갈 수 있기에 위험도는 한층 높아졌다. 인간의 역사와 함께 전염 병원체는 끝없이 진화하면서 나름의 역사를 만들어왔다. 이와 함께 <컨테이젼>은 통제 불가능한 상황에 빠진 인간들이 야기하는 극한의 공포를 보여준다.

영화는 상당히 혼란스럽다. 소더버그가 영화에서 너무 많은 것을 한꺼번에 보여주고자 하기 때문이다. 속도와 세계화의 문제, 언론의 구실, 국가기밀과 그것과 결부한 사생활 문제, 폭동은 어떻게 일어나는가, 누군가는 질병으로 죽어 나가지만 누군가는 그 대가로 돈을 버는 현실, 초국적 제약회사와 무력한 민중, 부자나라와 가난한 나라의 대립과 반목...

영화를 보면서 머릿속에서 자꾸 우리의 현실이 겹쳐진다. 그리고 물음표가 연신 생겨나는 것이다. 저런 상황이 대한민국에서 벌어진다면 어떤 일들이 발생할 것인가. 덧붙여 베스가 홍콩에서 경험한 일거수일투족이 감시카메라 (CCTV)에 찍혀 있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끔찍했다. 당신의 하루하루는 지금 이 시각에도 누군가의 감시와 통제 아래 있다!